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교생과 교직원이 ‘컴도사’인 곳, 대한민국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버티고 있는 막강 디지털 파워. 동명정보대학교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취업률 전국최고, 전국대학평가 3부문 1위. 지방의 신생대학이라는 한계를 극복한 동명정보대가 지닌 경쟁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부산시 남구 용당동 용마산 자락에 자리잡은 9만3135㎡의 그리 넓지 않은 교정이지만 토속적 분위기를 느낄 만한 곳이 이 밖에도 여러 곳 있다. 복합강의동 앞에 자리잡은 ‘애두름공원’과 그 앞의 ‘선비골약수’는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1996년 3월 개교한 신생대학답게 현대식 건물이 우뚝 솟아 있지만 구석구석 자리잡은 이런 문화공간들은 정보와 기술의 주인이 사람이며, 곧은 심성의 사람을 키우는 것이 대학교육의 목적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는 학교
그러나 십이지신거리와 애두름공원, 정문의 장승 등을 놓고 동명정보대 내부에서는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십이지신상에 대해 학생들 가운데는 “미신이다” “밤길에 그 앞을 지날 때 무섭다”는 의견을 교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애두름공원이나 장승에 대해서도 ‘예산낭비’라는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학교측의 대응이 흥미롭다. 일부의 의견이라며 묵살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이를 해명하고 오해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설득했던 것이다.
학생들의 불만에 학교측이 즉각 답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학생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으면 적극 설득하는 민주적 학풍이 자리잡고 있는 대학, 동명정보대는 내부 구성원끼리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막힌 곳이 없다. 이런 남다른 교풍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동명정보대를 이해하려면 건학의 모태인 학교재단을 알아야 한다. 학교재단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학을 설립하고 꾸려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그 대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1980년까지 부산 경제를 이끈 동명목재그룹의 회장인 고(故) 강석진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동명문화학원은 1970년대 말 이미 동원공업고등학교(현 동명정보공업고등학교)와 동원공업전문대학(현 동명대학)을 세워 부산의 대표적 사학재단으로 자리잡았다.
1984년 작고한 강석진 동명문화학원 초대 이사장은 생전에 4년제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었다. 1978년 동원공고를, 이듬해인 1979년 동원공전을 설립한 데 이어 강이사장은 지역 상공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4년제 대학인 부산외국어대학 설립을 구상하고 이를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로 4년제 대학 설립의 꿈을 잠시 접어야 했는데 1980년 7월 동명목재의 도산이 그것이다. 동명문화학원이 발간한 ‘동명문화학원 20년사’에는 동명목재상사 부도 당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동명목재의 도산
“1980년 5월, 5·17, 5·18사태로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동빙(凍氷)의 계절로 되돌아가는 형국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은 신군부가 새로운 국가목표와 정치적인 지도이념을 내세워 이 목표와 이념 아래 정치적인 신질서 수립이라는 명분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라는 초헌법적 기구를 설치하고, 이 국보위가 국정 전반을 전단하는 형세였다.
국보위에서는 6월 초 정계의 숙정작업을 일단 마무리한 다음 우리 사회 일각에서 지탄받고 원성이 높았던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는 정경유착적 모리정상배의 비리와 부조리를 바로잡고 반사회적 악덕기업인을 척결한다는 명분하에 그 대상의 하나로 동명목재상사 사주 가족의 재산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강석진 사장, 부인 고고화씨, 아들인 강정남 사장 세 사람을 보안사 부산지부로 연행 구금한 후 가택수색과 함께 동명목재상사 임직원을 연일 연행해 신문했다.
