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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 | ‘한반도의 봄’ 기회 혹은 함정 |

대북특사 秘스토리

“맹경일, 19일간 한국 잠행하며 정상회담 설계”

  • | 김현 뉴스1 정치부 기자 hyun0325_@naver.com

대북특사 秘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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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남북 사전합의 후 대북특사에 추인” 추정
    ● 청와대 내부회의서 “한반도평화 속도 내자”
[동아DB]

[동아DB]

한반도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이뤄진 남북대화가 4월 말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질 조짐이다. 악화일로의 한반도 정세가 대화 모드로 전환되고 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고조되면서 전쟁 위기감이 감돌던 때와는 달라진 상황이다. 낙관하기엔 이른 상황이지만, 벚꽃의 4월과 장미의 5월에 두 번의 정상회담이 잘 치러질지 주목된다.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후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12차례에 걸친 도발을 감행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북한이 ‘대화’의 문을 열도록 해야 했지만,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 간 호전적 언사가 오가면서 일촉즉발의 양상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국무회의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며 한계를 토로하기도 했다.

“레드라인 밝힌 건 오점”

여기에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Red line·금지선)’ 발언은 스스로를 더 힘들게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레드라인에 대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검증해야 할 사항이 남아 있지만, 북한은 지난해 9월 역대 최대 위력의 제6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이후 미국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는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내몰렸다. 청와대 내에선 “레드라인을 밝힌 건 오점”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독일 베를린에서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 추구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한반도 신(新) 경제지도 추진을 밝혔다. 그는 “북한이 핵 도발을 전면 중단하고, 비핵화를 위한 양자 대화와 다자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와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안했다. 당시 북한의 반응은 시큰둥했지만, 문 대통령의 지속적인 대화 메시지는 북한이 닫힌 문을 여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에게 “문 대통령 대북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신뢰와 인내”라며 “문 대통령이 북한의 잇단 도발에 ‘분노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크게 보면 일관된 메시지를 내면서 북한 내부에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그 긴 과정 동안 끊임없이 인내하면서 북한과 신뢰를 쌓아나간 것의 결실이 정상회담이었다. 서로 믿지 못하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가 없다”고 썼다.

“백악관 내 문 대통령 팬클럽”

‘신뢰’를 앞세운 문 대통령의 외교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을 견인하는 데도 쓰였다고 한다.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언젠가 “백악관 내에 문 대통령의 팬클럽이 생겼다”는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보고에 공감하면서 “정말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한다. 

악화일로를 걷던 한반도 정세가 전환된 것은 정부가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에 어떠한 적대행위도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은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를 제출하면서부터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연합군사훈련 연기를 설득하는 명분이 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9일 NBC와 인터뷰를 통해 “평창올림픽 기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문제를 검토할 수 있다”며 “미국 측에 그런 제안을 했고, 미국 측도 지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연합훈련 연기 제안은 북한이 문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북한은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북한에도 특사를 보낼 것을 기대했지만, 문 대통령이 보내지 않자 강한 실망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연합훈련 연기 검토 발언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는 명분으로 작용했다. 김정은 신년사 사흘 만에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평창올림픽 기간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당시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과 대화를 추진해보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해보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성과가 있으면 나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9일 대북특사단의 설명을 듣고 김정은의 북·미 회담 제안을 수락하면서 배석자들에게 “거봐라. (북한과) 대화를 하는 게 잘하는 거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여겨진다. 

남북 대화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다.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맞춰 김정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특사 자격으로 왔다. 김여정의 방문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김여정 스스로 2월 11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만찬에서 “솔직히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밑그림→담판→확정”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여건은 좀처럼 성숙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앞서 열린 리셉션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한자리에 앉도록 주선했지만, 펜스 부통령이 불참하면서 무산됐다. 문 대통령의 손에 이끌려 펜스 부통령이 리셉션장을 찾긴 했지만, 김영남 위원장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5분 만에 자리를 떠났다. 또한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부부장은 2월 10일 청와대에서 회동할 예정이었지만, 회동 2시간 전에 북한 측이 취소를 통보하면서 불발됐다. 당시 청와대는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있었던 북·미가 한자리에 있었고, 회동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간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지만, 북·미 접촉 불발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은 정의용 실장을 수석특별사절로 한 대북특사단을 파견하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대북특사단은 3월 5일 방북 첫날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다. 특사단은 4월 말 판문점 남측구역인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내용이 담긴 6개 항의 합의를 도출해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국외에서 따로 비밀 접촉은 없었다”고 강조했지만,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중심으로 한 대북 라인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원장은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관여했고 2007년 남북 총리회담 대표도 맡는 등 북한을 잘 아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97~99년 북한 신포에 경수로 건설을 지원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일원으로 북한에 2년간 상주했다. 문 대통령이 서 원장을 국정원장에 기용한 것은 집권 초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서 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북한과 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서 원장에게 ‘(북한) 라인은 좀 뚫었느냐’고 묻자 웃으면서 ‘아직 (못 했다)’이라고 하더라. 지금 보니 자신의 상대인 김영철 통전부장까지 라인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은 지난해 한국 당국자가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해 평창올림픽 북한 참가 문제를 협의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손톱만큼의 진실도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 정정 보도를 요구했지만, 국정원 대북 라인을 통한 접촉은 활발하게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평창올림픽 기간 대북 라인의 활동이 정점을 이뤘다. 이때 맹경일 북한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북한 응원단과 함께 19일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남북 모두 맹 부부장의 체류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맹 부부장은 김영철이 부장을 맡고 있는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한국으로 치면 차관급 관료다. 맹 부부장의 카운터파트는 대북 실무를 총괄하는 김상균 국정원 2차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상균 2차장은 3월 5일 방북한 특사단 5명 명단에도 포함됐다. 

정부 소식통은 3월 10일 통화에서 “김상균 2차장과 맹 부부장이 사실상 남북 합의의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들이 그린 밑그림을 두고 폐회식 때 서훈 원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담판을 지었고 대북특사단이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최종 확정한 수순이 아니었겠느냐”라고 말했다.

“소시지 만드는 법 공개 않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대북특사단이 3월 5일 평양 노동당 본관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동아DB]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대북특사단이 3월 5일 평양 노동당 본관에서 만찬을 하고 있다. [동아DB]

청와대는 ‘대북특사단이 평양에 도착한 당일 김정은 위원장과의 한 시간 접견 때 합의 내용이 다 나왔다’고 했다. 정부 소식통의 말과 청와대의 이 발표를 종합하면, 남북이 사전 합의를 해놓고 김정은이 대북특사단에게 이를 추인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확인할 수 없겠지만, 그런 추론이 합리적인 게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 핵심 인사는 “소시지 만드는 법과 외교는 공개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하면 무능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는 ‘기적같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3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응하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소중하게 다뤄나가겠다. 성실하고 신중히 그러나 더디지 않게 진척시키겠다”고 했다. 청와대 내부 회의에선 “살얼음판에서는 스피드가 생명이다. 머뭇거리면 얼음장이 깨진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살얼음판에선 스피드가 생명”

그러나 북한은 대북특사단이 전한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 외에 정상회담이나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 이뤄지기까진 많은 협상이 필요하다.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문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김정은은 모두 정치적 필요에 의해 회담을 수용한 측면도 있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CVID)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선 1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북한이 언제든 합의를 파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북·미 대화에서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경우 협상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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