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제국’의 힘으로 ‘제4차 세계대전’ 치른다

美 신보수주의 그룹의 세계패권전략

  • 글: 이흥환 미 KISON 연구원 hhlee0317@yahoo.co.kr

    입력2003-05-26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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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전 이후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은 날이 갈수록 가속화하고 있다. ‘제국지배’를 준비하는 펜타곤 앞에 유럽, 중국, 소련은 물론 미국 내 ‘구’ 보수주의자들도 장애물이 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 언론매체를 활용한 이론정립, 여론몰이 공개캠페인, 실제행동으로 이어지는 단계별 역할분담을 통해 국제질서의 공격적 재편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신보수주의 그룹의 활동방식과 인적 구성을 들여다보았다.
    ‘제국’의 힘으로 ‘제4차 세계대전’ 치른다
    지난 17개월 동안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두 개의 전쟁을 치러 두 개의 정권을 전복시켰다. 이라크는 이제 중동지역 민주주의 도미노의 발판이 되었고,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를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넓히는 군사전략적 기반이 됐다. 이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는 66개로 늘었다.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은 실제로 존재하며,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부시 행정부도 그런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기존 세계질서의 한 축이었던 유럽도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모든 정책이 우리 머리 위에서 결정되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요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거나 “제국주의 성향으로 정책을 몰고가는 미국인들의 국수주의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보다 훨씬 더하다”(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볼멘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국의 행진을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따지고 보면 이같은 변화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시작됐다. 부시 대통령은 국제질서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기존 세계질서 속의 국제기구, 동맹관계, 국제조약 등 모든 것에 의문부호가 달렸다. 그는 대신 새로운 답을 하나씩 제시해나가고 있다. 결국 그가 던져놓은 메시지는 미국과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미 외교정책의 전통적인 근간이었던 국제주의는 순식간에 일방주의로 대체되었고, 지난 50년간 미 외교의 절대축 가운데 하나였던 대서양 동맹관계도 뿌리째 흔들렸다. 어느새 펜타곤(미국 국방부)은 ‘세계의 구세주’를 자처하고 있다.

    유럽은 죽을 맛이다. ‘늙은 유럽(Old Europe)’ 소리를 듣고도 성만 낼 뿐 주먹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다. 제국으로 부상한 미국과 오늘날의 유럽은 극명하게 대조된다. 유럽은 여전히 세계의 ‘모델’을 자처하지만, 다른 나라의 눈에 비친 유럽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반면 ‘슈퍼 파워’를 자처하는 미국은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군사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를 지배한다”



    보스턴대학의 국제관계전공 교수인 앤드루 바세비치는 ‘워싱턴 포스트’ 4월20일자에 기고한 ‘우리는 힘을 가졌다. 자, 어떻게 그 힘을 쓸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 서문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사실을 실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은 이제 제국의 힘을 갖게 되었다. 세계는 이제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가 된 것이다.” 바세비치 교수는 미국인들이 ‘제국’이라는 말에 별로 호감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이 제국의 힘을 갖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이제는 새로이 부여된 과제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1년 9월11일 이후 부시 행정부는 대테러 전쟁이라는 구실 아래 제국의 과제를 추진해오면서 다양한 기술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제 9·11의 기억은 사그러들고 있다. 행정부의 (제국 지배) 의도를 직설적으로 말할 때가 온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미국 국민들로 하여금 팍스 아메리카나 문서에 서명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치고, 이제는 미국의 정책, 특히 군사정책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를 검토해야 한다.”

    바세비치 교수는 새로운 ‘제국의 지배’를 위한 다섯 가지 대비책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지역 우선순위의 재배정이다. 군사력의 효과적인 활용원칙에 따라 해외주둔 미군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점적인 재배치 지역은 단연 유럽과 한반도. 우선 유럽의 경우, 나토를 확대하는 대신 대서양 동맹체제를 파기함으로써 우선순위에서 빼내야 한다. 물론 유럽의 군사력 팽창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한반도에서는, 핵무기 개발을 둘러싼 평양과의 대치상태가 궁극적으로 끝나고 나면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제국시대’의 지휘부 펜타곤

