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호

사바나

“산뜻한 만남 찾아 돈 내고 놀러간다”

요즘 인기 있는 놀이 장소는 남의 집!

  • 윤혜진 자유기고가 imyunhj@naver.com

    입력2020-02-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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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 상대 부족한 2030 사이에서 인기

    • 소규모, 단발성 모임이 주는 느슨한 매력

    • 모르는 사람에게 고민 털어놓으며 눈물짓기도

    • 취향과 SNS 필터링 통해 안전장치 마련

    ‘사바나’는 ‘회를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편집자 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김성용 ‘남의집’ 대표 집. 손님을 초대하려고 일부러 북카페처럼 꾸몄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세 차례 거실 서재 모임이 열렸다.  [남의집 제공]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김성용 ‘남의집’ 대표 집. 손님을 초대하려고 일부러 북카페처럼 꾸몄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세 차례 거실 서재 모임이 열렸다. [남의집 제공]

    “여기가 부엌이에요. 참가비 내셨으니까 편안하게 내 집처럼 알아서 꺼내 드세요.” 

    지난해 여름 방영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인 노홍철이 자기 집으로 초대한 낯선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친화력 좋기로 소문난 연예계 인맥 부자 노홍철은 2016년 8월 서울 해방촌에 ‘철든 책방’을 오픈한 후 ‘노홍철 특별전’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소모임을 열고 있다. 2만~5만 원가량 참가비를 받고 다과와 때로는 숙박까지 제공한다. 그는 이렇게 모은 참가비에 기부금을 보태 아프리카에 작은 학교를 설립했다.

    개인 집 소모임 안내하는 스타트업

    ‘같이 펀딩’ 방영 후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저런 소모임에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우리 집에서 모임 열면 올 수 있는 사람?” 등의 글이 쏟아졌다. 이런 수요를 반영하듯 가정집 거실 공유 플랫폼 ‘남의집’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남의집’은 숙박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 집 공유 서비스와 다르다. 집주인이 자기 취향대로 모임을 열고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방식이다. 방문자는 입장료를 내고 놀러가 집주인과 함께 어울린다. 2018년 8월 1인 기업으로 출발한 ‘남의집’은 현재 직원 6명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지금까지 모임이 600회가량 열렸으며, 참여한 호스트가 500명, 게스트는 3000명에 달한다. 



    김성용 ‘남의집’ 대표는 “30대 이용자가 가장 많다. 결혼을 기점으로 삶의 변화 폭이 큰 30대는 현실 친구와 멀어지기 쉽다. 그래서 편하게 대화 나눌 새로운 모임을 찾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모임을 꾸릴 때 주제를 정해 공개하는데 퇴사, 이직, 사이드잡 등 일과 관련된 모임에 게스트가 몰린다. 집짓기 모임도 게스트 반응이 좋다”고도 덧붙였다. 

    소모임을 여는 방법은 간단하다. ‘남의집’ 홈페이지에 있는 신청서 양식을 채워 보내면 직원이 검토해 손님을 모집한다. 초대 손님 수는 보통 3~8명, 이용료는 2만~5만 원이다. 주제 선정은 100% 호스트 몫이지만 ‘남의집’에서 가이드를 해주기도 한다. 주제는 자기 취향이 담겨 있다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가 다양하다. 대중문화평론가 차우진의 ‘남의집 시청각실’이나 시집 서점을 운영하는 유희경 씨의 ‘나를 위한 글쓰기’처럼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모임부터 중국 마라 요리와 맥주를 즐기는 ‘마라스텔라’ 등 한없이 시시콜콜한 주제까지 모임 수십 개가 놀러 올 사람을 기다린다. 

    게스트로 참여하고 싶은 모임이 없으면 직접 주최하는 것도 가능하다. 김 대표는 “이야기 나누고 싶은 주제가 있는 사람이 편하게 모임을 연다. 거기 손님으로 참여했다가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해서 호스트가 되는 이도 많다”고 설명했다.

    남의 집 거실을 카페처럼

    대체 남의 집에서 열리는 소모임에 어떤 매력이 있을까.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남의집’ 홈페이지를 방문해 여행 패키지를 고르듯 살피다 김 대표가 직접 여는 ‘숲 속의 거실 서재’ 모임을 클릭했다. 3시간 동안 남의 집 거실을 카페처럼 이용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모집 정원 6명, 참가비용은 2만 원. 

    신청한다고 바로 모임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넘어야 할 관문이 있다. 방문 신청서 작성이다. 하는 일, 신청 동기는 물론 운영하는 블로그나 SNS 계정까지 공개해야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김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집주인 관점에서 보면 아무나 집에 들이기 싫지 않겠나. 방문 신청서를 자세히 쓸수록 당첨 확률이 높다. 보통 모임 경쟁률이 1:5 정도 된다. 인기 모임의 경우 두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 말을 떠올리며 방문 신청서를 작성했다. 며칠 후 ‘숲 속의 거실 서재’ 모임이 열리는 집주소와 집주인 연락처가 적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모임 당일인 1월 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모임 장소 벨을 누르자 “안녕하세요. 남의 집 오셨죠?”라며 집주인 김성용·조효정 부부가 반겼다. 이날 참가자는 4명. 모두 20~30대였다. 사는 곳도, 직업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자 김 대표가 본격적인 모임 시작을 알렸다. 

