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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녹색성장·자원외교는 재평가받아야 한다

[신기욱의 밖에서 본 한반도] ‘돈 룩 업’ 극복할 시간… MB 위한 변명

  •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gwshin@stanford.edu

MB 녹색성장·자원외교는 재평가받아야 한다

  • ● 어느 와이너리 주인과 대화
    ● 와인 재배 지역 70%가 사라진다니
    ● 머지않아 커피 배급제 생길지도
    ● “오일쇼크 때보다 큰 에너지 위기”
    ● 올여름에는 폭염과 전기요금 급등?
    ● 정책을 적폐청산하며 허비한 10년
    ● 원자력 없이 불가능한 과제, 탄소중립
    ● 반기문이라는 소중한 자산 있거늘
2012년 10월 2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글로벌 녹색성장기구(Global Green Growth Institute·GGGI) 창립회의 개회식이 열린 가운데,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축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2년 10월 2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글로벌 녹색성장기구(Global Green Growth Institute·GGGI) 창립회의 개회식이 열린 가운데,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축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겨울 최강 한파와 급등한 난방비 탓에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 같지만 결국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가 우리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내가 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도 올겨울 강풍을 동반한 비가 많이 내렸다. 중서부와 동부도 폭설과 한파를 겪었다. 캐나다 국경과 멀지 않은 뉴햄프셔주 워싱턴산(山)의 체감온도는 섭씨 영하 78℃를 기록했다. 유럽은 올겨울에 그나마 이상 기후로 따뜻했기에 여파는 적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야기된 에너지 위기는 여전히 해결이 어려운 과제다.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맞이한 2023년의 세계는 복합 위기를 맞고 있다. 기후변화, 전쟁,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 미·중 갈등, 민주주의 위기와 리더십의 부재 등 어느 하나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더구나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무척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미·중 간에는 물론 국제적 다자 협력이 필요한데, 알렉산드로 대왕처럼 단칼에 그 매듭을 자를 수도 없다. 복합 위기를 반영하듯 이번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의 주제도 ‘파편화된 세계에서의 복원력과 세계화(Resilience and globalization in a fragmented world)’였다.

한국도 전 지구적 현상인 기후변화에서 예외일 수 없다.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도 높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큰 편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는 유엔(UN)에서도 규정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어젠다의 핵심이며 국가 정책의 지속성과 국제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다. 윤석열 정부가 탄소중립을 천명하고 에너지 안보에 주목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정치나 이념을 넘어 생존의 문제다. 윤석열 정부가 천명한 자유 진영 간의 가치연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후변화·에너지 분야의 국제 협력도 절실하다. 한국의 국력을 고려할 때 좀 더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린란드 정상에 눈 대신 비가 내리다

얼마 전 내파 와이너리에서 나눈 이야기다. 내파밸리(Napa Valley)는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와이너리 주인과 대화하는 중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향후 20~30년 동안에 닥칠지도 모를 가장 큰 도전이나 위협이 무엇이냐”고. 그는 이 질문에 한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기후변화라고 답했다. 얼마 전 내파 지역에 큰 산불이 난 적이 있어 내심 화재(火災)를 떠올렸지만 이분의 대답은 내 예측을 빗나갔다. 그는 이 지역의 온도가 1℃만 상승해도 포도 품종을 대량 교체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론 내파가 아닌 오리건이나 워싱턴주가 와인 생산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도 첨언했다.

