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호

‘송곳질문’ 즐기는 한국의 래리 킹 뚜렷한 논문 표절 의혹엔 침묵

‘영향력 1위 언론인’ 손석희 JTBC 사장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4-03-17 14:4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세련미와 진보성향 조합, 고유의 상징자본 완성
    • 선배 언론인들 정계 진출 공백 메우며 스타로 부각
    • 美 석사논문 표절의혹, 오기(誤記)까지 베낀 정황
    ‘송곳질문’ 즐기는 한국의 래리 킹 뚜렷한 논문 표절 의혹엔 침묵
    언론인은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드물게 뉴스의 대상이 되는 언론인이 있다. 손석희 JTBC 사장(이하 직함 생략)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에게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 ‘대학생이 가장 닮고 싶은 인물 1위’ ‘시민단체와 전문가 그룹이 좋아하는 언론인 1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손석희는 1984년 MBC에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입사 직후부터 뉴스 프로를 진행하며 얼굴을 알렸다. 1987년에는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의 주말 진행을 맡았다. 동시에 라디오와 TV의 음악프로를 맡으며 대중에게 다가섰다. 그의 언론인 인생에 전기가 된 것은 1992년 MBC 파업 당시 20여 일간 구치소에 수감된 일일 것이다. 이때 수의를 입은 사진은 언론인 손석희의 이미지를 세상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 그는 여전히 주부 대상 아침방송을 진행했다. 지금의 손석희가 완성된 시기는 2000년대 이후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라디오에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2002년부터 2009년까지 텔레비전에서 ‘100분 토론’을 진행했다. 그는 탁월한 진행 능력을 발휘했다. 많은 시민이 이른 아침 출근길 자가용에서, 버스에서 시선집중을 들으며 손석희에게 익숙해져갔다. 이후 2013년 MBC를 떠나 종편인 JTBC 보도부문 총괄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해 9월부터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9’의 앵커를 맡았다.

    탁월한 진행 능력으로 어필

    30년 방송 이력이라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그를 다르게 기억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손석희의 변신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언론 환경의 변화와 연계된다. 그와 비슷한 시기 MBC에서 활동한 백지연 아나운서는 손석희와 흡사한 이력을 보인다.



    백지연에게도 ‘여대생들이 닮고 싶은 여성 1위’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백지연은 1987년 입사 후 5개월 만에 뉴스데스크의 여성앵커 자리에 올라 1996년까지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다. 여성앵커로서는 최장기 기록이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백지연이라는 이름을 전무후무한 여성 언론인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지금 두 사람은 비슷하게 MBC를 떠나 각각 종편과 케이블방송에서 활동한다.

    손석희와 백지연이 방송인으로 큰 영향력을 얻게 것은 그들이 몸담았던 직장 MBC에 힘입은 바가 크다. 같은 시기 활동한 MBC 기자들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정동영, 신경민, 박영선, 최문순 등은 약속이나 한 듯 제1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 국회의원, 도지사가 됐다. 왜 1980년대 MBC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언론계와 정치권에서 약진할까? 이들이 자신의 선배, 후배와 달랐던 것은 무엇일까? 시대적 상황을 배제하고 원인을 찾는 것엔 한계가 있다. 이들의 성장을 추동한 근원적 힘은 민주화 직후 MBC 내부의 역동성이다.

    1980년대 두 번에 걸쳐 방송가에 큰 변화가 몰아쳤다. 하나는 컬러텔레비전 시대의 개막이다. 전두환 정권은 서울이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후 언론검열과 문화개방을 동시에 추진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은 방송 인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흑백방송 시대에는 김동건, 차인태 같은 안정감 있는 아나운서들이 대표 얼굴 역할을 맡았지만 컬러텔레비전 시대가 시작되자 비주얼형 아나운서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MBC의 역동성

    MBC는 이들을 뉴스 프로그램에 전면 배치하면서 앞서나갔다. 손석희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나운서가 정리된 원고를 읽기만 한다는 생각은 편견”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습 딱지를 갓 뗀 백지연이 메인 뉴스 앵커를 맡은 데에 과연 비주얼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바버라 월터스를 자신의 모델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1980년대의 백지연은 한국의 바버라 월터스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손석희 역시 월터 크롱카이트 같은 앵커와 비교되기는 어렵다.

