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격당하면 경호대상자 몸 낮추는 게 급선무
- 화려한 발차기는 금물, 단순한 기술로 승부
- 회전하고, 꺾고, 던지고, 밀어내고, 엎어뜨려라
- 흉기 공격은 쳐내지 말고 막아야
- 외상(外傷) 남기는 주먹보다 손등, 손목, 팔굽 활용
대경대 경호시범단의 경호훈련.
시범을 한 무술인은 두 부류였다. 한쪽은 대한특공무술협회 소속 특공무술 유단자들, 다른 한쪽은 한국체육대학교 경호시범단 학생들이었다.
경호시범단과 특공무술팀의 시범 내용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기본 동작과 겨루기, 격파 등에선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특공무술팀의 몸놀림이 조금 더 빠르고 과격했고, 고공 발차기 등 고난도 기술에서도 앞선 편이었다. 경호시범단은 경호상황을 설정하고 펼치는 경호무술에서 특공무술팀과는 차별된 면모를 보여줬다. 여러 명이 경호대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침입자를 차단하고 제압하면서 경호대상을 감싸는 동작이 인상적이었다.
시범장엔 아랍인 10여 명이 눈에 띄었다. 해마다 아랍 기업인, 언론인을 대상으로 문화교류 행사를 여는 한국중동협회(회장·한덕규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교수)의 초청으로 방한한 언론인들이다. 이날 시범은 한국중동협회가 한국경호안전진흥원에 방한 중인 아랍 언론인들에게 한국의 경호무술을 보여줄 것을 요청해 성사된 것이다.
경호학 권위자인 한국체대 김두현 교수.
경호무술이란 말 그대로 경호에 쓰이는 무술이다. 일반 무술은 자신을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경호무술은 자신이 아니라 경호대상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다. 즉 자신은 다치더라도 경호대상의 안전을 확보했다면 훌륭한 경호무술이다. 반대로 적을 제압했더라도 그 과정에 경호대상이 다치거나 죽었다면 쓸모없는 경호무술인 셈이다.
“경호무술이란 게 어디 있냐”
‘경호무술은 신체의 전부를 사용해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경호기법이 완성되는 종합적인 무술이다. 또한 경호무술은 다양하게 전개되는 경호상황에서 돌발사태 발생시 그 상황에 적절한 기술을 사용해 사태를 제압하는 것으로 경호대상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사용되는 무술이다.’(장수옥·김두현 공저 ‘특공무술 이해’)
‘경호무술이란 경호대상의 신체 및 생명에 대한 위험 또는 공격에 대하여 방어하는 호위호신 무술이다’(장명진 저 ‘경호실무’)
그렇다면 경호무술은 독자적인 무술인가. 아니면, 기존 무술에 경호기술을 결합한 혼합무술 또는 변형무술에 지나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는 학계와 무술계의 의견이 엇갈린다. 경호학 교수들은 대체로 후자의 견해를 보인다. 아직 경호무술이 널리 보급되지 않은 탓인지 무술계에서도 대체로 경호무술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경호무술이란 게 어디 있느냐”고 그 실체를 부인하는 무술인도 있다.
9월 24일 서울 돈암동 대한특공무술협회 중앙관에서 경호무술을 펼치고 있는 한국체대 경호시범단.
경호무술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호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체대 김두현 교수는 경호학의 권위자로 통한다. 그가 1995년에 펴낸 ‘경호학개론’은 경호 분야 연구자들의 필독서다. 9월26일 김 교수를 만나 경호와 경호무술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김 교수는 청와대 경호실 출신이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경호실 법무담당관으로 재직했다. 1995년 경호실에서 나온 후 한국체대 교수로 부임했다. 이듬해엔 한국경호경비학회를 창립, 1∼3대 회장을 지냈다.
한국체대 안전관리학과는 국내 최초의 경호 관련 학과다. 경호학과라고 이름붙이지 않은 것은 ‘경호’라는 용어에 대한 부담 탓이었다.
