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특집 | #MeToo, 세상을 바꾸다 |

“여성이 먼저 시작한 모두를 위한 운동”

송화선의 이 사람 | 이윤택·김기덕 성폭력 사건 피해자 변호인 이명숙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

  •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8-03-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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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가니, 나영이, 울산·칠곡 사건 담당 변호사

    • 이윤택 성폭력 피해자들, ‘선생님’ 고발하며 눈물

    • “고발해봤자 안 된다”는 조언, 피해자 상처 키우는 일

    • 판례 문제 있으면 바꾸고, 법 필요하면 만들어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1월 26일,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 게시판에 상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내 #MeToo(미투) 운동이 3월 16일로 50일을 맞는다. 그사이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고은 시인의 시가 교과서에서 퇴출됐으며, 사진작가 배병우가 창작스튜디오를 폐쇄하는 등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평가받던 연극연출가 이윤택, 영화감독 김기덕 등이 작업 현장에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은 피해자의 고발로 현재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 두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이명숙(55) 변호사(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대표)를 만났다. 이 변호사는 그동안 ‘도가니 사건’(장애인학대) ‘울산·칠곡 사건’(아동학대) ‘나영이 사건’(아동성폭력) 등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여러 인권침해 사건 변호를 맡아 피해자 보호와 피해 구제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는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피해 학생 및 가족에 대한 법률 지원 활동을 벌였다. 그가 이번에는 미투 사건 ‘해결사’로 나선 것이다.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변호사를 만난 건 3월 8일 여성의 날,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형량 높여야

    이윤택 연출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가 처음 나온 게 2월 14일인데, 같은 달 28일 피해자 16명이 공동으로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 사건이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 느낌이다. 

    “피해자들이 고소를 결정한 뒤 변호사 3명이 달라붙어 오전 10시부터 밤늦게까지 진술을 받고 고소장을 썼다. 앞서 말했듯 연극계가 좁다. 이 사건 피해자들은 쉽게 특정된다. 그렇다 보니 실명으로 피해를 폭로한 피해자뿐 아니라 익명으로 법적 대응을 준비한 이들도 곳곳에서 그러지 말라는 회유, 압박을 받곤 했다.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온 선후배 동료들이 술 마시고 울면서 전화해 ‘너 왜 그러냐, (이윤택) 선생님한테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않냐’ 하는 식으로 말하니, 그걸 견디는 게 얼마나 힘들겠나. 처음엔 17명이 고소하기로 뜻을 모았다가 마지막 순간 1명이 포기했다. 피해자들이 더 힘든 상황에 노출되지 않게 하려면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해야 한다고 봤다.” 

    주변의 압력이 계속되니 피해자들이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사실 이 사건도 언론에 보도된 건 빙산의 일각이다. 알고 보니 그 극단 안에서는 성폭력뿐 아니라 물리적 폭력도 적잖게 벌어졌다. 폭행당한 남자 피해자가 부지기수다. 그런데 이들이 오랫동안 이윤택과 일종의 사제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니까 스톡홀름증후군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아픔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가해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인다. 진술을 하면서 우는데 그 눈물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동안 겪은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데서 나오는 눈물, 다른 하나는 자신이 지금 이렇게 진술하는 게 ‘선생님’을 배신하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 이들이 당한 피해 내용을 듣고 있으면 변호사들이 가슴이 아플 정도인데도, 그들은 가해자에 대해 꼬박꼬박 존칭을 썼다. 피해자들의 그런 상황을 악용해 말 그대로 제왕적 권력을 누린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최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으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윤택 사건, 안희정 사건 같은 것이 전형적인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다. 우리 형법 제303조는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때 위계(僞計)는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불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위계(位階)’와 다른 개념이다. 최근 사건에서 문제를 삼아야 하는 것은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위력이다. 우리 대법원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 위력의 정도는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는 것으로 그것이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는다’고 한다. 즉 상대방이 위력을 가진 상황에서는 굳이 폭행 협박을 하지 않더라도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 일이 현실에서 적잖게 벌어졌음이 최근 미투 운동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형량을 ‘징역 10년 이하, 벌금 5000만 원 이하’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상대의 반항을 억압하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죄질이 매우 나쁘다. 잘한 결정이다. 이외에도 이번 미투 운동을 계기로 관련 법률 전반을 검토해봐야 한다. 최근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강간죄 인정 범위와 공소시효 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법원은 이때의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가 ‘상대방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른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세계적 추세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성관계라면 폭행 협박이 없어도 강간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도 강제추행죄의 경우에는 이런 태도를 따라서, 예를 들어 버스나 노래방에서 벌어진 강제적 신체 접촉에 대해서는 폭행 협박이 없어도 강제추행으로 본다.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 또한 법조문에는 ‘폭행 또는 협박’이 요건으로 제시돼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 이를 엄격히 요구하지 않는 셈이다. 왜 강간에 대해서만 엄격한 기준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또 성폭력 피해자는 사건 후 30년이 지나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때에 비로소 가해자를 고소할 용기를 내기도 한다. 성폭력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

    “법은 국민 의지의 결과물”

    미투 운동을 통해 법이나 판례에도 변화가 생겨날까. 

    “이 사건이 세상만 떠들썩하게 만들고 일회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시스템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법이나 판례를 고정불변한 것으로 여기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법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낀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윤택 사건의 경우 1980년대에 피해를 당한 이도 있다. 일부에서는 성범죄 친고죄가 2013년에 폐지됐고,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오래전 피해에 대해서는 구제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면, 국회를 움직여 관련법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우리 국회는 소급효를 인정하는 특별법을 몇 차례 입법한 적이 있고 헌법재판소도 ‘소급효를 갖는 법률도 헌법상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결정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적 처벌을 받기도 했다. 일부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피해자를 좌절시키고 법적 대응을 지레 포기하게 만들 수 있으니, 지금은 ‘잘못한 사람은 언제라도 법적 처벌을 받게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우리가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또 필요한 부분에 대해 말해달라. 

    “앞서 말했듯,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는 사회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돌아보면 과거엔 가정폭력을 범죄가 아니라고 보던 시절이 있었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뭐, 집안일인데’ 하면서 출동을 안 했다. 지금은 그러면 큰일 난다. 아동학대도 그렇다. ‘내 아이 때리는 게 뭐가 문제냐’고 했지만 몇몇 아이의 희생 속에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고, 최근에는 법원이 가정 내 아이 사망 사건에 살인죄를 적용하기도 했다. 이른바 ‘울산 사건’인데, 그 사건을 내가 담당했다. 당시만 해도 부모의 ‘훈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과 달라서 후배 변호사들은 ‘부모에게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며 상해치사로 변론하자고 했다. 그러나 내가 ‘이건 명백한 살인이다. 살인죄 판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판례가 바뀌었다. 최근의 미투 운동으로 우리 사회 성폭력, 그중에서도 특히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바뀔 것이다. 이런 인식을 통해 여성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좀 더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되리라고 믿는다.” 

    이 변호사는 스스로에 대해 “여성, 아동 관련 사건을 많이 맡아왔지만 그들의 인권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다. 

    “저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우리 사회에 사는 사람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인격적으로 대우받기를, 결코 부당한 인권침해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변호사입니다. 이 목표를 이루고자 그동안 열심히 일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겁니다.” 

    이 변호사의 얘기다. 그는 두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미 밤 10시가 넘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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