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난에 무감(無感), 인터넷에 둔감(鈍感)
- 국가는 국민의 의붓아버지,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지금도 유효
- 카리스마란 가슴에 칼을 품고 사는 것, 꺼내는 순간 양아치 된다
- ‘최민수’의 삶에선 아내가, ‘배우’의 삶에선 모든 여자가 아름답다
- 은주야, 나는 나른한 오수(午睡)를 즐긴 것처럼 너를 느꼈다
- 부모님이 내게 지붕 덮인 가정을 주진 않았지만…
최민수를 둘러싸고는 극단의 평가가 엇갈린다. “여과되지 않은 언행이 지나치다” “너무 마초적이어서 다른 출연자들마저 그 앞에서 설설 긴다”처럼 그의 돌출행동이나 카리스마를 ‘과잉’이라고 비난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행동에 일관성이 있다” “용감하고 강하며 남자답다”는 옹호론도 있다. 하지만 최민수가 한국의 ‘대표 카리스마’라는 점에 이견을 다는 이는 많지 않다.
그가 출연한 영화 ‘홀리데이’도 그를 닮은 걸까. 1월19일 개봉된 이 영화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극심한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1988년 전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지강헌 탈주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인 CGV에서 개봉 나흘 만에 조기 종영됐다. ‘홀리데이’를 배급하는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스크린 수를 늘려달라”고 CGV측에 요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마찰 탓이었다. 결국 비난 여론과 극장 이미지를 고려한 CGV는 종영 나흘 만에 상영을 재개했다.
최민수를 만난 날은 일요일이었다. 그가 약속 장소로 잡은 서울 방배동의 한 전통찻집은 그의 단골집이었다. 그의 몸은 ‘홀리데이’ 개봉에 맞춘 잇따른 방송출연과 무대 인사하러 지방을 순회하느라 만신창이가 돼 있었고 이날도 감기 몸살과 결막염으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맹수처럼 빛났고, 예상과 달리 단 한마디의 농담도 하지 않는 아주 진지하고 심각한 스타일이었다. ‘홀리데이’ 기자간담회에서 “‘홀리데이’ 보면 홀린데이!”라는 우스갯소리로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예능인이 룰 안에서 움직인다?
-방송에서 한 돌출행동으로 누리꾼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
“예전에는 작품을 끝내면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바다에 가거나 아예 산으로 올라갔어요. 한두 달 틀어박혀 있다가 나오곤 했지요. 개봉에 맞춰 무대 인사를 다닌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고…. 저한테는 작품을 끝내면 비워내야 할 시간이 필요해요. 원래 제가 사람 많은 데 나가서 얘기하는 성격이 못 돼요. 이순열 사장(‘홀리데이’ 제작사인 현진씨네마 대표)한테도 ‘야, 너는 내가 홍보를 위해 토크쇼에 나가는 걸 필요로 할지 모르지만 난 그게 죽기보다 싫다’고 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래서 영화제에도 가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이번 영화는 여느 작품과 다른, 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요.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사건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죠. 아, 어떤 인식으로 이야기해야 될까…. 당시(1988년 지강헌 탈주사건 발생 당시) 우리나라는 자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의붓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으니까, 사람들에게 이에 관한 얘기를 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요.
두 번째 이유는 저스트(just·그저) 사적인 이유인데, 이순열 사장의 낭만주의적 성향을 좋아해서…. ‘조폭 마누라’로 성공한 사람이라 그냥 돈 벌어보겠다는 생각이라면 이 영화를 더 쉽게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좀더 퀄리티(quality·품질)가 있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으니까요(최민수와 이순열 사장은 태극무늬가 그려진 똑같은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의형제’ 사이다).
요즘 제가 시사회나 방송에서 평범하게 행동하지 않는 건, 어떻게 보면 (제가) 까진 놈이어서 그럴 수 있지요. 평범하게 다가서면 작품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약하지 않을까 싶어서, 일부러 돌출행동을 좀 해보기도 하고 그러죠. 사실 제가 좋아하지 않는 행동을 꼭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했지요. 제 성격과는 덜 맞아요. 하지만 스크린 안에 있는 ‘김안석’이라는 인물이 아직도 저에게는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어서, 저 개인적으로는 관객들한테 진정한 욕을 좀 들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지요.”