    미국에서 앵커라는 단어가 생긴 것은 그들의 역할이 아나운서와 뚜렷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뉴스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고 전체 진행을 조율한다. 편집권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해설과 논설, 촌철살인의 클로징 멘트(뉴스를 마무리하면서 하는 말)를 생산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이는 오랫동안 취재 현장을 누빈 경험에서 비롯된다. 언론인 손석희의 약점은 취재 경험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MBC에서도 ‘뉴스데스크’ 메인 앵커만큼은 현장 기자 출신이 양보하지 않았다. 손석희가 MBC의 뉴스, 시사 프로그램을 도맡을 수 있었던 것은 기자 출신들이 정계 등으로 진출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운 측면도 있다.

    1980년대 방송가에 밀어닥친 두 번째 변화는 민주화 열풍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방송계에도 민주화의 훈풍이 불었다. 손석희도 이때부터 현재의 이미지를 조금씩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 이전 젊은 시절의 그는 사회비판적 언론인과 거리가 멀었다. 그가 입사한 1984년 무렵 의식 있는 젊은이에게 안기부만큼이나 기피 대상이 MBC였다. 그는 그곳에서 꽤 오랫동안 체제 순응적 언론인으로 살았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제를 상징하는 것이 ‘땡전뉴스’다. 대통령 근황부터 전하는 어용 보도를 비꼬는 말이다. 손석희는 입사 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땡전뉴스를 전달해야 했다.

    언론의 하이에나 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로 나폴레옹의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프랑스 신문은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탈출했을 때 괴수로, 파리에 근접했을 때 보나파르트로, 파리에 입성할 때 황제 폐하로 칭했다. 우리 언론계에선 5공화국 시절 전두환을 ‘각하’로 부르다 민주화 이후 ‘전씨’로 부르는 언론인이 큰 존경을 받는다. 정동영은 전두환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한 후 소위 ‘전비어천가’를 읊조리던 기자 시절의 영상이 2007년 대선 때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물론 이들 MBC의 스타 언론인은 1987년 이후 언론 자유를 위해 노력했다. 이를 폄하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일관성 없는 인물 평가다. 적어도 1980년대만 놓고 본다면 권력비판에 가장 적극적인 언론인은 손석희나 정동영이 아니라 조갑제였다. 1987년 언론 검열의 와중에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 보도해 민주화의 불씨를 댕긴 건 MBC가 아니라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였다. 어떤 대상을 총체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부분만을 침소봉대해 낙인찍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다.

    손석희가 젊은 세대에 인기 있는 이유를 단지 능력이나 도덕성에서만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안철수 현상에서 보듯이 대중은 능력, 도덕성 외에 상징자본까지 갖춘 인물을 동경한다. 손석희는 세련미와 진보성향을 적절히 조합함으로써 자신의 상징자본을 완성했다.

