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세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박 대표를 태운 차량은 인근의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5분 거리인데 20분이 넘도록 병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당황한 나머지 병원 입구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봉합 분야에서 손꼽히는 권위자인 탁관철 교수가 주말임에도 인근에 있었던 것이 박 대표에게 불행중 다행이었다.
수술을 마친 탁 교수는 유정복 대표 비서실장에게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안면신경을 피해갔고, 조금 아랫부분에 이르렀으면 경동맥을 다쳐 손써 볼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을 찾은 기자에게 한나라당 관계자는 “자칫 목숨을 잃었거나 정치생명이 끝날 뻔 했다”고 말했다.
검·경, ‘배후’ 부분 없이 지씨 기소
5월31일 검경합동수사본부(본부장·이승구 서울서부지검장)는 지씨를 살인미수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한나라당은 세풍(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166억여 원 모금 수사), 병풍(정치인 자녀 병역비리 의혹 수사사건) 사건을 맡아 한나라당과 악연이 있는 이 지검장이 합수부를 지휘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한나라당측은 정상명 검찰총장에게 수사진 교체를 요구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이 사건을 지방선거에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5월25일 대전역 유세에서 “한 여성에게 당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칼부림을 하고…”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상호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지충호가 특정 정당의 당원인 것처럼 만들어 국민이 열린우리당을 증오하게 하는 고도의 흑색선전”이라며 전 의원의 정계은퇴를 요구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관심은 지씨의 범행에 배후가 있는지 여부다. 지씨가 기소된 시점을 전후해 지씨의 단독 범행 가능성에 한층 무게가 실렸다. 검찰이 배후 의혹 부분에 대한 특별한 조사 없이 지씨를 기소해, 향후에도 검찰 기소내용을 중심으로 재판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지씨가 단독으로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씨와 함께 복역한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지씨는 반(反)사회적 성격이 강했다’고 하더라. ‘소(小)영웅주의’ 심리에 빠져 그런 사건을 저지를 수도 있다. 일반인의 의식으로 그 사람의 행위를 이해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진짜 범행동기 숨기고 있는 듯”
그러나 이같은 단독범행설은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우선 합수부측은 5월23일 브리핑에서 “지씨에 대한 정신감정 계획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없다. 정신이상자가 아니다. 진술을 받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지씨는 ‘정상인의 범주 내’에 있으므로, ‘이상심리’ 측면에서 범행 이유를 찾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상인은 비록 ‘소영웅주의’에 빠져 있어도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고(인천~서울), 현실적 이익(금전적 대가 등)이나 원한관계가 없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박근혜)을 구태여 찾아가서 잔인한 방법으로 해치려는 행위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씨에게선 ‘테러리스트’가 가진 ‘맹신적인 확고한 정치적 신념’도 발견되지 않았다. 즉, 지씨 사건의 경우 범죄의 핵심 구성 요건인 ‘범행동기’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씨는 자신의 테러행위에 대해 “박근혜 대표는 독재자의 딸이다”(사건 당일인 5월20일), “5공 때 억울하게 옥살이한 것을 한나라당이 책임져야 한다”(5월20일), “민주(民主)를 찾기 위해 그랬다”(5월21일 서대문경찰서), “여야 누구라도 관계없었다”(국선변호인 접견시), “감호소에서의 억울함을 여러 기관에 호소해도 받아주지 않아 강력한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처음엔 오세훈 후보를 노렸다”, “박 대표에게 미안하다”(5월29일 구속적부심) 등 그때그때 다른 이유를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