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재자 딸&언론 탄압’ 프레임 고착
- 기자 세계 동업자 의식 자극
- 국가 이미지 덩달아 추락
근거리에서 한국을 관찰하고 프레임을 형성하는 것은 외신(外信)이다. 외신은 한국에 언론의 자유가 통제됐을 때 현실을 알린 유일한 숨통이었다. 반면 한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한국을 가장 먼저 낭떠러지로 걷어찬 장본인이기도 했다.
세계인들은 외신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또 이렇게 형성된 이미지가 한국의 국익에 큰 영향을 끼친다.
‘검열’‘경악’‘수난’‘독재’…
그런데 최근 한국 소식을 전하는 외신의 논조에 적색등이 켜진 것 같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박근혜 정권 들어 한국 정부와 한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외신 보도가 급증한다는 이야기다. 아예 관심조차 없어져 한국을 떠나는 외신 기자도 늘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은 쉽게 확인된다. 2014년 10~11월 한 외신 번역 서비스 매체에 실린 전체 외신 105건 중 박근혜 정부를 비판한 것은 46건으로, 43.8%에 달한다. 한국 관련 외신의 경우 대체로 중립적 보도가 절대다수이고 긍정적 보도가 부정적 보도보다 다소 많았다. 그런데 최근엔 부정적 보도의 비중이 확연하게 높아진 셈이다.
이는 청와대가 자초한 일이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 씨의 염문설을 보도한 산케이신문 기자를 맹비난하면서 법적 조치를 시사했다. 이어 제3자 고발 형식으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더니 해당 기자를 출국금지했고 기소했다. 이 사건이 정부를 비판한 외신 보도를 급증시킨 것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카카오톡 개인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열하겠다고 한 점, 세월호 사건 진상 규명이 지지부진한 점도 외신에 영향을 줬다.
이 기간 일본 언론은 물론이고 미국 언론과 유럽 언론도 박근혜 정부 비판 일색이었다. 기자 기소와 카카오톡 검열에 대한 이들의 논조가 얼마나 부정적인지는 아래 기사 제목(방송의 경우 타이틀)만 봐도 알 수 있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한국의 언론자유 침해’ 미국 ABC
‘한국 일주일 새 텔레그램으로 150만 망명’ 영국 BBC
‘박근혜 7시간 보도한 산케이 기자 기소돼’ 미국 뉴욕타임스
‘산케이 기자 기소에 경악’ 국경 없는 기자회
‘한국에서 수난당하는 언론의 자유’ 프랑스 르몽드
‘한국 언론 탄압으로 독재 부활’ 영국 이코노미스트
‘한국의 언론 탄압, 민주주의 위협’ 미국 디플로마트
특히 오스트리아의 비너자이퉁 신문은 카카오톡 검열 논란을 비판한 기사에서 ‘한국은 검열공화국,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 독재를 주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외신은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 재판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포린폴리시가 “침몰하는 박근혜 정권”이라고 보도하는 등 진행 상황을 전하면서 간간이 비판적 보도를 이어갔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보도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사실 다른 정부도 아닌 ‘박정희 딸의 정부’에서 기자 기소나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 발생한 점 때문에 외신이 더 자극받은 면이 없지 않다. ‘거 봐라’ 하는 심리가 작동한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유신헌법 공포 후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다. 1979년 9월 야당 총재인 김영삼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카터 정부가 박정희 정권에 직접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터뷰는 박정희의 격노를 샀다. 자기 통제력을 잃어가던 철권 통치자는 김영삼을 국회에서 제명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는 김영삼의 기반인 부산·마산의 저항으로 이어졌고 그 직후 박정희 정부는 몰락했다. 돌이켜보면 박정희 정부의 종말을 가져온 것은 외신이었다.
父女의 언론 탄압?