    상징자본과 노조

    1988년 MBC에서 노조가 결성되면서 방송의 성격도 급변한다. 1990년 MBC의 대표적 시사 프로그램인 ‘PD수첩’이 전파를 탔다. 수의(囚衣)를 입은 손석희 사진은 이 시기 MBC 노조의 희생과 투쟁의 상징처럼 인용됐다. 하지만 손석희는 정작 자신이 가장 큰 수혜자라고 인정한다. 그의 희생이 유달리 커서 대중의 기억에 남은 것이 아니라 인지도 높은 아나운서였기 때문에 더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2006년 손석희가 MBC를 퇴사하고 성신여대 교수로 적을 옮길 때 MBC는 그에게 기존 프로그램을 그대로 맡겼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프리랜서로 전향한 같은 방송사 김성주 아나운서는 상당 기간 MBC에 출연하지 못했다. 노사 대립이 심한 MBC에서 손석희가 양쪽으로부터 견제받지 않고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상품성과 더불어 노조와의 매끄러운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손석희를 좋아하지만 일부는 손석희가 특정 세력에 편향된 방송을 한다고 비판한다. 그가 ‘100분 토론’ 같은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기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기와 겹친다.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그의 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은 보수진영 패널들이 ‘떡실신’했다는 평가로 도배되곤 했다.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한쪽에 유리하게 패널을 선정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선거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급기야 2007년 치러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역대 최대 표차로 패배했다. 이는 ‘100분 토론’의 시청자 반응이 객관적 민심을 반영하기보다는 다음의 아고라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송곳질문’ 즐기는 한국의 래리 킹 뚜렷한 논문 표절 의혹엔 침묵
    당시 ‘100분 토론’은 시청자 의견을 조작해 비난을 샀다. 2009년 1월 제작진은 ‘용산참사 무엇이 문제인가?’ 편에서 “더 얻기 위해 농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거라도 얻어야 하는 절박함이다”라는 의견을 소개했지만 시청자 게시판엔 원문이 없었다. 또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 참여와 남북관계’ 편에서 “대량살상무기 차단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경색만 초래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PSI 전면참여로 만약 국지전이 불거진다면 누가 책임지겠는가?”라는 의견을 소개했지만 원문은 “우리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평화이다. 평화로운 생활 터전이다. PSI 전면적 참여는 그런 국민의 바람과는 거리가 있다”였다.

    이에 대해 일부는 “제작진이 고의로 없는 의견을 창작하거나 온건한 문장을 선동적 문장으로 조작한다”고 주장했다. 손석희는 2009년 시청자 의견 전달 과정에 왜곡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그는 그해 9월 ‘100분 토론’에서 하차했다.

    그는 ‘시선집중’에서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질문의 집요함을 놓고 보면 CNN의 ‘래리 킹 쇼’를 진행한 래리 킹을 연상시킨다. 언론인으로서 그런 태도는 미덕에 가깝다. 그러나 그의 질문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구설에 오른 사람은 주로 보수성향 인사들 이었다. 2004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그의 질문에 “저하고 싸움하시는 거예요?”라고 되물은 것이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와 비교되는 인물이 신동호 아나운서다. 신동호는 손석희가 진행하던 두 개의 프로그램을 모두 물려받았다. 2012년 통합진보당의 진로를 주제로 한 ‘100분 토론’에서 한 여성 방청객이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북한 인권, 북핵, 3대 세습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이상규 의원은 답을 회피해 종북 논란이 일었다. 이전까지 ‘100분 토론’에서 진보 진영이 수세에 몰린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2월엔 ‘시선집중’에서 김재연 통진당 의원과 통화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신동호가 “이석기 의원이 사용한 ‘좌경맹동주의’가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단어가 아니냐”고 묻자 김재연은 “사회자의 추측일 뿐이며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의 장성택 처형에 관한 의견을 묻자 “오늘 논제와 관련 없는 질문”이라고 답을 피했다. 이후 ‘통진당은 북한에 대한 의견만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는 비판이 일었다. 두 번에 걸친 통진당과의 악연 때문인지 일부에서는 신동호의 편파성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반대로 손석희의 진행엔 편파성이 없었을까? 통진당 계열의 종북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진행자 교체가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다.

    표절 의혹 검증해보니

    인터넷에서 수의 차림의 손석희 사진만큼이나 유명한 것이 ‘지각인생’이라는 글이다. 그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 유학한 시절에 대해 쓴 수기다. 40대의 나이에 젊은 미국학생들과 경쟁하느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 고백은 특히 수험생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의 미네소타 대학 석사학위 논문이 표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뚜렷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는 2013년 9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 중 표절 논란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굳이 대응할 가치를 못 느낀다. 내가 하나하나 나서서 대응해주는 것 자체가 그 사람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될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웃음) 논문 표절 의혹은 대학 측에 좀 미안하긴 했다. 의혹을 제기한 이들이 대학 사람들을 참 많이 괴롭히더라.”

