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광주·전남과 형제처럼 단단한 공조를 유지하던 지역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함께 탄생시켰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분당(分黨)하면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2004년 탄핵 국면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선 지역구 11석을 모두 열린우리당에 몰아줬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열린우리당에 충격적이다. 도지사는 당선됐지만 기초단체장의 경우 14개 시·군 중에서 겨우 4곳을 건졌을 뿐이다. 기초의원을 보면 민심(民心) 이반이 더 확연하다. 최후의 보루라고 믿던 전북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과거 광주·전남의 ‘말 잘 듣는 동생’쯤으로 여겨지던 전북이 이렇듯 홀로 서기에 나선 까닭은 무엇인지, 그리고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일단 보류’한 이유가 궁금해 전주행 새마을호에 올랐다. 전주는 전북의 도청 소재지임에도 KTX가 지나가지 않는다.
기차에서 만난 진영기(52)씨는 전주가 고향이라고 했다. 선거 이야기가 나오자 “전북만 왕따 돼버린 기분”이라고 하더니 “하긴, 뭐 어떻게 되겠죠. 전북은 여기서 더 나빠질 것도 없는 걸요”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북만 왕따 된 기분”
전통한옥 형상의 전주역사는 전주가 ‘전통문화의 도시’임을 은연중 알리고 있다. 역 앞에 5∼6대의 택시가 늘어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택시도 적었지만 택시를 타려는 사람도 적었다. 역 자체가 한산했다. 아니, 거리 전체가 한산했다.
한담을 나누던 택시기사들에게 다가가 “전주는 그래도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높은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안 그래요. 없어질 당인데요, 뭘” 하며 손사래를 친다. 옆에 있던 택시기사도 “전주에 해준 게 뭐 있간요. 걔네들 미워 일부러 투표하러 가서 민주당 찍었어요” 하며 거들었다.
“도지사고 전주시장이고 민주당 후보들이 조금만 더 일찍 선거운동을 시작했어도 다 뒤집어졌을 텐데, 너무 늦게 시작했어요. 촌사람들은 민주당 정균환 후보가 나온 줄도 몰랐다잖아요.”
전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선거가 며칠만 늦게 치러졌어도 당락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북의 이같은 민심 이반 원인에 대해 전북발전연구원 한영주(56) 원장은 ‘믿음에 대한 배신’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것은 전북 발전에 대한 염원 때문이었어요. 더구나 정동영이 후계자니까 적어도 전북을 홀대하지는 않을 거라 믿고 지지했는데, 정부에서 전혀 협조를 안 해줬어요. 그래서 반감이 더욱 커진 거죠.”
정동영, 정세균, 강봉균 등 전북 출신이 당의장, 정책위의장 등 주요 직책을 모두 차지했으면서도 지역 발전을 위해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인 셈이다.
전북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엄경형(39) 정책실장도 “전북의 노 대통령 지지는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단정했다. 그간의 정치적 경험에 비춰 한나라당이 전북에 뭘 해주지 않으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무슨 발전이 있었나 하는 허탈감이 들었어요. 게다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 문재인이 ‘노무현 정권은 부산정권’이라고 하고, 김두관은 ‘정동영 떠나라’고 하니까 민주당의 ‘부산정권 타도’ 주장이 먹힌 거예요. 그나마 정동영이 있으니까 이 정도 성적이라도 거뒀다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