하지만 정작 한국체대 안전관리학과에 영향 받아 생겨난 다른 대학들의 경호 관련 학과에는 ‘경호’라는 명칭이 붙었다. 가장 흔한 학과 이름으로는 경호학과, 경찰경호과, 경호비서(학)과 등이 있다.
한국체대 안전관리학과는 올해 신입생을 뽑지 않았다. 체육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생긴 지 10년이 지난 학과를 없애는 명분으로 약하다는 시각도 있다.
“경호에서 무술은 보조수단일 뿐”
김 교수 이론에 따르면 경호에는 4대 원칙이 있다.
첫째, 3중경호(중첩경호) 원칙이다. 선진국가의 요인(要人) 경호의 공통점은 3중경호다. 3중경호는 경호대상자가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근접경호, 중간경호, 외곽경호로 나뉜다.
둘째는 두뇌경호. 김 교수는 “경호는 무술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무력으로 경호대상자의 안전을 도모하기보다는 사전에 치밀한 계획과 준비로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다. 훌륭한 경호는 이처럼 적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셋째는 방어경호다. 김 교수에 따르면 경호는 방어이지 공격이 아니다. 방어경호란 경호대상자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경호대상자의 머리를 숙이게 하거나 완력으로 안전한 곳으로 인도해 위험을 모면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긴급상황 발생시는 경호대상자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무기사용 등 공격보다는 방어 위주의 엄호가 필요하다.
넷째는 은밀경호. 경호란 은밀하게 실시해야 한다. 경호요원은 은밀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행동반경을 언제나 경호대상자의 신변을 엄호할 수 있는 곳에 한정하는 한편 위기시에는 신속하게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며 혼란 없이 다음 임무를 수행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김 교수는 “경호에서 무술은 보조수단일 뿐”이라며 “무술을 사용하고 권총을 쏠 정도면 실패한 경호”라며 예방경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무술이 경호의 기본 요소임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경호무술은 위해(危害)를 피하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경호대상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 수단이다. 따라서 경호무술의 수준은 최소한 1대 1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하고 어떠한 위해자도 능히 방어하고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복잡하고 화려한 고난도 기술보다는 단순하면서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김 교수가 지도하는 한국체대 경호시범단은 학생 동아리로 2001년에 창단됐다. 40여 명의 구성원 모두 무술 유단자로 기존에 자신이 익힌 무술을 바탕으로 경호무술을 연마하고 있다. 주로 대학가를 돌며 시범행사를 열고 있는데, 지난해 시범단 학생 중 2명이 청와대 경호원 시험에 합격하는 ‘경사’를 맞았다.
김 교수는 지난해 한국경호안전진흥원을 창립했다. 신변보호, 테러, 폭파 등 경호 전문가 20명이 회원이다. 주요 사업은 경비업체 운영자 교육, 경호보안 컨설팅, 경호경비 연구 등이다. 아랍 국가로부터 민간경비사업 진출을 권유받은 한국경호안전진흥원은 현재 이집트의 경호 관련 기관과 경호교육 지원, 경호지도자 파견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칼 차내는 건 금물”
근접경호 전문가인 대경대 장기붕 교수는 청와대에서 14년간 대통령을 수행 경호했다. 5인 경호시 기본 대형. 경호대상자(여학생) 바로 뒤에 선 사람이 경호책임자다.(오른쪽아래)
군중 속에서 침입자가 나타나 칼로 공격할 경우 제압하는 법을 실기로 보여주고 있는 장기붕 교수.
장 교수는 20년간 경호실에서 근무했는데, 그중 14년을 대통령 수행경호에 바쳤다. 수행경호는 ‘그림자 경호’라고도 한다. 1980년에 경호실에 들어갔으니 모신 대통령만 4명이다. 9월28일 그를 만나기 위해 경북 경산으로 향했다.
