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이상희 국방’ 리더십 & 정책

‘장관이냐 군 지휘관이냐’ 리더십 논란, 육군 편중 정책에 해·공군 반발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8-10-07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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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뚝심, 소신, 강직함 뒤에 숨은 독선
    • ‘방사청 논란’ 담긴 정보기관의 청와대 보고서에 격노
    • 청와대 호출에 달려간 각군 총장들에게 강력한 경고
    • ‘아날로그 리더십’에 피로감 호소하는 국방부 직원들
    • “군 인사 문제로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과 만나긴 했지만…”
    • 전작권 문제로 노무현 대통령에게 편지 건네
    • 제2 연평해전 패전 책임 논란 “전투는 현장지휘관 몫”
    • ‘국방부 전력 마피아’ 부활 우려되는 방사청 개편
    • 육군이 장악한 국방부, 문민화 아닌 육민화((陸民化)
    • 육군 위주 국방개혁 2020 수정방침에 해·공군 불만 가중
    • “전작권 전환 여부나 시기, 재협상 대상 아니다”
    지난 7월 모 정보기관이 이상희(63) 국방부 장관에 관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A4 용지 3~4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이 기관의 수장이 직접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는 국방부의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 개편 방침에 대한 군 안팎의 논란과 이 장관의 업무 추진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요지는 이 장관이 충분한 검토 없이 출범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은 방사청을 손보겠다고 나서 방사청과 해·공군의 반발 등 군내에서 소모적인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대통령은 이 보고서를 참모진에게 넘겼는데, 모종의 경로로 이 장관에게도 사본이 전달됐다. 보고서를 읽어본 이 장관은 해당 정보기관 관계자를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격한 어조로 문제의 보고서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기자는 이 사건을 방사청을 비롯한 관련기관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확인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보고서를 올린 정보기관 수장 K씨와 방사청의 인연. K씨는 방사청 설립에 관여한 전력이 있다. 방위사업 업무에 대한 감(感)이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2003년 12월 ‘이원형 비리사건’이 터지자 노무현 정부는 이듬해 획득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었다. ‘이원형 사건’이란 김대중 정부 때 국방부 획득정책관과 품질관리소장을 지낸 이원형 예비역 소장이 군납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사건.



    획득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은 총리가 맡았고 8개 부처 차관을 비롯한 15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법무비서관실이 감독했다. K씨는 당시 차관급인 부패방지위원회(현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으로서 이 위원회에 참석했다.

    엘리트주의의 완고함

    이상희 장관은 정보기관 보고서 사건과 관련해 “보고서 내용 중 무엇이 사실과 다른가”라는 ‘신동아’ 질의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다.

    “당시 정보기관 보고의 핵심은 ‘이상희 장관이 취임하면서 안 해도 될 획득체계 개선을 쓸데없이 추진함으로써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국방획득개선은 인수위 시절부터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돼 검토해오던 사안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를 만난 일에 대해선 “잘못된 보고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은 사실”이라고 에둘러 시인했다.

    방사청 주변에서는 정보기관 보고서가 적절한 견제를 했다는 평도 있다. 방사청 폐지나 흡수 등 애초 추진했던 강경한 방안이 철회되고 일부 기능 이관으로 선회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정보기관 보고서 사건은 이상희 장관의 성격과 업무처리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말투는 거칠고 직설적이다. 국방부 주변에서 “장관 말에 상처 받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이유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변에서 뭐라 하든 밀어붙이는 성격이다. 그래서 독불장군 소리도 듣는다.

    전형적인 무골이라는 평을 듣는 그는 군인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강경 보수다. 미군기지 평택 이전과 관련된 대추리 시위사건 때 그는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의장이었다. 그가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군 병력을 무장 시켜 시위현장에 투입하는 진압작전계획을 보고하자 국방부 관계자들은 뒤로 자빠질 정도로 놀랐다(‘신동아’ 2007년 10월호 ‘평택 미군기지 이전 Y작전 비화’ 참조).

    뒤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그는 현역 시절 대통령에게도 할 말 하는 강직한 군인의 표상이었다. 열정을 갖고 일하는 부지런한 군인의 전형이었다. 그런데 그 강직함과 부지런함 뒤에는 엘리트주의의 함정인 완고함이 도사리고 있다. 엘리트주의는 독선으로 흐르기 쉽다. 우월의식과 자존심이 강해 다른 사람 얘기를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오늘날 이 장관의 리더십과 업무추진 방식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눈길이다.

    현재 군 안팎에서는 이상희 국방체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무엇보다도 이 장관의 독특한 성격과 업무 스타일, 리더십을 두고 말이 많다. 정책과 관련해서는 방사청 개편, 국방개혁 2020 수정, 국방문민화 후퇴 등이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딱딱한 정책 얘기는 뒤에 하기로 하고, ‘인간 이상희’ 혹은 ‘군인 이상희’부터 얘기해보자.

    ‘하나회 견제’로 대령 진급 턱걸이

    이상희 장관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일찍이 상경해 초·중·고를 다 서울에서 다녔다. 그는 당대 최고의 고등학교인 경기고를 나왔다. 그에게 엘리트주의자라는 딱지가 붙게 된 배경이다. 그는 서울대에 진학하려다 육군사관학교로 진로를 바꿨다. 그 바람에 또래보다 2년 늦게 육사에 들어갔다. 육사 26기로 졸업하면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편입해 못다 한 학업의 꿈을 이뤘다.

    그의 군 경력을 보자. 야전 보직으로는 9사단 29연대장(대령), 30기계화보병사단장(소장), 5군단장(중장), 3군사령관(대장) 등을 거쳤다. 정책기획 쪽으로는 합참 군사전력과장, 청와대 국방정책비서관,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에 이어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 합참의장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벌어질 무렵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대선이 끝난 후 귀국했다.

