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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박범계… ‘强骨판사’의 산실

참여정부 사법개혁, 우리법연구회를 주목하라!

강금실·박범계… ‘强骨판사’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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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법연구회’란 단체가 있다. 진보적 성향의 현직 판사 모임이다.
  • 참여정부에서 강금실 법무부장관 등 개혁적 법조인들이 대거 요직에 발탁된 데는 민변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법연구회는 그와 별개로 재조(在曹) 개혁인사들의 오랜 버팀목 노릇을 해왔다. 창립 이후 15년간 베일에 가려있던 이 단체를 전격 해부했다.
강금실·박범계… ‘强骨판사’의 산실

1998년 11월 서울대 호암관에서 열린 우리법연구회 창립 10주년 기념 세미나

법관사회는 직역(職域)의 특성상 개인의사의 적극적 표명을 꺼리는 게 통례다. 곧잘 인용되는,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경구(警句)는 오직 법률과 양심에 따라야 하는 그들의 직업적 소명을 웅변함과 동시에 법원조직의 강한 보수성을 반영한다.

이런 사법부 내에서 일절 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채 15년간 존속해온 자생적 모임이 있다.

‘우리법연구회.’ 지극히 생소한 명칭의 이 모임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현직 판사들이 상당수 소속해 있다는 점, 강금실(46) 법무부장관과 박범계(40) 청와대 민정2비서관이 회원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다. 게다가 4월7일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특별검사보로 임명된 김종훈(46) 변호사 역시 이 모임의 창립회원이다. 그는 특히 참여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사추천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어 우리법연구회의 정체성(identity)에 의구심을 한층 더하게 한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선 우리법연구회가 ‘법조계의 하나회’쯤 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오랫동안 ‘보안유지’에 성공해온 우리법연구회는 어떤 배경에서 태동했을까. 또 ‘장수(長壽)’의 동력(動力)은 무엇인가. 현직 판사들조차 모르는 이가 태반인 우리법연구회의 실체가 언론에 공개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순수 법이론 학회로 창립



1988년 6월10일 밤 9시 서울 서교호텔 뒤편의 맥주집 ‘블랙홀스’. 4명의 소장판사가 모였다.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실무수습을 받고 있던 시보 한 명도 동석했다. 이들은 6·29선언 직후 불어닥친 민주화 열기에도 아랑곳없이 아무런 자기반성도 보이지 않는 사법부 수뇌부의 개편을 주장하는 성명을 내기로 이날 뜻을 모았다.

같은달 15일 서울·수원·부산·인천지역 소장판사 430여 명은 대법원장 선임문제와 관련, ‘법원 독립과 사법부 민주화’를 요구하는 서명에 참여했다. 6공정권이 유임시키려던 김용철 대법원장을 퇴진시키고 그 후임으로 이일규 대법원장을 취임케 한, 이른바 ‘2차 사법파동’은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맥주집 모임’을 가진 이들은 김종훈(인천지법), 유남석 이광범 한기택(이상 서울민사지법) 판사(괄호 안은 당시 근무지)와 사법연수원(18기) 2년차인 심규철 시보(현 한나라당 의원)로, 하나같이 29∼30세의 혈기방장한 나이였다.

이즈음 이들과 다른 한편으로 법학도서 읽기 모임을 갖고 있던 강금실 판사 등 4명의 소장판사는 수차례의 독서모임을 연 뒤 모임을 전문화하고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2차 사법파동을 주도한 판사들 중 3명과 변호사 3명이 합류해 1988년 10월9일 첫 법이론 세미나를 갖는다. 세미나라곤 하지만, 모임장소가 마땅찮아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법학 논문을 읽고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1년 뒤 이 모임은 ‘우리법연구회’란 정식 명칭을 단 학회로 출범한다. 창립회원은 당시 판사로 있던 김종훈, 강금실, 강신섭(46·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오진환(44·사시21회·현 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 유남석(46·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박윤창(50·현 서울지법 부장판사), 이광범(44·현 서울지법 부장판사 겸 법원행정처 건설국장) 등 판사 7명과 사법연수원 수료 후 바로 개업한 박종술(48·사시27회·현 법무법인 북부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이태화(47·사시24회·변호사), 이양원(44·사시24회·현 법무법인 부천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등 3명의 변호사다. 공교롭게도 우리법연구회는 인권변호사들을 주축으로 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의 창립(1988년 5월28일)과 비슷한 시기에 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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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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