장 교수는 이날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 연속 강의가 있었다. 사전에 경호무술 실습강의 참관을 부탁해둔 터였다. 선입관이 작용했는지 몰라도, 장 교수의 첫인상은 선이 굵은, 전형적인 무도인이었다. 눈매가 날카롭고 안면 골상이 단단해 보였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가 옷밖으로 내비쳤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피습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커요. 외형적인 경호에 치중한 결과죠. 경호대상자가 부담스러워하는 경호를 펼치면 안 됩니다.”
장 교수는 무술의 가치를 전통문화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로 나누었다. 경호무술은 실용적 가치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가 꼽는 대표적인 실용무술은 특공무술과 합기도. 둘 다 경호에 도움이 되는 무술인데 굳이 따지자면 특공무술이 조금 더 실전적이다. 특공무술, 합기도 등에 경호기술을 덧붙인 게 장 교수가 규정하는 경호무술이다.
경호무술은 비무장 경호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위해상황에서 무장경호, 즉 총기로 대응하는 것은 자칫 경호대상이나 주변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 따라서 경호원은 가능하면 육탄방호로 경호대상을 보호하는 동시에 범인을 제압해야 한다. 장 교수는 “무장경호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다.
비무장 경호술의 유형으로는 방호술, 제압술, 체포 및 호송기술, 보호술이 있다. 먼저 방호술은 적의 공격을 차단하면서 피경호인, 즉 경호대상을 감싸는 것이다. 구체적인 기술로는 상단 태클, 하단 태클, 백(back) 태클, 공중부상 따위가 있다.
“차군, 술자리에 총 차고 오지 마”
제압술은 방호술만으로는 무력화되지 않은 범인을 격투 등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태클을 비롯해 기본 무술인 주먹 지르기와 발차기, 각종 꺾기 기술이 이에 해당한다. 체포 기술은 말 그대로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하는 데 필요하다. 관절 꺾기, 수갑술, 포박술 등이 있다.
대경대 경호시범단의 고공격파 시범.
“일반 무술과 경호무술은 달라요. 예를 들어 태권도 선수는 상대가 칼로 공격하면 발로 칼을 차냅니다. 하지만 이런 동작은 경호에선 금물이에요. 칼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죠. 자칫 경호대상자에게 상처를 입히면 적의 공격을 막았더라도 실패한 경호가 됩니다.”
장 교수를 따라 체육관에 들어서자 검은 도복을 입은 학생 수십 명이 강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복 상의 등판에 ‘특공무술’이라는 붉은색 글자가 선명했다. 이들과 별도로 체육관 한가운데에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시범단 학생들이 대형을 갖춰 서 있었다. 여학생 2명을 포함해 모두 12명. 대부분 1학년인데, 각종 무술 3단 이상의 유단자들이라고 한다.
먼저 5명의 남자가 여자 한 명을 보호하는 경호상황. 총을 든 침입자 2명이 나타나자 조를 나눠 한쪽은 총을 꺼내 상대를 제압했고 다른 한쪽은 경호대상자를 감싸고 피신시켰다. 총소리와 매캐한 화약 냄새가 실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발차기, 손목 꺾기, 손목 잡아 넘기기 등 기본무도 시범이 있었다. 기본무도는 응용동작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좁은 공간에서 작은 힘으로 상대를 빠르게 제압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다. 이런 기술이 가장 잘 발달한 무술이 바로 특공무술이다.
그 다음엔 덤블링, 공중회전 낙법, 교차낙법 시범이 이어졌다. 낙법 시범에서는 무릎 꿇고 고개 숙인 채 나란히 몸을 잇댄 8명을 뛰어넘는 고난도 기술이 돋보였다.
이어 격투 상황. 여자 한 명과 남자 2명, 남자 한 명과 남자 3명의 대결이 펼쳐졌다.