    그의 군 생활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중령까지 무난하게 올라간 그는 장성의 문턱인 대령에서 거의 옷을 벗을 뻔한 위기를 맞았다. 대령 심사에서 두 차례나 탈락했던 것. 하나회의 견제 때문이었다는 게 주변의 해석이다.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소령 시절 육군대학에 다닐 때 전두환 대통령과 하나회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게 화근이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의 육사 동기 중에도 하나회 회원이 6명 있었다. 그는 이들로부터도 견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는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의 직계로 분류되는 성골 하나회원도 있었다. 하나회 동기들의 견제가 얼마나 심했던지, 육사 한 기수 선배이자 하나회 선배인 모 장교가 그들에게 “사람이 우수하면 같이 가야 하지 않느냐”고 나무랄 정도였다.

    하나회 출신인 모 예비역 장성은 “이 장관은 영관장교 때부터 똑똑하다고 소문났던 사람이다. 다만 지나친 자존심과 우월의식이 흠이었다”고 회고했다. 영관장교 시절 이 장관 밑에서 근무했던 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장관은 7사단 작전참모 시절 경기고 콤플렉스를 가진 서울고 출신의 정모 사단장에게 미움을 사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진급을 챙겨준 사람이 오형근 장군이다. 육사 22기로 하나회 회원인 오 장군은 당시 태릉에 있던 88사격단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실의에 빠져 있던 이상희 중령을 사격단 부단장으로 끌어다 앉혔다. 이 장관은 거기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두 사람 관계를 잘 아는 정치권 인사의 증언이다.

    “이상희 장관은 대령으로 진급한 후 매년 명절 때마다 오 장군 집에 찾아가 인사를 했다.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진 건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하나회 사건이 터지고 나서다. 이 장관이 더는 인사를 챙기지 않은 것이다. 오 장군이 ‘의리 없는 놈’이라고 욕하고 다녔다고 한다.”

    “지장, 용장은 되지만 덕장은 못 돼”

    하나회 사건은 이 장관에게는 서광이었다. 사건 이후 보직도 승진도 잘 풀렸다. 하나회 회원인 장성 20여 명이 한꺼번에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내몰린 데 따른 반사적 이익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2005년 4월 군 서열 1위로 합참의장에 올랐다. 2006년 11월 임기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지만, “할 만큼 했다”는 게 주변의 평가였다. ‘색깔이 다른’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급인 대장으로 진급하고 합참의장까지 지냈으니 누릴 것 다 누린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이상희 장관에 대한 평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똑똑하고 유능하고 소신이 강하다.’ ‘우월의식이 있고 자존심 세고 독선적이다.’ 취재과정에 접촉한 20여 명의 전·현직 군 관계자가 대체로 이런 평가를 내렸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고위직을 지낸 예비역 장성은 “이 장관은 개성이 특이한 사람”이라며 “긍정적, 부정적 평이 크게 엇갈린다”라고 평했다. 그는 영관장교 때 이 장관과 같은 사단에서 근무했다.

    이 장관이 육사 교관을 할 때 생도였다는 예비역 대령은 “사회학을 강의했는데, 참 잘 가르쳤다”며 “사리가 분명해 생도들이 존경하는 선배 중 한 명이었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그의 평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계급이) 올라가면서 독선적이라는 평을 듣기 시작했다. 똑똑하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안 했다. 그는 지적 에고이즘이 충만한 사람이다. 자신보다 똑똑하지 않다고 여기면 (그 사람 말을) 아예 듣지 않는다. 군의 수장에 올랐으면 달라져야 하는데, 그걸 못 하니 욕을 먹는 거다. 지장, 용장은 되지만, 덕장은 못 되는 것이다.”

    군 출신 정치권 인사는 “이 장관은 뚝심이 있고 소신이 강하다. 그리고 일을 매우 열심히 한다”라고 높게 평가하면서도 “장관이라면 조직을 잘 이끌고 아랫사람들을 다독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점이 아쉽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이 장관은 군인으로선 훌륭하지만 사람들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장관으로서는 좀 문제가 있다”라며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그의 독선적인 면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 장관의 언행도 화제다. 계룡대 회의 때 육군 장성들에게 반말로 하대했다는 둥 이런저런 얘기가 많다. 최근 사례로는 지난 7월 에너지비상대책을 위한 화상회의에서 육군 고위직 인사가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라고 편하게 인사하자 “공사 구분도 못 하냐”고 반말로 핀잔을 줬다는 얘기가 들린다.

    “처음엔 다 코피 터진다”

    지난 4월 군 장성 승진 및 보직인사를 앞두고 각 군 참모총장들에게 경고한 일화는 군내에 꽤 알려져 있다. 심사가 한창이던 3월22일 각 군 참모총장들은 류우익 청와대실장으로부터 다음날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면담시간이 서로 다르게 잡혔다. 3월23일은 일요일이었다. 서울로 올라가던 총장들 중 한 명이 꺼림칙한 마음에 이상희 장관에게 청와대 행을 보고했다.

    다음날 오전 이 장관은 국방부에서 간부회의를 주재하며 격한 반응을 나타냈다. “총장놈들, 가만히 두지 않겠다”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국방부는 내부전산망에 이 장관의 훈시를 게재했다. “정치권에 줄대는 행위, 보고 없이 상부와 접촉하는 행위, 근무지 이탈행위를 하면 누구든 좌시하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그 바람에 청와대의 각 군 총장 호출 사건이 주변에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장관이 그 사건과 관련해 총장들을 질책한 건 맞다”고 시인했다.

