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글로벌 스토리’ 만드는 SK그룹
최태원 회장, 상생형 협력모델 구축 앞장서
조대식 의장, 베트남 1, 2위 기업 투자로 성장동력 발굴 조력
ESG 경영 통해 베트남 환경·사회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8년 11월 베트남 하노이국립대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후변화 대응’을 주제로 열린 제1회 하노이포럼에서 축사하고 있다. [SK]
베트남과 양국 경제협력 상생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최선두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 있다. 최 회장은 베트남 정·관계 인사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양국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협력모델 구상을 담당한다. 그의 구상은 조대식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전문경영인이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리면서 현실화한다. 그룹 총수와 전문경영인이 원(One)팀이 돼 베트남에서 SK의 글로벌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 베트남 정·관계 인사들과 네트워킹
최태원 회장(왼쪽에서 세 번째) 등 SK그룹 경영진이 2019년 6월 베트남 하노이 총리공관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왼쪽에서 네 번째), 팜 녓 브엉 빈그룹 회장(왼쪽에서 다섯 번째) 등을 만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협의했다. [SK]
SK도 이해관계자들에게 다양한 편익을 제공하고 신뢰를 쌓아 상호 윈-윈하는 협력모델 구축을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으로 삼고 있던 시점이라 양측의 이해관계는 자연스럽게 접목됐다.
최태원 회장은 베트남 정부 고위 관계자에 이어 베트남 최대 소비재 기업인 마산그룹 응우옌 당 꽝 회장, ICT기업인 FPT그룹의 쯔엉 자 빙 회장, 하노이국립대 응우옌 낌 썬 총장 등과도 잇달아 회동하며 양국 민간 교류 및 협력 기반을 조성했다.
최 회장은 2018년에 이어 2019년에도 잇달아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 교류에 속도를 높여나갔다. 특히 2019년에는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조대식 의장 등 SK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진과 함께 베트남을 찾아 SK그룹의 협력 의지를 보여줬다.
최 회장은 총리 면담에 이어 베트남 재계 1, 2위 기업인 빈그룹과 마산그룹 총수를 만나 민간기업 간 사업 협력을 위한 단초를 마련했다. 또한 베트남이 자동차와 정보통신산업 클러스터 부지로 조성 중인 하이퐁 경제특구를 방문, 중장기 사업 확장을 위한 기반도 닦았다.
이에 앞서 SK는 2006년 베트남 호찌민에서 CEO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베트남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둔 신흥시장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이다. SK는 그룹의 경영 방향을 논의하는 전략회의를 호찌민에서 개최할 정도로 베트남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챈 것. 2006년 방문 때에도 최 회장은 응우옌 떤 중 당시 총리와 면담하면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는 석유탐사와 원유 생산, 중화학 사업 현대화 지원 등 에너지 분야 협력으로 이어졌다.
질적 업그레이드된 SK-베트남 협력
10여 년 만에 재개된 베트남 총리와의 회동을 계기로 양측의 협력관계는 과거와 질적으로 크게 달라졌다. SK는 에너지 등 자원외교 중심에서 베트남 선도기업과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을 함께 하며 시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경제협력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베트남 정부와 현지 기업은 기술력과 자본을 가진 SK의 지원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편익을 제공하는 이른바 ‘SK그룹의 글로벌 스토리’가 베트남에서 본격적으로 뿌리내릴 것이다.
최태원 회장이 베트남 진출의 큰 가닥을 잡았다면 구체적 밑그림은 조대식 수펙스 의장이 그렸다. 최 회장이 네트워킹으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관계를 만들면 조 의장이 SK그룹의 역량을 더해 구체적 비즈니스를 만들어 냈다.
조 의장은 베트남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할 전문 조직으로 2018년 8월 동남아투자법인을 설립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 E&S, SK하이닉스 등 5개 관계사가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해 현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에 투자하거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는 방식으로 사업 기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조 의장은 동남아투자법인의 1호 투자로 베트남의 마산그룹, 2호 투자로 빈그룹을 택했다. 빈그룹은 부동산·자동차·리조트가 주력 사업, 마산그룹은 식음료와 유통이 핵심 사업이다. 각각 베트남 1, 2위 기업이다. 조 의장은 투자 전문가로서 인사이트를 반영해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조 의장은 SK의 지주회사 SK㈜ CEO로 재직하면서 지주회사 경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조 의장은 자회사에서 받는 배당금과 브랜드 수수료에 의존하는 통상의 관리형 지주회사에서 벗어나 성장 동력원이 될 투자대상을 적극 발굴하고 투자하는 지주회사로 SK㈜를 변신시켰다.