내파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에서도 포도 재배지가 남부에서 북극권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30년 뒤에는 영국이 양질의 와인용 포도 생산지가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현재 영국은 프랑스나 남유럽 국가보다 포도가 익는 여름철과 초가을이 짧고 평균 기온도 낮지만, 2050년이면 온도가 상승해 영국이 주요 와인 생산지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캐나다의 데비 잉글리스 와인연구소 소장은 “(산업혁명기에 비해) 온도가 2℃ 상승하면 전 세계 와인 재배 지역의 55%가 사라질 수 있고, 4℃가 오르면 70% 이상 없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가 애호하는 식품인 커피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영국 데일리 온라인(Daily Online)은 지구온난화로 2050년까지 전 세계 커피콩 재배지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도 현재보다 평균 지표면 온도가 2℃ 이상 상승할 경우 2050년까지 중남미 커피 생산량은 최대 88%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국제커피기구(ICO)는 2050년에 이르면 동남아시아에서 커피 재배에 적합한 농지 면적의 70%가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커피콩은 현재 60개국 이상에서 재배되고 있는데 석유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상품이기도 하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커피를 둘러싼 분쟁이나 커피 배급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우리 삶과 밀접한 일상을 위협한다. 그 강도나 변화의 속도 역시 점차 빨라지고 있다. 여름에도 기후가 서늘한 캐나다 포트 스미스에서는 한때 기온이 39.9℃까지 치솟아 북위 60도 이상 북극권에서 최고를 기록했다. 1년 내내 영하인 빙하 기후를 가진 그린란드 정상에선 눈 대신 비가 내리기도 했다. 지난해 태풍, 허리케인 등 열대성 폭풍은 지구 전체에서 무려 97건이나 발생했다. “최악의 홍수” “극히 드문 가뭄” “기록적 폭염” 등이 닥쳤다는 소식은 이제 더는 낯설지 않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2022년 말에 발표한 연례 기후상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는 ‘최근 100만 년 중 최고’를 기록했다. 지구 지표의 온도는 1991∼2020년 평균보다 섭씨 0.21∼0.28℃ 상승해 관측이 시작된 19세기 중반 이후 가장 따뜻했던 6년 중 하나에 속했다. 2015~2021년은 기록상 가장 따뜻한 7년이었다고 한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10년 안에 현재 노력과 상관없이 지구온난화의 분기점인 산업혁명기 대비 섭씨 1.5℃가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의 릭 스핀래드 국장은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기후 대비 국가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인류는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인류 문명의 발전이 역설적으로 인류의 파멸을 이끌고 있다”고 경고했다.

에너지 자립도 낮은 취약한 경제구조

1월 25일 서울 주택가 벽면에 가스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가격 급등으로 도시가스 소매가가 급격히 올랐다. 이에 한파가 몰아닥친 이후 난방비 부담도 커졌다. [뉴시스]

1월 25일 서울 주택가 벽면에 가스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가격 급등으로 도시가스 소매가가 급격히 올랐다. 이에 한파가 몰아닥친 이후 난방비 부담도 커졌다. [뉴시스]

에너지 문제는 기후변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 세계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30억 명의 사람들이 여전히 목재·석탄·숯·동물성 폐기물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폐기물들은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2015년 유엔이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17개를 설정했는데, 이 중 가장 많은 부분에 걸쳐 논의된 이슈가 에너지 문제다. 예를 들어 목표 7의 ‘Affordable and Clean Energy(적정 청정 에너지)’는 재생에너지 사용 증가와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통해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지역사회를 만들어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표 달성은 아직 요원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에너지가 무기화하면서 재생·청정 에너지를 위한 국제 협력은커녕 에너지 위기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EU의 경우 2020년 현재 석유(26.9%), 석탄(46.7%), 천연가스(41.1%) 등 러시아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사무총장은 “전 세계는 1970년대의 오일쇼크 때보다 훨씬 더 큰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1970년대가 단지 석유 위기였다만 지금은 석유, 가스, 전기 등 에너지 전반의 위기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IEA는 중동 산유국의 카르텔 횡포에 맞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에너지 소비국이 1974년 창설한 기구다. 그 최고 책임자가 오일쇼크 때를 넘어선 전방위적인 에너지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공과

한국도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석유 배급제까지 실시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와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지금도 원유와 천연가스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등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매우 취약한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의 경고가 남의 나라 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당장 올여름엔 폭염과 전기요금 급등을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만 등 아시아 지역에서 군사 분쟁이 발발하면 수입선이 막힌다.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EU에 미친 것보다 훨씬 더 큰 에너지 한파가 한국에 몰아닥칠 것이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의 중요성을 비교적 일찍 간파했던 정부가 이명박 정부(2008~2013)다. 어느 정부나 그렇듯이 공과는 있게 마련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야심만만하게 추진했던 녹색성장과 자원외교는 재평가받아야 한다.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실책이 있었다면 마땅히 이를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기조 자체를 폐기하거나 이어가지 못했던 건 아쉬움이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자원외교를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두 가지 정책 기조를 이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귀중한 10년을 허비한 게 아닌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 기후변화 정책의 핵심은 녹색성장이었다. 녹색성장은 환경(Green)과 성장(Growth)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존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환경친화적으로 전환하다 보면 에너지·환경 관련 기술 및 산업이 파생되게 마련이다. 녹색성장은 이 과정에서 미래 유망 품목과 신기술을 발굴하고 기존 산업과의 상호 융합을 시도해 신성장 동력을 찾고 일자리 창출을 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0년 4월에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제정됐다. 흔히 녹색성장법이라고 불리면서 최초로 기후변화 이슈를 다뤘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이끌었다.