    이 장관의 육사 한 기수 후배인 모 예비역 장성은 “군에 있을 때부터 독선적인 엘리트 의식으로 참모가 필요 없던 사람”이라며 “현재 국방부에서 누구도 이 장관의 생각과 다른 얘기를 못한다고 알고 있다”고 이 장관의 리더십을 혹평했다.

    국방부 사정에 밝은 한 군사평론가는 “이상희는 완벽주의자”라며 “회의를 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거나 보고내용이 시원찮으면 그 자리에서 ‘너 나가’ 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그는 “참모들 고생문이 훤하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마따나 국방부 직원들은 이 장관 취임 후 강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뭣보다도 주5일제 근무가 유명무실해진 데 따른 고통이다. 장관이 토요일, 심지어 일요일에도 나오니 덩달아 출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군들은 주 7일 근무에 적응해가고 있다. 이 장관은 매일 아침 8시에 간부회의를 한다. 실무진은 2시간 전부터 출근해 준비해야 한다.

    군 관계자는 “이 장관은 ‘푸시’가 강하고 일을 많이 시킨다”며 “실무자들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국방부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평생 장관 하겠느냐. 하자는 대로 해주자’며 체념하는 분위기”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아날로그 리더십’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린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 장관이 종종 무리한 지시를 해 밑에서 힘들어한다”고 했다. 한 예로 지난 4월 합참에 중기계획 수정안을 5월까지 완성해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무리한 지시였다. 결국 7월로 연기했다. 하지만 8월이 지나서도 중기계획 수정안은 국회에 보고되지 않은 상태다.

    한번은 합참 강당에서 유머 강사의 강연이 있었다. 장성들을 비롯해 많은 간부가 참석했다. 강연 주제는 ‘유머를 통한 리더십’이었다. 강연이 끝난 후 “장관이 들어야 하는 얘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이 장관은 종종 간부들에게 “니들이 장관 심정을 아냐”며 ‘하소연’한다고 한다. 국방부 사정을 잘 아는 군 관계자는 이 장관 리더십이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 “군에 대한 애정과 열정, 의욕이 넘친 탓”이라고 진단했다.

    “애정은 좋은데, 그것이 자기중심적이고 자신만의 방식이라는 게 문제다. 사랑받는 사람 처지도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

    ‘신동아’가 이 장관에게 보낸 질의서에는 이런 문항이 있다.

    ‘국방부 내부에서는 엘리트의식이 강한 장관께서 매사 독선적이고 아랫사람들에게 말을 거칠게 하고 종종 무리한 지시를 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에 대한 장관의 설명을 듣고 싶다.’

    이에 대한 이 장관의 답변을 옮기면 이렇다.

    “나의 ‘강력한 리더십’이 보는 시각과 처한 환경에 따라 일부 다르게 평가되는 것이 아쉽다. 나의 리더십은 ‘Fight Tonight’의 자세와 함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에 대비하고, 철저한 도덕성과 대관세찰(大觀細察) 개념에 기초한 원칙주의, 업무중심·능력중심의 지휘 스타일이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장관이 일을 많이 시키는 건 사실이다. 처음엔 다 코피 터진다. 하지만 장관 자신이 열심히 하기 때문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며 이 장관에 대한 신뢰를 나타냈다. 그에 따르면 이 장관은 철저하게 일의 결과를 두고 사람을 평가하는데, “일 많이 하고 험한 데서 근무하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진급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한다.

    늘 전투력 강화 방안 연구

    이 장관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 과거 그와 한 부대에서 근무했던 군 출신 모 의원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지휘관을 할 때 부대에서 처리하지 못한 결재서류는 집으로 가져가 읽었다. 서류에 일일이 자신의 의견과 지시사항을 기록했다. 합참의장이 돼서도 이런 식으로 일했다. 머리도 좋지만, 군의 전투력 강화 방안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 점에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논란이 되는 이 장관의 말투에 대해 “직설적이긴 하지만 거친 욕설을 하는 수준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다음과 같은 표현 때문에 부하직원들이 상처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 수준밖에 안 된다면 나하고 같이 근무하기 힘들다.”

    자신도 처음 얼마간 엄청 ‘깨졌다’는 이 관계자는 “상처 받는 사람들도 이 장관이 사심이 없다는 건 인정한다”고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이 장관은 자신의 말투에 대한 시비를 알고 있지만 대수롭잖게 여긴다고 한다. 이런 농담을 하면서.

    “요즘 사람들, 서양문화를 좋아하지 않느냐. 서양선 가까운 사이면 말을 깐다. 나도 친근감의 표시로 말을 놓는 것이다.”

    국방부 지침에 따라 장병 전투체육 시간대가 반공휴일인 토요일 오후로 옮겨진 것도 이 장관에 대한 ‘원성’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예전엔 수요일 오후였다. 수요일 오전엔 정신교육이 있었다. 그런 만큼 수요일은 장병들에게 맘 편한 날이었다. 그런데 강군(强軍) 육성을 강조하는 이 장관의 지시로 하루아침에 오랜 전통이 깨진 것이다. 한마디로 훈련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평일에 무슨 운동이냐는 것. 정훈장교들도 불만이다. 정신교육 시간을 금요일 오후로 옮겼는데, 한창 졸릴 때인 낮 1~3시이기 때문이다.

    정훈병과에서는 지난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군부대 불온서적(장병정신교육 부적합 도서) 선정에 대해서도 불만이 높다고 한다. 기무사령부가 한 일인데도 마치 정훈 쪽에서 한 것처럼 오해받는다며 억울해한다는 것. 이에 대해 관련 부서의 영관장교는 “요즘 병사 의식수준이나 지적능력이 육사 출신 장교보다 낫다. 못 보게 한다고 안 보냐.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작전 특기 외는 지휘관 하면 안 된다”

    국방부의 한 공무원에 따르면 이 장관은 이 사건에 대해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공무원은 ‘불온서적’에 포함된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예전에 감명 깊게 읽었다고 털어놓았다. ‘매우 수준이 높은 책’이라는 평을 덧붙이면서.

