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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일(전 주미 무관) 로버트김 사건 전모 밝히다

한국 해군 무관과 美 FBI의 숨막히는 첩보전

백동일(전 주미 무관) 로버트김 사건 전모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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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일(전 주미 무관) 로버트김 사건 전모 밝히다

전 주미 해군무관 백동일씨가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로버트김 석방을 요청한 탄원서

미국은 한국 정부가 로버트김을 돕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비정부기구(NGO)들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 한 로버트김은 경제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 조국을 향한 자신의 충정이 순수했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한다.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출소 후 한시라도 빨리 한국에 와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는 청소년 수련원을 운영했으면 하는 것이다.

로버트김의 소망이 이러한 만큼 백씨가 바라는 필생의 소원도 ‘로버트김 선생’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이 모아져 있다. 백씨는 그 첫 번째 노력으로 오는 5월13일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회담 어젠더와는 별개로 로버트김 조기 석방과 보호감찰형 면제를 간곡히 요청해 관철시킬 것을 소망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로버트김을 애국자 반열에 올려줄 것’을 바라고 있다. 세 번째로 자신이 벌인 대미(對美) 첩보수집 활동을 실패한 사례로 삼아 철저히 분석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성공한 사례만 자랑하는 군대는 절대 강군이 될 수 없다. 실패한 사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축적될 때 우리는 비로소 실력 있는 군대를 가진 제대로 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씨는 자신을 실패한 첩보원으로 규정했지만 사실 그는 최고의 첩보원이었다. 정보병과 출신 장교로 해외 군사첩보를 수집하는 무관이 된 흔치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첩보 그 자체를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차 북핵위기 이후 한미 관계가 예민하던 시기에 주미 해군무관이 되었다. 미국 FBI와 NSC(미군 보안사령부) 등 외사방첩기관들은 온갖 군데를 쏘다니며 첩보를 수집하는 백씨를 ‘inquisitive officer(꼬치꼬치 캐묻고 다니는 장교)’라 부르며 경계했다고 한다.



백씨는 “실패한 사례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김선생의 구명에 도움이 된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며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백씨가 풀어놓은 로버트김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수기 형태로 정리한다.

[제1부] 해군 정보장교의 길

나는 1948년 경남 거제시(거제도) 거제면의 한 농가에서 3남2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 부모님은 딸 하나를 낳았으나 두 살 때 병사하고 말았다. 그후 부모님은 아이를 갖기 위해 갖은 애를 썼으나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부모님이 나서서 고향 마을에 절을 세우고 불공을 드리는 등 치성을 다한 끝에 비로소 아이가 잉태되었다. 8년 만이었다.

어렵게 얻은 자식이기에 부모님의 교육열은 대단했다. 거제도에서 중학교를 마친 나는 ‘대처’인 부산으로 건너가 경남공고에 입학했다. 경남공고를 졸업하는 해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해양대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했으나 보기 좋게 낙방했다. 실업계 출신이다 보니 영어·수학에 약한 것이 낙방의 원인인 듯했다. 할 수 없이 부산 동래에 있는 금성사 입사 시험을 쳤는데 1등으로 합격했다.

금성사를 1주일쯤 다녀보자 ‘이것은 내가 갈 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회사 생활을 그만둔 나는 영어·수학을 더 공부해 대학에 가볼 요량으로 국민학생과 중학생 자녀 셋을 둔 집의 가정교사로 입주했다. 내가 자력으로 대학에 가보겠다는 꿈을 키워나가자 하루하루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버지께서 고민에 빠졌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네가 대학에 가겠다면 반드시 서울대학엘 가라. 서울대학에만 간다면 내가 똥 묻은 중의(中衣·속옷이라는 뜻)를 팔아서라도 학비를 대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서울대학에 갈 사정이 못되었으므로 다른 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해 여름 고향에 간 나는 국민학교 동창으로 통영고를 나온 곽영명(郭榮明)의 집에 들렀다가 마침 그의 집에 와 있던 해사 2년 생도 김혁수(金赫洙, 예비역 해군 준장, 초대 해군 잠수함 전단장)를 만나게 되었다. 김생도와의 대화에서 나는 학비 없이 대학 공부를 하고 장교로 임관까지 시켜주는 해군사관학교에 매료되었다.

1968년 가을 치러진 해사 27기 입학시험에 합격함으로써 나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길로 한 발짝 전진했다. 나는 해사 생활을 매우 즐겼다. 수영과 기계체조·축구·배구 등 모든 운동을 열성적으로 하였고 학과 중에서는 영어에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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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백동일 (예)해군대령, 전 주미 해군무관 정리: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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