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 한화 매각설 사실 무근
‘완전 민영화’했다면 FA-50 대박 없었다
한화 "KAI 인수 논의한 적 없어"
1조2000억 원 KAI 지분, 삼키기는 부담
수은 “지분 팔 수도 없고, 팔 생각도 없어”
軍 “민간에 방산 전부 넘겨선 안 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경전투기 FA-50. [KAI]
매각설은 증권가를 중심으로 구체화됐다. 일설에 따르면 한화는 대우조선 특수선사업부만을 인수해 군함 사업에 도전하려 했다. 당시 정부는 한화가 대우조선을 완전 인수하기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 조건으로 KAI를 걸었다. 수은이 가지고 있는 KAI의 지분을 사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면 대우조선을 인수하겠다는 것. 여기까지가 항간에 퍼진 KAI 매각설의 전말이다.
윤희성 한국수출입은행장은 10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동아DB]
한화가 여전히 KAI 인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각에서는 ‘한국판 록히드마틴’의 탄생이 멀지 않았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증권가에서는 이 소문에 신빙성을 더했다. 수은이 KAI 지분 보유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KAI도 내부에서는 민영화를 원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KAI의 최고경영진은 대부분 정부 측 인사였다. 1999년 창사 이래 지금까지 8명의 사장이 자리를 지켰다. 이 중 5대 하성용 전 사장(2013~2017)을 제외하면 전부 관료나 군 출신 인사였다. 따라서 KAI는 정권에 따라 사업 방향성이 바뀐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KAI 임직원들이 민영화를 원한다는 이야기까지 소문에 덧붙여졌다.
20년 기다려줄 민간 기업은 없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11월 7일 서울 강남구 KAI 서울 사옥을 찾았다. KAI 관계자는 “KAI 임직원들은 매각을 원하지 않는다”고 확언했다. KAI 임직원들이 민영화를 원한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정부 지분율이 높은 회사라 FA-50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KAI 임직원들은 대부분 지분 매각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10월 11일에는 KAI 노동조합이 매각 반대 의사를 밝혔다. 10월 18일에는 회사 내 임직원을 상대로 매각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다. 노조 측에 따르면 지금까지 3430명의 임직원이 서명했다. KAI에서 일하는 임직원은 총 5033명.
KAI 측의 설명에 따르면 FA-50 경전투기의 원형인 T-50 고등 훈련기는 2002년 개발 이후 20년간 천덕꾸러기였다. 개발 당시 경쟁 기종 중 최고 수준의 성능을 자랑했지만, 이 성능이 발목을 잡았다. 개발 단계부터 필요 이상의 고성능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2005년 실전 배치 후에도 비용 문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 나왔다. 해외 수출 시장에서도 성과가 나빴다. 성능이 좋은 대신 가격이 너무 비싸 사겠다는 나라가 없었다.
20년의 시간이 지나자 FA-50에 미치지 못하는 성능을 가진 경공격기들이 대량 퇴역하기 시작했다. 9월 폴란드가 FA-50 48대를 30억 달러(4조 1700억 원)에 사들이며 KAI의 애물단지였던 T-50 계열 전투기들은 보물단지로 변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KAI를 인수했다면 FA-50의 성공은 없었을 것”이라며 “민영화가 되고 나면 개발 중인 신형 전투기 KF-21도 수익성이 낮아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KAI 관계자는 “KAI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KF-21 개발 등 한국 방위산업의 도약을 위한 노력에 매진하는 상황에서 안정적 개발 환경을 흔드는 외부 위험 요인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KAI 지분 매각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1999년 창사 이래 KAI는 총 5번의 지분 매각 논란에 휩싸였다. KAI를 노렸던 회사는 대한항공이다. 2003년부터 총 네 차례(2003, 2005, 2009, 2012) KAI 지분을 사들이려 했으나 매번 KAI 노조와 임직원이 매각에 반대했다.