    이에 대해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장관도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장관은 그 일에 대해 ‘용어(불온서적)도, 조치도 잘못됐다’고 말했다.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잘못됐다면 시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제 와 뭐는 빼고 뭐는 넣을 수 없지 않느냐”며 철회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전투훈련’이라고 믿는 이 장관은 보병 병과를 중시하고 그중에서도 작전 특기를 최고로 친다. 그러다 보니 다른 특기 장교들에게서 진급이나 보직과 관련해 종종 볼멘소리가 나온다.

    인사분야 고위직을 지낸 예비역 장성은 “이 장관은 합참의장 때부터 작전 외 특기는 무시했다”고 혀를 찼다.

    “합참의장 시절 그는 공공연히 ‘작전 특기 외는 사단장이나 군단장 같은 지휘관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장교 보직인사를 소령 때부터 그런 식으로 관리했다면 몰라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게 말이 되는가. 보병 외의 병과나 인사나 군수 등 작전 특기가 아닌 장교들은 사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군이 작전만으로 운용되는 게 아니잖은가.”

    이런 얘기도 들린다. 이 장관은 어느 자리에서 작전 특기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노무현 정부 때 국방부 고위간부를 지낸 모 예비역 장성을 예로 들었다. 이 장성의 특기는 인사다. 이 장관은 “그 친구가 군단장 나갈 때 나한테 ‘작전을 잘 아는 장교를 추천해달라’고 하더라”며 “작전을 모르는 사람이 지휘관으로 나가면 곤란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장관은 현역 때부터 자기 사람을 지나치게 챙긴다는 ‘오해’를 받아왔다. 군 관련 정보가 많은 모 의원은 “이 장관은 사람을 보는 데 편견이 좀 있다”며 “지금 장관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장관이 예전에 데리고 있던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군 안팎에 널리 알려진 얘기가 있다. 지난 4월 대령 출신으로 총선에 출마해 당선된 김성회 의원과 관련된 일이다. 육사 36기인 김 의원은 중령 때 이 장관 밑에서 작전참모를 지냈다. 이 장관이 30사단장을 할 때였다.

    김 의원은 조금 과장해 말하면 이상희 장관 때문에 군복을 벗은 사람이다. 30사단 시절 이 장관이 근무평정을 ‘C’로 매겨 진급 길이 막혔기 때문. 작전참모에게 C는 치명적인 점수다. 김 의원이 몇 차례 대령 진급에서 탈락한 끝에 ‘명예 대령’으로 전역한 데는 그런 배경이 있다. 김 의원은 사석에서 “나는 이 장관 때문에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라며 이 장관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 의원은 30사단에서 이 장관과 11개월을 함께 근무하다 합참 작전지휘과 실무장교로 옮겨갔다. 하지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실제 사정은 이와 다르다. 작전참모의 임기는 통상 1년이다. 그런데 이 장관은 김 의원이 전출되기 몇 달 전에 자신이 신임하는 예하 대대장 박찬주 중령(현 준장·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을 그 자리에 앉혔다는 것이다.

    국방부 측에 문의하자 “당시 김성회 중령이 마지막 2개월 동안 박찬주 중령과 중복 근무를 했던 건 사실”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두 사람이 정식 발령을 받기 전에 미리 인수인계를 했는데, 김 중령은 다른 임무를 수행하다 전출됐다는 것.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지휘관의 선택에 관한 문제”라며 “전임자와 후임자의 보직이 겹치는 건 더러 있는 일이다.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라고 탐탁잖아 했다. 박 준장을 비롯해 군 고위직 중에서 이 장관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는 국방부 대변인, L사령관, Y사단장, 정보사령관, 병무청장 등이 거론된다.

    편중인사 시비에 대해 이 장관의 측근은 이렇게 반박했다.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연줄이나 청탁, 줄대기에 기대온 사람들은 장관을 그런 식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다른 방법으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류우익의 군인사 개입 의혹

    군 주변에서는 이 장관이 4월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 측과 갈등을 빚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앞서 언급한 청와대의 각 군 참모총장 호출 사건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이 일에 대해 “양쪽 다 잘못”이라며 “청와대 측에서 총장들을 장관 몰래 부른 것도 문제이고, 부른다고 달려간 총장들도 잘못한 것”이라고 꼿꼿한 태도를 보였다. 그에 따르면 당시 이 장관은 청와대 참모진에도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한다.

    국방부와 청와대 주변에서는 당시 이 장관이 류 실장의 인사개입을 강하게 비판했고 그 문제로 두 사람이 만났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류 실장을 만난 사실은 시인했지만 “목적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군 인사관리체계에 대한 청와대 측의 이해를 돕기 위해 류 실장을 포함한 참모진을 만나 군 인사법에 대해 설명했다는 것이다.

    당시 정보기관 주변에서는 이 장관이 사전 협의 없이 청와대에 인사안을 올려 외교안보라인과 갈등을 빚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이에 대해 당시 외교안보수석이던 김병국 교수는 “4성 장군 인사는 국방부 장관이 하는 일”이라며 “외교안보수석실에서는 인사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류 전 실장의 인사개입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것은 기무사령관 인사다. 3사 출신의 김종태 기무사령관은 류 전 실장과 동향인 경북 상주 출신이다. 두 사람은 내외종(內外從) 사촌간이기도 하다. 하나회 출신으로 국방부 고위직에 임명된 K실장도 류 전 실장과 동향이라 ‘오해’를 사고 있다.