6월21일 보안사는 강석진 사장 일가족 세 사람의 보유주식과 주식 판매대금 중 사용잔액 18억원을 압류 처분하였다. 이로 인해 회사의 만기어음과 수표결제자금이 고갈되어 6월26일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동명목재상사를 부도처리하였다. 너무나 전격적이고 부당한 처사라 망연자실하면서도 7월16일, 강석진 사장과 강정남 동명산업 대표이사의 연명으로 기필코 자력으로 회사를 살려 정상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진정서를 국보위 상임위원장 전두환 장군 앞으로 보냈다. 그러나 국보위에서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7월26일 동명목재 및 계열사에 대한 최종 부도처리 대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당시 동명목재의 부도처리를 둘러싸고 구구한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강석진 이사장의 외고집이 신군부의 비위에 거슬렸다”는 풍문이 그 대표적인 예. 강이사장의 아들인 강정남씨는 1988년 청와대와 국회 5공비리 청문회에 제출한 청원서와 동명처리 전말서에서 “강석진 회장이 악덕기업가로 지목되어 표적조사를 받게 된 이유는 당시 부실기업의 하나로 정부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경상남도 거제의 옥포조선소와 서울 명문사학의 하나인 성균관대학교의 부실한 재단을 동명목재가 인수, 경영하라는 정부고위기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빌미였다”고 진술했다.
4년제 대학 설립을 눈앞에 두고 외부요인으로 좌절된 고 강석진 이사장의 꿈은 후진들에게 이어졌다. 강이사장이 사망한 후 동명문화학원은 장상문 2대 이사장에 이어 3대 강기수 이사장, 4대 배명인 이사장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1993년에는 1980년 이후 동명문화학원의 숙원사업인 4년제 대학 설립을 인가받았고 3년여의 치밀한 준비 끝에 1996년 동명정보대학교를 설립하고 첫 입학생을 맞아들였다.
지금도 적지않은 지방 사립대학들이 재단과 학교·학생 간의 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갈등의 배경에는 대학운영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는 사학재단의 그릇된 태도가 자리잡고 있는데, 동명정보대에서는 재단과 학교 사이에 이런 갈등과 반목이 없다. 신생학교인 까닭에 몇 해에 걸쳐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 넉넉하지는 않아도 재단이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학사행정에는 관여하지 않으면서 대학이 제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에 묵묵히 뒤를 돌봐주는 재단, 동명정보대가 신설대학이면서도 정보통신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배경에는 재단의 이런 숨은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외압으로 좌절된 창업자의 유지를 이어받아 우여곡절 끝에 이룬 4년제 대학 설립이기에 그저 그런 대학을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동명정보대는 처음부터 치밀한 준비를 거친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정부는 동명문화학원에 4년제 산업대 설립을 허가했다. 산업대란 산업사회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의 연마를 위한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하는 성실하고 유능한 전문직업기술인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개방대학이다. 이런 목적에 따라 설립되므로 교원 임용시 산업체 근무 경력자의 비율을 전체 교원의 절반이 되게 하고, 입학자를 선발할 때도 산업체 근로자를 특별전형으로 뽑아야 하는 등 제한을 받는다.
1993년 7월1일 강정남 상임이사를 본부장으로 가칭 ‘동명산업대학교 개교추진본부’가 발족됐다. 본부 발족과 함께 본격적인 학교 설립계획을 추진하는데 1994년 11월 지하 1층 지상 12층 연면적 6873평 규모의 대학본부 건물과, 같은해 12월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2252평 규모의 공학관 건물 신축공사에 착수했다.
설립인가가 난 이후 설립 준비팀은 3년여에 걸쳐 외국대학들을 상대로 벤치마킹 작업을 벌였다. 주로 미국과 일본의 대학을 집중 검토했는데 이 과정을 거쳐 1995년 정보통신 분야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플랜도 만들어졌다.
한 번에 5명에서 10명의 교수와 교직원들이 해외출장을 나갔다. 미국의 보스턴 뉴욕 LA 실리콘밸리의 정보통신 분야 특화대학을 집중 탐구했다. 국내의 삼성연구소, LG경영연구소 등에 의뢰해 향후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방향과 필요한 인력 분야에 대한 시장조사도 벌였다.
