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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식 ‘감성정치’ vs 외국의 포퓰리즘 비교분석

국민과의 직거래, 월권과 독주 부른다

노무현식 ‘감성정치’ vs 외국의 포퓰리즘 비교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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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신임 선언을 통해 국가수장이 의회의 동의와는 무관하게 국민과 직접 상대해 정책정당성을 확보하는 ‘위임민주주의’를 선택한 노무현 정부. 그러나 중남미 국가들의 경험은, 이러한 ‘국민투표형 정치’가 포퓰리즘을 불러일으켜 나라를 파산시킬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다.
  • ‘재신임 정국’의 문제점과 근원적 해법은 무엇인가.
노무현식 ‘감성정치’ vs 외국의 포퓰리즘 비교분석

중남미 국가들의 ‘포퓰리즘 정치’는 심각한 내정불안을 야기했다. 지난 1월 차베스 대통령 지지시위를 벌이고 있는 베네수엘라 시위대.

온나라가 뒤숭숭하다. 금년 12월 중순에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묻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선언으로 국론분열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경기침체, 북핵 위기, 핵폐기물, 정쟁 심화, 무역협정, 이라크 파병, 가계부채 등 해결해야 할 국가적 난제가 수두룩한데 대통령이 급작스레 재신임을 통해 진퇴를 결정하겠다고 하니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노대통령이 재신임 결심의 배경을 ‘측근비리 의혹에 따른 국민불신’에서 ‘국회와 언론의 비협조에 따른 국정혼란’으로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일 년도 안 된 시점에서 대통령이 물러날 의향을 밝혔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노대통령으로서는 수세에 몰린 정국돌파를 위한 전략적 선택일 수 있으나, 이러한 초(超)헌법적 작위를 후세의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하다. ‘고뇌의 결단’인가 아니면 ‘간지(奸智)의 충동’인가. 포퓰리즘이 횡행하는 중남미 국가들에서조차 찾기 어려운 이 사태의 의미를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언론매체의 긴급여론조사 결과는 다행히 대통령을 재신임하겠다는 뜻으로 모아지고 있다. 노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을 감안하면, 현실불안을 느낀 국민의 안정희구성향이 강하게 나타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야당 지지자마저 국정혼란을 우려해 재신임 쪽으로 기우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민압박 -혹은 협박(?)-이라는 노대통령의 전략적 선택은 일단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국민투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을 낙마시키려는 세력과 중심을 다시 세우려는 세력 사이의 보이지 않는 다툼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

이제 지루하고 치사한 공방과 쟁투의 재신임 정국이 시작되었다. 내년 제17대 4·15 총선을 계기로 정치권 개편을 주도하기 위해 여러 정파 사이에 총력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특히 대통령 재신임 결과에 따라 권력구조를 포함하는 일대 정치구도의 변화를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신임 국민투표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줄지는 미지수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올인’ 정치는 정상적인 통치행위가 아니다. 법치주의보다는 대통령의 권한에 의지하는 ‘반칙과 월권’이다. 일종의 포퓰리스트적 실험이라 볼 수 있는 재신임 방안은, 직거래를 통한 국민동원과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권한위임의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로부터의 일탈이다.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민주주의에 위협을 줄 수도 있다.



나폴레옹, 드골, 차베스, 천수이볜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간파한 대로 민주주의는 불안정한 제도다. 다수가 선택하는 소수의 대표성이 책임성과 결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직접선거에 의해 지도자를 부단히 바꾸는 이유도 책임성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중시하는 데 있다. 대표성은 민주주의를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국민투표적 성향을 지닌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정규적인 선거도 국민투표 방식으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둘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투표가 대중동원과 결합될 경우 ‘선출독재(elected dictatorship)’의 묘상(苗床)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 민주주의는 직접형에서 간접형, 대의민주주의를 통한 견제와 균형으로 진화되어왔다.

현대 정치에서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조화는 지난한 문제다. 한쪽만 강조하다 보면 민주주의의 실속을 잃어버리거나 포퓰리즘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 해답이 바로 대통령제 하에서 독자적으로 선출되는 입법부와 자의적으로 구성되는 행정부 사이의 권력분립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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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현진 서울대 교수·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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