마지막으로 격파. 먼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연속격파 시범을 했다. 옆차기, 뛰어앞차기, 뒤돌려차기, 360도 회전 앞돌려차기 등 다양한 발차기 동작이 선보였다. 이어 4~5m 높이의 고공격파가 있었다. 3명이 맞잡은 손을 디딤대 삼아 공중제비로 뛰어올라 두 발로 송판을 격파했다.
장 교수는 “실제 경호상황에서는 조그마한 실수라도 있으면 안 된다”며 근접경호의 5대 원칙을 소개했다. 두뇌작용, 고도의 집중력, 촉수거리 유지, 지휘권 단일화, 지형지물 이용이 그것이다. 촉수거리란 경호대상자에게 언제든 손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절대안전구역 확보 차원에서 누구한테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지휘권 단일화는, 경호원은 경호 책임자 외에는 누구의 지시도 받아선 안 된다는 뜻이다. 여기엔 ‘경호 사용자’도 예외가 아니다. 지휘권 단일화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0·26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최근접 거리에서 수행한 차지철 경호실장은 권총을 차고 있지 않았다.
화려한 발차기 대신 짧고 강한 로킥
“박 대통령이 차 실장에게 ‘차군, 자네 쓸데없이 술자리에 총 차고 오지마’ 했대요. 잘못된 지시였죠. 대통령이라도 경호에 관여하면 안 됩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경호원을 맘대로 못 바꿉니다.”
근접경호에서는 화려하고 복잡한 기술이 필요 없다. 오히려 짧고 간단한 기술이 요긴하게 쓰인다. 장 교수는 “침입자가 (경호대상자에게) 접근할 경우 경호원은 무조건 (침입자 쪽으로) 몸을 들이밀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일반 무술과 경호무술은 차이가 난다. 일반 무술에서는 상대가 공격해올 경우 막거나 피해야 한다. 하지만 경호무술에서는 경호대상자의 몸을 낮춰 표적범위를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 특히 근접경호에서 그렇다. 아울러 경호대상자가 현장에서 벗어난 후에는 위해요소를 끝까지 제압해 후환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경호과정에서 타격은 짧고 강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번에 정확한 타격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호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발차기를 멋지게 할 필요가 없다”고 역설했다. 짧고 빠른 로킥이 훨씬 유용하다는 것.
3인 경호대형에서 침입자가 칼로 공격하는 상황을 가정해 훈련하고 있는 대경대 경호시범단 학생들. 두 명은 경호대상자를 피신시키고 한 명은 적을 제압한다.
경호시범단의 경호대형 시범이 펼쳐졌다. 2인 경호는 앞뒤로 한 사람씩 선다. 앞에 가는 사람은 위험요소를 사전에 점검하고 진로를 개척하는 임무를 맡는다. 3인 경호는 경호원이 경호대상자의 앞뒤에 한 명씩 서고 옆에서 한 명이 호위한다. 이때 옆에 선 사람이 디테일 리더(detail leader), 즉 경호책임자다.
4인 경호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경호대상자를 한가운데에 놓고 전후좌우에 한 명씩 선다. 이 경우 오른쪽을 맡은 사람이 경호책임자다. 5인 경호시엔 4인 경호처럼 다이아몬드 형을 유지하되 경호대상자와 후위 경호원 사이에 한 사람이 더 들어서는데, 그가 경호책임자다.
장 교수는 “경호상황 발생시 경호원은 자신이 살려는 본능을 제어해야 한다”고 경호원의 자기희생 정신을 강조했다. 특히 경호대상자에 대한 침입자의 공격이 워낙 빠를 경우, 즉 침입자의 공격을 막거나 제압할 겨를이 없을 경우엔 무조건 자신의 몸으로 가로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해요소를 제압할 때는 경호대상자의 뒤쪽으로 하면 안 된다. 군중이 있는 경우 뒤쪽으로 제압하다가 자칫 엉뚱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공무술에서는 마지막에 결정타로 상대를 완전히 제압한다. 하지만 경호무술에서는 함부로 타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타격은 금물이다. 외상을 남길 경우 자칫 인권시비에 휘말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장 교수는 타격보다 상대에게 돌진해 넘어뜨리는 태클을 더 권장한다. 태클에는 크게 상단 태클, 하단 태클, 백 태클이 있다. 상대의 목 부위를 덮쳐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상단 태클은 공격자가 흉기를 든 경우 더욱 유용하다.
