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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바텐더 알바’ 고려대 여학생의 고백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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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시간 바텐더 알바비

바텐더의 임무는 손님의 말을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잔을 채워서 술을 많이 파는 것이다. 이런 토킹바는 손님과의 대화가 관건이다. 금지사항도 알려주었다. 손님 옆에 앉으면 안 되며, 손님이 자기를 만지도록 허락해서도 안 된다. 손님이 바텐더에게 술을 강권하면 거부해야 한다. 전화번호를 손님에게 주면 안 된다.

▼ 왜 바텐더 체험기를 쓰기로 했어요?

“사실 우연한 계기였어요. 작년에 한 주간지에서 ‘노동OTL’이라는 특집기사를 본 적 있어요. 기자들이 직접 감자탕집, 공장 등에서 한 달간 일하며 체험한 이야기를 쓴 기사였는데 그 어떤 노동 관련 기사보다 마음에 남았던 것 같아요. 제 친구 중 상당수가 등록금 때문에 ‘야간 알바’를 하거든요. 이유는 단 하나. 시급이 좋으니까. 실제 어떤지 궁금해서 체험기를 쓰겠다고 했죠. 그렇게 한 달 체험이 끝난 후 기사를 쓴 거예요.”

▼ 체험한 곳은 어떤 곳이었나요.



“고려대 앞 12년 된 바예요. 스탠드 좌석이 15개, 4인석 테이블이 7개 정도 있고 양주, 맥주, 와인을 파는데, 양주는 12만 원부터 시작하는…. 고려대생, 대학원생, 교수 그리고 고려대 졸업한 직장인이 많이 찾아요.”

▼ 처음 면접 봤을 땐 어땠어요?

“인터넷 알바 사이트에서 공고를 보고 갔는데, 사장이 제가 ‘고대생’이라고 했더니 싫어하더라고요. 고대생들은 불성실하고 금방 그만둔다며…. ‘등록금이 급하니 열심히 하겠다’고 매달린 끝에 1주일에 4번 일할 수 있게 됐어요.”

▼ 시급은 얼마?

“인터넷 알바 사이트 공고에서는 시급 1만2000원이라 했는데, 실제론 첫달에는 8000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일한 지 한 달 넘어 9000원이에요. 1주일에 4번, 4~5시간씩 일하니 첫달 월급이 65만 원 정도였어요.”

▼ 반년 일하면 390만 원이네요. 이번 학기 등록금은 얼마였나요.

“350만 원이요. 저도 생각했어요. 총 440시간 밤잠 안 자고 바텐더 해야 350만 원을 모을 수 있어요. 근데 생활비도 많이 들고, 스펙 쌓으려면 학원도 다녀야 하고,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월세도 내야 하는데, 어림없죠.”

올해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연간 736만 원. 한 학기로 환산하면 368만 원이다.

▼ 학교생활하며 바텐더 알바하는 것만도 힘들 텐데,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려면 추가 알바를 하거나 장학금을 받아야 하네요.

“그렇죠. 오후 9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까지 근무하고, 다음 날 9시 오전 수업에 가려니 정말 너무 힘들더라고요. ‘왜 해가 이렇게 빨리 뜨나’ 원망스러울 정도로.”

▼ 바텐더는 바에서 심부름해주고 술 따라주고 이야기만 하고…. 그리 힘들진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아유, 아니에요. 서비스직과 일용노동직을 합쳐놓은 일이에요. 손님이 있을 땐 이야기를 하지만, 손님이 없을 땐 다른 일을 해요. 진열장 술병을 닦는 것만 해도 큰일인데 술병 50개를 일일이 닦는 거예요. 무거운 술병을 하도 들었다 놨다 해서 팔이 덜덜 떨렸어요. 마감이 늦은 날은 새벽 5시에 끝나기도 했어요. 수업에 가려면 2시간 반밖에 못 자는 거예요.”

▼ 사실 한 달 체험으로 바텐더의 애환을 얼마나 제대로 느꼈을지 의문이에요.

“제가 이 일을 ‘진짜로’ 하고 있다고 느낀 게, 일이 없는 날은 안 나와도 된다는 연락이 오는데 그러면 맥이 풀리는 거예요. 머릿속에 그날 못 버는 일당이 떠오르고…. 한번은 계산 착오 때문에 사장한테 혼이 났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때 손님이 ‘얼음 좀 주세요’ 하고 절 부르는데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네~’ 하고 대답했어요. 어느샌가 감정을 숨긴 채 일하는 게 몸에 뱄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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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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