12 대 1의 경쟁률
마침내 1996년 3월1일 국내 최초의 지식정보특성화 대학으로 문을 열었다. IT분야 특성화대학이라는 동명정보대의 특징은 개교 당시 학부와 학과 편성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학부는 크게 정보공학부, 정보경영사회학부, 정보조형학부 3개로 나뉘었는데 정보공학부에는 로봇시스템공학과 정보통신공학과 컴퓨터공학과를, 정보경영사회학부에는 경영정보학과와 국제유통학과 매스컴학과 등 3개과를 설치했다. 그리고 정보조형학부에는 컴퓨터그래픽학과와 패션디자인학과를 두었고 별도로 건축학과를 설치했다. 이렇게 해서 설립 첫해 3개 학부 9개 학과에 주간 520명, 야간 320명, 총 840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여 문을 열었다.
설립 첫해 정보화 특성화 대학이라는 동명정보대의 선택은 지역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동명정보대는 첫 입학생을 뽑는 1996년 입시에서 전국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전체 과 평균 경쟁률이 12 대 1이었다. 해가 갈수록 경쟁률은 낮아지는 추세지만 최근 입시에서도 신입생들은 과별로 차이가 있지만 평균 4∼5 대 1이 넘는 치열한 경쟁의 문턱을 넘어서야 동명정보대에 들어올 수 있다.
그동안 학과도 늘어 멀티미디어 공학과, 국제관광학과, 건축공학과가 신설돼 현재는 4개학부 12개과 체제가 됐다.
IT분야 특성화 대학을 표방한 동명정보대의 전략은 졸업생들의 취업에서도 성공적이었다. 2000년 첫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취업률이 무려 93%로 전국 최고였다. 이런 취업률을 바탕으로 그해 중앙일보가 실시한 전국대학평가에서 동명정보대는 교육여건·시설·취업률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실 경제·사회적 여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졸업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대학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대학이 졸업생들의 취업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는 내실있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동명정보대는 교육인프라 시설 및 설비 분야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설립 때부터 본관건물을 국내 대학 최초로 ICS(In- telligent Campus System)로 건설했다. 본부건물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슈퍼컴퓨터(IBM RS 600/SP2)는 국내 최고수준을 자랑하는데 1초에 132억 번을 계산해낼 수 있는 13기가 플롭스급이다. 슈퍼컴퓨터는 멀티미디어 서버 및 랜더링 머신으로 활용함으로써 본격적인 디지털 도서관 및 사이버대학도 선보일 계획이다.
부산의 정보스위칭센터
동명정보대는 T3급(45Mbps) 초고속정보통신망으로 외부와 연결돼 있는데 이 통신망을 통해 대학 본부의 멀티미디어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콘텐츠와 슈퍼컴퓨터를 통한 대용량 콘텐츠, 디지털화된 각종 데이터의 초고속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런 시설은 부산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동명정보대는 부산지역의 모든 대학에 국가 기간전산망을 연결해주는 정보스위칭센터 구실을 맡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교내망도 ATM방식으로 재구축하여 정보유통의 멀티미디어화를 선도하고 있다. 무선 랜망을 통해 올 연말을 목표로 교내 어디서나 무선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 구축작업도 한창이다. 한마디로 동명정보대는 설립할 때부터 거대한 정보인프라를 바탕그림으로 품고 만들어진 대학이다.
동명정보대에서 가장 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대학이니만큼 활기 찬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어디서나 ‘발에 차이는’ 물건이 컴퓨터다. 40명이 한번에 워크스테이션을 활용하며 수업할 수 있는 강의실만 40개다. 이 가운데 교수용 스마트보드와 학생용 워크스테이션에 LCD모니터를 갖춘 첨단 멀티미디어강의실이 10개인데 강의실당 약 2억원이 들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IT강의실을 능가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그 결과 대학의 고전적 정취인 낡은 칠판과 먼지 날리는 분필을 동명정보대에서는 구경할 수 없다. 디지털화된 교실에서 교수들은 모든 건물을 관통하는 초고속통신망 덕에 원격강의와 화상강의가 가능하며 부설기관인 인터넷방송국을 통해 어느 곳에서나 원하는 교수의 강의를 보고 들을 수도 있다.
첨단 인프라는 동명정보대만의 특성화된 연구소들을 가능하게 했다. 그 대표적 연구소가 ‘컴퓨터응용 신발지식연구소’(소장 노태정 로봇시스템공학과 교수).