더 나아가 글로벌 녹색성장기구(Global Green Growth Institute·GGGI)를 설립하는 등 국제협력을 선도했다. GGGI는 2010년 6월 비영리재단으로 한국에서 출범한 뒤 2년 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유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에서 공식 국제기구로 인정받았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유일하게 한국 주도하에 출범한 국제기구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GGGI는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다자간 개발은행 및 유엔 지역위원회와 함께 포괄적 녹색성장 파트너십을 출범시켰다. 파트너십은 개발도상국이 고용을 창출하고 최빈곤층의 소득을 높이는 포용적·공유적 번영과 공평한 성장을 추진하고, 녹색성장의 기회와 투자를 식별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뒀다. 아시아개발은행(Asian Development Bank)과 미주개발은행(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 아프리카개발은행(African Development Bank) 등 다수의 개발은행이 참여했다.

한국은 자원 빈국이다

2010년 1월 13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정 공포 서명식이 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0년 1월 13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정 공포 서명식이 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정부는 자원외교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국은 자원 빈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해외 자원 의존도가 가장 높다. 제조업 강국이지만 원자재 값이 폭등할 때마다 큰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이전부터 해외 자원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유다. 김대중 정부는 처음으로 ‘해외 자원 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노무현 정부는 아프리카·몽골 등의 해외 광산 비중을 높이면서 자원외교에 나섰다. 가장 공격적으로 자원외교에 나선 쪽은 MB 정부였다. 공기업을 앞세워 해외 자원 투자와 개발에 공을 들였다.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와 남미 등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자원외교를 펼쳐왔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를 끝낸 이후 10년간 한국의 해외 자원 개발은 뒷걸음쳤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2년 219개이던 해외 광물자원 개발 사업은 2021년 94개로 크게 줄었다. MB 정부 때 투자한 해외 광산 대부분을 헐값에 처분했다. 적폐청산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자원외교는 장기 전략이고 적잖은 리스크(risk)를 감수해야만 한다. 일종의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인 셈이다. 자원 빈국인 한국으로선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자원외교의 부정적 측면이 부각됐지만 최근에는 고수익을 안긴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투자한 호주 프렐류드 가스전이 좋은 예시다. 2012년 한국가스공사는 이 해저가스전에 15억 달러(약 2조 원)를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했다. 2019년 생산을 개시한 이후 2020년까지는 적자를 봤으나, 2021년 흑자로 전환했다.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의 자원무기화로 액화천연가스(LNG) 값이 폭등하면서 이 가스전은 ‘대박’을 예고하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자원민족주의가 재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자원 빈국이란 현실을 잊어선 안 된다. 민간 주도로 해외 자원을 개발하되 정부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일정한 위험은 감수하면서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치나 이념에 휘둘려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脫원전 유감

지속가능발전이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용어가 더는 낯설지 않다. 2015년 제70차 유엔 총회에서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의제를 2030년까지 달성키로 결의했다. SDGs는 지속가능발전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인류 공동 목표를 제시해 준다.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Leave no one behind)’이라는 슬로건 아래 인간, 지구, 번영, 평화, 파트너십이라는 5개 영역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를 설정했다. 빈곤 종식과 식량 안보에서부터 양질의 교육, 성 평등, 불평등 감소와 지속 가능한 주거지 개발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면서도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SDGs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인류의 번영을 위해 힘쓰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할 것을 촉구했다.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한 국제적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각국은 2015년 11~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1)에서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 최종 합의문을 채택했다. 파리협약은 2016년 11월 발효됐다. 협약에서 모든 국가는 지구의 기온 상승을 2℃ 이하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이 불참하면서 다소 빛이 바랬지만, 2018년 4월 175개국이 파리협약을 비준했으며 10개 개발도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적응계획을 처음으로 제출했다. 2022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선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 대응을 위한 재원 마련 문제가 처음으로 당사국총회 정식 의제로 채택됐다.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를 위한 기금(fund) 설립에도 합의했다.

한국도 국제 흐름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2021년 9월 24일에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2050년 탄소중립을 국가 비전으로 명시했다. 또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전략,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목표, 기본계획 수립 및 이행점검 등의 법정 절차를 체계화했다. 특히 중장기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명시했다. 2022년 3월 25일부터 법안이 시행되면서 EU, 영국, 캐나다,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14번째로 2050 탄소중립 비전과 이행 체계를 법제화한 국가가 됐다. 2010년 4월 제정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12년 만에 나온 셈이다.