‘홀리데이’에서 최민수는 지강혁(지강헌의 극중 이름·이성재 분)을 혹독하게 괴롭히는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을 연기해 뱀처럼 저열하고 악마 같은 캐릭터를 분출했다.
“‘도그’나 ‘카우’나…”는 일부러 던진 말
-하지만 온라인에서 집요한 비난에 시달렸어요.
“사실 저는 (비난에) 관심이 없어요. 무감(無感)합니다. 나 스스로 대중 앞에 설 때 ‘유명무실’이라는 의미를 둡니다. 이름은 있지만(有名) 실제적인 어떤 득을 따지지는 않는다(無實)는 거지요. 어떤 언론에서든지 방송에서든지 저는 편안해지고 싶어요. 그것이 예(禮)나 도(道)나 어떤 룰 안에서의 움직임이라면 제가 예능인이라고 할 이유가 없죠. 그 부분(방송)에서 인격이나 수양이나 교육적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콘셉트 자체가 다른 것이고….
간단합니다. 저는 자유롭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질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그것(비난)까지 제가 책임을 지거나 관심을 가질 수는 없어요. 판단은 자유이지만. 나는 그냥 나일 뿐이지, 어떤 수식어가 붙거나 다른 의미로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반말도 그렇지만 “상대 출연자들의 기를 너무 죽인다”는 비판도 있었죠.
“(웃음) 다 모션(motion·연기, 설정)이죠. 모션이었지. 음, 글쎄요. 제가 다행히 컴퓨터에 예민하지 못하고 아날로그적인 성향이 많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쪽(인터넷)을 두드려보진 않는데…. ‘언어’와 ‘소음’은 분명 차이가 있지 않나 싶어요. 네티즌도 그래요, 군중심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 사람이 어떤 얘기를 하면, 우리나라는 (그 사람) 언어가 좀 돌출돼 보인다든지 하면 일단은 좀 건드려보는 성격이 있는 거 같아요. 이 사람 저 사람 ‘와’ 하고 건드릴 때도 있고….
그냥 소리는 소리일 뿐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기에 제가 기죽을 필요도 없고, 예민해질 필요도 없고…. 내가 나를 진단해보면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건 아니지 않은가 생각되고…. 내가 사람이기를 포기하면 어떻게 연기를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되고…. 말은 장황하게 했지만 사실 깊이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저도 한 칼럼에서 여배우 문근영을 두고 “이제는 ‘국민 여동생’이란 호칭에서 그를 자유롭게 풀어주자”고 주장했다가 인터넷에서 뭇매를 맞은 기억이 있어요.
“보지 마요, 그런(인터넷) 거. 거기(인터넷)에 대해선 무반응도 중요하지만, 정면 승부도 필요해요. 새의 날개가 한쪽만 크면 날 수 있겠습니까. 다른 한쪽도 공평하게 커야죠. 개소리가 있으면, 정말 쓴소리도 필요한 거죠. 마찬가지로 언론도 십자가를 져야 할 필요가 있어요. 누군가는 십자가를 져야 해요. 그건 진짜 그 배우(문근영)를 아껴서 하는 말인데….
배우가 누굴 사랑할 수 있어야 연기가 나오는 거고 아파할 수 있어야 연기가 나오는 거지, 언제나 꽃구름 타면서 꽃가루 날리는 게 연기입니까? 현실 속에 부딪혀도 보고 자기가 또 무너져도 보고 그러면서 위로도 받고, 이게 연기자가 되어가는 과정이죠.
선하게 그들(누리꾼)의 입맛에 맞게 갈 수 있겠죠. 하지만 (방송에서) 자연스럽게 가자고 한다면, 그건 저스트 저의 설정일 수 있어요. 설정을 진실로 믿는다든지, 설정을 두고 목숨을 걸고 그렇게 삿대질을 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저에게는 ‘잡음’이에요. 만약 그런 식으로 한다면 언론에서도 맞대응을 해야 돼요. 강하게 가잖아요? 그러면 또 말들을 안 해요. 제가 이런 건 예전에 초월했기 때문에….