지금은 빛이 바랬지만 부산은 한때 세계적인 신발 도시였다. 과거 화려했던 신발도시의 명성을 되살려보자는 지역의 여망을 수렴해 동명정보대의 슈퍼컴퓨터 및 IT 관련 인프라, 연구자재와 교수, 대학원생 등의 인력을 활용해 인체공학을 응용한 고기능성 신발을 만들려는 것이 연구소의 설립 목적이다.
1999년 7월에 설립된 이 연구소는 인체공학응용 고기능신발 개발, CAD/CAM 및 금형설계기술 개발, 생산자동화 및 자동화기계 개발, 신발 디자인 개발, 경영 및 마케팅 개발 등 5개 분과로 구성돼 있고 15명의 교수와 30여 명의 대학원생이 프로젝트별로 참여해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밖에도 건축도시연구소(소장 신태송 건축공학과 교수), 정보공학기술연구소(소장 최영복 정보통신학과 교수), 사이버경영연구소(소장 이동대 유통경영학과 교수), 정보디자인연구소(소장 이상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등이 학과별 특성을 바탕으로 현실산업에서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개방대학으로서 평생교육의 현장이라는 건학이념을 잘 구현하고 있는 곳이 동명정보대 부설 정보기술원(원장 윤수한 공학박사)이다. IT업계에서는 동명정보대보다 동명정보대 부설 정보기술원이 더 유명할 정도로 업계에서 정보기술원의 명성은 자자하다. 1998년 개설한 이래 해마다 250명 가량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는데 이들의 취업률은 95%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정보기술원을 거쳐간 원생들을 학력별로 보면 대졸이 80%, 전문대나 대학원 졸업 이상이 10%, 기타가 10%다. 이들 원생들은 정보기술원이 자체 개발한 커리큘럼과 교재로 수업을 하며 10개월(1700∼2000시간 교육) 과정을 철저하게 실무 위주로 배워 졸업과 동시에 현업에서 일하는 데 지장이 없는 전문기술인력의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정보기술원의 교과과정을 살펴보면 데이터베이스 개발자과정, 웹프로그래머과정, 네트워크프로그래머 과정, 시스템 엔지니어과정, 3D게임그래픽 아티스트과정, 3D게임프로그래머 과정 등으로 철저하게 현장에서 요구하는 IT핵심인력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수한 원장은 “IT산업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몇 달짜리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는 IT산업의 진정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정보기술원에서는 제대로 된 기술인력을 배출한다는 사명감으로 교육하고 있다. 10개월 이상 실무 위주로 교육하는 기술원은 우리가 유일하다. 이번에 새로 개설하는 유닉스보안과정의 경우 12개월 짜리 장기과정인데 기간이 긴 만큼 철저하게 배우고 익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첨단 설비에 수시로 업그레이드되는 시설과 교과과정, 이쯤 되면 이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과연 어느 정도의 수준일지 궁금해진다. 지난해 12월8일 취임 이후 정순영 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3년 이내에 포항공대를 따라잡겠다”고 말해왔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학교시설과 교수진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대학의 수준을 평가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합격자의 수능 점수 커트라인을 그 대학의 서열을 정하는 척도로 활용한다. 이런 ‘세속적’ 기준으로 봐도 동명정보대는 부산의 대표적 사립대학 수준은 이미 따라잡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아리방도 네트워크화된 학교”
그러나 교정에서 만난 동명정보대 학생들은 “입학 때의 실력으로 이 대학 학생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입학 이후 쑥쑥 성장하는 자신들의 실력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배경한(27·멀티미디어공학과 3)씨는 “부산뿐 아니라 우리나라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동아리방에서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은 우리가 유일 할 것”이라며 “이런 환경에서 실력이 느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박민하(여·22·경영정보학과 4)씨는 “부산에도 멀티미디어 대학을 표방한 대학이 있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을 접하는 것이 일부 학과에 한정돼 있다. 우리 대학은 입학만 하면 컴퓨터와 인터넷은 전교생의 생활의 일부가 된다. 넷맹도 입학만 하면 컴퓨터 도사가 되는 게 우리 대학이다”고 자랑했다.