    이런 변화는 우선 ‘컴 홈, 아메리카(Come home, America·‘Go home, America’에 빗대어 쓴 표현)’라는 시대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절박한 우선순위가 이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미국이 당장 직면하게 될 문제지역은 아프리카에서부터 인도네시아, 필리핀 남부 등에 퍼져 있는 이슬람 권역이다. 유럽이나 한국은 제 힘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지역이므로 미군의 해외주둔 우선순위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방정책의 새로운 방향설정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펜타곤 내에서 논의되어온 국방정책 개편안의 핵심은 정보시대의 첨단기술과 새로운 조직원리를 어떻게 21세기 전쟁에 적용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제는 무제한적인 미 군사자원을 새로 확대된 임무에 맞춰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할 것인지로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제국의 군사력은 세 가지 기능을 가진다. 첫째는 억제와 위협을 통한 지배이고, 둘째는 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이며, 셋째는 질서유지를 위한 치안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부상과 더불어 첫 번째 기능은 미 공군이, 두 번째 기능은 공군과 해군이, 세 번째 기능은 육군이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군은 기본적으로 경찰노릇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라크전 종전 후 바그다드 유치원생들의 경호를 담당한 것은 결국 미 육군 제82공수단 대원들이었다.

    바세비치 교수는 제국시대 실무를 담당할 공무원 양성 등을 지적하면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부처는 펜타곤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굳이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이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부시 행정부 출범 때부터 국방분야를 넘어서서 미국의 외교정책 전반을 관장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치밀하게 계산된 발언, 공개석상에서의 신중한 언사 덕분에 불필요한 잡음을 일으키지 않고 있을 뿐이지 럼스펠드는 제국시대를 열어가는 상징적인 선두주자가 됐다.

    럼스펠드에게 권력집중 가속화

    럼스펠드에게서는 어느 한구석 주눅든 모습을 찾기 힘들다. 늘 고자세에 거드름을 피우는 태도다. 펜타곤 브리핑은 ‘못된 놈 처벌’에 대한 설교가 반을 차지한다. 여러모로 ‘제국시대’ 미국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라크전을 앞두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국내 반전파의 공격을 받아 궁지에 몰렸을 때 공개적으로 천명한 “영국이 가세하지 않더라도 우리 혼자 한다”는 언사만 봐도 그의 성격은 분명히 드러난다. 부시 대통령이 파월 장관에 힘을 실어줄 때마다 말썽이 나질 않을 정도의 범위 내에서 반드시 반격을 했던 것도 그렇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런 럼스펠드를 ‘현대판 네로 황제’에 비유했다. 4월21일자 ‘슈피겔’ 기사를 살펴보자.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이나 우방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신하의 의무와 충성이다. 미 지성인들은 럼스펠드 장관이 더 이상 산문을 읽지않고 대신 자기의 세계관을 서정시로 읊조린다고 불평한다. 세계를 향해 시를 낭송하는 현대판 네로가 바로 럼스펠드다.”

    럼스펠드의 군사독트린이 처음 선보인 것은 지난해 가을 국방부가 의회에 보고한 ‘매4년 국방 검토안(QDR·Quadrennial Defense Review)’에서였다. 이 QDR의 핵심은 럼스펠드가 그토록 주장하는 군의 ‘변혁(transform)’이었다. 즉 냉전형에서 탈피해 최첨단무기를 십분 활용한 21세기의 새로운 군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이다.

    럼스펠드의 국방개혁안에 따른 새로운 전쟁전략은 이라크전 초기 한때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첨단무기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최소한의 병력으로 최단시일 내에 전쟁을 끝낸다는 것이 럼스펠드의 ‘충격과 공포’ 작전이었다. 럼스펠드의 전쟁계획이 그대로 먹혔다면, 개전초기 공화국 수비대를 비롯한 이라크군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대규모 투항을 했어야 하며, 이라크 국민은 쌍수를 들어 ‘해방군’인 미군을 환영했어야 했다. 결국 럼스펠드는 동원병력의 규모가 애초에 너무 적었다는 비판을 받았고 한때 실각론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럼스펠드에게서 지휘봉을 뺏지 않았고 끝까지 그를 밀어주었다.

    럼스펠드가 전략을 집행하는 수장이라면 그의 ‘부관’격인 유대계 신보수주의자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이론가다. 월포위츠는 딕 체니 부통령의 ‘아메리카를 위한 체니의 노래’를 한층 과격하게 편곡해서 부른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국제질서 재편이 그가 가진 전략관의 기본바탕이고, 세계질서에 대한 기본개념은 비관적 3단논법이다. 이 세계에는 못된 짓을 일삼는 악당들이 우글거리고 있고 그 한가운데 미국이 있으며 따라서 미국은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월포위츠가 주장하는 미 전략의 기본주제는 일방주의다. 국제조약이나 국제기구는 독점적 글로벌 파워가 행동하는 데 방해만 될 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월포위츠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중국이나 유럽연합 같은 향후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다.