    이 장관은 현역 시절 기무사를 유난히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휘관을 하면서 기무부대의 ‘동향 관찰’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이 장관이 제때 대령 진급을 하지 못한 것도 기무사의 부정적인 평가자료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다. 3월17일 이 장관이 주요 군 지휘관 인사를 발표하면서 기무사령관 내정자를 빼놓자 기무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라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가 좋다는 얘기가 기무사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이 장관은 원정화 사건 직후 기무사령관을 불러 격려하기도 했다.

    지난해 대선이 끝난 후 기무사의 일부 조직은 국방부 장관 임명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군 문제를 담당했던 Q씨는 “일부 기무조직이 김인종을 지원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장관이 결정되기 얼마 전 기자와 만난 그는 “처음부터 이상희가 유력했다”며 “거론된 후보들 중 군내 평판이 가장 좋다”며 이 장관 임명을 점쳤다. 그는 또 “역대 군 수뇌부 출신 중 미국에서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회의를 개최한 사람은 이상희밖에 없다”고 이 장관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대추리 사건은 큰 문제가 안 된다”고 했다.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과 더불어 군 인사에 개입했다는 소문에 휩싸인 김인종 경호처장은 “인사에 일절 개입한 적 없다”며 곤혹스러워했다. 다만 대통령 경호와 관련된 주요 보직 인사에 관여한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내가 군 출신이니 으레 그럴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경호에만 전념하고 있다. 다만 경호와 관련된 수방사령관, 기무사령관, 특전사령관 인사 때는 장관이 내 의견을 물어왔고, 내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

    “장관 바라고 사표 내는 건 정치군인”

    이 장관은 합참의장 시절 강직한 군인의 이미지를 풍겼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와 관련해 국회에서 강성 발언을 해 여권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서는 이 의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당시 이상희 의장은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문제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함께 청와대에서 보고하는 자리에서였다. 요지는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09년에서 2012년으로 늦춰야 한다는 것. 현역 장성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건넨 것은 돌출행위로 비칠 만했다.

    이 장관은 편지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무에 바쁘신 대통령께 보다 확실히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전작권 문제에 관한 합참의장 개인과 군의 충정을 담은 서신을 드린 것은 사실이다. 사전에 장관께 내용을 보여드려 흔쾌히 승낙을 받아 대통령께 드린 것이다.”

    이후에도 이상희 의장은 전작권 문제로 한 차례 더 노 대통령에게 직언했다. 계룡대에서 열린 국군의 날 행사 때였다.각군 참모총장 등 주요 군 지휘관이 운집한 자리였다. 노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시기를 2009년으로 언급하자 이 의장이 조목조목 반론을 폈다. 첫째… 둘째… 하면서. 장내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대통령과 윤 장관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 사건에 대해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 관련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소문과 달리 당시 이 의장이 대통령에게 대든 게 아니다. 군 여론을 반영해 자신의 의견을 대통령께 정확히 전달한 것뿐이다”라고 이 장관을 감쌌다.

    “이 장관의 군인으로서의 강단과 소신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편지사건도 그런 차원이었다. 할 얘기를 다 하지만 일단 대통령이 결심하면 따르는 사람이었다.”

    군 사법기관 고위직을 지낸 모 변호사는 이 장관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합참의장 시절 NLL 문제로 합참에서 주요 지휘관 토의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1군사령관이 “NLL 문제는 대통령 지시사항이니 토론할 필요가 있다”라고 운을 떼자 수도군단장(현 병무청장)이 “절대 NLL을 양보해선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갑론을박이 벌어진 후 10분간 휴식. 단상에 오른 수도군단장이 “이상희 합참의장, 평생 의장 할 거냐. 목숨 걸고 막아야 할 것 아니냐”라고 소리쳤다. 마이크가 꺼지지 않은 상태였고 이 의장이 듣고 있었다. 주변에서 수도군단장을 만류하자 이 의장이 “수도군단장, 계속하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니가 다 한다”라고 격려했다.

    당시 이상희 합참의장은 NLL과 전작권 문제로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공격받고 있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이 의장은 군내 경기고 출신 모임에서 이런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정권이 맘에 안 든다고 군복 벗고 나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예스맨이 들어오게 하는 것보다는 군에 남아서 견제하는 게 더 옳지 않은가.”

    이 장관의 측근은 “이 장관은 ‘장관을 바라고 사표를 내는 것이야말로 정치군인의 행동’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일러줬다. 이는 다분히 이 장관에 대한 보수단체의 비토를 의식한 말로 보인다.

    금강산 피격사건은 직무유기(?)

    지난 2월 이상희 장관 내정설이 흘러나오자 몇몇 보수단체는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이들은 신문에 성명까지 냈다. 대표적 우파논객 조갑제씨는 “이상희씨가 (합참의장 시절) 자신의 반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군복을 벗고 나와 노병들과 합세해 반(反)좌파 애국행동을 했더라면 새 정부의 국방장관 자격이 충분하다”라며 한미연합사 해체와 전작권 전환에 대한 이 장관의 ‘직무유기’를 추궁했다.

    당시 보수단체의 성명 중에는 서해교전(제2 연평해전) 문제도 있었다.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이 장관이 작전을 총괄하는 합참 작전본부장이었기 때문에 패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기자는 최근 해군의 한 예비역 장성으로부터 매우 구체적인 증언을 들었다.

    “1999년 연평해전이 끝난 이후 해군 지휘부는 합참에 전투교리 수정을 요청했다. 고속정의 근접 차단기동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참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서해교전 당시 2함대사령관은 아군 고속정과 적함의 거리를 3000m로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해군본부도 그렇게 조언했다. 하지만 합참이 작전사령부를 통해 근접기동을 지시했다.”

