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로 우원식 의원을 선출했다. [뉴시스]
불리한 선거구 조정 극복하고 5선 고지 올라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에 등원한 우 의원은 18대 총선을 제외하고 19대부터 22대까지 내리 당선했다. 특히 22대 총선을 앞두고 노원구 갑‧을‧병 세 지역구가 갑‧을 두 지역으로 통합돼 21대 총선에 노원갑에서 재선한 고용진 의원과 경선을 치러야 했다. 선거구 조정 결과 21대 총선까지 우 의원 지역구이던 하계1동‧하계2동‧중계본동‧중계2‧3동이 노원갑으로 통합됐고 중계4동, 상계6‧7동은 노원을로 조정됐다. 결과적으로 우 의원 지역구를 나눠 노원구 3곳 지역구를 2곳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우 의원에게 다소 불리한 선거구 조정이란 평가가 많았다. 그럼에도 당내 경선에서 우 의원은 뚝심을 발휘해 공천장을 거머쥐었고, 본선에서도 오세훈 서울시장 비서실장 출신 현경병 국민의힘 후보를 따돌리고 5선 고지에 올랐다.연세대 토목공학과 76학번인 우 의원은 대학 3학년 때인 1978년 박정희 정권 퇴진운동을 벌이다 강제 징집됐고, 1981년에는 전두환 정권 퇴진운동을 벌이다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원조 학생운동권’ 출신 인사다. 강제 징집과 징역형 선고로 학업이 늦어진 그는 1997년 입학한 지 11년 만에 늦깎이 졸업했다.
그의 정치 입문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화민주당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민당 민권부국장, 평화민주통일연구회 총무국장을 지냈고, 1995년 지방선거 때 노원구을에서 서울시의원에 당선해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는 행정자치부 산하 제2건국운동본부 심의관을 거쳐 환경관리공단 관리이사를 지냈다.
국회 입성은 전대협 의장단 출신 86세대들보다 늦었다. 임종석 의원이 2000년 16대 총선에 ‘젊은피’로 수혈돼 처음 금배지를 단 것에 비해 우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야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1970년대 학번으로 1980년대 초부터 일찌감치 학생운동에 투신한 우 의원을 가리켜 86세대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은 선수와 상관없이 “원시기형”이라고 불렀다.
사무부총장, 원내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최고위원,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을 두루 거쳤고, 21대 국회에서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지냈다.
“저는 오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모나지 않은 원만한 성품의 그를 두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라고 칭송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치고 나가야 할 때도 신중하다’며 다소 답답해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번 국회의장 경선에서 그는 ‘신중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우직한 소처럼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역구까지 직접 찾아가 ‘22대 국회 역할과 기능’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지지를 호소한 그에게 89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화답했다. 국회의장 경선 하루 전인 5월 15일 민주당 안팎에서 “명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다”라며 ‘미애로합의봐’를 외칠 때 그는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저는 오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오를 그가 ‘192 대 108석’의 여소거야(與小巨野) 입법부를 어떻게 리드해 나갈지 주목된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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