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영관 장관을 경질하면서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이 거론한 ‘의존적 대외정책과 자주적 외교정책 비교’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외교부 최대의 위기’ ‘자주파와 동맹파의 충돌’ 등 유례없이 비관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면서 정부의 외교노선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가 다시 등장했다. 뿌리째 흔들린 외교부가 제대로 역할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깊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극심해 보이던 혼란과 불신이 반기문 신임 외교통상부 장관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미국 등 주요 동맹국의 외교 파트너들까지 일제히 환영하면서 기대를 표명했을까. 의문이 풀리기를 기대하면서 지난 2월8일 일요일 아침, 한남동 장관공관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장관이 새로 임명되면 언론이나 국민들이 ‘왜 그 사람이냐’고 의문을 제기하기 마련인데 반 장관에 대해서는 ‘왜 반기문이냐’는 반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다’는 분위기라고 할까요. 이례적인 지지를 받는, 제 표현으로 하자면 ‘준비된 외교부 장관’인 셈인데, 앞으로 펴나갈 ‘반기문 외교’의 청사진부터 이야기해주시죠.
“‘반기문 외교’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한 것 같네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외교정책의 기본, 특히 참여정부 외교정책의 기본은 ‘평화와 번영’으로 정리가 됩니다. 평화라는 측면에서는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고, 번영의 측면에서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외교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화 유지를 위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이 북한 핵문제입니다. 저 역시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외교적 과제를 안고 취임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한미동맹관계를 발전시키고 강화하는 것도 저의 과제입니다. 한편으로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과 해외투자 유치 및 수출 증대를 위한 외교력의 강화와 집중이 필요합니다.
지난 50여년간 이러한 외교의 근간이자 기본정책에 큰 변함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황변화에 따라 현안과 과제가 달라지는 만큼 적절한 외교적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안에 따라 적절한 방침과 대응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취임 3주 만에 가족 축하모임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주셨으니까 각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경력에 대해서도 차차 질문을 하겠습니다만, YS정부와 DJ정부에서 차관급 또는 차관으로 일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지냈습니다. 오랫동안 장관급 문턱에 머물면서 스스로 ‘아, 또 차관이냐’고 생각했을 법도 한데 드디어 장관이 됐습니다. 남다른 소감이 있을 텐데요.
“어쩌다 보니 차관급을 오래 했습니다. 1996년 청와대 의전수석부터 시작했으니까 그 누구보다도 오래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장관이 이렇게 바쁜 자리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외교안보수석, 외교부 차관, 외교보좌관 등 나름대로 바쁜 자리에서 일했는데 외교부 장관은 특히 더 바쁜 것 같습니다. 대외 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루어야 하고, 국내적으로도 여러 가지 행정 절차나 대국회 관계, 언론 관계에 이르기까지 워낙 일이 많아서 5분, 10분을 쪼개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장관 취임 이후 오늘 아침에서야 아이들하고 처음으로 식사를 같이했으니 말 다했지요.”
-가족 축하모임이었나요?
“그렇죠. 집사람하고도 잠깐이나마 대화할 여유가 없군요.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하니 통 짬이 나질 않습니다. 청와대에서 근무하고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장관은 한 부처의 수상이기 이전에 국무위원이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국무회의에서 인사를 할 때도 ‘외교부 장관이라기보다는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하겠다. 저에게 주어진 외교통상이라는 분야는 물론 그 외에 나라의 전반적인 일에 대해서도 국무위원으로서 기여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