    지금 손석희에게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보수논객 변희재다. 그렇다면 변희재는 의혹을 제기할 만한 사안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턱도 아닌 것을 갖고 무리한 주장을 펴는 것일까. 손석희 논문에 대해 표절 의혹이 제기된 단락 중 두 단락을 표집해 의혹 제기의 정당성을 직접 검증해봤다.

    손석희의 2000년 미네소타대 석사학위 논문 15페이지를 구해서 보니 아래와 같은 두 줄짜리 문장이 들어 있다.

    Olson(1965) argues that people act collectively only when there are ‘selective incentives’ for them to do so:

    손석희 논문의 위 문장은 파이어맨&갬슨(Fireman&Gamson)이 1977년 발표한 논문 5페이지의 아래 문장과 똑같다. 17개 단어가 한자도 틀리지 않는다. 단지 ‘selective’라는 단어에 붙은 문장부호, 연도 숫자(1965)의 위치, 맨 마지막 문장부호만 다를 뿐이다.

    Olson argues that people act collectively only when there are “selective incentives” for them to do so (1965).

    손석희 논문의 위 문장은 파이어맨&갬슨 논문의 위 문장을 그대로 베껴 쓴 것으로 보이는데 파이어맨&갬슨 논문을 인용했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

    손석희 논문 15~16페이지엔 위 문장에 바로 이어서 아래와 같은 다섯 줄짜리 문장이 있다. 위 문장에서 언급한 올슨(Olson)의 1965년 저술 151페이지 내용을 발췌해 소개하는 취지로 되어 있다.



    Only a separate and ‘selective’ incentive will stimulate a rational individual in a (large) group to act in a group-oriented way… group action can be obtained only through an incentive that operates, not indiscriminately, like the collective good, upon the group as a whole, but rather selectively toward the individuals in the group. (p151)

    오기와 생략 부분까지 베낀 듯

    손석희 논문의 위 문장들 역시 파이어맨&갬슨 논문이 올슨 저술 내용을 발췌해 쓴 아래 문장과 똑같았다. ‘selective’ 단어의 문장부호가 다르고 발췌한 페이지 표기가 ‘(p151)’과 ‘(p. 151)’로 약간 다른 것을 빼면 두 논문의 해당 단락이 동일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문장들 중간에 일부 내용을 생략한 부분(…)까지 똑같다.

    Only a separate and “selective” incentive will stimulate a rational individual in a (large) group to act in a group-oriented way… group action can be obtained only through an incentive that operates, not indiscriminately, like the collective good, upon the group as a whole, but rather selectively toward the individuals in the group (p. 151).

    ‘송곳질문’ 즐기는 한국의 래리 킹 뚜렷한 논문 표절 의혹엔 침묵


    우연의 일치로, 손석희 논문과 파이어맨&갬슨 논문이 올슨 저술의 같은 단락을 발췌해 인용했을 수 있다. 그런데 올슨 저술의 원문에 따르면 해당 내용은 올슨 저술의 51페이지에 수록돼 있다. 손석희 논문 및 파이어맨&갬슨 논문은 동일하게 51페이지를 151페이지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파이어맨&갬슨 논문이 1977년 올슨 저술의 해당 내용을 자기 논문에 발췌해 소개하면서 51페이지를 151페이지로 오기(誤記)했는데, 손석희 논문이 2000년 파이어맨&갬슨 논문의 해당 부분을 베끼면서 오기된 페이지 숫자까지 그대로 베낀 것으로 의심된다.

