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거짓말쟁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기가 어머니의 말을 흉내 내며 언어가 발달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머니가 아기를 훨씬 더 많이 흉내 낸다. 오히려 결정적 순간에 아기는 자신을 흉내 내는 어머니가 더 이상 자신의 이전 언어, 표정 등을 흉내 내는 것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내 비디오 자료의 어머니들은 하루 종일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를 흉내 내며 감탄을 연발할 뿐이었다.
바로 그거였다. 감탄! 인간의 어머니는 하루 종일 아이의 세밀한 변화에 감탄할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감탄과 감탄으로 비롯되는 다양한 정서적 상호작용이 원숭이를 비롯한 다른 포유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다.
아기를 처음 키우는 모든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회사를 다녀오니 아기엄마는 흥분하며 “오늘 아기가 걸었다”고 한다. 그러면 아빠는 기대에 가득 차 아기의 손을 잡고 걸어보라고 한다. 이런, 아기는 전혀 걷질 못한다.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어색해진 아기엄마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하고 있었을 때는 분명히 걸었는데…” 한다.
그 다음날 아기엄마는 아빠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 우리 아기가 “엄마”라고 분명한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아기 목소리를 들려준다며 수화기를 아기 입에 댄다. 아빠는 “엄마 해봐, 엄마, 어엄~마! ”하며 애타게 아기의 ‘엄마’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수화기 건너에선 아기가 씩씩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러다 엄마가 “야, 빨아먹으면 안 돼”하며 갑자기 아기에게서 수화기를 뺏어 말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어, 조금 전에는 분명히 했는데….”
아기의 변화에 흥분한 엄마와 실망한 아빠의 툴툴거림은 첫아기를 가진 젊은 부부에게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엄마를 웃기는 거짓말쟁이로 만든 아기는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면 걷기 시작한다. 일주일이 지나면 “엄마, 엄마” 한다. 아기엄마는 그 변화의 시작을 본 것이다. 아기에게서 아주 섬세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 엄마는 어쩔 줄 모르며 감탄한다. “어머, 얘 봐, 얘 봐! ”

원숭이 어미는 새끼를 보고 감탄할 수 있을까.
낮에는 내가 학교에서 공부할 동안 아내가 아기를 보고, 밤에는 아내가 베를린 필하모니로 출근하며 아기를 내게 ‘바통터치’했다. 그러나 함부로 갓난아이를 보겠다고 하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아내가 없는 저녁 내내, 아기와 혼자 있는 일은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혹시라도 아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이건 정말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기를 달래는 일이라고는 팔로 안아 흔들어주는 것밖에 모르니, 저녁 내내 아기를 안고 흔들어댈 뿐이었다. 팔이 빠지는 것 같았다.
나의 고통스러운 육아
잠시라도 내려놓으면 아기는 울고 또 울었다. 그 아기를 달래다 지쳐 나도 울었다. 아기가 불쌍해서 운 게 아니다. 정말 팔이 빠지도록 힘들어서 울었다. 참다못해 아기에게 소리를 질렀다. 놀란 아기는 더 크게 울었다. 나중에 보니 토한 젖이 귀로 들어가 염증이 생겨 그렇게 운 것이었다. 아, 난 그 고통스러운 아기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 것이다. 그 갓난아이에게. 지금도 가끔 그 기억이 나면, 고등학교 다니는 내 큰아들 놈에게 속으로 참 많이 미안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