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한국문화원 시설 개선하겠다
- 한류 콘텐츠, 제작보다 활용이 더 중요해
- 중국의 역사 왜곡에 적극 대응해야
- 영화산업, 대기업 의존도 너무 높다
- TV 드라마 ‘선덕여왕’, 역사 왜곡 심했다
인터뷰 자리엔 대변인과 정책보좌관, 각 국실 실무 책임자들이 배석했다. 배석자가 많으면 실무적 차원에선 도움이 되겠지만 장관이 소신발언을 하거나 자유롭고 편한 대화를 하는 데는 방해가 될 수 있다. 경험에 비춰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들 이렇게 한다. 그간 장관급 고위직을 여러 차례 인터뷰해봤는데 배석자를 단 한 명도 두지 않았던 사람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뿐이었다.
“장관이 되니 뭐가 좋으냐”는 첫 질문에 최 장관은 그야말로 실무적인 답변을 했다.
“고려대박물관장 시절 몇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예산 부족으로 못했어요. 그걸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돼서 해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문화재청장을 하면서도 예산 부족으로 사업이 중단되는 게 아쉬웠는데 장관이 된 후 다시 추진하게 됐습니다. 대표적인 게 북한 개성에 있는 만월대를 발굴하는 일입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과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 힘이 커졌다는 뜻인가요?
“예산이나 조직이 크고 직위가 높아졌으니 영향력이 커지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내가 그간 해온 일이 한국문화의 대중화, 정보화, 국제화입니다. 관장 할 때나 청장 할 때나 장관이 돼서나 마찬가지예요. 다만 영역이 좀 더 넓어진 거죠.”
▼ 일부에선 대통령과의 인연 덕분에 장관이 됐다거나 ‘낙하산 장관’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글쎄 뭐 대통령과 인연 있는 분이 저뿐이겠어요? 인연 있다고 다 장관 하는 건 아닐 것 같고요. 그리고 낙하산은 위에서 내려오는 건데, 저는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재청장을 거쳐 장관이 됐으니 밑에서 위로 올라온 거지요.”
이명박 시장의 전화
▼ 모처럼 실력을 갖춘 정통 학자가 문화부 장관에 부임한 것 같습니다. 그간 정치인이나 언론인, 대중 예술인이 많았지요.
“인문학자 출신으로는 이어령 전 장관(노태우 정부) 이후 제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분은 문학 전공이고.”
▼ 교수직은 휴직 상태인가요?
“예.”
▼ 몇 년째인가요?
“4년입니다.”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부임한 이래 죽 휴직 중이라는 얘기다. 그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냐”는 질문에 약간 얼굴이 상기되긴 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가 고대사 전공인데요. 다행히 (고려대 사학과에) 고대사 전문 교수가 둘 있어요. 국립박물관장 할 때만 해도 가끔 주말에 학생들을 만나 세미나를 열곤 했어요. 그런데 (문화재)청장 하면서는 쉽지 않더라고요. 대전에 사무실이 있으니 (서울) 왔다갔다 하는 게 힘들죠. 장관은 워낙 일이 많고.”
그는 2007년 고려대박물관장 시절 ‘문화예술최고위과정’을 개설했다. 각계 저명인사가 많이 수강했는데 그중엔 이명박 대통령 부부도 끼여 있었다. 당시 최 장관은 이명박대선캠프 정책자문위원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장관 청문회 때 민주당 김재윤 의원은 “대통령의 은사로서 장관직을 받은 보은·낙하산 인사의 종결자”라고 비판했다.
최 장관에 따르면 이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년 전이다.
“2003년에 제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았어요. 그때 한 일간지와 인터뷰하면서 몇 가지 방안을 얘기했습니다. 첫째, 국제심포지엄을 해야 한다. 둘째, 북한 유물을 포함해 고구려 유물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 셋째, 고구려 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날 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처음 전화한 분이 코리아파운데이션 권이혁 이사장이었습니다. 국제심포지엄을 도와주겠다면서. 두 번째로 전화한 분이 이명박 서울시장이었어요. 서울시 차원에서 심포지엄 예산과 전시회 개최를 지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알고 지내게 된 겁니다. 그분의 요청으로 서울시 시정자문위원도 맡았죠. 실제로 서울시에서 많이 지원해줬습니다.”