KAI, 원래 사고팔기 힘든 기업
수은은 KAI 실적이나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책임론에 휩싸였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민항기를 개발한다면 모를까, 전투기를 개발하는 회사가 이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며 “2010년대 들어 KAI가 민항기 부품을 생산하고, 민항기 정비에 나서는 등 사업구조를 다각화해 그나마 일부 이익이 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수은이 KAI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20년 국감에서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AI의 주가 하락으로 수은의 손해액이 4455억 원에 달한다”며 “수은은 KAI의 최대주주로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다소 부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수은은 KAI 지분을 매각할 의사가 없다. 수은 관계자는 “수은이 KAI를 정말 팔려고 했다면 소문이 나는 게 아니라 매각 절차에 나섰을 것”이라며 “KAI 매각은 검토해 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한화 “대우조선 소화에 집중하는 중”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9월 27일 KDB산업은행은 한화그룹에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했다. [대우조선]
한화는 오래전부터 KAI에 관심을 보였다. 2014년 김승연 회장이 삼성테크윈을 인수하며 “한화를 한국의 록히드마틴으로 키우자”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KAI를 인수한다면 그 오랜 꿈이 이뤄지게 된다. 한화는 KAI 인수에 나선 전력도 있다. 2016년 산은이 KAI의 지분을 팔려 할 때도 한화가 인수 유력 후보로 꼽혔다. 실제로 한화는 시간외 대량매매로 산은이 가진 KAI 지분 일부(10%)를 사들였다. 하지만 구매 직후 이 중 절반가량을 매각했다. 인수전에서 발을 뺀 셈이다. 당시 한화는 KAI 지분 매각 이유를 “한화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 글로벌 항공 방산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고 회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소문과 달리 한화는 지금도 KAI 인수 의향이 없다. 한화 관계자는 “대우조선 인수관련 논의가 진행 중이라 다른 기업 인수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며 KAI 인수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못박았다. 한화가 매각설을 조장한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한화가 KAI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우조선 인수에만 2조 원이 투입된다. 이 자금은 1조2000억 원에 달하는 한화시스템의 현금성 자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에서 수주한 K-9 자주포 선수금 등을 활용해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조6000억 원, 올해도 5696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대우조선을 떠안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단기적 재무구조 악화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부채비율은 인수 전 210.8%에서 인수 후 335.7%까지 치솟는다. 단순히 방산 시너지만 볼 것이 아니라 컨테이너선,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대우조선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게 우선이라는 이야기다.
덩치 커진 KAI 삼키기 쉽지 않아
실적은 그대로 주가에 반영됐다. 지난해 12월 KAI의 한 주당 가격은 2만7000원 선이었다. 이후 계속 상승해 FA-50의 폴란드 수출이 결정된 9월에는 6만 원 선까지 올랐다가 11월 11일 4만8000원까지 떨어졌다. 주가가 일부 떨어졌음에도 수은의 KAI 지분 시가총액은 1조2500억 원에 달한다.
수은이 KAI를 한화에 넘길 명분이 없다는 진단도 있다. 수은 측 설명에 따르면 수은의 결정만으로는 KAI 지분을 매각할 수 없다. 수은의 주무 부처인 기재위는 물론 방산업계 주요 이해당사자인 국방부 등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국방과 관련된 문제이니만큼 방위산업 관련 기업은 인수·합병 절차가 복잡하다”며 “자립 회생할 방법이 있었다면 대우조선 매각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립을 넘어 호실적을 내고 있는 KAI 매각은 어렵다는 의미다.
민간에 방산 전부 맡기는 나라는 없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은 “KAI 매각은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화가 KAI를 인수한다면 한화는 국내 유일의 항공 방위산업 순수 민간기업이 된다. 세계 어디에도 한 나라의 항공 방위산업을 독점하는 민간 기업은 없다. 한화가 목표로 삼았던 록히드마틴도 미국 내에서 점하지 못한 위치다. 미국에는 록히드마틴 외에도 보잉, 노스롭그루먼 등 다양한 기업이 항공방위 사업 1위 업체 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국방 독점기업이 생기면 정부의 의사결정력이 약화될 위험이 있다”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도 특정 기업의 방위산업 독점을 막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비근한 예가 올해 2월 벌어진 록히드마틴의 ‘에어로젯 로켓다인’ 인수 백지화다. 에어로젯 로켓다인은 미사일 등 로켓 엔진을 만드는 회사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1월 “에어로젯 로켓다인 인수가 성사되면 록히드마틴이 미사일 제조 핵심 부품 공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서 “경쟁업체들의 핵심 부품 공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독점 사유를 발표하면서 인수 차단 가처분을 가결했다.
KAI는 현재도 민간 회사지만 완전히 민영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KF-X(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에 참여했던 방산업계 관계자는 “기업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 모 기업에서 경제성을 이유로 독자 개발 대신 해외 전투기를 들여와 개조하자는 주장을 폈다”며 “만약 KAI가 완전히 민영화된다면 전투기 국산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상철 한국항공대 항공우주 및 기계공학부 교수는 “항공우주산업 특성상 안보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전략 사업으로 육성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국의 AVIC, 이스라엘의 IAI, 튀르키예의 AI, 인도의 HAL은 전부 정부가 100% 지분을 가지고 지원하는 국영기업”이라 설명했다.
한화와 수은, KAI가 전부 매각설을 부인했지만, 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 수은, KAI 중 한화 매각설로 당장 이득을 볼 수 있는 곳은 없다”며 “인수합병 컨설팅업계가 정황을 짜 맞춰 만든 일종의 소설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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