    월포위츠는 현재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보수주의자로 군림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그의 아이디어를 하나 둘씩 정책에 반영해왔다. 예방전쟁과 일방주의의 필요성을 밝힌 웨스트포인트에서의 이른바 ‘부시 독트린 연설’에 담긴 기본개념도 월포위츠의 작품이다.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월포위츠 국방 부장관이 행정부 내에서 미국의 21세기 군사전략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3대축이라면, 장외에서 미 공화당 정권이 구상한 ‘신세기 전략’의 합창단 노릇을 하는 것은 이른바 ‘네오콘(neocon)’이라 불리는 신보수주의 그룹이다. 주류 신문의 논단과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 우파 지식인이 발행하고 글을 쓰는 각종 정치평론지에는 이들의 주장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한다. 가장 앞장서서 이라크전을 주장했던 이들은 행정부 내의 정책결정자 3인방과 손발이 척척 맞는다.

    신보수주의를 신봉하는 이론가와 활동가들의 사랑방 겸 둥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워싱턴 시내 한복판에 있는 미국기업협회(AEI)다. 지난 2월26일 부시 대통령은 이곳에서 정책연설을 했다. 행정부 고위 참모들이 대거 참석한 이날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중동 평화의 새 장이 열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연설이 유엔 안보리의 승인 없이도 이라크전을 치르려는 행정부의 마지막 공개캠페인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그 장소가 AEI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AEI는 신보수주의 그룹 네트워크의 중추다.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안보정책센터(CSP, Center for Security Policy)’ ‘유대인 국가안보협회(JINSA, Jewish Institute for National Security Affairs)’ 등이 AEI 소속 외교정책 전문가들과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9·11테러가 미국의 외교정책 전반을 뒤바꿔놓았고, 9·11 이후 외교정책뿐 아니라 미국사회 전체가 바뀐 것이 사실이지만, AEI는 이미 9·11 이전부터 일련의 급진적인 외교정책 대안을 제시해왔다. 이스라엘 우익연합 정당인 리쿠드와의 정책공조, 사우디아라비아나 파키스탄 같은 전통적인 미 동맹국과의 우방관계 단절, 타이완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확약, 중국에 대한 전략적 위협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북한문제에서도 이들은 철저하게 협상을 반대한다. 북한의 ‘핵 공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어떠한 형태의 반대급부도 북한에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행정부 내 강경매파들이 주장하는 대북정책 기조와 그대로 방향이 일치한다.

    이라크전이야말로 신보수주의 그룹의 영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사례다. 지금도 AEI에서 활동하고 있고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는 리처드 펄은 진작부터 사담 후세인 정권의 교체를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인물이다. 군사력을 동원해 후세인을 권좌에서 쫓아내는 것이야말로 중동전체를 변형, 재편하고 민주화시키는 제1보가 될 수 있다는 견해였다.

    펄은 지난해 11월 중순 PBS 텔레비전의 한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후세인 정권 교체를 역설했다. “그게 왜 꼭 지금이어야 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왜냐고?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벌써 그렇게 했어야 했다. 4년 전 사찰팀이 쫓겨나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라크와 말썽이 빚어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 사찰팀이 쫓겨난 것이다.”

    이라크전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이라크 정권 강제붕괴에 대해 이렇게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AEI의 외교정책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는 펄은 9·11 사건이 터지자마자 48시간 만에 자기 사람들로 대테러 정책수립 전담반을 꾸릴 만큼 풍부한 인맥과 조직가동력을 갖춘 신보수주의 그룹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미국의 세계패권전략을 이끄는 사람들