하단 태클은 상대의 상체 부위에 손이 미치지 못할 경우 하체를 잡아 밀어뜨리는 기술이다. 경호원이 침입자의 등 뒤에 서 공격행위를 발견할 경우에는 백 태클을 활용한다. 공격자의 양팔을 등 뒤에서 감아쥐고 땅바닥 쪽으로 몸통을 끌어당겨 함께 구르면서 팔을 꺾어 제압한다.
총 쏘는 것밖에 몰랐던 경호원들
강의가 끝난 후 사진기자의 제안에 따라 경호시범단 중 일부가 잔디밭으로 옮겨가 시범을 했다. 3인 경호대형에서 칼을 든 침입자가 경호대상자를 공격하는 상황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한 명이 공격자를 제압하고, 나머지 2명은 경호대상자를 보호했다.
경호시범단 학생 몇 명과 얘기를 나눠봤다. 어릴 때 태권도와 합기도를 배우고 대학에 들어와 유도를 배웠다는 임진우(22)군. 유도의 업어치기 기술을 선호한다는 그는 장차 대기업 보안팀이나 앙드레 김 같은 유명인사의 개인 경호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태권도 4단인 정솔림(22)양은 “태권도는 시합용 무술이고 여기서 배우는 건 실전무술”이라고 학과에 만족해했다. 태권도와 합기도 유단자인 김아름(22)양도 야무진 표정으로 “실전처럼 배우니 재미있다”고 했다. 졸업 후 경비보안업체인 에스원에 들어가는 게 목표란다.
그런데 무술을 잘한다고 경호를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게 장 교수의 지론이다. 경호 책임자는 무술 고수가 아니라 전문 경호기법을 배운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경호책임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군 출신이 맡았다. 대부분의 경호원은 전문 경호기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1974년의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은 경호 전문가가 없는 청와대 경호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경호는 이기고 지는 개념이 아니라 성공이냐 실패냐가 관건입니다. 육 여사 사건 당시 박종규 경호실장도 사실은 연단 앞으로 뛰쳐나와 군중을 향해 서 있을 게 아니라 박 대통령 앞에 놓인 강단에 바싹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육 여사 앞을 막아선 경호원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술 잘하는 사람만 있었지 경호 전문가가 없었던 거죠.”
총만 쏠 줄 알았지 경호의 기본도 몰랐다는 얘기다. 장 교수의 견해로는 아웅산 테러사건도 군 출신이 주도하는 경호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사전에 테러위협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지만, 경호감각이 떨어지다보니 적절한 예방경호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 교수의 얘기 중에 얼른 듣기에 의아한 말이 있었다. 바로 “충성심은 오히려 경호에 방해가 된다”는 말이었다.
“경호의 본질은 충성심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충성심이 아니라 경호원으로서의 자세입니다. 10·26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강했지만 경호원으로서는 낙제였습니다. 차 실장은 총격 당시 화장실로 달아났습니다. 아무리 충성심이 강하더라도 경호원으로 훈련돼 있지 않으면 그런 상황에서는 누구나 도망가게 됩니다.”
현재 대통령경호실 자문위원이기도 한 장 교수는 청와대에 들어가면 “경호원에게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할 사람은 비서실 직원이에요. 경호원은 직업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만일 김정일이 방한했을 때 위해사태가 발생한다면 김정일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해요. 그게 경호원의 자세입니다.”