제가 ‘도그나 카우나’ 한 것도 일부러 던진 말이지요. 왜냐하면 예술의 십자가도 져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요즘 연기자들이 내실을 기하지 않고 상품적 효과만 극대화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안 듣습니다. 하지만 ‘도그나 카우나’ 하면 들어요. 어떻게 보면 설정이에요.
말을 잘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말만 지껄이는 게 아니라 할 얘기는 하는 것이거든요. 인터넷도 그래요. 제가 볼 때는 그레이드(grade·등급)가 더 높아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서로 지식을 교류할 정도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냐는 거죠. 어느 한쪽에 의해서만, 네티즌에 의해서만 이끌려 간다면 발전은 빨리 오지 않는다….”
욕 많이 하는 건 情 많기 때문
최민수는 1988년 벌어진 ‘지강헌 탈주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홀리데이’에서 탈주범 지강혁을 괴롭히는 악랄한 교도관 김안석을 연기했다.
“그건 서로가 배우는 거예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우리가 한마디로 얘기하면 정(情)이 많은 민족이에요. 욕을 많이 하는 것도 정이 많아서 그래요. 근데 그 정이 정리가 안 된 정이에요. 그러니까 빌딩(삼풍백화점)이 무너져도 용서를 하고, 다리(성수대교)가 끊어져도 망각을 하는 그런 정이에요. 정이 정리가 돼야 해요.
지난 월드컵 때 종로에 나간 적이 있는데,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우리 국민이 보여줬잖아요. 전부 다 빨간 티를 입고 길로 나와서 함성을 지르면서 아주 큰 대한민국의 의미를 보여줬잖아요. 그건 어느 나라에서도 하기 힘든 거거든요. 하지만 실제로 제가 그 안에 들어가 보니까, 위험해요. 너무나. 실제로 거기서 누군가 폭탄이라도 터뜨렸다면…. 거기에 대한 안전장치가 전혀 없더라고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많았어요. 이게 우리의 모습이에요. 현실.
우리 스스로 앞모습만 보여주길 원하고 쇼맨십만 있지, 그 뒷모습에 대한 책임을 못 져요. 종로에 가니까 골목골목까지 인산인해인데, 만약에 폭탄이 터진다고 하면 앞에서 다치는 사람은 몇 명일지 몰라도 사람에 밀려 사망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예요. 어우, 저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더 이상한 거예요. 그건 정말 위험한 거예요. 폭동이라도 혹시 일어나면, 말 그대로 반국가적인 행동을 누가 했다면, 정말 큰일나는 거예요. 국민 자체로 질서를 유지하는 어떤 시스템이 안 돼 있어요. ‘와’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질서는 가져봅시다. 이 선에서 우리가 더 나가진 맙시다. 혹시 위태로운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끄집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읍시다’ 하는 방침이 없어요. 제가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얘기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악랄한 악인 역할이에요. 주로 직선적이고 정의로운 캐릭터를 해온 배우로서 이번 역할을 꺼릴 만도 한데요.
“아뇨. 사람들이 많이들 물어요. 캐릭터를 어떻게 그렇게 설정했느냐, 금니는 어떤 생각에서 하게 됐느냐, 뒤로 동여맨 머리 스타일은 어떻게 하게 됐느냐…. 이런 걸 물어보면 일단 ‘은니 하기 싫어서 금니 했다’고 그냥 받아넘기지만, 지금 제대로 얘기를 하자면, 간단해요. 그 ‘김안석’이란 인물이 나한테 요구했던 거예요. ‘나 여기 있다. 나 이런 모습인데 나한테 올래?’ 하고. 김안석은 당시 폭력적인 정치권력을 상징하는 사람이에요. 우리 역사를 짓밟고 유린해온 권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죠. 그래서 그 인물 나름대로 정체성이 있을 것이고, (캐릭터를) 좀더 강하게 가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야기를) 순화해서 타협하지 말고 강하게 가자고 제가 오히려 감독에게 주장했지요.”