2012년 대선 직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박근혜 당시 후보를 표지인물로 올리면서 ‘The Strongman′s Da-ughter’라는 제목을 붙였다. 국내 진보와 보수가 ‘스트롱맨’을 각각 ‘독재자’와 ‘실력자’로 번역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도 외신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독재자의 딸, 한국 대선 승리(Daughter of dictator wins South Korea presidency)’라는 제목을 붙였다. 미국 AP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지만 독재자인 아버지의 그림자가 승리를 덮고 있다”고 썼다. 영국의 BBC와 ‘가디언’도 “독재자의 딸”이라고 규정해 이견을 둘 여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산케이신문 기자 기소를 둘러싼 외신의 반응도 이런 시각의 연장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장년층에게 박 대통령은 ‘부모를 흉탄에 잃은 불행한 소녀 가장’ 이미지이겠지만 해외 언론에는 그런 동정의 여지가 없다.
세계의 메이저 매체들은 기자 기소를 일제히 비판했고 서울외신기자클럽, 국경 없는 기자회, 국제기자연맹도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언론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분위기다.
‘언론을 탄압했던 독재자의 딸’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앞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겸허했어야 했다. 대다수 외신은 ‘불행한 개인 가족사’보다는 ‘민주주의’나 ‘표현의 자유’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에 훨씬 주목한다. 외신은 ‘언론을 탄압했던 독재자의 딸이 또 언론을 탄압한다’라는 점에 빙점을 찍었고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려버린 셈이다.
한국 경제 관련 외신 보도는,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 대한 외신의 부정적인 논조는 경제 부문에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2014년 11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초이노믹스가 주택담보대출과 총부채상환비율을 완화한 데 대해 “한국 가구부채 수준이 이미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자율이 오를 경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최경환 부총리가 아베노믹스와 같은 실수를 저지른다”고도 했다. 사실상 아베의 아류로 본 것이다.
그러자 기획재정부는 화들짝 놀라 일주일 뒤 같은 신문에 반론을 실었다. 반론은 “초이노믹스를 오해한다”면서 기업 정책, 부동산 정책, 재벌 사면에 대해 해명했다. 언뜻 보면 비판과 반론이 점잖게 행사된 것 같지만 사후약방문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한국 경제에 대한 외신의 반응은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 기업들이 실적 부진을 겪는 점에 대해서도 외신의 평가는 점점 까칠해진다.
외신의 이런 부정적 논조는 최근에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AFP통신은 ‘박근혜 전 비서실장 정윤회의 국정 관여 소문’을 전했고, BBC방송은 ‘산케이신문 기자, 박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부인’ 기사를 올렸다. AP는 ‘한중 FTA에 반발하는 한국 농민들과 노동자들’을 소개했다. 알 자지라는 ‘미국인 교사, 한국에서 피부색 때문에 일자리 거부당해’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MB에겐 찬사
흥미로운 점은, 박근혜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의 외신 논조가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점이다. 이명박(MB) 대통령은 경영자 출신 특유의 독단적 결정방식으로 인해 국내에선 불통 논란에 휩싸였으나 외신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기업가 출신의 지도자로서 경제위기를 극복한 이미지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1년여가 지난 시점부터 외신은 한국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2009년 9월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같은 해 11월 프랑스 르 피가로가 각각 ‘한국이 금융위기에서 가장 빨리 회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4년 8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취재 중인 외신기자들.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는 또 한 번 외신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9년 12월 27일자 로이터, AP, AFP 등 주요 외신은 한국이 프랑스나 일본과 같은 강력한 경쟁자를 제치고 승자가 된 사실을 ‘쾌거’라고 평가했다.
2010년 서울에서 치러진 G20 정상회의도 이명박 대통령의 가치를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 대형 국제행사가 치러진 적은 많지만 한국 대통령에게 외신의 스포트라이트가 온전히 쏟아진 적은 이때가 유일했다.
두 보수 정권이 외신으로부터 이처럼 상반된 반응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호감도의 차이, 대통령의 국제적 업적의 차이가 변인이 될 수 있다. 이외에 외신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 차이도 중요한 변인으로 꼽힌다.
