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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초까지, 절박하다 그 목청

장아찌 같고 성난 파도 같은 소리꾼 장사익

0.001초까지, 절박하다 그 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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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한 농가 맏아들로 태어나, 평범보다 못한 삶을 살다 오십 다 돼 가수가 됐다. 내 몸 같은 시를 골라 마음으로 읊조리며 ‘열에 아홉은 헷갈리며 사는’ 고달픈 인생들과 함께한다. 북한산 자락 높은 집에서 독공중인 그를 보았다.
  • 풀이 있고 돌이 있고, 새 한 마리 높이 날았다.
0.001초까지, 절박하다  그 목청
1993년 1월8일은 몹시 추웠다. 고향 저수지 옆 초라한 능선, 언 땅 부수며 겨우 비운 한 자리에 어머니를 모셨다, 아니 부렸다. 귀경길 내내 혼절한 듯 잠만 잔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외출 준비를 했다. 새빨간 핸드백을 메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꽁무니에 대고 친척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아이고 상 당한 것이, 저 가방 색깔 좀 보소.” 살아도 살아도 그리 힘겹게 살다, 갓 오십 넘어 눈도 못 감고 간 그이를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가슴이 막혀 숨이 찼다.

살면서 혹 그리 가슴 막힐 때마다 불현듯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때론 그 소리에 힘을 얻고 때론 어깨 꺾이며 어찌어찌 홀로 사는 법을 배웠다 했다. 그런데 오늘 또 그이가 날 부른다. 한 사내의 목소리를 타고, 그 소리를 빌어 손짓을 한다.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선 땅에 / 아버지 모셔드리고 떠나온 날 밤 / 얘야, 문 열어라! / 잠결에 후다닥 뛰쳐나가 잠긴 문 열어 제치니 / 찬바람 온몸을 때려 뜬눈으로 날을 샌 후 / 얘야, 문 열어라! / 아버지 목소리 들릴 때마다 / 세상을 향한 눈의 문을 열게 되었고…’(허영만 시, 장사익 곡 ‘아버지’)

5월2일 대전 충남대 정심화홀. 그득 들어앉은 사람들 새로 강이 흐른다. “얘야! 문 열어라-!” 호통치듯 애원하듯 목청이 터질 때마다 청중들은 흑 하고 숨이 멎는다. 앞자리 앉은 두 아저씨, 아닌 척 눈가를 찍어내느라 손이 바쁘다. 그들도 제 어미 아비의 아득한 부름을 들었는가. 차마 못 잊을 그 때 기억이 사마귀처럼 돋아나는가.

노래가 끝나자 돌연 팽팽한 침묵. 문득 박수가 터진다. 누군가 와-, 악- 고함도 마구 내지른다. 말로만 듣던 장사익(55)의 뜨끈한 한판 소리굿이다.



그의 노래는 그의 알몸

그렇게 2시간 반. 무대 안팎은 내내 같이 울고 웃었다. 서로의 호흡을 넘나들며 등도 두드리고 춤도 추었다. 장사익은 그의 말대로 참 잘 ‘까불었다’. 장아찌 같은 설움도, 묻혀 있던 신명도, 칼칼한 듯 청아한 듯 찰진 목청에 한껏 실려 바다로도 달려가고 하늘로도 날아올랐다.

사람들은 그의 소리에서 ‘내 얘기’를 보는 듯했다. 노래 간간이 “맞다, 맞어” 하는 한 아낙의 희한한 추임새가 하나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갈수록 장사익은 작아졌다. 가수가 아니라 그저 사람으로, 팬터지 아닌 생활 속의 맨 얼굴 맨발이었다. 그는 스스로 자기 무대에서 ‘특별함’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나중에는 그가 아이로 뵈고 아마추어처럼 느껴졌다. 나이를 쉰다섯이나 먹고, 소름이 돋도록 노래 잘하는 그가.

알고 보니 그의 노래는 그의 알몸이었다. 무방비, 상처투성이, 오래 짐 져 어깨 무너진 이 땅의 보통 아버지 아들. 뭐 대단한 일이라고 소리 한 자락에 제 인생을 죄 걸어 버리는가. 그 모습이 안쓰럽고 또 고마워 사람들은 어느새 그를 믿고 있었다. 척추로 노래하는 그에게 척추로 숨을 맞춰주었다. 스타는 사라지고 그 자리, 한 무더기 찔레꽃 피어 있었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 별처럼 슬픈 찔레꽃 /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 …아 노래하며 울었지 / 아 춤추며 울었지 / 아 당신은 찔레꽃’(장사익 시·곡 ‘찔레꽃’)

아파트 화단, 장미 더미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찔레꽃. 그래도 향기는 가장 알싸하고, 그러나 빛 보기는 아주 틀려 뵈는 꽃. 이 노래를 만들었을 때 장사익은 마흔여섯이었고 아직 가수가 아니었다. 태평소 연주자로 밥벌이가 힘겹던 그는, 그 이태 전에는 카센터 직원이었고, 또 그 전에는 독서실 사장, 가구점 총무, 전자회사 직원이었다. 그런 그가 마흔일곱 살에 가수가 됐다. 되자마자 장안에 뚜르르 이름이 났고, 이제쯤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장사익 류(類)’ 창법과 가락으로 나라 안팎 넘나들며 절정의 소리꾼으로 살고 있다.

네 장의 음반을 냈지만 아무래도 그는 현장 가수다. 돈이 되건 되지 않건, 가고 싶은 자리에 가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한다. 술 담배를 않는 그는 그래도 맘 맞는 이들과의 ‘뒤풀이 자리’를 가장 좋아하며, 그마저 갈 일이 없을 때는 세검정 집에 앉아 산을 본다. 곁에는 늘 아내가 있고 창 밖에는 봄비 맞아 토끼풀 꽃망울이 몽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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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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