한류 관련 일자리 창출
2011년 1월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가운데)을 비롯한 승려들에게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설명하는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학교 예산이라는 게 뻔하잖아요. 오랫동안 고려대박물관장을 지내다보니 스폰서가 필요하더군요. 또 정책결정을 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후원도 필요했습니다. 많은 분이 수강했는데 부부가 같이 듣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 대통령 부부도 그랬지요. 당시 이 대통령은 대선후보로 막 나서려는 참이었어요. 대통령 내외가 1기로 수강했습니다.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도 1기였고요. 이후 언론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6개월짜리인 이 과정을 이 대통령은 수료하지 못했다고 한다. 출석 성적이 좋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1기 졸업식이 (2008년) 1월인가 2월에 있었어요. 주변에서 대통령이 됐는데 졸업시켜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수강한 분들도 대통령과 동기생 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그런데 내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죠. 최소한 몇 회 이상 출석해야 졸업한다는 원칙을 세웠거든요. 지금 이 과정이 11기째인데, 잘되고 있는 건 그때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일이 대통령께 굉장히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아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은 3조7000억 원이다. 전체 정부 예산의 1.14%다. 최 장관은 “예산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22조에 달하는 4대강 사업 예산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게 아니냐고 묻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진 않고요. 요즘 복지가 화두니까 복지예산이 늘고 교육·국방의 비중이 높지요. 앞으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문화 예산을 늘려야 합니다.”
▼ 실제로 우수한 문화콘텐츠가 국부 창출에도 기여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요즘 한류만 봐도. 관광만 해도 그래요.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이 980만 명 왔어요. 일본도 800만 명밖에 안 돼요. 980만 명의 10%가 한류 때문에 온 거예요. K▼ POP과 드라마 등 한류를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광을 포함해 한류와 관련된 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도 중요합니다. 앞으로 관련 일자리도 많이 생길 겁니다. 이런 게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 문화부 예산이 어느 정도 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이 2.2%예요. 최소한 2%는 돼야 해요.”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는 크게 문화예술, 콘텐츠, 관광, 체육 네 부문으로 나뉜다. 깊이 들어가면 인터뷰 시간이 무한정 길어질 것이기에 분야별로 한두 개의 질문만 던지기로 했다.
만월대 발굴과 아리랑사업 등재
▼ 프랑스 파리에 한국문화원이 있습니다. 파리가 유럽 문화의 중심지인데 지금 거기서 K-POP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신경숙 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인기를 끌고 있고요. 외국에서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곳이 한국문화원인데 파리의 한국문화원은 중국과 일본문화원에 비해 시설이나 예산이 너무 열악하다고 합니다.
“그렇죠.”
▼ 장소도 아파트 건물 반지하이고요.
“예. 가 봤습니다.”
▼ 문화인들이 그 얘길 많이 하던데, 왜 안 바꿔주느냐고. 그 예산이 얼마나 든다고.
“그렇지 않아도 바꿔보려고 노력했는데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 그런 게 왜 잘 안 되죠?
“이런 시각도 있어요. 일본에서는 그런 일을 정부 예산이 아닌 기업 후원으로 해요. 우리도 기업들이 그런 노력을 해주면 좋겠는데 쉽지 않아 보여요.”
▼ 기업에 맡길 일이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우리도 하려고 했는데 기획재정부에서 난색을 나타내서. 하여튼 내년에 다시 해보려고 해요.”
▼ 지난해 12월 초 대학생들과 간담회 하면서 문화콘텐츠 일자리 2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말씀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요?
“콘텐츠 분야에서 아이디어, 제작, 유통에 관한 정보가 잘 모이지 않는 것 같아요. 문화부가 그런 걸 모으는 중개소 같은 역할을 하겠다는 거지요. 지금 일자리 없다고 하는데 콘텐츠 분야에는 젊은이들이 할 일이 많아요.”
최 장관은 취임사에서 북한과의 문화교류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 시발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 만월대 발굴사업이다. 유네스코에 아리랑을 공동 등재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지난해 11월 그간 중단됐던 만월대 발굴작업을 재개했습니다. 실무자들끼리 만나 아리랑 공동등재 얘기도 했어요. 그러다 김정일 사망이라는 돌발상황이 생기면서 철수했죠.”
▼ 북한과 문화사업을 하려면 남북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이 정부 들어와 파탄에 이르렀다고들 하잖아요.
“류우익 장관이 취임하면서 개선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돌발상황이 벌어지는 바람에…. 아무래도 조정기간이 지나야 되겠죠.”