외교가와 언론계 여러 인사는 박근혜 정부가 외신을 너무 홀대한다고 평가한다. 이런 주장은 이명박 정부의 외신 정책과 비교해보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대못질’을 의식해 처음부터 ‘프레스 프렌들리’를 내세웠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오렌지를 ‘어린쥐’라고 발음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런 소소한 구설이 터져 나온 것은 그만큼 언론에 열려 있었다는 방증이다.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자 이명박 정부는 바싹 긴장했고 외신을 더 각별히 대했다. 청와대 내에선 해외언론비서관, 해외홍보비서관 등 1급 비서관이 외신을 맡았다. 주요 부처는 외신 담당 대변인을 두고 열심히 브리핑했다. 외신기자가 정부 관계자를 상대로 취재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 시절 워싱턴포스트는 아시아총국을 도쿄에서 서울로 옮겨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또 서울에 통신원만 상주시키던 CNN, 이코노미스트, 알 자지라는 서울지사를 새로 열었다.
아베 정부에 역전골 허용
반면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내 외신 업무는 4급 외신 대변인이 맡았다. 이 정부에서 인사 실패는 거의 고질병인데 언론홍보 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이던 윤창중은 기자들을 고압적으로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들의 질문에 모른다거나 침묵으로 대응해 불통 논란을 낳았다. 국내 언론을 이렇게 대하는데 외국 언론인들 잘 대해줄 리가 없다. 청와대와 정부 부처는 외신기자들로부터 ‘질문해도 모른다는 답변만 늘어놓는다’는 불만을 산다. 외신기자 등록과 발급 업무를 맡은 외신지원센터 홈페이지도 업데이트가 제대로 되지 않아 황량한 느낌을 준다.
그러자 해외 언론사의 탈(脫)한국 사례가 속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4년 7월 아시아총국을 다시 도쿄로 원위치시켰다. 프랑스 르 피가로, 미국 LA타임스, 미국 경제전문 방송 CNBC도 서울 특파원을 철수하거나 주변국으로 이동했다. 축구 한일전에 비유하자면 이명박 정부가 일본 민주당 정부를 상대로 선취점을 기록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아베 정부에 역전골을 허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산케이신문 기자 기소 사건은 만국의 언론인을 모처럼 단결하게 하는 양상으로 흘렀다. 국내 언론은 일본 우익의 시각을 대변하는 이 신문사 소속 기자를 옹호해야 하는 사실을 곤혹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이 한목소리로 ‘기소까지 간 것은 잘못’이라는 논조를 폈다.
동아일보 심규선 칼럼은 일본 우익신문을 편들 생각이 없다고 한자락 깔기는 했지만 정부가 기자 기소로 대응한 것은 잘못이라고 단호히 주장했다. 한겨레 권태호 정치부장도 ‘산케이를 언론 자유 기수로 만든 청와대’제하의 칼럼에서 비슷한 의견을 개진했다.
한국만큼 보·혁 갈등이 심한 일본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위안부 문제에서 한국 측을 지지해 일본 우익의 표적이 된 아사히신문도 사설에서 ‘보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권이 힘으로 팔을 비튼 폭거’라고 기자 기소를 비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정권에 우호적인 기사는 ‘전 지구적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외신이 한통속?
이런 장면을 보면 기자 세계에선 동업자 의식이 국적을 초월해 크게 작용한다는 느낌을 준다. 요즘은 ‘검은머리 외신기자’도 적지 않아 외신과 내신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처럼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신이 생겨나면서 한국 독자를 상대로 한국어로 기사를 쓰는 외신기자도 늘고 있다. 이들은 낮에는 외신기자로 활동하고 밤에는 술자리에서 국내 언론사 기자들과 어울린다. 내외신이 한통속으로 돌아가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직된 외교정책도 외신의 불만을 사는 원인인 것 같다. 특히 일본 언론이 그런 경우인 듯하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일본 중심 외교를 펼쳤다. 임기 마지막 해 독도 방문 전까지 이 대통령은 일본 언론으로부터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 언론은 ‘역사 문제에서 한국 편을 들 수는 없지만 이 대통령에게선 배울 점이 있다’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반면 일본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선 온통 적의에 차 있다. 정상회담조차 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국 기자가 기소되자 울고 싶던 차에 뺨 맞은 격이 됐다. 최근 서울 주재 일본 특파원들은 ‘예의 바른 일본인’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정부 브리핑 장소에서 정부 인사들과 고성으로 설전을 벌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의 격앙된 반응이 서울의 외신기자 사회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일본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했을 뿐 아니라 한중 FTA를 성사시켰고 시진핑 주석과는 더할 나위 없는 친분을 드러냈다. 그러나 G2라는 중국의 위상과 달리 중국 언론은 관영언론 위주라 세계 언론계에서 그 존재감이 약할 수밖에 없다.
