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확산에서 대(對)확산으로
돌이켜보면 21세기의 첫 수년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및 핵보유 선언, 이란의 핵개발 의혹, 리비아의 핵개발 포기, 파키스탄의 칸 박사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핵 네크워크 적발 등 NPT체제와 관련이 있는 여러 상황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이처럼 NPT를 준수하는 척하면서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거나 궁극적으로 탈퇴하는 국가들이 생겨나고, 구속력의 미비로 점차 NPT체제가 이완되는 조짐이 나타났다.
이를 지켜본 부시 대통령은 NPT체제의 한계를 절감하게 됐다. 그 때문에 한편으로는 비확산(non-proliferation)을 목표로 하는 NPT체제의 강화를 통해 핵 비보유국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제한하고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금지하며 NPT 탈퇴국과 위반국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고자 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NPT체제 밖에서 대확산(counter-proliferation) 방안을 모색했다.
부시 대통령이 NPT체제 밖에서 추진한 대확산의 일환으로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이나 비정부조직·단체의 WMD 획득규제를 규정한 유엔안보리 결의문 1540호 채택 등이 있다. PSI는 2003년 부시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으며, 원심분리기와 미사일 부품, 핵물질 등을 적재한 채 리비아, 이란, 시리아로 향하던 선박들이 공해상에서 성공적으로 차단됐다.
또한 미국은 러시아와 체결했던 탄도미사일제한(ABM)조약을 파기하고 미사일방어(MD)체제를 추진했으며, 지하핵실험 금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거부했다. 당초 추진했던 미니핵폭탄 계획이 미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자 그 대신 ‘신뢰할 만한 대체 핵탄두(RRW) 프로그램’에 따라 신형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
나아가 부시 대통령은 NPT 비회원국인 인도에 핵 거래의 예외를 인정하는 양국 간 핵 협정을 추진했다. 2005년 7월에 두 나라가 핵 협력 선언을 발표한 이래, 미국은 NPT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고 향후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제3국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국제적인 비판 여론 속에서도 이 협정을 추진해왔다. 마침내 IAEA의 승인과 핵공급국가그룹(NSG)의 지지를 얻은 뒤 미 하원과 상원 비준을 거쳐 2008년 10월11일 양국 외무장관이 이 협정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이와 같이 NPT체제 밖에서 핵 확산을 방지하고 미국의 핵 태세를 강화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구상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주목표였던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 2003년 1월 북한은 NPT의 탈퇴를 선언했고 마침내 2006년 10월9일 핵실험에 성공했다. 이란은 미국의 경고에도 ‘평화적 핵 이용권’을 주장하며 핵연료주기의 완성을 위한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핵군축 없이 비확산 없다
최근 들어서는 전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핵연료의 안전한 공급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특히 이집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 알제리, 요르단, 모로코, 리비아 등 중동국가들이 원전 건설계획을 추진함에 따라 미국은 민감 핵 기술과 핵 과학자들이 테러집단으로 흘러들어갈 것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를 저지할 방안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국제적인 원전 개발 붐에 따라 핵 비보유국으로 각종 핵 부품과 기술이 이전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원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핵보유국들이 비보유국에 앞 다투어 민감 핵 기술의 이전을 약속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일부 국가들은 NPT 제4조가 ‘양도할 수 없는 권리(inalienable right)’로 규정한 평화적 핵 이용권을 악용해 비밀리에 핵무기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이처럼 합법을 가장해 이루어지는 핵개발을 막기 위해 미국은 2005년 5월 개최된 제7차 NPT평가회의를 통해 새로운 NPT체제 강화안을 마련하고자 추진했다. NPT 규정에 따라 5년마다 개최되는 NPT평가회의는 새로운 국제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중요한 장이다. 당초 25년을 대상기간으로 삼았던 NPT가 회원국들 합의에 따라 무기한 연장된 것도 1995년 제5차 NPT평가회의에서였다.
NPT에 관한 제7차 평가회의는 2005년 5월 25일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188개 회원국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개막연설을 통해 “NPT는 인류사에서 가장 거대한 군축 및 군비통제 체제이며 평화 및 안전보장을 위한 다자적 합의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회원국 가운데 일부가 NPT를 준수하는 척하면서 비밀리에 핵개발을 준비하고 궁극적으로 탈퇴하는가 하면 NPT체제의 구속력 미비로 체제가 점진적으로 붕괴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제7차 NPT평가회의에서는 핵보유국과 비보유국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이 자리에서 미국 대표는 “일부 국가들이 NPT 제4조에서 보장된 ‘평화적 핵이용권’을 악용해 이중용도 물질 및 기술이라는 우회로로 비밀리에 핵무기를 얻고자 한다”고 지적하며 이란의 핵 의도를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란 대표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 원심분리기 확보가 원자력 발전 연료와 핵무기 재료를 생산하기 위한 것으로 결코 NPT를 위배하지 않은 평화적 목적의 핵 활동”이라고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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