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1971년작 TV 드라마 ‘장희빈’. ② 1972년작 ‘충녀’. ③ 2003년작 ‘바람난 가족’. (자료제공·한국영상자료원)
-김 감독은 윤여정씨를 왜 뽑았다고 하던가요.
“그 무렵 내가 TV에서 발랄함의 상징이었어요. 요즘으로 치면 김희선쯤 되었다고 할까. 날 왜 뽑았느냐고 물으니까 김 감독님이 낄낄낄 웃으면서 ‘청승맞아서 골랐다’고 그러는 거예요. 고개를 갸웃했죠. 그 시절에 나보고 청승맞다고 한 사람은 대한민국에 김 감독 말고는 아무도 없었거든요.
아주 나중에, 그러니까 이혼하고도 한참 지나 드라마 ‘관촌수필’을 하고 있을 때였을 텐데, 우연히 내가 나를 화면에서 보게 됐어요. 근데 참 청승맞더라고요. 정말 청승맞았어요. 그때 퍼뜩 김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오르데요. 그 사람이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구나, 20대에게서 청승맞은 구석을 미리 보다니. 나는 나에게 청승맞은 구석이 있다는 걸 진짜 몰랐어요. 봐요, 지금은 전혀 발랄하지 않잖아요. 내가 나를 봐도 청승맞은 데가 있고.”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보다 보면 다분히 가학적이고 인간에 대해 굉장히 냉정한 면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촬영감독 정일성씨 말로는 다른 감독은 카메라를 잘 모르지만 김기영 감독은 잘 알고 있었대요. 기이한 구도를 많이 사용했죠. ‘충녀’를 찍을 때예요. 소품으로 유리로 된 테이블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정일성 감독이 그 밑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 테이블 위에 색색가지 사탕을 뿌려놓고는 나보고 검정팬티를 입고 그 위에 올라가 앉으라는 거예요. 스물 몇 살 먹은 어린 애가 그걸 어떻게 해요. 또 싸움 나는 거죠, 울고 불고. 그런 일이 많았어요. 나보고 늘 성질이 못돼서 망할 거라고 그랬거든요.
하루는 나한테 침대에 누워만 있으면 되는 장면이라고, 오늘은 화낼 것도 없고 신경질 낼 것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하얀 시트에 나체로 드러누워 눈을 감으니 ‘레디 고’를 외치더군요. 그러고는 갑자기 천장에서 흰 쥐를 떨어뜨리는 거예요. 무슨 연기가 필요했겠어요? 아마 진짜로 기절했을 거에요. 그러니 영화장면이 사실적일 수밖에 없죠.”
-영화를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는 성격이었군요.
“말도 마세요. ‘화녀’에 보면 남궁원씨와 내가 뒤엉켜서 계단을 거꾸로 내려가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남궁원씨가 부들부들 떨면서 못 내려간다고 할 정도였어요. 나도 등에 상처가 엄청나게 났죠. 찍을 때는 또 어떻게 했느냐 하면 광목을 층계 위에서부터 묶어놓고는 카메라맨한테 그 위로 떨어지라고 그랬대요. 카메라맨은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자빠지면 머리통이 깨지는데. 그런데 김 감독은 결국 현장에서 그걸 다 하게 만들어요. 그게 카리스마였죠.”
-김기영 감독과의 두 번째 작품인 ‘충녀’는 어땠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는다면.
1972년작 ‘충녀’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노이로제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이 교수는 혼외정사로 인해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들과 함께 수용된다. 어느 날 그는 한 환자로부터 혼외정사때문에 급기야는 정부에게 살해된 어느 골동품 수집가의 비극적인 종말에 대해 듣게 된다.
술집 호스티스였던 명자(윤여정)는 부인의 경제력에 밀려 무위도식하고 있는 김 사장(남궁원)을 만난다. 명자를 만난 뒤 새로운 활기를 찾게 된 그는 그녀를 후처로 맞아들인다. 어느 날 김 사장과 명자는 냉장고 속에 버려진 갓난아이를 발견하여 키우게 되지만, 명자는 아기가 고양이와 쥐의 피를 빨아먹는 장면을 보게 된다. 어느 날 저녁, 명자는 집 안 냉장고 속에서 아기의 시체를 발견하고 다음날 그것을 교외의 땅 속에 묻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