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강호는 단역에서 조역으로, 조역에서 주역으로 차곡차곡 연기를 쌓아올려 연기가 단단하고 폭이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살인의 추억’은 송강호의 11번째 영화. 조연 신세를 면하고 처음 주연으로 발탁된 영화가 1999년 ‘반칙왕’이다. ‘살인의 추억’을 포함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가 고작 네 편밖에 안 되는 배우에 대해 한국 영화의 정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례적인 현상이다. ‘반칙왕’이 영화 팬들에게 조연이나 하며 지내던 송강호를 눈여겨보게 한 작품이었다면 ‘살인의 추억’은 한국영화의 지평에서 그를 우뚝 솟게 했다.
‘살인의 추억’에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쫓는 형사로 나오는 송강호는 신들린 듯한 연기로 영화 전체의 공기를 형성한다. 이 영화 대사의 상당 부분이 송강호가 분위기에 맞춰 즉흥적으로 한 애드리브(ad lib).
봉준호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강호 선배는 이 영화를 풍성하게 해준 배우입니다. 그는 내가 알지 못했던 디테일을 만들었습니다. 시체부검 장면에서 윗 옷자락을 끌어올려 코를 막은 건 그 사람의 설정이었습니다”(영화 전문 주간지 ‘씨네 21’ 대담).
송강호는 전통적 기준에서 용모만을 놓고 보면 조연의 처지에 만족하고 살았어야 할 배우다. 한국의 주연급 영화배우들은 신성일 남궁원 신영균 또는 김지미 윤정희 강수연처럼 빼어난 미남 미녀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웃집 아저씨 같고 햄버거가게 종업원 같은 남녀들이 스타로 뜨는 세상이다. 송강호 뿐 아니라 설경구 류승범 조재현 박상범 정웅인 유오성 이범수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평균적인 미모를 거부하고 개성을 갖춘 배우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1980년대부터 나타났다. 연세대 최양수 교수는 “대중이 판에 박힌 미모에 식상했다고 할 수 있죠. 독특한 이미지를 갖춘 상품이 마케팅에 성공하는 현상과 같습니다. 송강호 이미지를 다른 배우에게서는 찾기 어렵죠”라고 말한다.
배우에게 중요한 건 ‘삶의 성찰’
강남 청담동 ‘마지아’라는 2층 카페에서 송강호를 만났다. 송강호는 요즘 밀려드는 언론 인터뷰를 소화하느라 체력적으로도 무척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신동아’ 인터뷰 직전에도 ‘동아일보’ 권재현 기자와 1시간 반 동안 인터뷰를 했다. 200자 원고지 15장을 쓰는 신문 인터뷰에 1시간 반을 배정하면서 100장 넘게 원고지를 메워야 하는 월간지 인터뷰에 2시간밖에 주지 않은 것은 영화사의 실수다. 다행히 같은 언론사에 몸담고 있는 권기자로부터 내용이 겹치지 않는 부분을 상당량 빌려올 수 있었다. 스케줄에 쫓기는 송강호에게도 편리한 일이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많이 지쳤겠네요”라고 떠보자 송강호는 “아닙니다. 쌩쌩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영화에서보다 젊어 보인다.
―배우라는 직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송강호씨가 생각하는 배우론에 대해 듣고 싶네요. 배우는 타고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대본은 문학성이 강한 작품이지요. 대본이 갖고 있는 문학성을 스크린을 통하거나 무대 위에서 행위로 전달하는 사람이 배우입니다. 연기의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삶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삶을 통해 사회를 보는 시각이랄까,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연구해야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습니다.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배우는 타고난다고 생각해요. 배우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에게도 후천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성과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입니다. 해당 예술분야의 특수성과 미학을 파악해야 합니다. 영화배우라면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