현재 등록된 주한 외국인 특파원 숫자를 보면 총 274명 가운데 단일 국가로는 일본이 111 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서구권이 114명이다.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은 모두 합쳐 40명에 불과하다.
박근혜보다 이건희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대통령과 정부가 죽을 쑤는 가운데 민간 부문이 선전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글로벌 대기업의 오너들은 5년 단임 대통령보다 해외 언론에서 더 인기가 높은 것 같다.
그 가운데서도 이건희 회장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2008년 이 회장이 퇴진을 선언했을 때 CNN, BBC, 로이터, AFP, 블룸버그 등은 주요 뉴스로 보도하며 한국식 재벌경영이 끝났다고 전했다. 이런 관심은 5월 이건희 회장이 입원했을 때도 똑같이 재현됐다. 뉴욕타임스는 이건희 회장을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며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의 혁신 상실을 걱정한 것과 달리 삼성은 전문가 체제를 통해 큰 동요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벌기업의 후계승계 문제도 관심을 받는다. 이제 외신도 한국 재벌의 독특한 시스템에 적응했는지, 상속은 당연시하고 다만 그 영향이 어떻게 미칠지에 관심을 갖는 분위기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후계승계 문제로 소유구조가 변하게 되면 배당이 늘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좋건 싫건 재벌 오너들이 외신에서 유명세를 누리는 것은 한국 경제에 좋은 일이다.
한류 스타들에 대한 관심도 높은데 최근에는 외신이 속보 경쟁에서 앞서는 경우도 있다. 김연아는 2014년 2월 소치 올림픽 직후 아이스하키 선수 김원중과 연인 사이임을 밝혔다. 이후 국내언론은 2014년 11월에야 이들의 결별설을 전했다. 그런데 그보다 석 달 전인 8월 한 중국계 언론은 두 사람이 7월에 이미 비밀리에 결별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선정적인 보도로 유명한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은 왕실의 스캔들을 주요 먹잇감으로 삼는다. 그것이 바람직한 언론의 기능인지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언론 자유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산케이신문은 한국 검찰에 기소된 사실을 두고 마치 투사인 양 행세한다. 그런 그들은 일본왕실 스캔들도 자유롭게 써왔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기 띤 얼굴로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선언한 것도 영국식보다는 일본식에 가깝다. 박근혜 정부와 산케이신문 간 대립은 동아시아의 후진성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모든 게 언론 탓?
중요한 것은 언론을 대하는 보편적 태도다. 국내 언론에 폐쇄적인 정권이 외신으로부터 호평을 받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연거푸 경신하던 대기업들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화두를 던졌지만 말만 무성할 뿐 가시적인 결과물을 보여준 게 없다. 국정 운영 과정이라도 투명하면 이해라도 해줄 터인데 그마저 불투명 그 자체다. 기본적으로, 성과가 없으면 칭찬도 없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자신을 탓하기보단 언론을 탓한다.
진보언론은 이명박 정권의 모든 행적을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어차피 이념적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한쪽의 비판을 피해갈 길은 없다. 하지만 개방적으로 뚝심 있게 정책을 추진했을 때 외신은 객관적으로 평가해줬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일 뿐 아니라 언론 자유를 위해 희생한 전직 대통령들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이 전통을 계승하려는 마음을 가졌는지 의문이다. 자신에 대한 국경을 초월한 비난 보도로 나라의 이미지도 덩달아 실추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