2019년 5월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오른쪽 세번째)과 응우옌 비엣 꽝(왼쪽에서 두번째) 빈그룹 부회장 겸 CEO가 참석한 가운데 베트남 하노이 빈그룹 본사에서 전략적 파트너십 협약을 체결했다. [SK]
“선도기업과 M&A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조 의장은 “선도기업과 M&A를 해야 한다. 시장에서 매수 의지가 있고 시장성이 높은 업계 선도기업을 인수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성장동력을 발굴했다. 최근 SK가 바이오와 소재·부품·장비, 친환경 에너지 분야 선도기업에 적극 투자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베트남 투자 전략도 마찬가지다. 조 의장은 베트남 선도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어야 협력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최 회장과 별도로 다양한 베트남 기업 관계자와 미팅하면서 성장 동력원을 물색했다.
그 결과 SK그룹은 2018년 10월 마산그룹 지분 9.5%, 2019년 5월에는 빈그룹 지분 6.1%를 확보했다. 빈그룹 투자는 팜 녓 브엉 회장을 만나 논의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성사될 정도로 조 의장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SK는 마산그룹 자회사인 윈커머스와 크라운엑스 등에도 투자를 단행했다. 윈커머스는 베트남 최대 유통전문 회사이고, 크라운엑스는 베트남 최대 식음료 유통 기업이다.
투자받은 기업이 사업을 확장할 때 SK그룹도 함께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을 붙여놓았다. 즉 베트남 1, 2위 기업인 빈그룹과 마산그룹이 사업을 확장할수록 SK의 베트남 사업 기반도 넓어지는 것이다.
SK그룹은 베트남 현지 이해관계자들에게 진정한 신뢰를 얻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ESG를 소재로 베트남의 환경과 사회문제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환경·사회 문제 해결도 돕는다
최태원 회장은 2018년 11월 하노이 국립대에서 제1회 하노이포럼을 개최했다. 이 포럼은 2017년 최 회장과 응우옌 낌 썬 총장 간 면담에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베트남 현지 문제 해결을 논의하는 창구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포럼의 첫 주제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후변화 대응’으로 잡았다. 베트남 산업이 발전하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진 점을 착안해 이 문제를 함께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포럼을 준비한 것.
최태원 회장도 이 포럼에 직접 참석해 “기후변화로 베트남도 막대한 태풍 피해를 입었다. 환경문제는 특정 국가의 이슈가 아닌 글로벌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환경보존에 더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해법을 찾아야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12월 방한한 브엉 딘 후에 베트남 국회의장을 만나 “SK와 베트남이 친환경 사업으로 넷제로와 탄소 감축을 달성하자”는 양해각서를 체결할 정도로 환경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SK그룹 관계사 중 SK이노베이션은 2018년부터 짜빈성 롱칸 지역에 맹그로브숲을 조성하면서 직접 탄소를 감축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호찌민 기술대에는 맹그로브숲 복원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맹그로브는 열대우림보다 최대 5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온난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식물이다.
30년 넘게 이뤄진 의료 봉사활동
2015년 7월 베트남 북부 타인호아 아동병원에서 안면기형 성형수술 의료봉사 활동에 나선 SK 대학생 자원봉사단 ‘써니(SUNNY)’와 봉사단이 수술 전후 병실에서 간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SK]
최태원 회장도 2009년 베트남을 직접 찾아 의료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베트남 정부는 양국 상생 협력에 대한 최 회장과 SK의 진정성을 인정해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국가우호훈장을 SK와 세민회에 2009년과 2016년 두 차례 수여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수교 30주년을 이어오는 동안 양국 경제협력과 상생에 노력해왔던 것만큼 앞으로도 베트남과 더 진정성 있게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 SK에 대한 신뢰를 키워 베트남에서 빅 립(Big Reap·더 큰 수확)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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