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등의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성인들조차 도심 외곽의 제한상영관에서만 관람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엔 정작 제한상영관이 단 한 곳도 없어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개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봉하려면 문제로 지적된 장면들을 자진 삭제해 재심의를 통과해야만 한다. 검열 시비가 생기는 핵심 원인이다.
국제적 감독인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 레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 등도 앞서 이런 운명을 거쳐야 했다. 반면 김곡·김선의 ‘자가당착’은 최근 행정소송에서 영등위에 승소해 제한상영 결정이 취소됨에 따라 정상적(?)으로 개봉하게 됐다. 김기덕 감독 겸 제작자는 영등위로부터 받은 5가지 지적에 근거해 근친상간 등 21컷의 장면을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결국 1분40초가량의 영상을 들어냈다.
영등위의 등급 심사통계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등급분류심사를 받은 영화 1051편 가운데 청소년관람불가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작품이 각각 480편과 12편으로, 전체의 46.8%에 달한다. ‘성인전용’ 등급에 해당하는 청소년관람불가와 ‘성인전용 이상’ 내지 ‘연령 외’ 등급에 해당하는 제한상영가 비율은 2008년 29%에서 2010년 30.5%, 지난해 45.8%로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영등위는 “해마다 출시되는 영화가 크게 늘어나고, IPTV나 VOD 서비스 등 차후 부가시장을 목적으로 한 성인영화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라며 등급분류를 보수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미국 ‘X등급’과 달라
하지만 김수용 초대 위원장, 이경순 3기 위원장에 이어 지명혁 4기, 박선이 5기 위원장이 들어선 최근 4~5년 사이 영등위의 보수성이 강화된 흔적과 근거는 많다. 그간 영등위를 둘러싼 정치적 외압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하겠지만, 영등위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분위기를 탄다’는 지적은 개연성이 있다. 새 자리를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부단히 노력한 위원장이 있었다는 설도 나돈다.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심의 행정에 보수적·규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낳기도 한다.
흔히들 국내 제한상영가 등급을 미국의 ‘X등급’으로 본다. 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에는 심의 기구에서 부여하는 이런 명칭의 등급이 없다. 미국영화협회(MPAA)가 심의물인 영화와 비디오물의 지나친 외설과 폭력성 등을 문제 삼아 (연령 분류에 따른) 등급을 제외한 UR(Unrated)이나, 유사한 이유 등으로 판권 소유자가 아예 등급 신청을 포기하고 NR(Not Rated) 즉 ‘등급 없음’으로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를 X등급으로 통칭하는 것이다. NR은 ‘무등급’이나 ‘비등급’, UR은 ‘등급 외’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겠다.
이런 ‘무등급’과 ‘등급 외’가 우리의 제한상영가 등급에 해당하는 것일까.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영화법상의 검열적·위헌적 등급보류 조항을 적용해 이른바 외설·폭력영화는 시장 진출 자체를 금지했지만, 2002년부터는 완전등급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기존의 전체관람가, 12세관람가, 15세관람가, 18세관람가(청소년관람불가)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추가해 헌법상의 자유시장 원리와 표현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 나아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누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완전등급제의 핵심은 국가나 민간의 어떤 심의 법제와 기구도 (등급을 보류, 제외, 거부할 권한은 있겠지만) 특정 영화의 유통, 곧 시장 진출을 막거나 결과적으로 국민의 볼 권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