▼ 문화부 장관으로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화의 동질성이 중요하거든요. 만월대 발굴과 고구려 고분 보존, 아리랑 유네스코 공동등재 등을 추진하다보면 자연스레 남북관계가 개선될 걸로 기대합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 한미FTA가 문화콘텐츠 쪽에 끼칠 영향이 클 텐데요. 기대효과 못지않게 피해도 있을 테고요.
“일단 저작권법이 발효되면 제약을 좀 받겠죠. 이걸 우리가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문화산업의 성패가 걸릴 수 있다고 봅니다.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수출 많이 하면 좋고요. 한류 콘텐츠를 만드는 것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영화동반성장협의회
▼ 영화인들은 스크린 쿼터 축소에 반대하며 완전 개방에 반대했는데요.
“세계에서 자국 영화가 전체 상영되는 영화의 반을 차지하는 나라가 별로 없어요. 스크린 쿼터 축소는 한국 영화가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계기가 됐어요. 토인비가 말했지요.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도전이 너무 세서도 안 되고 없어도 안 된다고. 우리 것만 지킨다고 계속 지켜지는 것도 아닙니다. 외세의 힘에 휘둘려서도 안 되겠지만요. 지금 한국 영화는 다른 나라 영화에 비해 굉장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요. 세계무대에서 상 받아오는 것만 봐도 그렇잖아요. 프랑스만 해도 자국 영화 비율이 그다지 높지 않아요.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산업이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 독과점 비슷하지요.
“그래서 영화동반성장협의회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독과점을 막고 상생하는 길을 찾기 위해서죠. 제작자협회, 연기자협회 등 영화 관련 각종 협회가 다 가입했어요.”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그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일에 앞장서왔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 공동대표와 고구려연구재단 이사를 지냈다. 그래선지 이와 관련된 질문을 하자 답변이 활기를 띠었다.
▼ 교수 시절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일에 관여해오셨는데요. 이명박 정부 들어 한중관계도 나빠졌습니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보십니까.
“중국은 55개 소민족을 가진 다민족국가입니다. 통합을 위해선 이데올로기가 필요하지요. 그래서 자기 나라 영토 안에서 일어났던 일은 다 중국역사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영토 중심주의를 내세우니 다른 나라와 갈등을 빚고 있죠. 우리뿐 아니라 몽골, 티베트와도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동북공정은 학문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목적이 개입돼 있죠. 동북공정을 하기 전엔 중국 교과서에서 고구려 역사가 세계사 편에 포함돼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빠져 있습니다. 그걸 중국사에 넣으려 하는데 우리가 반대해 못 넣고 있어요. 한반도 역사도 지금까지는 열전에 속했는데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어요. 만약 그렇게 되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가 생겨요. 심포지엄이나 외교 채널을 통해 그걸 막으려 노력하는데 중국은 계속 밀어붙이고 있어요.”
▼ 학문적인 논리만으로는 저지할 수 없나요?
“학문적으로는 우리한테 굉장히 유리하죠. 고구려사가 중국의 역사책에서 늘 열전에 포함돼 있었다는 게 자기네 역사가 아니라는 방증이거든요. 학문적으로만 얘기하면 자기네 논리가 약하죠. 그런데 중국이 정치적 논리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우리가 재단을 만든 겁니다.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이 독도 문제에 치중하고 있는데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는 논리를 좀 더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재야 사학계에서는 우리 고대사가 많이 축소돼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사관 탓이라는 거죠.
“저도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 고대사가 찬란하고 웅대하길 바라죠. 하지만 사실을 왜곡해선 안 되죠. 역사를 축소해서도 안 되지만 과장해서도 안 됩니다.”
▼ 고조선을 점령한 한4군이 요동에 있었다는 설은 근거가 없나요?
“고조선에 대해선 요동에 있었다는 설과 평양에 있었다는 설 두 가지가 있어요. 학계에서는 처음엔 요동에 있다가 나중에 한반도 안으로 이동했다는 설이 인정받고 있습니다.”
▼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는 실존인물인가요? 중국인이라는 설도 있는데….
“문헌에 있으니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런데 고대사는 사실 자료가 많지 않아 명백하게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미실은 가공의 인물”
제주도가 세계7대 자연경관에 포함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선정 단체인 뉴세븐원더스의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탓이다. 애국심을 악용한 민간기업의 상술에 놀아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판단이 궁금했다.
“제주도가 주관한 일로 중앙정부는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 일로 제주도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그 점에서는 홍보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실제로 선정되는 과정에 관광객이 늘었어요. 데이터가 있습니다.”
