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김진표(金振杓)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과 박봉흠 기획예산처 차관을 “내가 만나본 관료 가운데 가장 유능한 두 사람”으로 꼽아 ‘좌진표·우봉흠’이란 말을 낳았다. 서울대 동문이자 행정고시 13회 동기인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나란히 경제부총리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발탁돼 새 정부 경제팀의 핵심 포스트를 맡았다.
지금까지 노 정부 경제팀은 외형상 안정지향 관료그룹의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개혁성향 학자그룹의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투톱’을 이루며 견제와 균형을 기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이제 ‘실험 동거’는 끝났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노 대통령의 신임을 한몸에 받아온 좌진표·우봉흠 신(新)투톱 체제가 뜬 것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최대 현안으로 여기는 대통령이 이들의 실무경험, 팀워크, 효율성, 추진력 등에 주목해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월 노 대통령당선자는 기획예산처에 단지 정부의 기능 조정뿐 아니라 자원 배분, 각 부처의 재정집행 감독, 지방분권화 추진 등 모든 부처 업무의 기획분야를 맡아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기획예산처는 지역균형발전 특별회계를 마련하고 재정집행 특별점검단을 신설하는 등 노 당선자의 공약 실현을 위해 적극 화답했다.
그 무렵 박봉흠 기획예산처 차관은 “많은 짐을 싣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길을 가야 한다”는 이른바 ‘뗏목론’을 내놨다. 그는 이 논리에 근거해 대통령직인수위에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데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인수위가 여러 정책을 검토하더라도 예산집행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데 소홀해선 안 된다는, 예산전문가로서의 마땅한 소신을 밝힌 것이지만 당선자측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하기에 충분했다.
노 대통령은 첫 조각(組閣)에서 박 차관을 기획예산처 장관에 임명한 후 이례적으로 부처별 업무보고 및 토론회에 박 장관이 반드시 배석하도록 지시했다. 부처마다 새 사업계획을 쏟아내고 이에 따른 예산경쟁이 치열한 만큼 나라 살림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기획예산처 장관이 보고 현장에 있어야 이해관계를 제대로 조정, 조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장관에 대한 노 대통령의 확고한 신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박 장관은 업무보고 자리에 그저 참관자로만 배석한 게 아니다. 보고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조목조목 지적했다. 지난해 4월10일 열린 중앙인사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중앙인사위가 2004년까지 공무원 보수를 민간기업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보고하자 박 장관은 “이는 과거 정부에서도 추진했으나 민간기업이 임금을 계속 올리는 바람에 실현할 수 없었다”며 “구조조정이 쉬운 민간기업은 임금을 올려도 부담이 덜하지만,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은 내보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내년까지 민간기업 수준에 맞추겠다는 거냐”고 반박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박 장관 말에 일리가 있다”며 손을 들어줬다.
박 장관은 국무회의에서도 과거 어느 기획예산처 장관보다 ‘말발’이 셌다고 한다. 지난해 5월27일 국무회의에서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은 금연확산 여론을 등에 업고 담배에 부가되는 건강증진부담금을 올리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박 장관은 “복지부 방침대로 부담금을 올리면 소비자물가가 0.7%포인트 상승하고, 담배 수요가 줄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세원을 위축시켜 지방세 인상 요인도 발생한다”고 반대했다. 논쟁을 지켜보던 노 대통령은 “담뱃값 인상의 현실적 어려움과 인상 후 발생할 문제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하라”며 신중한 접근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