장 교수는 “경호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며 “민주적 소양과 준법정신을 갖추는 것이 무술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대경대 경호행정학부에는 청와대 경호원 출신 교수가 2명 더 있다. 국내 경호검측의 1인자로 불리는 김명곤 교수와 선발경호 전문가인 김명영 교수다. 검측은 각종 유해물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고, 선발경호는 대통령 이동시 현장을 사전 답사하는 것이다.
윗몸일으키기 세계기록 보유자
경호무술 창시자로 자임하는 장명진 원장.
9월29일 서울 망우동에 있는 국제경호협회를 찾았다. 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장 원장은 곱상한 귀공자 형이었다. 키는 178㎝쯤 될까. 외모만 봐서는 도저히 무술고수 같지 않았다. 인터넷 동영상에 담긴 그의 화려한 무술동작이 의심스럽기까지 했는데, 그것이 오판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장 원장은 윗몸일으키기 기네스 세계기록 소유자다. 1990년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한국기네스협회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0시간 동안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매트에 붉은 물이 스며들었다고 한다. 엉덩이와 발꿈치 등 매트에 닿는 신체부위에서 피가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1만4824회.
7세 때부터 무술을 시작해 태권도 유도 검도 등 안 해본 무술이 없다는 장 원장.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서 무술이론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무술은 문화이자 철학입니다. 그런데 제가 각종 무술을 연구해보니 무술철학에 맞는 기술체계와 이론체계가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은 거예요. 동작에 딱 맞는 용어도 없고. 그래서 저는 경호무술을 창안하면서 새로운 무술용어를 많이 개발했어요. 발차기를 예로 들면, 기존 무술에서는 두 번 연속해 하는 발차기에 대한 용어가 없어요. 저는 이것을 ‘복식 발차기’라고 이름붙였어요. 또 앞차고 옆차는 것은 ‘이방복식 발차기’, 좌우 발을 바꿔가며 두 번 차는 것은 ‘좌우복식 발차기’라고 규정했습니다.”
장명진경호무술원 장명진 원장의 이단 옆차기 시범. | 침입자가 칼로 공격하자 경호대상자(기자)의 상체를 감싸 누르면서 뒤차기로 반격하는 장명진 원장. | 장명진 원장이 경호대상자를 넘어뜨리면서 발등 반달 내려찍어차기로 반격하고 있다. |
장명진 원장의 두 발 벌려 높이차기. 장명진 원장이 펴낸 ‘경호무술’. 국내 최초 최대의 경호무술 교본으로 알려져 있다.(작은사진)
“학계에 계신 분들이 경호무술의 개념을 태권도나 유도 검도 합기도 등을 경호환경에 맞도록 변형한 무술로 정립했는데, 저와는 관점이 다릅니다. 물론 경호무술에 기존 무술 동작이 섞인 것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관점에서는 다른 무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무술의 독자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어떤 원리를 통해 어떤 결과를 얻어내느냐입니다. 즉 태권도는 스포츠용, 특공무술은 살상용, 경호무술은 경호용이라는 거죠.
경호무술은 경호상황에 맞는 실전무술이자 방어 개념의 호위무술입니다. 경호대상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니만큼 예상치 못한 공격에 맞서는 다양한 방어기술이 필요하죠. 일반 무술의 경우 칼이 들어오면 막는 게 우선입니다. 하지만 경호무술에서는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경호대상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는 어떤 무술에도 없는 경호무술만의 특징입니다.”
장 원장이 경호무술의 핵심 기술로 꼽는 것은 발의 움직임(스텝)과 방향 전환이다. 경호대상이 움직이는 방향과 침입자의 공격방향에 따라 몸의 방향과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이다. 그는 “경호무술에서는 방향 전환과 위치 이동을 하면서 발차기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시범을 보였다. 앞발을 중심축으로 삼고 전후좌우로 춤추듯 유연하면서도 빠르게 몸 방향을 바꿨다.