사학자인 최광식 장관은 조만간 ‘손진태 유고집’을 펴낼 계획을 갖고 있다.
“글쎄요.”
▼ 유네스코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선정을 거부한 국가도 있습니다. 우리만 난리 치고 좋아한 것 같아요.
“중앙정부가 개입한 나라도 많습니다. 우리는 지원만 했지만.”
▼ 장관께서 좀 더 알아보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
▼ 올해를 ‘스포츠 강국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원년’이라고 선언하셨는데요. 어떤 뜻인가요.
“우리가 올림픽을 처음 개최한 게 1988년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2018년에 있습니다. 30년 만입니다.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스포츠 강국의 면모를 보였다면 스포츠 선진국으로 가는 중요한 계기가 평창올림픽이라고 생각합니다. 동계올림픽은 주로 선진국에서 개최합니다. K-POP에 이어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간 메달을 중시한 엘리트 체육에 매달려왔습니다. 이제는 생활스포츠를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원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 인기종목과 비인기종목의 양극화가 심합니다.
“정부 예산과 스포츠토토 등을 통해 많이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공식 질문은 마치고 개인적 질문을 던졌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묻자 세종대왕을 꼽았다. 한글 창제 비화를 다룬 TV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재미있게 봤다고 한다. 그는 사학자답게 사극을 즐겨 본다. 웬만한 사극은 다 본다고 한다.
▼ 사극이 역사를 심하게 왜곡한다는 지적도 있지요?
“팩트와 픽션을 합했다고 팩션이라고 하지요. 역사 자체를 왜곡하는 건 문제가 있지요.”
▼ 예를 들면요?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이 ‘선덕여왕’이었어요. ‘미실’이라는 존재는 역사에 없어요. 정사(正史)에는. 1989년에 발견된 ‘화랑세기’에 근거한 것인데요. 사실 그 ‘화랑세기’는 신라 때 김대문의 작품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박창화가 쓴 거예요. 일반인은 그런 걸 잘 모르고 사실로 알죠.”
▼ ‘미실’이라는 소설이 꽤 팔렸죠.
“드라마 제목을 아예 ‘미실’로 했다면 나을 뻔했죠. 그런데 제목은 선덕여왕으로 해놓고 내용은 미실 중심으로 전개됐잖아요. 요즘 사극을 보면 내용도 문제지만 의상이나 머리 모양 등이 엉터리예요. 중국식이에요. 내가 문제제기를 했더니 중국에서 촬영해 그렇다는 거예요. 세트장도 중국 것이고. 그렇다 보니 중국식 풍습이 자주 나와요. 이게 아이러니한 거예요. 주몽과 대조영, 광개토대왕 얘기를 다루면서 세트장도 중국 것을 쓰고 복식도 헤어스타일도 중국식으로 하니. 이런 건 고쳐야지요.”
▼ 문화부 차원에서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시지요?
“기회 있을 때마다 제가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우리나라엔 그런 세트장이 없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사극이니 엑스트라도 많이 필요한데 중국은 인건비가 낮으니 거기 가서 촬영하는 겁니다.”
“남의 종교 존중해야”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다. 대학학보사 기자를 하던 1973년 월정사 취재를 갔다가 불교 수행법에 매료됐다. 신자와 똑같이 새벽 3시에 일어나 불공하고 공양하고 1080배도 했다.
“계를 받으려 했는데 지켜야 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밤에 주지스님을 찾아갔어요.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막 웃으시더라고요. ‘누가 이거 다 지키느냐. 노력하는 거지’라며. 술 먹지 말라는 계율도 있었는데 그건 못 지키겠더라고요.(웃음)”
▼ 이 정부가 기독교 편향이라고 해서 불교계의 반발이 컸지요. 초기부터 갈등이 심했는데….
“그런데 우리나라만큼 종교 갈등이 없는 나라도 없습니다. 시베리아에서 들어온 샤머니즘과 중국을 통해 들어온 불교, 유교,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지요.”
▼ 우리 민족을 종교적인 민족이라고 하잖아요.
“9·11테러의 배경도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거든요. 우리는 그런 게 없지요. 세계 역사에서 흔치 않은 일입니다.”
▼ 불교계가 이 정부에 항의한 것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가 보네요.
“일부 공직자가 지나치게 특정 종교를 내세운 건 물론 잘못된 거죠. 남의 종교를 존중해야죠.”