    이 장관은 이에 대한 질문에 “잘못 알고 있다”며 합참 책임론을 반박했다.

    “합참은 교전규칙과 예규를 통해 작전지휘·통제를 하며, 싸우는 방법은 현장지휘관의 몫이다. 합참에서 거리까지 지정하면서 싸우는 방법을 통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 관련 요직을 맡았던 정치권 인사는 금강산 피격 사건과 관련해 이 장관을 매섭게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군을 알았다면 이 장관은 파면감이었다”라며 이 장관의 ‘직무유기’를 지적했다.

    “합참은 경위야 어쨌든 허위보고를 했고 장관은 잘못된 보고로 국군통수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정치적 부담을 안겼다. 대북정보수집체계의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처음엔 잘 몰라 그랬다 쳐도 후속조치를 제대로 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백두·금강 정찰기와 대북감청부대 등 대북정보자산을 24시간 풀가동해 북한군의 통신과 병력 움직임을 분석해 신속히 사건의 진상을 파악했어야 했다. 이 장관은 이런 큰 사건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군 내부 기강 잡기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대통령이 직접 기무사에 지시하든지 해서 후속조치가 제대로 안 된 경위를 파악하고 지휘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기구입, 장관이 직접 챙기겠다”

    이상희 장관 취임 이후 군내에서 가장 큰 논란을 빚은 정책은 방사청 개편이다. 지난 3월 이 장관의 획득업무 재검토 지시에 따라 국방획득체계개선단이 발족했다. 3개월 후 개선단은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방사청 중심 획득체계에 문제가 많으니 방사청을 폐지하든지 주요 기능을 국방부로 이관하라는 것.

    방사청은 무기획득체계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2006년 국방부 외청으로 발족한 독립기관이다. 획득업무 외에도 방위산업 수출, 군수품 조달 등 방산업무를 총괄한다.

    그중 국방부가 문제 삼는 방사청 기능은 무기 소요 결정권과 중기계획 수립 및 예산편성권이다. 방사청이 생기기 전엔 국방부 획득실이 그 기능을 가졌다. 한 군사전문가는 “방사청 개편은 한마디로 국방부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던 예전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달본부 근무 경력이 있는 한 대령은 “국방부 안(案)대로라면 방사청은 집행 기능만 갖는 조달본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방부가 방사청을 손보려는 명분은 무기를 대주는 방사청과 사용하는 각 군 사이에 업무협조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방사청 측도 이 점은 어느 정도 시인한다. 하지만 이를 구실로 방사청을 없애겠다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반발한다. 방사청 관계자는 “국방부가 그동안 각 군과 방사청 사이에서 조정·통제 기능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국방부의 ‘직무 태만’을 언급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장관이 획득업무를 실질적으로 감독할 수 없다는 것. 소요결정부터 집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가 방사청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획득·방산 업무가 한군데 몰려 있으면 로비하기가 더 쉬워진다”며 “장관 임무 수행에도 지장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획득·방산업무의 최고 심의기관인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장관이므로 얼마든지 감독과 통제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중기계획의 경우 방위사업청장이 작성하지만 최종 수립권은 장관에게 있다.

    획득업무가 한군데서 이뤄지면 비리가 싹트기 쉽다는 논리는 사실 예전에 국방부 획득실 비판에 적용되던 논리였다. 방사청 관계자는 “방사청 개편의 속셈은 육군의 헤게모니 장악”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뭣보다도 획득업무를 관장할 국방부와 합참의 주요 보직들을 육군 혹은 육군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이 상태에서 획득업무가 넘어가면 해·공군이 설 땅이 없다. 이에 비해 방사청은 육·해·공군 합동체제다. 3군이 주요 보직을 골고루 나눠 맡아 균형과 견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격앙된 어조로 “의사결정 기준은 개별 군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이익이어야 한다. 획득절차를 개선하겠다는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국가의 이익을 생각해봤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국방부 산하 모 연구소 고위 간부는 “방사청 개편으로 예전에 활약했던 국방부의 ‘전력 마피아’가 부활할지 모르겠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획득업무가 국방부로 넘어가면 기술도입이나 연구개발보다 해외 직구매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바람직한 획득은 좋은 무기체계를 스스로 갖추는 것이다. 일본의 무기개발 과정을 배워야 한다. 우리처럼 직구매로 시작해 기술 도입, 공동 개발, 자체 개발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지금은 못 만드는 무기가 없다. 이라크전 때 선보인 미국 무기의 핵심 부품은 전부 일제였다.”

    방사청 관계자는 “무기를 국내에서 개발하면 로비스트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했다. 그는 국내개발의 경우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차를 만들 때 처음부터 에쿠스 만드는 것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투기를 수입할 경우 운용유지비가 기체 값의 2.8배나 들어간다. 주요 부속품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조달해야 하는데, 완전히 돈 덩어리다.”

    통계상으로는 2006년 방사청 설립 이후 획득 관련 비리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방사청 관계자는 “과거와 같은 시스템 비리는 근절됐다”고 자부했다. 육군 법무병과 영관장교도 “방사청이 사전에 비리를 예방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거들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율곡비리 시대로 돌아가자는 거냐”라는 비판논리에 대해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고 일축했다.

    현재 방사청에는 함구령이 내려져 있다. 국방부가 추진하는 일에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라는 지시다. 국방부 최고위층이 방사청장에게 방사청 실세로 꼽히는 L국장(공군 예비역 대령)과 L대령(육군)의 조기 퇴출을 지시했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다.