    “보통 소모임은 대화가 주목적이죠. 오늘은 다릅니다. 거실 사용 설명서를 읽어보시고 편하게 공간을 누리다 가세요.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일을 하거나 서재에 꽂혀 있는 책을 마음껏 꺼내 읽으셔도 좋습니다. 준비된 다과 드시면서 카페처럼 편하게 이용하세요.” 

    참가자들은 통성명을 하며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는 이내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누구는 선반 위 책을 둘러보고 또 누구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을 시작했다. 가지고 온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여느 카페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이날 처음 남의 집 소모임에 왔다는 변호사 박진희(38) 씨는 “지인이 이런 모임에 가면 구경할 것도 많고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추천했다. 와보니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여행 큐레이션 스타트업을 준비 중인 허정(32) 씨 역시 만족감을 표했다. 

    “남의 집에서 우리 집에 있는 책을 발견하니 재미있다. ‘집주인 취향이 나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사는 게 바빠 친구들끼리 별일 아닌 걸로 다투기도 한다. 느슨한 유대 관계가 필요했는데 오늘 여기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여행 이야기도 나누고, 즐거웠다. ‘남의집’ 플랫폼을 보니 퇴사 후 창업을 준비하는 소모임도 있던데 신청해 봐야겠다.”

    ‘취향’ 찾아 나서는 2030

    예전에는 누군가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이름, 고향, 학교부터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다르다. 관심 분야, 자기 취향에 대해 먼저 말한다. 내 취향이 무엇인지가 중요해지면서 취향 찾기에 나서는 이도 많다. 인터넷 공간에서 자기 사는 곳을 소개하거나 타인의 집을 살펴보는 ‘랜선 집들이’가 화제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취향은 여러 경험이 쌓여 비로소 완성된다. 

    30대 중반의 데이터 분석가 박성은 씨는 3년 전 ‘남의집’을 통해 ‘남의 집 도서관 모임’에 참여한 후 지금까지 총 8회에 걸쳐 남의 집에 놀러갔다. 그는 “여러 집에 방문하면서 내가 몰랐던 내 취향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것도 취향이 될 수 있네’ ‘이런 취향도 있구나’ 깨닫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공통 관심사를 발견하는 게 재미있다”고 밝혔다. 

    30대 커플 윤정은·이형철 씨는 데이트 코스로 남의 집을 찾곤 한다. 건축가인 이씨는 이런 모임을 통해 집을 사무실로 꾸민 사례를 살펴보기도 하고, 낡은 주택을 고치면 갖게 되는 장점도 배웠다고 한다.

    익명성과 단발성이 주는 즐거움

    [GettyImage]

    [GettyImage]

    몇 해 전부터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하며 각종 모임과 원데이 클래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남의 집에서 여는 소모임은 이러한 취미 기반 모임이나 함께 식사를 하는 소셜 다이닝, 살롱 문화보다 진화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소규모 인원이 한 번 만나는 형식이라 친목 관계에 대한 부담은 적다. 반면 모임 주제는 세분화된다. 익명성과 단발성이 주는 느슨하고 수평적인 관계에 아늑한 집이라는 공간적 특성이 더해진다. 그 덕분에 가족이나 친구에게 하기 힘든 속 깊은 이야기를 처음 본 사람과 나누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방송인 노홍철은 이것을 “집에서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말로 표현했다. 

    2018년부터 집에서 보이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거나 같이 밥 먹는 소모임을 열고 있는 이선영 씨 역시 “낯선 사람이 모여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는 게 신기하다. 다 같이 마법에 걸린 느낌”이라고 말했다. 작가이자 차예사(茶睿士)인 이씨는 지금까지 열두 번 모임을 열어 100명 정도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그는 “집에서 모임을 하면 참가자들끼리 친해지는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남의 집이란 낯선 공간에 덥석 도전하는 것 자체가 타인을 만날 마음의 준비가 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잖아요. 또 취향으로 필터링이 한번 된 사람들이 모이니 좀 더 성숙한 대화가 가능하고요. 20대들은 특히 그런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각자 사는 얘기 하다가 울기도 해요.” 

    이씨는 얼마 전 이렇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여행도 다녀왔다고 한다. 물론 모임 후 연락을 계속 하기 싫으면 일회성으로 끝내도 상관없다. 이씨 표현대로 “질척거림이 없어 좋은, 순수 친목 관계”가 충분히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앞으로도 이런 모임이 유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요즘 2030세대는 형제 수가 적다. 어려서부터 부모 보호 속에 자라나 관계 형성에 익숙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사람과의 관계를 열망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다. 이들이 진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그리움과 필요성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에 남의 집 모임 등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을 것이다.”

    취향과 SNS로 필터링 거친 안전한 만남

    물론 모임에 참가하려면 호스트와 게스트 모두 개인 정보를 어느 정도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이 존재한다. 호스트의 경우 실명과 주소, 연락처, 직업까지 공개한다. 이 교수는 이런 정보 공개가 일종의 안전장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보를 오픈하면서 서로 믿을만한 구성원이라는 걸 증명해 연대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선영 씨도 “집에서 모임을 열 때는 게스트 신청서를 꼼꼼히 보고 신청자 SNS도 방문해 본다. 어떤 자세로 모임에 임할지 자세히 쓴 사람 위주로 택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별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플랫폼 업계도 회원 증가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방지하고자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한 재능공유 플랫폼 ‘탈잉’은 “개인 정보 보안 및 관리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성용 ‘남의집’ 대표는 “‘에어비앤비’를 롤 모델 삼아 플랫폼 고도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사고 위험을 줄이고자 보험사들과 협의하고 호스트에게도 기획 단계에서 교육을 제공하려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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