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반(反)MB’ 선봉 김문수 경기지사의 대권 전략

‘원칙(박근혜) 對 원칙(김문수)’의 대결구도 만들자!

  •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입력2008-10-07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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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정치와 행정의 경계를 서슴없이 넘나든다. 언뜻 보면 자치행정에 필요한 발언인 것 같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노림수가 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넘어
    • 2012년 대권을 염두에 둔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반(反)MB’ 선봉 김문수 경기지사의 대권 전략

    김문수 경기도지사.

    일찌감치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된 김문수 경기지사의 발걸음은 빠르고 거침없다. 정치권에선 그의 말 한마디를 모두 ‘차기’와 연결지어 판단한다. 이완구 충남지사 등 ‘안티(Anti) 김문수 세력’도 나타났다.

    김 지사는 한나라당 지도부와 대립하는 것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독설을 퍼붓고 있다. ‘수도권 규제 철폐’가 그의 대표적인 요구 사항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도권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수도권 쏠림 현상에 따른 지방 경제 침체를 우려한 비수도권의 반발에 부딪혀 정부는 수도권 규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이란 명분도 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급기야 정부는 ‘선(先) 지방 발전, 후(後) 수도권 규제 완화’를 지방정책의 기본 틀로 제시했다.

    “MB와 차별화하려면 빨리 해야”

    그러자 김 지사는 “배은망덕한 정부” “대학을 못 짓게 하는 것은 공산당도 하지 않는 짓”이라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상궤를 넘는 발언”이라며 경고를 보냈지만 “기업을 못살게 군다”는 등 오히려 수위를 높였다. 이 대통령을 겨냥해 “균형발전론은 대통령의 오만” “나와 경기도가 대통령에게 속은 기분”이라고 했다.

    김 지사가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김 지사는 대선 이전부터 ‘친(親)이명박계’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김 지사는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함께 이 대통령 측의 중진 3인방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 지사가 차기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 대통령과 의도적으로 전선을 형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한나라당의 유력 차기 주자로는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김문수 지사가 꼽힌다. 박 전 대표는 일거수일투족이 뉴스가 된다. 정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 회의 등을 통해 현안에 대해 언급할 기회가 많아졌다. 반면 경기도지사는 정치적 목소리를 낼 기회가 거의 없다. 묵묵히 도정(道政)만 살펴서는 경기 지역 언론에 가끔 소개되는 정도가 전부다. 김 지사도 “국회의원 때보다 인지도가 더 떨어졌다. 여기(경기도) 있으니까 신문이나 TV에도 잘 안 나온다”고 했다.

    ‘김문수의 총선’은 실패작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대통령과 차별화하려면 빨리 해두는 것이 좋다. 김 지사는 이 대통령 임기 초반에 이 대통령과 확실히 차별화하는 것이 2012년 대선 레이스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또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잠잠한 이때 김 지사는 ‘2000만 수도권의 대변인’으로 자신이 상징화되는 것이 나쁠 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고 했다.

    여권에 따르면 김 지사는 지난 18대 총선 당시 국회 내 ‘김문수계’ 형성에 나섰다가 사실상 실패했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은 김 지사 측 후보는 선거구가 51개인 경기도에서만 1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대부분 김 지사가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 등으로 데리고 있었던 그의 참모 출신이다. 경기도 사정에 밝은 당 관계자는 “김 지사가 알게 모르게 노력한 측근까지 합하면 20명도 넘는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압승했지만 김문수계 후보들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당선된 사람은 김 지사의 보좌관을 지낸 뒤 김 지사 지역구를 물려받은 차명진 현 한나라당 대변인(경기 부천 소사)과 김 지사의 지구당 사무국장 출신인 임해규 의원(경기 부천 원미갑) 정도였다.

    이처럼 차기를 염두에 두고 원내에 지지기반을 확보하려 한 구상에 차질이 생기자 김 지사는 수도권 규제완화 문제로 이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수도권을 결집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지사가 목소리를 높이자 여권 내에 동조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수도권 출신이다. 공성진 최고위원, 남경필 의원, 전여옥 의원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김 지사의 말이 맞는 것 아니냐”고 공개적으로 거들고 나섰다. 서울·경기의 초선 의원들은 김 지사의 문제 제기 이후 ‘연구 모임’을 결성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 지사의 ‘도발’과 비슷한 시점에 40여 명의 현역 의원으로 발족한 당내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이명박 대통령의 성공을 돕기 위해서”라는 것이 참여자들의 주장이지만 정가에선 ‘이재오계 모임’이란 시각이 많다. 김 지사의 측근인 차명진·임해규 의원은 이재오계로 분류되면서 이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 지사가 최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하자 ‘범(汎) 이명박 진영’에 소속돼 있던 일부 의원들도 덩달아 힘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8월28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 뒤풀이에서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김문수 지사와 관련된 미묘한 분위기로 읽힐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 술자리에는 정몽준 최고위원, 차명진 대변인, 윤상현 대변인 그리고 일부 출입기자들이 함께했다. 윤 대변인은 ‘친박근혜’ 몫으로 대변인을 맡고 있다. 이 자리에서 성격이 털털한 차 대변인이 “김문수 만세”를 외치자 윤 대변인이 “김 지사보다 정몽준 최고위원이 낫다”고 받아친 것으로 알려졌다.

    ‘반(反)MB’ 선봉 김문수 경기지사의 대권 전략

    지난 8월26일 경기도 의정부시청 앞에서 열린 ‘군사시설주변지역 규제완화 촉구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왼쪽에서 네 번째) 수도권 규제 완화를 촉구하고 있다.

