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총리는 골프를 치지 않는다. 전남지사 시절 입문했다가, 한 차례 쓰라린 경험을 한 후 그만뒀다.
“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골프장에 가던 길이 몹시 막혔어요. 비서관을 시켜 알아봤더니 농민들이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퍼내느라 그렇다는 겁니다. 그때가 한창 가뭄이 심했던 때였어요. 망치로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곧바로 약속을 취소하고 관사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로 골프는 잊었어요.”
이런 이야기들은 행정가 고건에겐 경쟁력이다. 민생 현장을 챙기고, 국민의 시각에서 적절치 않은 상황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바꿔놓을 수 있는 의지와 감각이 살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고총리가 단순 행정직을 넘어선 대국민 행정 정치활동을 하는 데도 더할 나위없는 경쟁력이다.
두 번째 가훈인 남의 돈 받지 말라는 덕목은 고총리가 신조로 삼고 있는 지자이렴(知者利廉), 즉 지혜로운 자는 돈을 멀리하는 것이 결국엔 자신에게 이롭다는 것을 잘 안다는 경구에 녹아있다. 그는 야당 정치인의 아들로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첫 발령지에서 한동안 무보직 사무관 생활을 해야 했는데, 야당 정치인의 아들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 고총리의 회고다. 그때 돈 안 받고 청렴을 유지하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임명직 서울시장 시절인 1980년대말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서울시 소속 사무관 이상 공무원 4000명을 상대로 훈시를 한 적이 있다. 여기서 일반직 공무원이 박봉에도 열심히 일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목민심서 율기(律紀)편에서 ‘지자이렴’이란 말을 찾아냈고, 창창한 장래를 돈과 바꾸지 말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누구누구의 사람이 되지 말라는 세 번째 가훈은 고총리를 ‘주위 사람에게 완벽하게 배려하지만, 작은 정은 부족하다’고 평가받도록 한 원인이 됐다.
2001년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라는 책을 펴내면서 주목을 받았던 정두언(鄭斗彦)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글에 고총리를 평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잠깐 옮겨본다.
“직업 관료답게 매사가 조심스럽고, 꼼꼼하며, 항상 상사(대통령)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며 처신을 했다. … 하지만 자기관리에 엄격해서 술 때문에 실수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고총리는 이처럼 자기관리가 너무나 철저한 만큼 인간미가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고건의 사람’은 없다
장관급 고위직을 30년 가까이 지내는 인물에겐 정치적 무게도 쏠리고, 그러자면 복심(腹心)으로 불릴 만한 인물이 생기게 마련이다. 고총리의 속내를 가장 잘 꿰뚫는 측근은 누구일까? 아쉽게도 이렇다 할 사람을 찾을 수 없다. 누구누구의 사람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했던 고총리답게, “그는 고건의 사람이다”는 말을 들을 사람도 만들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고총리의 스타일은 그가 직접 쓴 저서 ‘행정도 예술이다’라는 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책의 절반 가까이를 읽어봐도 기관이나 사람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특정인, 특정그룹을 칭찬할 경우 다른 그룹의 질시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 라는 것. 대체로 이런 식이다.
“한 구청은 노력한 결과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민간기업이나 호텔을 밀어내고 1등을 차지했다…(위에서 언급한 전남도청 소속 헬기조종사를 가리키며) 그처럼 고생했던 조종사가 고향인 서울에서 일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는 서울시 소방본부에 자리를 마련해줬다… 어떤 학자는 내 행정스타일을 가리켜 권위주의시대의 비권위주의적 행정이라고 평가했다….”
국무총리실 주변에선 이를 두고 “부정적인 내용이라면 실명(實名)을 밝히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만, 긍정적인 대목에서도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고총리의 결벽증일 수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고총리측은 “책에서 거론되는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처럼 ‘깔끔한’ 고총리의 스타일은 현 정국을 걱정하는 주변 인사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과 고총리의 관계에 대해 “신뢰는 쌓여 있지만, 썩 가깝지는 않다. 하지만 과거 인연을 맺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는 사이다. 한마디로, 고총리가 대통령을 상대로 ‘눙치면서’ 필요한 사항을 요구하지 못할 뿐이다. 앞으로도 고총리가 이런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고총리와 노대통령의 인연은 1998년 서울시장 선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 사이의 인연은 ‘서울시장 선거의 당내 경쟁자에서 목욕탕 친구를 거쳐 국정 최고 동반자까지’라는 표현으로 요약된다.
1998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자체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당시 전 의원이 고 전 총리를 근소한 차로 앞섰다. 그러나 청와대는 ‘당선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노 전 의원에게 양보를 요구했고, 그는 흔쾌히 수용했다. 노 전 의원은 선거기간 동안 고 전 총리의 서울시장 선거 캠프를 찾아가 잘 싸워달라고 인사했고, 고 전 총리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뒤 노 전 의원을 찾아가 저녁을 함께 하면서 ‘감사 인사’를 드렸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통합신당 이강래(李康來) 의원은 “고총리가 (노대통령에게) ‘신세를 톡톡히 졌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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