    방사청 개편 논의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 황진하 의원은 “방사청 문제는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장관이 획득기획과 집행을 실질적으로 감독하는 권한을 갖되 각 군의 상호 견제와 투명성을 높이는 쪽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국방개혁 2020의 수정 혹은 연기 방침도 논란거리다. 국방개혁 2020의 핵심은 3군 균형발전과 전력의 합동성 강화, 국방의 문민화, 합참기능 강화, 부대 개편과 병력 감축이다. 육군 부대 개편의 경우 군단·사단의 통폐합으로 부대 수가 지금의 반 가까이 줄게 된다. 그렇지만 병력이 그에 비례해 감축되는 건 아니다. 후방 동원사단 등이 없어지는 대신 기동군단 등이 창설되기 때문이다.

    “본질은 육군 기득권 지키기”

    올봄부터 국방부 주변에서는 “국방개혁 2020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방부의 복안이 드러난 것은 8월 초. 국방전문지 ‘D&D 포커스’ 9월호에 따르면 이상희 장관은 8월1일 합참의장과 각 군 총장 등 주요 지휘관들을 국방부로 불러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 장관은 육군의 병력감축 계획을 전면 보류하고 해·공군의 미래전력 소요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룬다는 국방개혁 수정안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선(先) 전력 현대화, 후(後) 부대 개편. 전력 현대화의 1순위는 육군의 야전 무기다.

    수정안에는 육군은 주력군이고 해·공군은 보조군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또한 한국군의 주적(主敵)은 북한군이기 때문에 이지스함이니 글로벌 호크니 공중조기경보통제기니 하는 해·공군의 첨단무기나 값비싼 정보전력보다는 당장 대북 방어에 유용한 지상전력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전차, 자주포, 장갑차 따위다.

    국방부가 국방개혁 2020을 수정하는 명분은 국방비 감축이다. 2020 작성 당시 책정한 예산이 확보 안 돼 계획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국방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부족한 재원 때문에 당분간 국방개혁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2020에는 그동안 육군 엘리트들이 주장한 내용이 다 들어가 있다”며 국방부의 수정 방향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국방개혁 2020 수립에 관여했던 국방전문가는 크게 개탄했다.

    “무조건 (추진)해야 한다. 예산이 적어질수록 비효율적 부대를 빨리 폐지해야 한다. 완전성을 갖추지 못한 후방의 동원사단 등이 쓸데없이 돈을 먹고 있다. 현재 육군에는 기능이 중복되는 부대가 많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존성이다. 정예화된 간편사단으로 바꾸지 않으면 현대전을 따라잡을 수 없다. 북한 지상군 전력의 위협을 내세우지만 어떻게 지상군만으로 전쟁에 대응하느냐. 전쟁이 일어나면 육·해·공군 합동전력으로 조기에 끝내야 한다. 국방개혁은 3군의 합동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는 “예산 문제는 핑계이고 본질은 육군의 기득권 지키기”라고 규정했다. 해군 관계자는 “해·공군 위축보다 더 큰 문제는 미래지향적 군 구조 개편의 뜻이 훼손되는 것”이라고 탄식했다. 공군 고위직을 지낸 예비역 장성은 “일선 장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고 공군의 우울한 분위기를 전했다.

    “국방개혁 2020대로라면 그래도 해·공군의 발전 여지가 있다. 이웃 일본과 중국 공군은 미래를 내다보고 우주군으로 가고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육군 위주로 전력을 보강하면 우주공군의 꿈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장관의 강군 추진, 일리 있다”

    그렇다고 비판만 있는 건 아니다. 한 군사평론가는 “2020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라며 “너절한 행정부대는 안 건드리고 전투부대를 줄이니 육군으로선 전투력 저하를 걱정할 만하다. 결국 어떤 방식으로 줄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육군의 전투력 보강이 시급하다”며 “이 장관의 강군 추진도 일리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김장수 장관 때 총기사고율이 높아지자 실탄 지급 훈련 횟수를 줄였다. 그러다보니 병사들의 사격실력이 형편없다. 예전엔 20발 쏘면 12발 맞혔는데, 지금은 명중률이 50%도 안 된다. 모든 전투훈련의 초점이 사고예방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군인이 군성(軍性)을 잃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재 육군무기의 상당수는 야전 실속형이 아니라 지휘관의 과시용이다. 병사들의 전투력은 2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부대를 줄여야 완전성을 구현한다. 속도 위주의 현대전에 맞지 않는 구닥다리 부대를 존속시키기 위해 무기를 도입하고 병력을 유지하는 비효율성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국방개혁 2020 수정 방향에 대해 묻자 국방부 관계자는 “예산이 문제”라면서도 “어쨌든 2020으로 간다”라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국회에도 그런 방향으로 보고할 것이라고 했다. 한 가지 단서를 달긴 했다. “2020대로 가지만, 전력 확보 수준에 맞춰 병력과 부대를 감축하겠다”고.

    ‘온리 육군’

    국방개혁 2020 논란과 더불어 해·공군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국방부 주요 보직의 육군 독식 이다. 국방의 문민화를 지향하는 2020 계획에 따르면 국방부 주요 보직을 민간 공무원으로 바꿔야 맞다. 하지만 올봄 국방부는 “군사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에 민간인 출신을 앉힐 수 없다”며 국방 문민화 계획을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게다가 육군 편중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신동아’가 국방부 관련부서를 통해 확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국방부 실·국장은 모두 22명. 그중 공무원이 15명이고 7명이 현역이다. 현역 7명은 모두 육군 장성이다. 또 공무원 15명 중 순수 민간 출신은 8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예비역 장성이다. 그런데 이들도 하나같이 육군 출신이다. 옷 벗자마자 국방부 요직에 앉은 것이다. 이쯤 되면 문민화가 아니라 ‘육민화(陸民化)’라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실무를 담당하는 현역 과장도 마찬가지다. 모두 29명인데, 그중 해·공군은 각 4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작전이나 정책 등 핵심부서에는 전혀 없다.