    파이어맨&갬슨 논문은 올슨 저술의 해당 내용에서 ‘In such circustances’라는 부분을 생략하면서 ‘…’으로 처리했는데 손석희 논문도 똑같이 해당 세 단어를 생략하고 ‘…’으로 처리했다. 이 대목도 손석희 논문이 파이어맨&갬슨 논문을 베꼈다는 증거로 의심된다.

    페이지 오기와 단어 세 개 생략까지 똑같다는 건 우연일 수 없으며 표절 내지 재인용 표절 외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의혹의 얼개다. 재인용 표절은 A논문에 수록된 B논문 내용을 따오면서 A논문에서 인용한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마치 독자적으로 B논문을 읽고 인용한 것처럼 속이는 표절 행위다.

    남에겐 송곳질문 던지면서…

    이러한 검증 결과에 따르면 손석희 논문의 표절 의혹이 갖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여러 고위공직자와 유명인사는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될 때 이에 대해 설명했고 그 수위에 따른 책임을 졌다. 보통 언론인도 아니고 공인 중 공인으로서 사회로부터 유무형의 많은 혜택을 입은 손석희는 자신의 도덕성에 관한 이러한 현저한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해야 한다.

    더욱이 그는 인터뷰어로서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인터뷰이의 처지가 되자 휠체어에 앉아 마스크를 쓴 채 언론을 대하는 재벌회장 방식을 택하는 것으로 비친다. 현재의 논문 검증 국면은 새누리당 문대성 의원의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손석희도 이를 ‘시선집중’에서 다룬 바 있다.

    이것은 미국 대학들이 처한 상황과도 관련이 있는지 모른다. 한국인들은 막연히 미국 대학이 우리보다 여러모로 월등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대학들이 처한 상황은 세계적으로 비슷하다.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든 후 미국 대학들은 펀드와 토지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거기에 교수들의 종신 재직권과 노조에 대한 과잉 복지로 지출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2008년 금융위기 후 재정적 타격을 입자 그 부담은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돼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미국 대학들이 영어에 익숙지 못한 해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위 장사를 일삼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중국, 인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학생을 미국에 보내는 나라다. 미국 대학이 논문심사를 설렁설렁하는지도 모른다.

    표절 의혹 제기 이후 몇몇 인사의 활동은 부쩍 약화된 느낌이다. 그러나 손석희는 다르다. 자신의 의혹엔 무시 전략으로 침묵하면서 자신이 진행하는 뉴스 프로그램에선 남에게 송곳질문을 던지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표절 의혹을 정리하고 가는 게 좋겠다는 아쉬움은 점점 커질 것이다.

    ‘손석희의 JTBC’

    지난해 봄 손석희의 JTBC 이적 선언은 많은 이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중앙일보 계열의 종편방송인 JTBC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소유의 종편과 함께 묶여왔다. 누가 보아도 손석희와 JTBC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평론가 허지웅은 손석희의 선택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가 삼성을 비판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올해 2월 손석희는 ‘뉴스9’에서 삼성전자 노동자의 백혈병 사망 실화사건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관 축소 논란 속에서도 조용히 흥행한다고 전했다. 손석희가 진행하는 JTBC 뉴스에 대해 진보와 보수는 다른 평가를 내린다. 진보는 손석희를 옹호하는 양상이다. 반면 보수는 JTBC 뉴스가 한겨레처럼 돼간다고 본다. 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9’은 정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청구 사건과 관련해 통진당 측에 편향적으로 보도했다는 논란 속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종편 4사 가운데 모기업 신문사와 방송사 간 가장 대조적 논조를 보이는 곳이 중앙일보와 JTBC라는 데엔 거의 이견이 없다. 이제 JTBC는 그야말로 ‘손석희의 JTBC’라고 불러야 한다.

    아직 현장을 지키는 손석희에게는 갈 길이 좀 더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앞으로 언론인으로 어떠한 길을 걷고 어떠한 평가를 얻을지 주목된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