▼ 대통령이 목사들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 일은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요, 그게 하나의 종교적 행위라면….”
▼ 타 종교인에게는 거슬릴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볼 수 있겠죠.”
▼ 장관을 떠나 불교인으로서 어떻게 보세요?
“나도 절에 가면 당연히 무릎 꿇고 절합니다.”
▼ 그것과는 다르죠. 국가지도자가 특정 종교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한 건 부적절하지 않나요?
“글쎄, 뭐 거기에 대해선….”
그가 말을 아끼려고 고심하는 게 보였다.
▼ 서울시장 할 때도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해서 논란을 일으켰죠.
“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 오해요?
“내가 보기엔 우리 대통령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분이 아닙니다.”
▼ 아니, 장관이라고 편들지 마시고….
“지난번에 지관 스님 입적하셨을 때 제가 (대통령) 안내를 했습니다만 그런 분이 아닙니다. 초기에 약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뜻하지 않게 논쟁적인 얘기가 길어졌다. 이후로도 몇 차례 더 문답이 오갔다.
17년째 주말부부
그는 아내와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1995년 고려대 교수로 임명돼 서울로 올라온 이래 17년째다. 아내는 대구 계명대 교수다.
▼ 불편한 점이 많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그런데 주말에 보고 방학도 있으니….”
▼ 좋은 점도 많지요?
“늦게 들어가도 잔소리 안 들으니. 공직자이니 늦을 때가 많잖아요.”
▼ 꼭 공직자라서가 아니라 좋은 점이 있잖아요, 혼자 지내면?
“그런 얘기했다간 큰일 나.(웃음)”
▼ 솔직한 심정을 여쭤보는 겁니다.
“집사람도 교수니까 할 일이 있죠. 그러니까 주중에는 서로 자기 일에 간섭을 안 받는 거죠.”
▼ 요리를 잘하신다면서요?
“가장 잘하는 건 떡볶이입니다. 아침에는 빵 먹고요. 남들은 주말에 외식한다는데 우리는 내식합니다.”
▼ 누구나 이루지 못한 꿈이 있지요. 만약 교수를 안 했다면 어떤 일을?
“원래 기자 되려고 했어요. 그래서 학보사 기자도 한 거지요. 연극도 했어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세 가지 길 중에서 결국 공부를 택한 겁니다. 연극은 전문적으로 할 자신이 없었고 기자는 언론계에 있던 친척 형이 말리더라고요. 지금은 언론으로 올 때가 아니라면서. 그때가 1978년이었어요.”
▼ 지금 생각하면 잘된 거죠? 언론 쪽으로 안 간 게.
“글쎄요. 뭐라 답변해야겠어요?(웃음)”
▼ 기자 해 뭐합니까.
“교수직은 뭣보다도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고대사 전공이라 문화유적 답사도 많아 다니고 박물관 구경도 많이 했지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 미국, 중남미 등지의 웬만한 박물관은 다 가봤거든요. 그게 나한테는 큰 자산이에요. 그런 데를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다녔어요. 방학 때는 꼭 여행 다니고. 교수니까 가능했던 것 같아요.”
▼ 장관 마치면 학교로 돌아가시겠죠?
“돌아가야죠. 그동안 경험했던 걸 갖고 가르쳐야죠. 책도 좀 쓰고요. 구상은 다 됐어요. 조만간 하나 나올 겁니다.”
그가 신작으로 내놓을 책은 손진태 유고집이다. 손진태는 광복 후 문교부 차관을 지낸 민속학자이자 사학자다.
마지막으로 민심이 이명박 정부를 떠난 데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그는 끝까지 장관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말 하면 내가 장관이라 오해할 수도 있겠는데, 난 이명박 정부가 중요한 일을 많이 했다고 봐요. 가장 큰 게 4대강이고 그 다음이 한미 FTA예요.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연 것도 대단하고요. 일한 만큼 평가를 못 받는 데는 국정홍보처가 없는 것도 한 원인인 것 같아요. 국정홍보의 컨트롤 타워가 없어 정책성과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거죠.”
▼ 단순히 국정홍보처가 없어 그런 것 같진 않은데요.
“크게 보면 소통의 문제지요. 그런 기능을 하는 곳이 국정홍보처고요. 앞으로 우리 부처에서 그 일을 총괄할 것 같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홍보지원국을 확대해서 국정홍보처 기능을 되살린다는 계획이다. 그의 말에 굳이 토를 달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이명박 정부의 장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