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북한 청소년들의 영어회화 실력은 상당히 수준급이라고 소문 나 있다. 지난해 2월, 미국 ABC방송에서 유명 앵커 디안 소이어가 ‘북한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북한의 일반 중학교를 소개한 적이 있다.
영어를 가르치는 북한 교사의 영어회화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기자가 묻는 말에 학생들이 자유자재로 대답했다는 것. “금발머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금발은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한국인은 검은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금발을 가졌다는 건 외국인이라는 뜻이다”라고 대답했다. 마치 수학적 증명을 해내듯이 논리정연하게 대답을 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반면 “democracy(민주주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란 질문에 북한 학생들은 정색을 하면서 “democratic의 명사 형태”라고 짧게 대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북한 학생들은 “미국에 대해 아는 바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미국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며, 미국 영화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것이 전부다”라고 대답했다.
반미(反美)를 내세우는 북한이 영어를 철저히 가르치는 이유는 뭘까? 이씨는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영재를 모아놓은 특수학교에서 그토록 집중적으로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늘 강조했어요. ‘미국을 이기려면 일단 그놈들 말을 잘해야 한다. 말에서 지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쌍놈 영어(미국식)를 배우지 않고 본토 영어(영국식 영어)를 배운다. 영어에서 낙오되면 죽을 때까지 외국 한 번 못 나가는 인민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영어를 잘해야 해외 유학도 갈 수 있고 북한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다고 했어요.
(한국에 와보니) ‘반미주의 국가 북한에서 웬 영어를 배우냐?’고 의아해 하더군요. 그게 남쪽 학생들의 한계인 것 같아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거죠. 북한에선 영어뿐 아니라 제2 외국어로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중 하나를 선택해 통달해야 대학에 거뜬히 들어갈 수 있어요. 한반도에 눈독 들이는 오랑캐 나라 2개국 이상의 언어를 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배고픈 평범한 인민으로 살아야 한다고 겁을 줘요.”
영어로 매일 일기 써야
실제로 북한 학생의 토플 성적을 한국 학생과 비교하면 2006년의 경우 120점 만점에 평균 69점으로 남한의 72점과 큰 차이가 없다. 일본의 65점보다는 오히려 높았다. 문법보다는 말하기와 쓰기 같은 실용영어 중심으로 교육하다 보니 토플과 토익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세대 경영학부 박성호(가명·22)씨는 “영어교육은 북한의 커리큘럼이 한국의 주입식 교육보다 더 효율적이다”라고 했다. 물론 영재를 모아놓은 특수학교에 국한된 경우다.
“(특수학교에서는) 알파벳을 가르친 다음 바로 이야기식 수업을 했어요. 영어로 일기를 매일 써서 제출해야 했습니다. 영어사전을 뒤적거리면서 일기를 쓰니 금방 영어가 익숙해졌어요. 내용이 ‘사랑하는 김정일 수령님’이어서 그렇지, 영어로 말하고 쓰는 데 문제가 없었죠. 전 제1고등중학교를 다녔는데, 중등과정(중학생) 초기에 이미 영어로 일기 쓰기와 말하기가 완벽한 수준에 이르렀어요.”
반면 북한의 일반 고등중학교 출신으로 한양대 경영학부에 재학 중인 여대생 김성아(가명·21)씨는 “(북한의) 일반 고등중학교 영어교육 수준은 형편없다”고 했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 다닌 혜산시 일반 고등중학교는 영어를 적극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반면 수학 교육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어요. 남한의 수학용어는 한문이지만 북한의 수학용어는 우리말로 풀어쓴 것입니다. ‘같기식(등식)’ ‘거꿀수(역수)’ ‘더덜기법(가감법)’… 이런 식이었어요. ‘감소 함수’는 ‘주는 함수’, ‘고립점’은 ‘외딴점’, ‘공약수’는 ‘공통약수’였어요. 수학이 우리나라 말로 자세히 풀이되니 재미가 있었고 교사들 열의도 대단했어요.
반면 영어는 숙제도 없었고 (영어) 성적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영어보다는 혁명 역사를 더 많이 가르쳤고, 그것을 암기하기 전까지는 집에 갈 수 없게 했어요.”
김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뒤 1년 만에 대학에 입학했다. ‘재외국민·외국인특별전형’에 응시했고, 영어 대신 중국어를 선택해 입학하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다들 놀라워해요. ‘특별전형’이라고 해도 필답고사에서 국어 외국어 수학 시험을 다 쳤어요. 결코 쉽지는 않았어요. 외국어로 영어 대신 중국어를 선택했을 뿐이죠. 1년 만에 대입에 성공한 건 북한에서 ‘기본기’를 다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공부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사교육이 잘 발달해 도움을 받았어요. 한국 수업은 북한 수업과 달라요. 한국에서는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고 분석하기도 전에 선생이 다 풀어서 머리에 쏙쏙 넣어주는 식이지만 북한에선 그렇지 않거든요. 한국에선 정말 쉽게 공부할 수 있어요.”
현재 탈북주민이 국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전체 입학생의 2% 미만을 할당하는 ‘재외국민·외국인 특별전형’ 분야에서 ‘외국인 특별전형’에 응시해 합격하는 것이다. 탈북주민은 외국인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2009학년도 입시에서는 전국 137개 대학에서 ‘외국인 특별전형’을 거쳐 탈북주민 입학생을 선발할 예정이다. 전형 방법은 대학마다 차이가 있는데, 서류와 면접 혹은 서류 면접 필답이 혼합돼 있다. 서울시내 주요 4년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답고사를 거쳐야 한다.
연세대 교무처 관계자는 “웬만하면 다 합격하는 재외국민 특별전형과 달리 탈북자가 주 대상인 외국인 특별전형은 까다롭다”고 밝혔다. 기자가 만난 4명의 학생 중 3명은 모두 재수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다들 서울대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것. 이들은 외국어 영역과 수리 영역에서는 우수한 점수를 받았지만, 언어 영역(국어)과 사회탐구 영역에서 크게 뒤졌다고 한다. 북한에서 배운 내용과 워낙 차이가 났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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