    해군 관계자는 “국방부는 ‘온리(only)’ 육군”이라고 꼬집었다.

    “문민화 이후 해·공군은 제로다. 국방부에 근무하는 해군의 최고위직은 대령이다.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은 100% 육군이다. 정보사, 기무사, 수송사, 화생방사 등 예하부대의 지휘관도 모두 육군이다. 합참은 조금 덜하긴 하지만, 핵심 보직은 다 육군이 차지하고 있다.”

    공군 예비역 장성의 다음 얘기는 사태의 본질이 ‘밥그릇 싸움’이라는 일부의 시각에 일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국방부와 합참의 정책부서는 육군 일색이다. 힘없는 자리만 해·공군이 앉아 있다. 치사한 얘기지만, 해·공군 장성들이 전역 후 갈 자리가 없다. 국영기업체까지 육군 출신으로 가득 차 있다.”

    육군 편중인사를 따지는 질문에 대해 이상희 장관은 이렇게 답변했다.

    “나의 인사원칙은 ‘적재적소’다. 적합한 재능, 즉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를 어떤 자리에 앉힌다는 것은 개인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조직 전체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같은 조건이라면 각 군이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도록 개선해나갈 것이다.”

    국방 문민화와 관련해서는 “과거 국방부 정책국장 시절부터 일관되게 지지해온 정책으로 지금도 소신에 변함이 없다”며 “문민화 방침은 수정되지 않았다”라고 했다.

    “2012년까지 준비될 수 있나”

    이상희 국방체제에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전작권 전환의 향방이다. 이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 합참의장으로서 한미군사당국이 전작권 전환에 합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환 시기를 미국이 요구한 2009년에서 2012년으로 늦춘 데는 이 장관의 공이 컸다는 게 군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전작권 전환 자체를 반대하는 보수단체와 상당수 예비역 장성은 이 장관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역죄인 취급한다.

    대선 때 모 국방포럼에서 활동하며 이명박 후보를 도운 예비역 육군 장성의 가시 돋친 말이다.

    “국방장관은 안보의 중요성을 대통령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 장관은 전작권 환수 준비가 잘돼간다고 허위보고하고 있다. 한미연합 UFG 훈련 때 참관해 보니 큰 문제가 있더라. 가장 큰 문제는 지휘자동화시스템의 미비다. 미군과는 물론 한국군끼리도 통합이 안 돼 있었다. 전작권 단독 행사는 무기와 장비, 정보가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 사람의 문제, 즉 운용능력이 갖춰져야 하는 것이다. 전작권 전환은 여건이 성숙돼야 가능하다. 2012년은 너무 이르다. 원점에서 재검토해 새로 합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장관은 자신이 한 일이 있으니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국회 국방위 김성회 의원은 “북한 위협이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돼 전력 확보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에 전작권 전환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전작권 합의는 국가 간 협정이 아닌 MOU(양해각서) 형태로 체결된 것이므로 부시 정권이 끝난 후 재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통합작계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전작권 전환 이후 한미 양군이 공동 운영할 통합작계가 필요한데, 국방부가 준비를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 때 국방위 소속으로 전작권 전환 시기를 늦추는 데 기여했던 황진하 의원은 더 강경하다.

    “전작권 시기는 수정이 가능하다. 환수시기인 2012년 4월 이전에 평가단을 만든다는 단서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한반도 분단이 끝나기 전까지는 현재의 전작권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군 단독으로 전쟁억지능력을 갖추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기 때문이다. 미군의 전력을 활용해야 한다. 어차피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유엔군이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미군이 전작권을 가졌다고 해서 군사주권을 빼앗긴 게 아니다. 전쟁에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논란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이 장관은 답변서를 통해 전작권 문제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전작권 전환에 대한 합의는 한미 양국의 군 통수권자인 두 대통령께서 국가 간에 합의한 사안이다. 전작권 전환 여부나 시기의 문제는 재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한미 양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예비역 장성들의 우려가 지나치다”고 덧붙였다.

    “전작권을 가져와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하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젊은 장교들은 전환해도 별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미국이 계속 요구하고 있는데다 국가 간 약속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장관이 합참의장 노릇까지 한다”

    이상희 장관은 UFG 훈련 당시 지휘통제소가 있는 벙커에서 숙식하며 훈련을 독려했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서는 “장관이 합참의장 일까지 한다”는 냉소적인 평이 있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 장관 리더십의 단면이다.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 공사 과정에 어처구니없는 시행착오로 엄청난 국고 손실을 초래한 것은 이 장관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군 지휘관 노릇만 하려들고 정작 국방부 장관으로서 챙겨야 할 본질적인 업무는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다.

    군 관계자는 “일선 장병들 사이에서 장관이 소대장 노릇을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군 출신 모 의원은 “장관은 정무직이다. 개인의 생각만으로 조직을 끌고 갈 수는 없다. 이 장관이 남의 얘기를 좀더 많이 듣고 배려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장관이,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인사의 이런 얘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어느 조직이나 각자의 직책에 맞는 역할이 있다. 분담과 위임이 적절하지 못하면 간섭과 독재가 된다. 사단장이 중대장·대대장 노릇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방장관은 군 지휘관과 다르다. 용기만으로 안 된다. 정무적 판단과 정치적 고려를 할 줄 알아야 한다.”

    2008년 3월27일 보직신고를 하기 위해 청와대로 들어서는 김태영 합참의장(가운데).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동행하고 있다.

    2005년 9월 국방개혁 2020을 발표하는 윤광웅 국방부 장관. 왼쪽 옆에 이상희 합참의장이 앉아 있다.

    2007년 2월 전차를 앞세워 진지 공격 훈련을 하고 있는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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