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낙선·탈당’…勢 줄어든 親文의 오늘
불화의 기원, 대선 패배는 누구 책임인가
22대 국회에서 확실한 친문은 20명 안팎
이재명 ‘여의도 대통령’ 대관식에 각개약진
차기 지방선거·대선 앞두고 기지개 예상
文 의중·김경수 복권·조국 사법 리스크 변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월 4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경상도식 추어탕과 막걸리로 오찬을 함께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4년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문재인으로 시작해서 문재인으로 마무리됐던’ 21대 총선에서는 너도나도 문재인, 다시 말해 친문을 외쳤다. 당시 압도적 주류였던 친문은 비주류 소수파로 전락했다. 이대로 가면 정치적 계파로서의 독자 생존 여부 또한 불투명하다. 소리 소문 없이 친명계로 흡수되거나 험난한 비주류 역할이라는 선택지만 남았다.
절대 소수파로 쪼그라든 친문이 다시 세력화에 나설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야말로 ‘이재명의 민주당’이 완성됐다. 이 대표는 레임덕에 시달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절대 과반을 보유한 제1야당의 수장이다.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를 예약한 것은 물론 여야를 통틀어 대권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이 갖는 구조적 한계다. 친문은 대안을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또는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도 한계는 뚜렷하다. 사법 리스크라는 족쇄 탓이다. 총선 이후 소수파로 몰락한 친문의 현주소와 미래를 짚어봤다.
초박빙 패배가 잉태한 분열의 씨앗
친명과 친문은 20대 대선 이전만 하더라도 비교적 건강한 협력 관계였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격렬했지만 완전하게 등을 돌린 건 아니었다. 경선에서 패한 친문은 정권 재창출을 의심하지 않았다. 국정농단·탄핵 사태를 겪은 보수는 대선·지방선거·총선 참패로 부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파괴력은 기대 이하였다. 경선에서 승리한 친명도 비슷했다. 경선 후유증을 털고 친문에 손을 내밀었다. 이재명이라는 유력 차기 주자의 존재에도 부족한 2%는 친문의 확실한 어시스트만 있다면 극복 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대 대선 패배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0.73%포인트 차이의 초박빙 패배는 분열의 씨앗을 잉태했다. 따지고 보면 20대 대선은 정의당의 독자 출마만 없었다면 민주당의 승리가 가능했다. 윤 대통령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손을 잡았지만 민주당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실패했다. 질 수 없던 대선인데 왜 졌을까.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친문은 이 대표 때문에, 친명은 문 전 대통령 때문에 졌다고 판단했다. 친문은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선후보 개인의 리스크 탓에 졌다는 인식을 가졌다. 친명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사실상 친문의 대선 불복과 비협조로 석패했다는 분노로 들끓었다. 양측은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그간 친문과 친명의 입장을 나름대로 재구성하면 이렇다. 먼저 친문의 입장.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은 없었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지지율도 40%대 중반을 기록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2대 총선 이후 20%대라는 점과 비교하면 상징적이다.’ ‘적어도 문 전 대통령이 대선의 장애물은 아니었다.’ 다음은 친명의 입장. ‘대장동 리스크는 대선 경선에서 나온 네거티브였다.’ ‘대선 본선에서도 사실상의 대선 불복이 이뤄졌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반대한 것도 대선 패배의 원인이다.’ ‘무엇보다 친문의 적극적인 선거 지원이 없었다.’
친명·친문의 대립은 △20대 대선 이후 이재명 대표의 조기 복귀와 전대 출마 △이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가결 사태 등을 거치며 확산됐다. 22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는 갈등이 폭발했다. ‘윤석열 정권 탄생 책임론’ 공방이 대표적이다. 친문은 강력 반발했다. 표현이 완곡했을 뿐 사실상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던 문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친명은 개의치 않고 이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이후 상황은 알려진 대로다. ‘친명횡재 비명횡사’ 논란에도 이 대표는 전쟁에서 압승을 거둔 장수가 됐다.