    차명진 “김문수 만세”

    오세훈 시장이 수차에 걸쳐 2010년 서울시장 연임을 천명하고 나선 것은 확실히 ‘만년 2인자’인 경기지사의 대권 도전에 ‘플러스 요인’이다. 대선에서 서울시장이 갖는 엄청난 무게감이 현직 시장의 대선 불출마 방침으로 당분간은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 시장이 대선 출마로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김 지사는 지사직 연임이나 대선 출마와 관련해선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김 지사의 행보에 ‘탈(脫)이명박’ 이상의 ‘이미지 정치’의 함의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 L 의원은 “김 지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수도권 맹주’ ‘원칙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경북 영천 출신으로, 2006년 경기지사 선거 때 서울·인천·경기를 묶어 광역행정권을 형성하자는 이른바 ‘대(大)수도론’을 들고 나왔다가 비수도권으로부터 ‘공공의 적’ 취급을 당한 바 있다. 다음은 L 의원의 설명이다.

    “지금은 한나라당의 누구도 박 전 대표의 상대가 안 된다. 그런데 박 전 대표에게도 약점은 있다. 지지세가 지역적으로 영남, 이념적으로 보수성향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막강’ 박근혜 이길 비책?

    따라서 2012년 한나라당의 대선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수도권, 중도-진보에 접근하지 못할 경우, 누군가가 박 전 대표와 자신의 1대 1 양자대결구도를 성사시킨다면 박 전 대표와 박빙구도를 만들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행정수도 이전 찬성론자였고 김 지사는 반대론자였다. 김 지사가 수도권/비수도권 논쟁의 가운데에서 ‘수도권 중심주의자’ ‘수도권의 대변인’ 이미지를 강화할수록 그는 박 전 대표의 ‘수도권 북상’을 차단할 수도 있게 된다.”

    김 지사는 최근의 언론 노출과정에서 ‘약속의 이행’ ‘분명한 소신’ ‘엄정한 법치’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지금 그는 촛불시위, 사형제도 등 찬반양론이 뚜렷한 민감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 애매한 표현으로 에둘러 가는 대신 명확하게 의사를 밝히고 있다.

    “광화문에 미국, 영국대사관을 비롯해 대사관이 10개도 넘게 있다. 이런 대한민국의 상징 거리에서 촛불시위를 100일씩 방치하는 정부라면 그만둬야 한다. 이런 정부가 어디 있느냐. 대한민국 경찰이 과거 독재정권의 하수, 국민의 몽둥이여서 부담스럽다면 지방자치단체에 넘겨달라. 그렇게 되면 내가 확실히 법치를 세우겠다.”(9월4일 미래한국포럼 조찬강연회)

    “죄 없는 아녀자들을 연쇄 토막 살인한 사람에 대해 반드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 노인, 여자, 아이들은 약자이고 약자를 돌보는 것이 문명의 핵심적 가치다. 약한 자를 돌보지 못하고 흉악한 사람을 비호하는 것이 어떻게 공공의 역할인가.”(9월4일 경기도청 월례조회)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경솔한 언행, 말 바꾸기, 오락가락하는 태도로 한번 신뢰를 잃으면 어떤 정책도 안 통한다. 차기 대선에서 ‘신뢰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김문수 지사가 ‘원칙’ ‘소신’ ‘법치’를 자주 내세우면서 자신에게 ‘원칙의 정치인’ 이미지를 입히려는 것은 이런 흐름과 관련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원칙의 정치인’이다. 결국 박 전 대표의 ‘원칙’과 김 지사의 ‘원칙’이 맞부딪치는 구도를 만들려는 것이 김 지사의 궁극적인 목적일 것”이라면서 “김 지사가 박 전 대표에 필적하려면 대중에게 어필하는 극적인 스토리와 업적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전망했다.

    ‘규제완화를 통한 수도권의 글로벌 경쟁력 회복’과 ‘수도권 규제 지속을 통한 선(先) 지방발전’은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다. 김 지사 측의 입장에서 이명박 대통령 측은 대선을 전후해 두 정책 사이를 왔다 갔다하는 모습을 보여 신뢰를 잃었다. 두 정책 중 어느 것을 선택하든 일관되고 소신 있게 밀어붙이면 신뢰를 얻게 되고 이는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김 지사를 포함해 한나라당 소속 시·도지사들이 차기 대권경쟁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당내 정치인도 상당수다. 고건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인제 전 경기지사, 김혁규 전 경남지사 등 대다수 단체장은 대권주자로 부상하다 가라앉은 전철을 밟았다. 단체장은 서울시장을 제외하면 대체로 대중적 인지도가 낮고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안티 박’ 세력의 선택은?

    수도권을 믿고 있는 김 지사와 달리 충청, 강원 등 비수도권 단체장에게는 내각제, 정·부통령제, 실질적인 책임총리제 같은 분권형 개헌이 유리할 수 있다. 이완구 충남지사, 김진선 강원지사가 개헌 필요성을 자주 강조하는 것은 이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완구 지사는 “대통령 중임제로의 개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내년 이맘때 쯤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고 (나의 거취도) 정국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유선진당이나 쳐다볼 정도의 경력은 지났다. 도지사 안 하면 안 했지, (한나라당이 충청에서) 어렵다고, 그런 영향을 받아 행동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박근혜는 죽어도 싫다”는 일단의 집권 세력이 ‘박근혜 대항마’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도 차기 대권의 최대 변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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