춤추듯 유연하게 방향 바꿔라
손 공격도 일반 무술과 차이가 있다. 주먹 대신 손등과 손목, 팔굽으로 가격한다. 과잉방위 시비를 의식해 타격대상에게 외상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파괴력은 주먹 못지 않다는 게 장 원장 주장이다. 장명진경호무술에는 내손목굽, 외손목굽장, 배팔굽 등 일반 무술에는 없는 용어가 많다.
발차기의 다양한 기술을 얘기하다가 그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구두를 신은 채 뒤꿈치 차올리기 시범을 했다. 일자(一字)로 쭉 올라간 발이 키를 훌쩍 넘어 발바닥이 천장을 향하고 바닥에 디딘 다른 발의 뒤꿈치가 들리지 않는 걸 보면서도 그의 무술실력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장명진경호무술 전수원(도장)은 협회에서 조금 떨어진 신내동에 있다. 도장에서 장 원장은 기자의 요청에 이단옆차기, 두발 벌려 높이차기 등 고난도의 발차기 기술을 선보였다. 태권도의 기본 발차기는 직선으로 뻗었다 직선으로 떨어진다. 반면 장명진경호무술에는 반원형의 곡선을 그리는 발차기가 많다.
발차기 시범을 끝낸 후엔 기자를 상대로 손목 꺾어 넘어뜨리기 등 기본동작 몇 가지를 시연했다. 경호대상자와 함께 구르는 전방호위낙법 등 낙법 기술도 보여줬다. 이어 스텝과 방향전환 시범. 자신이 개발한 스텝의 종류가 60가지라고 했다. 그 다음엔 손을 검처럼 사용해 관자놀이와 목의 대동맥을 치고 명치를 찌르는 몇 가지 손기술을 소개했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매우 효율적인 타격이라고 했다.
그가 1994년에 설립한 국제경호아카데미는 경호전문요원 양성기관이다. 그간 56기의 수련생을 배출했고, 수련생 대부분은 경비보안업체에 취직하거나 개인 경호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장 원장의 당면목표는 국제경호학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경호무술을 표방해 법인 인가를 받은 단체는 몇 개 되지만, 순수 경호법인으로 등록된 단체는 없다고 한다. 그는 주무관청인 경찰청을 상대로 두 차례 행정소송을 내는 등 10년간 싸우고 있지만,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그는 1997년 경찰에 체포돼 72시간 동안 감금된 적이 있다. 죄목은 관명(官名) 사칭죄. 경호무술단체를 운영하며 대통령 경호실을 팔고 다녔다는 것.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그는 한동안 이 사건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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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차기와 주먹기술은 안 써
이재영 총재가 만들었다는 경호무술에는 타격기가 없는 대신 독특한 유술 기술이 많다.
국제경호무술연맹 홈페이지에 적힌 연혁에 따르면, 그가 경호무술원을 차린 것은 1993년이다. 1995년엔 한국경호무술협회, 1996년 국제경호무술연맹을 설립했다. 그가 경호무술을 창시한 데는 경호원 체험이 큰 도움이 됐다.
경호원은 무술지도자와 더불어 그의 어릴 적 꿈이었다. 군 제대 후 경비보안업체인 CAPS에서 경호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1994년에 독립해 경호전문업체인 한국경호공사를 차렸다.
한국경호공사는 기업인, 연예인, 정치인, 정신병자 등을 대상으로 한 개인경호와 더불어 각종 행사장, 선거유세장, 노조시위 현장에서 단체 경비 활동을 벌였다. 그 시절 그는 낮에는 경호 업무에 전념하고 밤에는 무술 연구를 했다고 한다.