“지난 대선 패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점은 민주당 안팎에서 대단히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차기 대선에서 비슷한 논쟁이 되풀이될 수 있다. 친명은 이재명이라는 차기 주자가 유일무이한 대안인 만큼 당의 분열 없이 단일대오 유지에 공을 들인다. 반면 친문은 ‘이재명’이라는 차기 주자의 불안 요소가 차기 대선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4월 15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있다. [조국혁신당]
‘비명횡사’에도 ‘이재명의 민주당’ 완성
민주당은 ‘이재명의 민주당’이다. 이재명 대표는 총선 공천과 압승을 바탕으로 민주당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사실상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를 예약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8월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의 연임 또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셈이다. 이는 문 전 대통령이 2016년 20대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문재인의 민주당’을 완성한 것과 유사하다. 당시 친노친문 패권주의에 반발한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면서 국민의당으로 이동했고, 그 결과 민주당은 자연스레 친문 대주주 구도를 완성했다.물론 고비는 없지 않았다.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친명횡재 비명횡사’ 논란이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서울 강북을을 지역구로 둔 박용진 의원의 공천 탈락이 대표적이다. 또 친명으로 분류되는 양문석 당선인(경기 안산갑)의 부동산 편법 대출 논란과 김준혁 당선인(경기 수원정)의 막말 논란도 위기였다. 그럼에도 이 고비가 민주당 우세 흐름을 뒤집는 데까지 나아가진 않았다. 대선 라이벌이던 이낙연 전 대표가 새로운미래를 창당했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상민·조응천·김종인·이원욱 등 비명계 의원들의 탈당도 찻잔 속 태풍이었다.
총선 이후 상황은 이재명 대표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당대표 연임설이 꾸준히 흘러나오고 있지만 별다른 문제 제기는 없는 상황이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출 과정에서도 후보자 사이에서 ‘명심(明心)’이 어디에 있느냐를 두고 경쟁이 펼쳐졌다. 22대 국회를 주도할 원내사령탑 역시 친명계인 박찬대 의원이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사실상 합의 추대와 다를 바 없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재명 대표는 총선 공천 과정에서부터 친문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보여줬다. 8월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가 연임하면 친문의 세력화나 부상은 더욱 힘들다”며 “물론 조국혁신당이 친문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화하면서 구심점 역할을 할 수는 있지만 이 대표 체제하의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문 성향 의원들의 유의미한 정치적 활동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車) 떼고 포(包) 뗀 친문
친문은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무언가를 도모하기에는 세력이 너무 쪼그라들었다. 22대 당선인을 분류하면 확실한 친문은 20명 안팎이다. 21대 국회 당시 절대 다수였던 친문은 민주당 대선 경선, 20대 대선, 지방선거, 22대 총선 등 메가톤급 정치 일정을 거치면서 대부분은 친명으로 전환됐다.22대 총선에서 생존한 친문 의원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근무 인사와 내각 출신, PK(부산·울산·경남) 지역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청와대에서는 국민소통수석이던 박수현 당선인, 일자리수석을 지낸 정태호 의원, 대변인이던 고민정 의원, 국정기획상황실장이던 윤건영 의원, 민정비서관을 지낸 김영배 의원 정도다. 내각에서는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인영 의원, 환경부 장관을 지낸 한정애 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지낸 황희 의원 정도다. PK 지역에서는 전재수·민홍철·김정호 의원 등이다. 모두 별다른 정치적 구심점이 없이 각개약진하고 있다. 일부 의원의 경우에는 친문 분류에 손사래를 치는 상황이다. ‘이재명의 민주당’ 위력 앞에 잔뜩 웅크린 분위기다.