-‘홀리데이’ 편집 과정에서 불만을 표시하면서 단식을 했다고 하던데요.
“‘그림(비주얼)이나 재미를 추구하는 게 요즘 영화의 추세이지만, 전 이 영화는 사람끼리 부딪치는 얘기를 뚝심 있게 담자’고 감독에게 조언했어요. 나는 이 영화가 대중에게 다가가는 영화가 아니라, 대중이 다가오는 영화가 될 것으로 믿었지요. 그러나 이 영화를 투자·배급한 롯데시네마 입장에서는 너무 ‘사람 냄새’가 나는 이 영화에 당황했고, 그 과정에서 지강혁(이성재)과 김안석(최민수) 두 남자의 대결이 부각되고 나머지 캐릭터들의 부피가 줄어들었지요. 그래서 괴로워서 며칠간 밥을 먹지 못했어요.
배우 입장으로만 생각하면 촬영이 종료되면 ‘댓츠 잇(That’s it·다 됐어)’하고 끝낼 수도 있지만, 매일같이 감독과 디스커션(discussion·토론)했던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요. 생산적인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 흔들리는 게 안타까웠어요. 우리 배우들에게 ‘다음’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에요. 인물이 갖는 모티브나 페이소스가 더 신랄할 수 있었을 텐데….”
창조는 쓰레기를 남기지 않아
-‘홀리데이’의 주제는 다음 두 마디 대사에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첫째는 “잘못된 거는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이죠. 이 영화의 주제에 동감합니까.
“그렇죠. 지금도 사실은 그게(주제) 유효하죠.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를 아버지에 비유하자면 ‘계부’ 아닙니까, 아직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거나 국민을 위한다고는 절대적으로 보이지가 않죠.”
-어리석은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상업영화에 출연해 많은 액수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로서 허울좋은 얘기 아닐까요.
“예를 들어 햄버거라는 것이 있어요. 쉽게 먹을 수 있고 일반인에게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 있지만 몸에는 좋지 않지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다, 하면 일반인은 스스럼없이 가서 돈 내고 사먹지만, 닭이 죽어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어떻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가야 할 일들이 있는 법이죠.”
-사실 수십년간 ‘터프가이’ 혹은 ‘카리스마’라는 수식어가 당연한 듯 여겨지는 배우는 최민수씨 외에는 없어요. 그런 면에서 대단한 브랜드라고 생각됩니다만.
“카리스마는 어떤 공간에 대한 장악력일 수도 있고, 나 자신에 대한 장악력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결혼 후에는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나 자신이 너무 많이 아니까. (배우 생활이) 23년 됐는데, 이걸 반으로 쪼개서 얘기를 하자면, 결혼 전까진 알든 모르든 내 몸으로 부딪쳐가면서 내 몸에 채워가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면, 이후는 너무 조심스럽게 움직였죠.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장악력은 ‘자유’예요. 나에 대한 자유. 무엇인가에 안주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것, ‘내가 이렇다’라고 나 자신을 정리하지 않는 것, 항상 채워 나가는 대신 비워 나가는 거예요. 이게 참 어려운 얘긴데, 이렇게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제가 8년 전부터 검도를 했는데, 검도와 연기가 참 많이 일치하는 것을 느꼈어요. 올라갈수록 고독하고 나 자신을 더 채찍질해야 하고, 올라갈수록 얻어지는 것보다는 나를 버리는 것이 더 많고…. 며칠 전에도 검도장에서 신년하례식을 하면서 4단인 제가 7, 8단인 고단자하고 대련해봤는데, 검을 대하는 마음의 차이를 느꼈거든요. 마음으로 먼저 베고 몸으로 나가는 것 말입니다.