    이라크전이 끝난 직후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이 ‘제4차 세계대전’ 발언을 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그러나 이 ‘제4차 세계대전’이라는 말은 울시가 처음 한 말이 아니다. 신보수주의자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수시로 써오던 말이다.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에 이어 대테러전이 4차 대전이라는 의미다. 이들이 뜻하는 대테러전의 영역은 물론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나 헤즈볼라를 훨씬 넘어선다. 이라크전도 넓은 의미의 대테러전이었고, 헤즈볼라 지원 ‘혐의’를 받고 있는 시리아나 이란을 상대로 미국이 전쟁을 치르더라도 역시 이들의 관점에서는 대테러전이 된다. 신보수주의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되는 또 한 사람인 노먼 포더레츠가 신보수주의 평론지인 ‘커멘터리 매거진’ 2002년 2월호에 쓴 글의 제목 역시 ‘어떻게 4차 세계대전에서 이길 것인가?’였다.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인 윌리엄 크리스톨을 위시해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찰스 크라웃해머, 국방부 부장관 폴 월포위츠, 백악관에서 부시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옳은 사람-부시(The Right Man)’의 저자 데이비드 프럼 등 신보수주의의 물결은 부시 행정부 안팎을 넘나든다.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곧바로 미국의 대외정책 결정과정에 벽돌 쌓기 역할을 하고, 부시 대통령의 AEI 연설처럼 공개적인 여론몰이 캠페인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라크전 같은 행동으로 옮겨진다. 이들은 미국의 21세기 외교군사정책에서부터 감세안과 의료보험안 등 거의 모든 국내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수진영 내에서도 이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아 결국 보수파끼리의 집안싸움으로 연결된다. 신보수주의가 유대인그룹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언론마저도 ‘보수파들의 야만적인 전쟁’이라고 폄하한다. 로버트 노박과 데이비드 프럼의 설전이 대표적인 보수파의 이전투구였다.

    이 싸움의 표면적인 주제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찬반론이었다. 색깔이 분명한 책을 써서 돈을 만졌고, 지금은 보수파 평론지 ‘내셔널 리뷰’에 칼럼을 쓰고 있는 데이비드 프럼의 책 내용을 놓고 로버트 노박이 먼저 비판을 가했다. “자기가 유대인이라는 생색만 냈다. 대통령 참모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인종 뿌리에 골몰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정면공격을 한 것이다. 비록 좌충우돌하긴 하지만 노박은 어디에 정보가 있고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는 보수파의 대표논객이다.

    발끈한 프럼은 “이라크전은 이스라엘과 결탁한 전쟁 옹호론자들의 음모”라고 말한 대통령 삼수생 팻 뷰캐넌까지 싸잡아 노박과 한 줄에 세워놓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들은 미국을 증오하는 패배주의자들이다. 처음에는 신보수주의자들을 증오하기 시작하더니, 자기 당(공화당)과 대통령을 증오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자신들의 조국마저 증오하고 있다.” 프럼은 또 전쟁을 반대하는 이런 보수파들을 ‘핏기 없는 보수파’라고 쏘아붙였다.

    노박이 가만있을 리 없다.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다고 해서 자기 당과 대통령과 조국을 증오한다고 비난하니 이런 괴이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뷰캐넌도 ‘미 보수주의자’의 커버스토리에서 유대인 신보수주의자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의 국익과 상관없는 전쟁을 연속적으로 일으키도록 함정을 파놓은 음모가들과 공직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들이 이스라엘과 결탁해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스라엘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이야기는 틀려먹은 발상이다. ‘위클리 스탠더드’ ‘내셔널 리뷰’ 등 평론지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 등이 모두 그들의 지면이다. 이들의 숫자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보수파 재단과 잡지, 칼럼 등을 통해 그릇된 힘을 제멋대로 휘두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딜레마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은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도 위협한다. 모스크바는 미국에만 초점을 맞추던 외교의 무게중심을 유럽으로 옮겨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를 슈퍼 파워의 위치로 복귀시키려는 의도를 외교전략에 담고 있었다. 물론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없으면 안 될 일이었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듯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푸틴은 서서히 유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4월 중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독일의 슈뢰더 총리,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과 회동한 것도 우연한 선택이라고 보기 힘들다. 푸틴은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전략이 끊임없는 군사 분쟁을 유발할 것”이라면서 ‘자본-민주주의 혁명의 수출’이라고 비판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이 이와 때를 같이해 “러시아는 북한의 독립과 영토주권을 보장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 것도 다분히 미국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언제까지 미국에 등을 보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바노프 장관은 걸프전이 터졌을 때 알렉산드르3세 황제의 말을 빌려 “이 세계에서 러시아의 친구라고는 육군과 해군 두 명밖에 없다”고 했지만, 힘의 현실이 적용되는 국제정치에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을 맞상대하기에는 러시아 국내사정이 허락지 않는다.