학생들이 느끼는 자부심은 대단하지만 동명정보대는 학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학교로 알려져 있다. 올해도 등록금을 5.8% 인상했는데 ‘과다한 인상’이라는 학생회와 ‘적절한 인상’이라는 학교 사이에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측과 학생회가 충돌하는 극한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등록금이 비싸지만 그만큼 시설투자 등에 돈을 쓸 뿐 낭비하지 않는다”는 학교측에 대한 신뢰가 자리잡고 있는 점이 이채로웠다.
박민하씨는 “비싸다고는 느끼지만 그만큼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어학연수와 해외탐방 등에 학교지원금이 나왔는데, 그런 식으로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어서 큰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무엇보다 자부심을 갖는 대목은 민주적인 학풍이다. 장성정(23·로봇시스템공학과 3)씨는 “얼마 전에 게시판에 어느 학생이 ‘어느 건물에 형광등이 나갔다’고 글을 올렸는데 관리과에서 즉각 ‘조치하겠다’는 답을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글을 올린 학생이 ‘즉각적인 조치에 놀랐다’는 글을 올렸다. 이런 식으로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어느 대학보다 활성화돼 있다”고 말했다.
첨단시설에서 인터넷과 컴퓨터를 마음껏 접하고 네티즌으로서의 예절과 문화를 익혀가는 대학, 과연 이 대학의 학생들은 동명정보대가 3년 안에 포항공대를 따라잡는다는 ‘구호’를 어떻게 생각할까. 한 학생은 “3년이라는 시한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지금처럼 발전한다면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이버 대학, IT기술 특성화대학, 산업현장이 요구하는 전문 기술인력 양성 등 이 대학이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를 나타내는 ‘금속성’ 표현의 숲 속에서 인성교육이 숨쉴 공간이 있기나 한 걸까. 동명정보대의 구성원을 만나는 도중 느낀 아쉬움이었다.
그런데 인성교육은 뜻밖에도 조용히 실천되고 있었다. 첨단 테크노 대학을 지향하면서도 동명정보대는 건설단계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학교의 문턱은 휠체어가 다니기 쉽게 낮췄고 화장실마다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시설을 갖췄다. 그 결과 서울에서부터 턱 낮은 대학을 찾아 부산까지 유학 온 장애인 학생이 있을 정도다. 현재 동명정보대에는 19명의 장애인이 재학중이다.
동명정보대는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의 농촌활동도 지원하고 있다. 정보대라는 특성에 맞게 학생들은 농활 도중 해당 농촌지역의 PC를 점검해주기도 하고, 학교의 컴퓨터 교체로 남아도는 PC를 농촌지역에 무상으로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동명정보대의 영문 이니셜을 딴 ‘TIT장학회’다. 신설학교인 까닭에 동창회도 없고 동창들이 후배들을 위해 내놓은 장학금도 전무한 것이 현실. 바로 이 일을 교수와 교직원들이 하겠다고 나선 것이 TIT장학회의 설립 취지다. 지난 8월부터 모금을 시작한 교수·교직원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이 장학회가 현재까지 모은 돈은 3000만원. 김도근 기획홍보실장(경영정보학과 교수)은 “젊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자발적인 장학회로 100억원을 목표로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이 대학이 첫 직장인 젊은 교수·교직원들의 학교사랑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김실장은 “재단의 건학이념이 순수하고 맑다. 그렇다 보니 대학 운영이 투명하다. 교수 임용에서도 전혀 잡음이 없다. 그러니 주인의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교직원 모두가 우리가 잘해야 대학이 잘된다는 생각으로 뭉쳐 있다”고 말했다.
2003년 입시에서부터 대학에서 선발할 학생 수와 지원자 수가 같아진다고 전망하고 있다. 200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경쟁에 진 대학이 퇴출당하는 사건도 발생할 예정이다. 따라서 일부 명문대학을 제외하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대학의 도태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도태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다수 대학들이 생존 비법을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2001년 8월 말, 부산 용당동의 동명정보대학교 교정 어디에서도 그런 어두운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변화와 함께 시작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대학만이 갖는 여유, 교정에는 바로 그 여유가 넘쳐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