친문의 쇠퇴는 PK 총선 결과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2008년 18대 총선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전체 40석 중 6석만 얻었다. 부산 18석 중 국민의힘이 17석을 휩쓸었다. 경남 16석 중 국민의힘은 13석, 울산 6석 중 국민의힘이 4석을 싹쓸이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심판론 분위기와 낙동강벨트 선전을 바탕으로 최소 10석 이상을 기대한 것과 비교하면 허무한 결과다. 특히 PK에서 기대했던 승리가 가능했다면 범야권 200석도 가능했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이 전방위적인 선거 지원에 나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친문의 현 상황을 보면 독자 생존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우선 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 “칠십 평생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 것 같다. 너무 못한다. 정말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도하다.” 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는 이례적으로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신율 교수는 “권력의 속성은 집중이라는 점에서 문 전 대통령의 상징성에도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다”며 “제한적 역할을 한다 해도 지난 총선 때 행보를 고려할 때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기 주자의 부재도 문제다. 한때 친문 적자로 불린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공백 이후 지속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22대 총선을 거치며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물론 친문 중진인 전해철·홍영표 의원마저 고배를 마시면서 뚜렷한 구심점조차 없는 상황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친문은 이미 흘러간 권력이다. 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사라졌고 구심점도 없다. 독자 세력화를 위해 대선주자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친문은 문재인 정부 5년간 무엇을 잘하고 잘못했는지 더 성찰해야 한다”며 “87년 체제 이후 10년 단위로 보수·진보가 집권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처음으로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이에 대한 복기과정 없이는 어떠한 정치적 선택도 무의미하다”고 꼬집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지난해 8월 1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영국 유학길에 오르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날로 감소하는 文의 정치적 영향력
친문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대주주인 문 전 대통령이 퇴임했다는 점이 최대 한계다. 총선 이후 친문의 대안으로 조국 대표와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주목받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다만 조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의 연대나 동지적 관계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친문 차기 주자설에는 ‘범야권 갈라치기라는 프레임’이라며 강력 반발해 왔다. 김 전 지사의 경우 2023년 12월 본인의 반대에도 윤석열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복권 없는 사면이 확정됐다. 올해 광복절특사나 연말특사 때 복권이 이뤄지면 2025년 4월 국회의원 재보선,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선 출마가 가능해진다.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윤 대통령이 단행한다면 민주당도 거부하기 힘들다. 친문 적자인 김 전 지사의 정치 무대 복귀는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용산 대통령실발 정계 개편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야 정치 지형의 변화에 따라 윤 대통령이 주도할 정계 개편이 야권 분열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다. 향후 정국 상황에 따라 이 대표와 조 대표의 불안한(?) 협력 관계도 파열음을 낼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게다가 김 전 지사의 복권마저 현실화한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윤 대통령 역시 남은 임기 3년을 레임덕 수준의 식물 상태로 보낼 수 없다.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면 여야 협치를 명분으로 대연정 수준의 정계 개편,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과 권력 분점을 위한 내각제 개헌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 노태우 정부 당시 3당 합당, 김대중 정부 당시 DJP(김대중+김종필)연대,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2012년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 2022년 대선 국면에서 윤석열·안철수 후보단일화 등 한국 정치사의 크고 작은 고비에는 여야 간 합종연횡을 통한 빅뱅이 이뤄졌다. 물론 윤 대통령이 메가톤급 규모의 정계 개편을 주도할 정치적 영향력과 파워, 의지가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친문의 세력화에서 관건은 조국혁신당이 친문의 새로운 둥지가 될 수 있느냐 여부다. 총선 직전만 해도 조국혁신당 안팎에서는 다른 군소정당과의 연대 또는 국회법 개정을 통한 교섭단체 기준 완화 등의 아이디어가 거론됐다. 총선 이후 상황은 급반전했다. 유일한 해결책은 민주당 소속 친문 의원들이 선도 탈당해 조국혁신당에 합류하는 길이다. 조국혁신당은 원내교섭단체로 국회 의사 일정 논의에 제3당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 대표와 조 대표가 야권의 차기 라이벌이라는 점에서 양측은 연대와 협력 관계이면서도 때로는 긴장의 경쟁 관계로 빠져들 개연성이 크다. 총선 당시 조국혁신당의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프레임’은 선거 전략상 민주당과의 연대를 부각한 것이었지만 실질적 내용은 야권 지지층 중 이 대표를 거부한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러브콜이었다.
8월 전당대회라는 변곡점
결과적으로 친문의 부상은 이르면 8월 민주당 전당대회 또는 오는 2026년 지방선거 국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친문의 향후 행보와 관련, “민주당의 8월 전당대회를 지켜봐야 한다”며 “친명계가 전대를 주도하면서 강성 팬덤의 수박 논란 등 잡음이 커지면 친문 일부가 조국혁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특히 “친문은 민주당 내부에서는 몰락했지만 외곽에서는 살았다. 역설적으로 친문의 힘이 확인된 게 조국혁신당의 선전이다. 사법 리스크만 해소된다면 조국 대표의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이 높다”며 “김경수 전 지사의 파워는 실제보다 제한적이다. 보수 진영에서 진보의 분열 구도를 만들기 위해 조국 대표가 뛰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친문은 지난 총선을 거치며 외형적으로 와해됐지만 실제로는 민주당 내외부에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지금은 이재명 대표의 힘에 밀려 숨죽인 상태이지만 결속력이 엄청 강하다. 다시 결집해서 지난날의 영광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구심점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대표다. 김경수 전 지사가 복권으로 날개를 단다면 든든한 응원군이 될 수 있다”며 “또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여전하다. 친문은 오는 2026년 지방선거에서 정치적으로 재기한 뒤 차기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 시즌2를 열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동아 6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