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토 도심
이민을 생각하는 이유로는 자녀의 교육문제 (42.3%), 국내 실업문제 및 경제난 (31.4%), 국내의 정치적·사회적 혼란 (19.7%) 순으로 꼽혔다. 이민 희망국은 캐나다(32.7%), 미국(30.5%), 호주(23.9%), 멕시코 등 중남미지역(8.9%) 순이었다.
이런 경향은 즉시 현실로 나타났다. 최근 국내 모 홈쇼핑 회사가 캐나다 매니토바주 이민 상품을 내놓자 단 80분 만에 175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며칠 후 내놓은 2차 상품도 약 600억원(추정치)의 매출을 올렸다. 신청자수는 총 2935명. 1차 때의 3배에 달하는 엄청난 반응이었다. 이는 단일 품목, 단일방송시간으로는 홈쇼핑 사상 최고의 주문매출액이었다고 한다. 상품의 매기가 대체로 침체된 상황에서 이민 상품만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왜 캐나다에 열광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불신이 극도로 팽배해 있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가 일차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도자들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모 일간신문의 기사 제목대로 ‘광풍! 탈(脫) 한국 신드롬’의 에너지가 되고 있다.
캐나다 이민 열풍에는 ‘모방적 전염’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모방적 전염은 대중의 열기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려가는 것으로 이성적 분석이나 개인의 주체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단일화된 사회에서는 이런 현상이 잦다. 실제로 캐나다 이민열풍에는 검증되지 않은 추측과 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필자는 캐나다에서 17년간 생활했다. 현재도 캐나다학 전공교수로서 캐나다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대학 재학 시절엔 한인 밀집지역인 토론토에서 11년간(1987~97) 비정규직(part time job)으로 사회복지 상담실에서 일하면서 이민 정착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극빈자 구호금(welfare), 연금, 저소득층을 위한 정부 임대 아파트 신청, 신규이민자 정착, 유학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업무에 종사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캐나다 이민자들이 겪는 고통을 생생히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필자가 체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현행 캐나다 이민제도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고자 한다.
캐나다는 과연 낙원인가
우선 객관적 지표로 알아보자. 국제연합(UN)은 매년 전세계 174개국의 평균수명, 문맹률, GDP, 보건, 여가, 범죄율, 교육지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인간발전지수(Human Development Index)’를 내놓는다. 인간발전지수는 곧 ‘삶의 질’을 의미한다. 이 순위에서 캐나다는 1990년대에 내리 6번, 그리고 2000년에 다시 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국토가 넓은 나라다. 남한의 100배나 되는 광대한 영토(998만km2)에 인구는 불과 3000만 명 정도. 자연자원도 풍부하다.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서방 선진 7개 공업국(G7)의 하나로서 사회복지제도와 교육환경이 훌륭하다고 공인받고 있다. 캐나다는 또한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미국과는 달리 테러나 범죄 발생률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낮다. 한국의 경우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중국, 일본 등 이웃 나라들로부터도 잠재적 위협을 받고 있다. ‘국가안보’란 개인의 관점에선 생명과 재산으로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안보상황은 한국보다 월등히 좋은 편이다.
그러나 캐나다에도 다양한 사회문제가 있다. 우선 지역간 경제·문화적 편차가 크다. 여러 가지 유형의 편견도 상존하고 있다. 계층간 수입격차도 매우 크다. 극빈자, 실업자, 노숙자도 많다. 낙원이 편견도, 차별도, 격차도, 인간적 소외도 없이 고루 잘사는 곳을 의미한다면 캐나다는 낙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