문제는 탄소중립이 원자력 없이는 달성이 거의 불가능한 과제라는 점이다. 언젠가는 탄소중립과 탈원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히 한국은 지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할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탈원전이 아니라 외려 원전을 급속히 늘려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준에 이를 수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기조를 유지했다. 퇴임을 앞둔 2022년 2월 25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향후 60년 동안은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電源·Power Supply)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하면서, 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신한울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단계적 정상 가동을 할 수 있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했다. 정책적 혼선은 물론 아까운 시간만 허비한 격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난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6월 열린 새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 설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천영길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전환정책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 등으로 탄소중립과 더불어 에너지 안보를 포함한 양대 가치 모두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들도 에너지 정책을 탄소중립이라는 큰 틀 속에서 재고(再考)하고 있다. 한국도 환경과 에너지 안보를 아우르는 종합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삼성도 새 싱크탱크 만들어야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대처는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기업이나 학계 등 전문가 그룹의 역할과 시민의 협조도 필요하며 국제 협력도 중요하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의 대학에서도 기후변화나 에너지 안보와 관련된 기관을 속속 설립하고 있다. 2022년 9월 문을 연 스탠퍼드대의 Doerr School of Sustainability, 도쿄대의 Tokyo U Center for Climate Solutions, 칭화대의 the Institute for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가 중요한 예다. 이화여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등 한국의 대학들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고 있다. 정부나 기업도 대학들의 노력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가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의 도전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도 그 위상에 걸맞게 장기적 안목으로 글로벌 어젠다를 개발하고 지원해야 한다. 아산정책연구소, 최종현학술원 등 대기업들이 설립한 싱크탱크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재정 규모도 작을 뿐더러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빈곤 문제 등 좀 더 근본적이고 글로벌한 어젠다를 다루는 데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빌게이츠 재단이나 주커버그 이니셔티브처럼 기업 창업자들이 대부분의 사재를 털어 빈곤, 보건, 교육, 에너지 등 글로벌한 이슈를 다루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의 경우 삼성글로벌리서치를 두고 있지만 글로벌 톱 기업의 격에 맞게 좀 더 굵직하고 장기적 이슈를 연구·지원하는 싱크탱크나 재단을 만들어야 한다.

2015년 제70차 유엔 총회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의제 제정을 주도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조영철 기자]

2015년 제70차 유엔 총회에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의제 제정을 주도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조영철 기자]

더구나 한국에는 반기문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있다. 유엔의 SDGs 제정을 주도한 인물이 당시 사무총장이던 반기문이었고, 그는 아직도 국제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반 전 총장은 국내보다도 해외에서 더 존경받고 인기가 있어 보인다. 그간 한국은 국력 대비 국제사회에서의 공헌이나 리더십이 약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라는 글로벌한 어젠다를 위한 국제 협력에 한국이 좀 더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 전 총장은 한국이 갖고 있는 엄청난 자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재직하는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서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반기문재단과 함께 2022년 10월 환태평양 지속가능성 대화(Trans-Pacific Sustainability Dialogue)를 출범시켰다. 스탠퍼드대를 비롯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과학자 등 전문가와 정부 정책 담당자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여 토론과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차세대를 육성한다는 취지다. 첫해 대화에서는 기후변화를 다뤘으며, 9월 중순 서울에서 에너지 안보를 주제로 올해 대화가 열릴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의 국제 회의가 활성화되길 바란다. 그럼으로써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Don’t Look Up? Just Look Up!

2021년 12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 포스터.

2021년 12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 포스터.

직경이 6~10㎞에 이르는 혜성이 지구로 돌진하고 있다. 그대로 충돌하면 인류의 종말이 예견되는 급박한 상황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혜성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거나 부인한다. 마침내 다가오는 혜성이 하늘에서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외친다. “저스트 룩 업(Just Look Up)!” 고개만 들면 혜성을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고개만 들면 진실은 바로 눈앞에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것이 혜성이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도리어 진실의 반대편에서 외친다. “돈 룩 업!” 하늘을 바라보지 말라. 2021년 12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의 줄거리다.

6개월 안에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거대 자본은 정치권력과 결탁해 외려 인류의 종말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혜성 안에는 귀중한 광물들이 많으며 이를 활용하면 된다고 유혹한다. 나중엔 달을 폭파해 혜성을 막아보려 하지만 무위에 그친다. 최후 수단으로 지구를 탈출해 미지의 혹성에 도착하지만 그곳은 이미 다른 생명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집에서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며 혜성을 맞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재차 강조하지만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고개만 들면 진실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돈 룩 업’을 외치면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는 정치와 기업권력이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만 매달릴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당장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저스트 룩 업’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신기욱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 사회학 석·박사
● 미국 아이오와대, UCLA 교수
● 現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 및 아시아 태평양 연구소장
● 저서 : ‘슈퍼피셜 코리아: 화려한 한국의 빈곤한 풍경’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하나의 동맹, 두 개의 렌즈’ 등



신동아 2023년 3월호

신기욱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gwshin@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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