카리스마가 있다는 건 딱 이렇다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 그게(카리스마가) 내가 움켜쥐고 내 걸로 만들어서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절대로. 의도적으로 얻어지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죠. 내가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전혀 없고요. 사실 저는 도시생활에 적응이 잘 안 돼요. 서울에서 사는 것도…. 남산에 올라 시내의 네온사인을 본다든지 차량의 브레이크등을 보면 무슨 혈관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울이란 도시의 리듬 자체가 젊고 패기 있고 항상 역동적이고 진취성이 있는 한에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을 뿐 그 시간대에서 벗어나면 의미가 별로 없어 보여요. 저는 그런 생리를 별로 사랑하지 않아요.
저는 ‘생산’보다는 ‘창조’ 쪽에 관심이 있지요. 그렇잖아요? ‘생산’이란 거는 나중에 반드시 쓰레기를 남기는 것이고, ‘창조’란 건 나중에라도 절대 쓰레기가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나에 대해서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나에 대한 완고함을 계속 유지하는 거 그런 부분이 그런 느낌(카리스마)을 던져주는 것이지….”
죽을 때까지 칼을 꺼내지 않는다
-카리스마를 딱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가슴에 칼을 품고 사는 것이지요. 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 칼을 끄집어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칼을) 끄집어내는 순간 그자는 양아치가 되는 것이지요. 칼을 평생 품고 있는 사람에게는 칼을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어떤 기운이 있어요. 절대 물러서지 않고, 그렇다고 앞으로 너무 쉽게 나아가려 하지도 않는….”
-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최민수와 다른 최민수의 모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나 지금이나 저는 항상 내가 변하는 걸 인정 안하는 쪽이에요. 음, 아주 옛날부터 내가 믿어왔던 것을 지금도 되새김질하고 확인해보는 것이지, 모르는 걸 새로 찾는 건 없어요. 내가 나를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능력까지 가진 사람인가를 계속 시도해보고 싶어서지요. 옛날부터 알아왔던 것을 반복하면 할 때마다 맛이 다 달라요. 일찍 일어나서 앞마당 쓰는 거, 하루에 착한 일 한 번 하는 거, 거짓말하지 않는 거, 이런 것들은 유치원 시절에 배운 건데, 그게 저한테 지금도 유효해요. 그것이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찾아가는 방법이에요.
얼마 전 은주(여배우 이은주)가 죽었을 때도, 제가 장례식장엘 가야 하는데, 저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어요. 그날도 제 방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제가 아는 프로덕션 사장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지금 뭐하고 계십니까.’ 그래서 제가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 지금 저만의 시간 속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전화가 왔어요. ‘그러실 줄 알았어요’ 하면서.
저는 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못 흘렸어요. 눈물을 참느라 이를 앙 물었더니 나중에 어금니에 금이 갔지만, 그건 제 업보죠. 제가 배우라는 업보. 눈물도 사람들 앞에서 자유롭게 흘리지 못하겠어요. 남들이 이상하게 판단할까봐. 제가 얼마 전 오토바이 사고로 여기(오른쪽 어깨) 뼈가 다섯 조각으로 부서져서 지금도 쇠판을 대고 있어요. 뼈가 모자라서 골반 뼈를 떼어다가 여기다 붙였죠.”
최민수는 지난해 8월 자신은 촬영이 없는 날이지만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촬영장으로 가다 사고를 당해 쇄골이 파열되는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었다.
연기에 집착도, 미련도 없다
-엄청난 고통이었겠어요. 그 사고 때문에 ‘홀리데이’에서도 지강혁에게 오른쪽 어깨에 총을 맞아 붕대를 감고 있는 설정이 만들어졌다고 하던데요.
“그때(오토바이 사고 직후)도 방송국에서 카메라맨이 많이 왔죠. 하지만 저는 제 병실을 공개하지 않았어요. 이유는 단 하나예요. 이걸 보일 이유가 없어요. 내가 ‘아, 죄송합니다. 완쾌되어서 열심히 할게요’하고 동정을 구하라고요? 이건 나의 부주의고 나의 실수인데, 매스컴을 이용해 동정을 얻는 건 나한테 의미가 없는 행동이에요. 혼자 짊어져야 할 책임이지. 장례식도 마찬가지예요. 그건 순수하게 걱정하고 무엇을 기원할 부분인데, 매스컴이 와서 무슨 죽은 당사자의 마지막까지 치장으로 보이고 싶지 않고….”
