
이어지는 장애물은 외로움이다. ‘창조경제’라는 미명 아래 국가적으로 창업을 응원하는 듯하지만 정작 창업한 이후에는 “쉬운 길 놔두고 왜 실패 가능성이 큰 창업의 길로 들어섰는가?”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대답해야 한다. 함께 손잡고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동료 한 명이 절실하다.
창업 선순환을 꿈꾸며
지난해 3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출자해 5월 개관한 ‘디.캠프(D.Camp)’는 초기 창업자가 이 두 가지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창업지망생과 멘토, 투자자 등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들이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게 지원한다. 또한 디캠프는 기존 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창업 초기 기업에 직간접적 투자도 한다.
서울 강남구 선릉로. ‘창업 1번지’ 테헤란로 인근에 위치한 디캠프에는 80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협업공간과 PT룸, 다양한 크기의 회의실과 저렴한 가격으로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카페 등이 마련됐다. 이 중 스타트업이 임차할 수 있는 중·소 규모 사무실도 7곳 마련돼 있다. 디캠프의 ‘산파’ 노릇을 한 이나리 기업가정신센터장은 이 공간에 대해 “창업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인프라를 제공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원조는 1939년 캘리포니아 주 팰러앨토 시의 어느 주차장에서 창업한 HP입니다. HP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다시 창업하고, 벤처에 재투자를 하거나 멘토가 되는 등 ‘선순환’을 만든 겁니다. 또한 ‘페이팔(Paypal) 마피아’라는 말도 있죠. 전자결제업체 페이팔 출신들이 창업 선순환을 이끌며 실리콘밸리 성장에 크게 기여했거든요.”
‘중앙일보’ 기자 시절 미국 스탠퍼드대로 연수를 갔던 이 센터장은 미국 유명 창업지원센터 ‘와이 콤비네이터(Y Combinator)’ 파티에 참가했을 때 느낀 ‘문화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젊은이들이 만날 모여 앉아 맥주, 콜라 마시며 대화를 하는데 ‘네트워크 파티’라고 하더라고요. 학벌,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창업에 뜻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는 거예요. 즐거운 교류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러다보면 공동창업자, 투자자 등을 만나죠. 그때부터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국내에도 290여 곳의 창업지원센터가 있지만 대부분 대학 안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지고 창업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연결하는 기능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이 센터장은 20개 금융기관이 출자한 비영리재단인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의 박병원 이사장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고, 그 결과 디캠프가 만들어졌다.
디캠프 협업공간은 현재까지 2만여 명이 이용했고 1300여 차례 행사를 개최했다. 이곳을 거친 스타트업만 1400여 곳에 달한다. 디캠프 개관 이후 국내에는 비슷한 성격의 ‘창업 열린공간’ 여러 곳이 문을 열었다.
남다름, 용기, 혁신, 창조
디캠프를 이용하려면 홈페이지 회원가입 후 정회원으로 인증받아야 한다. 그때 받는 질문은 두 가지다. 당신이 창업과 관련해 무슨 일을 했는가. 그리고 당신의 평판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이 센터장은 “학력이나 이력서로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대신 ‘무언가를 했거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
인증을 받은 회원들은 디캠프 내 개인 작업 공간을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디캠프가 주최하는 멘토링, 네트워크 파티, 오픈 취업박람회, 워크숍 프로그램 등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이 센터장은 “디캠프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다보면 참가자들끼리 서로 안면을 익히고 의견도 나누면서 막연했던 창업 아이디어가 구체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무료로 공간을 빌려주면 대학생들이 디캠프에 와서 토플책 펴놓고 공부하거나 컴퓨터 게임이나 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그런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옆자리 친구가 정말 미친 듯이 창업을 위해 뭔가를 하는데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런 ‘공기(atmosphere)’가 이미 형성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