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실장은 1957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왔다. 국무총리실 공보비서관을 잠깐 지내다 중앙일보에 입사해 국제부, 사회부, 정치부 기자로 잔뼈가 굵었다. 사회부 기자로 모교인 서울대에 출입하던 1987년 1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특종 보도로 한국기자협회의 ‘한국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중앙일보 월요정치칼럼 ‘시시각각’의 필자로 빼어난 정치논평을 해 2007년 칼럼부문 ‘한국 참언론인상’을 받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 시절 경북 출신이면서도 민주당 출입을 오래 해 현 야권에도 발이 넓다.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야권을 담당하는 정무2비서관을 역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으로 있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와중에 이명박 후보의 측근들이 캠프 참여를 권유했으나 고사하다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류우익 당시 대통령실장의 권유를 받고 청와대에 합류했다. 이후 정무2비서관, 정무기획비서관, 메시지기획관을 지냈다.
김 실장은 내성적이고 꼿꼿한 편이다. 중앙일보에 몸담고 있던 2004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로부터 정치입문을 권유받고 17대 총선 출마를 위해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지인들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역풍으로 출마해봤자 상처만 남을 것이라고 조언하자 눈물을 머금고 출마를 포기했다. 그는 언론인 생활을 더 하고 싶어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인 중앙일보에 다시 출근하면서 징계를 ‘자청’했다. 중앙일보는 그에게 대기발령을 내렸다가 총선 후 논설위원실에 복귀시켰다.
“박영준의 재림 보는 듯”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
그러자 이 대통령은 기획관리실을 새로 만들어 그를 실장에 앉혔다는 것이다. 기획관리실은 기존 기획관리비서관실을 확대 개편해 국정상황 관리 및 조정 기능을 갖추도록 한 조직이다. 기획관리실 직원은 현재 20명이다. 청와대 내에서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빼고 그처럼 많은 인력을 둔 비서관실은 없다.
기획관리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의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국정상황실장을 맡았던 장성민(김대중 정부)·이광재·이호철·천호선씨(이상 노무현 정부) 모두 대통령의 돈독한 신임을 바탕으로 국정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부서의 명칭은 바뀌었지만 김두우 기획관리실장은 국정상황실장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국정 리스크 관리는 기본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인 대통령의 공식 일정도 기획관리실에서 짠다. 대통령의 비공식 일정은 제1부속실에서 담당한다. 또한 대통령이 외부로 내보내는 메시지를 관리한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를 준비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