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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다보스 포럼 참관기

가라앉은 다보스, 오래된 자본주의의 미래를 묻다

2009년 다보스 포럼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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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다보스 포럼 참관기

한승수 국무총리가 1월29일 스위스 다보스 제호프 호텔에서 ‘워싱턴 컨센서스의 종언’을 주제로 열린 오찬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변화가 산업과 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의도 광범위하게 전개됐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산업과 기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금융 경색, 불황 국면의 중장기화, 국제 협력체제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시장에 대한 신뢰 상실 등이 어려운 기업 환경을 조성할 것이고, 이러한 도전의 극복 없이 세계경제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가라앉은 다보스

지난해 1월 열린 다보스 포럼 때는 축제 분위기가 넘쳤다.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위기가 있었지만, 모두 손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올해에는 달랐다. 철저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기업과 금융기관의 줄도산도 문제였지만, 포럼 개최에 즈음해 발표된 세계 주요 경제 관련 기관들의 비관적인 2009년 경제 전망 때문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포럼 기간 중 2009년 전세계 실업자 수가 5000만명 더 늘어나리라고 전망했는데, 이는 올해 전세계 실업 인구가 2억3000만명으로 늘어나고, 전세계 노동인구의 7.1%가 실업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통화 기금(IMF) 역시 올해 경제 성장률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보스의 추운 겨울 날씨처럼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헤지펀드계의 대부 조지 소로스가 금융위기가 바닥을 치지 않았고 더 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다보스의 분위기는 더욱 암울해졌다. 확실성, 낙관주의, 희망이라는 다보스 특유의 분위기가 불확실성, 공포, 비관주의로 전화됨을 피부로 느꼈다.

포럼의 쟁점도 지난해와 크게 대조를 이뤘다. 지난해 포럼에서는 미국 경제와 세계경제의 비연계(de-coupling)가 크게 부각됐다. 미국 경제가 어려워도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가 미국과 유럽 경제의 성장 동력 상실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허망한 주장이 되고 말았다. 중국을 제외한 세 나라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처참한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비서구권 국가를 중심으로 한 국부 펀드(sovereign fund)의 등장이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싱가포르, UAE, 쿠웨이트를 필두로 한국,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이 국가의 부를 새로운 형태의 투자 기금으로 운용하면서 이들의 영향력이 부각됐다. 당시 서브프라임 사태로 어려움을 겪던 메릴린치, 시티은행이 이들 자금을 수혈받아 덕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로 이들 국부 펀드가 타격을 입으면서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는 관련 논의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포럼 참가자들의 프로파일도 크게 변했다. 과거에는 주로 월가 중심의 금융 자본가들이 다보스 포럼의 얼굴 마담 구실을 했다. 그러나 올해엔 크게 달라졌다. 시티은행,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CEO 등 과거 다보스 포럼 주역이 모두 불참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만이 유일하게 참석했다. 파산과 구제금융 수순을 밟는 CEO가 포럼에 참여하는 것은 부적절하기도 했다.

지난해와 비교해 도드라진 현상은 금융자본가의 퇴조와는 대조적으로 국가수반이 많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포럼에는 27개국 정상이 참가했는데 올해엔 45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세계 경제의 축이 시장 중심에서 국가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경제위기 극복이 각국의 경기 진작 조치에 달렸기 때문에 국가수반들의 경제정책 기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원자바오 중국 총리,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의 주도적 역할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에서는 한승수 총리, 일본에서는 아소 다로 총리가 참석했다.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인사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래리 서머스 경제자문관, 제임스 존스 국가안보보좌관, 티모시 가이스너 재무부 장관이 참석하는 것으로 계획됐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취소됐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경제정책이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기진작 예산 확보를 위해 의회를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참석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대신 오바마 대통령의 절친한 동지이자 보좌관인 발레리 재럿이 참가해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어젠다를 브리핑했다. 또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오바마 행정부의 대변인 구실을 해주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올해 포럼에서 다보스의 전통이 깨졌다는 사실이다. 다보스포럼의 전통은 관용, 절충주의, 합의를 특징으로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서로 목청을 돋우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이런 전통이 깨졌다. 산업자본가와 금융자본가의 대립도 있었다. 참석자들이 CEO 전체를 이번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일괄적으로 몰아세우자 펩시콜라 인드라 누이 회장 등 제조업 부분의 CEO들은 우리 탓이 아니라고 반론하며 월가의 CEO들 때문에 우리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된다고 불평했다. 러시아 푸틴 총리의 미국 비판과 이에 대한 미국 측의 반론 제기도 다보스의 전통을 깬 에피소드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가자사태 관련 세션에서 레젭 타입 에르도한 터키 총리의 돌발 퇴장이 아닐까 싶다. 다보스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에르도한 총리는 자신이 세션 중 퇴장한 이유로 사회자인 데이비드 이그네셔스의 부당한 시간 할애를 거론했다. 사회자가 시몬 페레즈 이스라엘 대통령에게는 20분 넘게 발언 시간을 허용하고 자신에게는 10분밖에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자사태에 대해 반성하지 않은 페레즈 대통령의 태도에 대한 항의가 진짜 이유였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자지구에 대한 무자비한 전방위 공격으로 1300명 넘는 사망자를 내고도 국가원수가 사과 표시 없이 침공의 정당화에만 급급하는 모습을 보고 에르도한 총리가 돌발 행동을 취한 것이다. 그 결과 에르도한 총리는 터키와 아랍, 이슬람권에서 영웅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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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연세대 교수·정치학 cimoo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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