그의 전공은 합기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쿵푸, 태권도, 합기도 등 다양한 무술을 익혔는데, 합기도를 가장 오랫동안 연마했다. 고등학생 때 합기도 전국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다고. 이 총재는 “경호무술을 만들 때 합기도 스타일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독자적인 무술로 인정받고 있는 요즘엔 일본 아이키도로 오인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국제경호무술연맹 이재영 총재가 기자를 상대로 허리던지기 시범을 하고 있다. | 손목 꺾기 시범을 하는 이재영 총재. | 장검 공격시 바싹 접근해 공격자의 손목을 비틀어 엎어뜨린다. |
“제가 봐도 아이키도와 비슷한 면이 있기는 해요. 전통 아이키도에는 발차기가 없는데, 제가 만든 경호무술에서도 발차기와 정권 지르기는 하지 않거든요. 주로 유술(柔術)이지요. 어쨌든 저는 아이키도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가 정의하는 경호무술은 장명진경호무술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태권도로 경호하는 건 경호무술이 아니라 경호기술입니다. 제가 만든 경호무술의 가장 큰 특징은 전환과 회전이에요. 그러기 위해선 중심이동이 중요하죠. 상대의 공격에 맞서지 않고 좌우로 돌면서 상대가 뻗는 힘을 이용해 유술로 제압합니다. 하지만 합기도나 유도와는 분명 다른 점이 있어요. 같은 유술이라도 합기도가 관절기, 유도가 메치기 위주라면 저의 경호무술은 던지기가 특징입니다.”
그는 1995년 국제경호무술연맹의 전신인 한국경호무술협회를 설립한 후 자신이 만든 경호무술을 보급하기 위해 신문에 지부도장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다. 모집대상은 10년 이상 무술을 수련한 사람 중에서 현재 무술도장을 운영하고 있거나 앞으로 도장을 차릴 계획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무술인을 상대로 주말마다 무료교육을 했다. 현재 국제경호무술연맹에서 전파한 경호무술을 가르치는 도장은 전국적으로 2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엔 경호무술 전문도장도 있지만, 대부분 태권도, 합기도, 유도 등 기존 무술을 가르치면서 경호무술을 받아들인 도장이다.
국제경호무술연맹에서 운영하는 IKF경호아카데미는 장명진 원장의 국제경호아카데미와 마찬가지로 경호원 양성기관이다. 한 기수에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가량이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교육과정은 6개월. 3개월은 교육, 3개월은 실습이다. 현재 10개의 경호 관련 회사가 국제무술연맹에 가입돼 있기 때문에 실습 여건이 좋고 취직도 잘된다고 한다.
국제경호무술연맹의 주 고객은 건설회사 사장이다. 이들은 주로 운전 겸 경호 목적으로 경호원을 고용한다고 한다. 한 번 고객이 되면 연맹의 지도위원 또는 자문위원으로 위촉돼 인연을 이어간다.
이 총재는 지난해부터 경호무술의 대중화를 목표로 일반인을 상대로 연무시범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엔 2월과 8월에 각각 인천과 성남에서 열렸다. 인천대회는 소년소녀가장돕기, 성남대회는 수재민돕기를 내세웠다. 지원금은 연맹에 가입한 회원들로부터 모금한 회비로 마련한다고 한다. 오는 11월에 열릴 예정인 전주대회의 선전구호는 결식아동돕기다.
국제경호무술연맹의 본부 도장은 사무실 바로 옆에 있다. 기자는 도복을 입고 이 총재의 상대역으로 시범에 동참했다. 이 총재가 시연한 기술은 허리던지기, 후면던지기, 사방던지기 등 기초적인 제압기술이다. 공통점은 상대의 손목을 꺾는 것. 예컨대 허리던지기는 상대가 손목을 잡았을 경우 손목을 안쪽으로 틀면서 상대의 손을 꺾어 위로 추켜올리는 것과 동시에 상대의 안쪽으로 등을 들이밀면서 다른 한 손으로 발목을 쳐 상대를 집어던진다.
그가 경호무술을 창시했다는 시점은 장명진경호무술의 탄생시기와 비슷하다. 누가 진짜이고 누가 앞선 것인가.
“현재 경호무술을 표방하는 단체가 17군데나 돼요. 경호무술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특허등록도 안 됩니다. 따라서 원조논쟁은 무의미합니다. 누가 더 멋진 기술로 발전시키느냐가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