    이라크전 이후 가속화하고 있는 미국의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 앞에서 한층 더 복잡한 딜레마에 빠진 나라는 중국이다. 이라크전이 끝나자마자 중국은 북한과 미국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전쟁 이전과는 전혀 다른 외교다. 미국은 북한을 1대1로 직접 상대해야 하며 베이징은 단지 조연 역할만 하겠다는 것이 종전 중국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을 바꿔 중국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 직접, 그리고 적극적으로 끼여드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미국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북한과 중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미국 사이에 끼여든다는 것은, 중국으로선 잘해야 본전인 게임이다. 자칫 잘못하면 양쪽 모두에게 손가락질만 받고 정작 챙길 것은 적은 구도다. 그런데도 이 위험을 감수했다. 과연 이라크전이 없었더라도 중국이 이런 행동을 취했을까?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 가능성으로부터 북한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이 나섰다고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중국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유일한 이유가 그것이라면 이는 현실을 중시하는 국제정치판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논리다. 자국안보가 우선적인 이유여야 논리에 맞다. 6·25전쟁 당시 중국의 참전논리와 같은 배경이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6·25는 성공한 방어전이었다.

    중국은 또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이 언젠가는 직접 자신을 노릴 수도 있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타이완이 코앞에 있는 한 이 가능성은 상존한다는 사실과, 부시 행정부가 출범 초기 자신들에게 보여주었던 강경자세를 잊지 않고 있다. 현재의 중미 관계가 당시에 비하면 훨씬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베이징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장기적인 중동전략도 중국을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에너지 부족은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운명과도 같은 중국의 숙제다. 2030년이 되면 중국은 필요한 석유량의 무려 84%를 수입에 의존해야 할 처지다. 안정적인 석유수급처가 꼭 필요한 상황에서 이라크전으로 미국이 세계최대의 석유매장지역을 선점했다. 중동 산유지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중국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끌어나가는 일극화 체제가 심화될수록 그만큼 설 자리도 좁아지는 셈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사설에서 “21세기도 힘의 정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 또한 미국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필요하다. 미국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개혁도 개방도 무용지물이 된다. 전자, 섬유산업 등에서 미국시장이 닫히면 12억 인구를 먹여살릴 길이 막히는 것이다.

    ‘슈퍼 파워’는 영원할 수 없다

    부시 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이라크전이 미국의 의지와 능력을 아주 실감나게 보여준 사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부시 대통령은 9·11테러가 미국의 안보에 대한 전혀 새로운 개념을 심어주었다고 말해왔다. 봉쇄와 억제로 대표되는 미국의 전통적인 군사정책은 이미 낡은 용어가 돼버렸다. ‘뉴욕타임스’ 4월1일자는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부시 대통령에게 봉쇄와 억제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전하고 있다.

    2002년 9월 미국은 33쪽짜리의 새로운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했다. 냉전 때처럼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도전받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 이 새로운 안보전략의 핵심이다. 이 보고서는 이라크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무장해제하겠다는 것을 단 1주일 전에 유엔에 통보했을 뿐이다. 4월10일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 보고서 작성에 관여했던 한 고위 관리는 “이 전략 보고서는 이라크가 첫 번째 시험이 될 수 있으며, 마지막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전 이후 최대의 관심사는 미국의 ‘다음 목표’다. 북한은 아직 신보수주의자들의 목록에 올라 있지 않다. 협상불가, 협박불용, 대가불납의 ‘3대 불가’만이 거론된다. 경제제재는 군사행동과 더불어 단 한번도 대북대응 선택지에서 제외한 적이 없는 상수다.

    미국 내에서 부시 대통령의 인기도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주의를 거세게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전후 이라크 문제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이라크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무덤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폴 케네디는 4월20일자 ‘위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제국의 위험(The Perils of Empire)’이라는 장문의 기고문에서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에게 이런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만약 미국의 매파들이 제 갈길을 고수한다면, 즉 아랍세계를 통합시켜 사회를 변혁시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위치’는 당분간은 지속될 수도 있겠지만 의도치 않았던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역사가 반드시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쓴맛을 보여주었다.”

    ‘슈피겔’(4월21일자)은 미국의 세계 패권전략에 이렇게 반문한다. “부시 대통령이 말하는 새로운 질서라는 것은, 족쇄 풀린 슈퍼 파워의 자유를 만끽하겠다는 것이고, 전쟁을 하나의 재래식 정치도구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동맹과도 손잡지 않고 나 홀로 가겠다는 것인데, 꼭 그래야만 평화가 보장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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