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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심고 나면 딸기와 앵두가 활짝 웃고

모 심고 나면 딸기와 앵두가 활짝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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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을 수 없을 때 과일이 넘쳐나고 그걸 좋다고 사서 먹고 살았으니 철모르고 산 셈이다. 내 몸 움직여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철없음을 실감한다.
모 심고 나면 딸기와  앵두가 활짝 웃고

모내기철이 되면 인사가 모두 모내기 이야기다.

농사를 하면서 농사법이 자연스레 바뀐다. 농약과 비료 안 준다고 유기농업이라 부르지만 그 속은 천 갈래 만 갈래다. 첫해는 남들 하듯 하나하나 따라가며 했다. 비료와 농약을 안 쓰고 농사해도 제대로 될까. 마을 어른들이 수없이 걱정하시기에 비료와 농약 안 쓰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 되었다. 씨를 구해 하나하나 심고, 자라는 모양새를 보며 가꾸고 거두는 그 일만으로도 신기하고 신기했다.

계곡 옆에 작은 밭이 있다. 가을에 마늘을 심었다. 마을 어른들이 우리 동네는 마늘이 잘 안 된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겨울 이웃마을에 놀러갔다가 솔가리(소나무 낙엽)가 잔잔히 깔린 밭을 보았다. 저게 뭐냐고 하니 마늘밭이란다. 솔가리를 덮은 밭이 포근해 보였다.

풀과 더불어

겨울에 해 따스한 날 산에 올랐다. 땔감이라도 해야지 하고. 하루 종일 식구들과 복닥대다가 혼자 산에 오르니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뒷산 길도 익히고, 내려오는 길에 잔가지 한 단 해 내려오고, 그러다 솔가리를 긁어모아 마늘밭에 덮어주기 시작했다. 산에서는 제법 긁어모았다 싶었는데 밭에 뿌리니 보자기 덮을 만큼 된다. 그래도 다음날 또 한 포대. 며칠 뒤 다시 한 포대. 산은 나를 활기차게 한다. 온몸을 확확 휘두르며 움직인다. 그 맛에, 뭔가를 모으는 맛에 재미나게 했다.

마늘밭은 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밭이다. 그래 책에서 본 대로, 밭을 갈지 않고 봄에도 검불을 해다 덮고, 가을에도 해다 덮고, 풀이 나지 않을 정도로 덮어주었다. 검불 아래 지렁이가 살아나고 지렁이 덕에 거름을 따로 넣지 않아도 땅이 검어지면서 비단같이 보드라워졌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지렁이 판에 두더지가 안 나타날 수 있나. 두더지가 땅속을 차지하고 말았다. 온 밭 속이 두더지 굴이라 발을 디디면 푹푹 들어갈 지경이 되었다. 마늘이 잘 안 된 게 두더지 때문인 것 같았다. 두더지가 그리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데 뿌리가 자랄 수 있겠나 싶으면서.

한마디로 지렁이는 좋은데 두더지는 싫었다. 두더지를 없애고 싶었다. 그러던 참에 그 밭에 감자를 캐는데 감자 줄기 밑동을 잡고 쭈욱 뽑고 나니 두더지 굴을 따라 손을 넣어 감자를 꺼내면 됐다. 호미조차 별 쓸모가 없었다. 그 뒤로 두더지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두더지는 적이 아니라 우방이 됐다.

농사는 풀을 이겨야 한다. 풀에 치이면 웬만한 곡식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오죽하면 ‘풀과의 전쟁’이라 할까. 할머니들은 ‘다른 거하고는 친해져도 어째 풀하고는 친해질 수 없냐’며 징글징글해하신다. ‘풀약’이라는 다이옥신 제초제를 뿌려 풀을 홀딱 데쳐버린다.

나 또한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봄맞이꽃이라도 어린 싹 가까이 있으면 뽑아낸다. 이른봄에 맛있다고 먹던 벌금자리, 고수덩이, 이런 봄풀도 뽑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늘 김을 맨다. 몸도 고단하지만 마음도 편하지 않지. 사람이 자기 좋자고 풀 목숨을 빼앗은 셈인데….

그러면서도 다시 김을 맨다. 작물이 자라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김을 맨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검불을 해다 덮어 풀이 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풀은 자란다. 땅이 살아나면 풀도 멋지게 자란다. 위풍당당하게. 그걸 손으로 잡아 뽑으면 땅이 부드러우니 뿌리까지 빠진다. 뽑힌 풀은 그 자리에 놓는다. 다시 땅으로 돌아가거라.

바꿔 생각하면 풀은 농사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풀이 자라 거름이 돼준다. 풀거름(녹비)이다. 호밀이나 자운영을 뿌린 뒤 갈아엎는 것도 이런 이치다. 우리도 전에는 이렇게 하다가 이제는 밭을 갈지 않고 자연스레 풀이 자라게 하고 그걸 손으로 맨다.

그러니 밭에 가면 늘 나물거리가 있다. 밭에서 손으로 김을 매고 그 가운데 먹을 나물을 고르고, 닭과 오리가 좋아하는 풀도 챙긴다. 풀이 자라는 걸 보며 여기가 얼마나 거름진지, 지금이 어느 땐지 알 수 있다. 풀을 없애는 게 아니라 풀과 더불어 살면서 풀을 알아가는 만큼 자연에서 사는 지혜도 살아나리라.

산에 오르는 이야기로 돌아가서. 봄에 산나물 하러 다니는 재미가 좋다. 혼자서 다니는 게 좋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물 하러 가는 곳을 피해 발 닿는 대로 접어든다. 안 가본 길을 가보는 긴장감도 좋다. 우리 집 둘레 산은 리기다소나무나 낙엽송을 조림한 사유림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우리 소나무인 육송이나 참나무 숲을 만나면 산 기운이 바뀌는 걸 느낀다. 천천히 걸으며 그 기운을 한껏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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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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