-이은주씨를 위해는 어떤 기도를 올렸나요.
“기도라는 게 뭐, 하나죠. ‘네가 잠시 있다 갔지만, 나는 나른한 오수(午睡·낮잠)를 즐긴 것처럼 너를 느꼈다. 네가 어느 곳에 가더라도 네가 너답다는 걸 지키기 위해서 선택한 일일 테니, 나중에 만나 얘기를 나눠보자꾸나’ 이런 기도이겠죠.”
-오토바이는 또 탈 생각인가요.
“지금 수리를 맡겼는데, 날씨가 풀리면 다시 타야죠.”
-위험할 텐데요.
“위험하죠. 하지만 사는 데 위험하지 않은 게 어디 있어요. 제일 위험한 건 사실 나 자신이죠. 난 참 위험한 동물이에요. 반은 야수고, 반은 어떤 귀족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일상적인 삶을 살 때는 나는 성격이나 말이나 느릿느릿한 편인데, 촬영처럼 원초적인 부분에서 움직일 때는 내 안에서 승압(昇壓)되는 게 굉장히 커요. 저는 샤머니즘적인 면이 굉장히 강해요. 그런 점은 저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보고 싶기도 하지요.
저는 당장 내일이라도 연기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저는 ‘집착’이란 단어를 싫어해요. 미련이 없어요. 연기하기 위해 사는 건 아니거든요. 나답게 살기 위해 사는 거죠. 오토바이? 마찬가지예요. 제가 굳이 탈 이유는 없어요. 음, 그렇다고 안 탈 이유도 없지요. (오토바이가) 나한테 다가오는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사는 거지요.”
이때 최민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벨소리로는 그룹 도어스가 부른 ‘디 엔드(The End)’가 구성지게 흘러나왔다. 최민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래도 부인께서는 걱정하겠어요.
“그런 부분은 나를 놓아주었죠. 물론 마음속으론 누구보다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저보다 더 강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제가 어디 부러질까봐 혹은 죽을까봐 두려워서 안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는 거죠.”
무(無), 시(時), 로(路)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다고 평가하나요.
“언젠가 ‘남들이 예스(Yes)라고 할 때 노(No)라고 할 줄 알아야 되고, 남들이 노(No)라고 할 때 예스(Yes)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광고 카피가 있던데, 사실 그게 제가 대학교 때 썼던 말이에요. 이건 소피스트나 궤변학파적인 얘기는 아니었거든요. 까놓고 얘기하자면, 이거예요. 남들이 다 밟은 길은 내가 밟을 게 없다는 것이지요.
제가 볼 때 (저는) 나그네예요. 나만의 길을 걷는 나그네…. 내 삶이 참 아이러니 같은 게, 나그네를 보면 참 낭만 있어 보여요. 내일 이른 아침에 출근해야 되고 힘들게 일하고 저녁엔 소주나 한잔하면서 시름을 잊어야 하는 삶을 사는 많은 사람에게 이런 ‘나그네’의 삶은 마치 TV를 탁 틀었는데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사람을 볼 때의 느낌일 거예요. ‘야, 저런 삶도 참 좋겠다’ 하는….
하지만 정작 걷고 또 걸어야 하는 나그네는 발에 물집이 잡히고 엄청스러운 고통이 따르지요. 저는 ‘무시로’라는 말을 다르게 해석해요. 없을 무(無), 때 시(時), 길 로(路). 즉, 길 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1994년 미스코리아 출신 강주은씨와 결혼한 최민수. 그는 아내가 있기에 자신이 내면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가 2년 전부터 머리를 길렀어요. 그 이유는 작품을 쉬고 싶어서지요. 보통 머리가 짧아야 되는 역할은 많지만, 머리를 길러야 어울리는 역할은 많지 않잖아요. (출연요청을) 거절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핑계거리가 머리거든요. 내가 머리를 좀 길러야 할 이유가 있다면서 고사하는 것이죠. ‘동막골(지난해 국내 최고 흥행을 기록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두고서도 감독(박광현 감독)과 만났는데, 그 작품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그냥 왠지 연기가 하기 싫어졌어요.”
최민수는 당초 ‘웰컴 투 동막골’에서 배우 정재영이 연기한 북한군 장교 역을 제안받았다고 한다.
-작품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배우로 유명합니다. 이번 영화에선 대사를 직접 만들어 넣기도 했는데요. 제작자나 감독에 따라서는 그러한 배우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기도 하는데요.
“질문의 의도를 알겠어요. 저는 배우 알 파치노가 촬영현장에서 두 시간 동안 감독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도 봤어요. 감독의 디렉션(direction·방향)과 연기자의 디렉션은 모두 정답이란 게 없어요. 서로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연출자는 컨덕터(conductor·지휘자)죠. 모든 액팅(acting·연기)의 하모니를 이끌어내는 거죠. 연출자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디렉션의 핵심만큼은 (배우가) 건드려선 안 된다고 봐요.”
-최민수씨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겹쳐져요. 하나는 강렬한 카리스마, 또 다른 하나는 아주 가정적인 남자.
“가정적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정서라고 봐요. 지금의 우리 사는 삶이 마치 가정을 지키는 것이 무척 큰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가 되지만 말이죠. 옛날 인디언에겐 이혼이란 게 없었어요. 남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사냥을 했고 공동체를 위해서 사냥감을 나누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삶을 살다 보니까…. 아, 전문적인 얘기는 하지 맙시다. 모계사회, 뭐 이런 건 지금 얘기할 게 아닌 거고.
내 안의 질서 유지를 돕는 아내
나에게는 ‘최민수’로서의 삶이 있고, ‘배우’로서의 삶이 있어요. ‘최민수’의 삶으로 보자면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지요. 하지만 한편 ‘배우’의 삶은 내가 지켜왔던 것을 깨부수기 위해서 선택하는 삶이에요. 다시 말해, ‘최민수’의 삶 속에서는 내 아내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배우’의 삶 속에서는 모든 여자가 아름답지요. 이 여자를 내가 사랑해야 이 작품을 찍을 수 있는 거니까요. 또 이 여자에게 버림을 당해야 내가 버림당하는 걸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가정 외에도 뭐가 있다면 그것 역시 목숨을 다해 지켜야 하겠죠.”
-지금도 최민수씨를 보고 돌아가신 아버님(배우 최무룡)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요.
“제가 겉으로는 소피스트같이 막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충실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바로 ‘전통’과 ‘질서’라는 단어예요. 대중이 나를 가깝게 생각하는 건 나 자체보다는 나의 부모라는 배경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통이 있는 피를 받았으니까 좀 예뻐해주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저는 생각해요. 부모님이 나에게 주었던 것이, 꼭 지붕이 덮인 가정을 주었다기보다는 내가 나를 스스로 단련할 수 있는 과정을 주었다는 것도 있지요. 그걸 저는 가정교육의 또 다른 큰 의미로 해석하고 싶어요.
물론 저는 ‘가정이 없이 사는 놈’ 같은 꿈도 있어요. 저기 오대산이나 강원도 쪽에 도장(道場) 하나 차려놓고 애들 검도 가르치면서 감자도 구워먹고 하는 아주 목가적인 전원 생활을 꿈꾸기도 하지요. 와이프가 ‘오케이’ 하면 함께 갈 거고, 아니면(찬성하지 않으면) 서로 신뢰와 믿음이 있으니까 (떨어져 살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보는 삶도…. 내가 ‘십년 후에는 강원도에서 살아도 돼?’ 하면 아내는 ‘이제 미쳐가는구나’ 해요(웃음). 내가 그런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하는 것도 나다운 거예요. 그런 생각을 혼자 하고 숨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와이프와 얘기를 하죠. 와이프에게 정말 고마운 것은 내가 내 안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