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호

옥중의 정현준, 최초로 입 열다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3-10-27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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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준걸에게 사기 당했다” …알타비스타 합작 무산 책임 공방
    • “검찰, ‘게이트 핵심 3인방’ 계좌추적 안해”
    • “검찰 강압수사 있었다”
    • “장수천 인수제의 받았다”
    • 닉스 김효근·호준·호연 형제, KDL에 8억 투자
    • 정현준도 닉스펀드에 180억원 투자
    • 서울고법에 재심청구, “법정에서 검찰과 진위 따질 기회 달라”
    옥중의 정현준, 최초로 입 열다
    ‘정현준씨 M&A 귀재서 불법 사업가로’ ‘코리아디지털라인 최종부도, 코스닥 업친데 덮친 격’ ‘정현준씨 불법대출 충격’ ‘30대 벤처신화 한국디지털 정현준 사장 670억 불법대출 물의’….

    2000년 10월22일자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코리아디지털라인(KDL) 정현준(鄭炫埈)씨의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실을 보도했다. 그 여파는 코스닥시장뿐만 아니라 벤처업계, 금융계를 강타했고 금융감독원은 정씨와 이경자(李京子)씨를 곧바로 검찰에 고발했다.

    다음날, 정씨가 금융감독원 장래찬 전 국장과 직원들에게 거액의 현금과 주식으로 로비를 했다고 폭로함에 따라 파문은 걷잡을 수없이 확산됐다. 급기야 10월24일 국회 금감위 및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정현준씨가 관련된 평창정보통신(평창정보)에 여권 실세 모 의원 자금 40억원이 들어있고 다른 여권 실세 모씨가 K증권의 뒤를 봐주고 있다”며 여권실세 개입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른바 ‘게이트’로 비화됐다. 평창정보 1, 2, 3차와 디지털홀딩스, 리엔텍, 엠파스, 디지털임팩트 1, 2차 등 모두 8개의 정현준 사설펀드에 가입한 정·관계 인사가 누구냐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검찰의 소환에 10월25일 저녁 늦게 자진 출두한 정씨는 그 길로 전격 구속됐다.

    장래찬 자살, 정씨에게도 미스터리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허탈해하면서 “벤처기업인이 연구에 몰두해 기술개발에 힘쓰지 않고 인수합병에 투자하거나 20여개의 기업을 사들여 재벌 흉내를 내는 등 완전한 타락상을 보여줬다. 32세 먹은 사람이 타락한 방법으로 순식간에 수천억원의 부자가 된데 대해 개탄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의 사회적 파장과 충격은 컸다. 그런 와중에서 10월31일 금감원 로비대상으로 지목됐던 장래찬 전 국장은 서울 신림동 한 여관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한 금감원 간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DJ정부 최초의 벤처금융비리 ‘정현준 게이트’는 일파만파로 확대되어 갔다.



    그러나 로비창구로 지목된 장 전 국장의 죽음에 이어 동방금고 사장 유조웅(柳照雄), 신양팩토릭 대표 오기준(吳基俊)씨 등 핵심인물들이 해외로 도피하자, 검찰은 11월14일 ‘정현준 게이트’를 ‘단순 불법금융사기사건’으로 종결시켰다. 하지만 훗날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등 새로운 벤처 게이트가 터지면서 정현준 게이트는 단순 불법금융사기사건이 아닌, 국정원과 금감원까지 관련된 사건이었던 것으로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 ‘나라종금 게이트’에도 정씨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정현준 게이트’의 진실은 무엇일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정현준의 사설펀드에는 얼마나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포함돼 있을까. 그리고 장래찬 전 국장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추측만 무성할 뿐 명쾌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같은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정현준씨다. 그런 정씨가 오랜 침묵을 깨고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신동아’에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2300억원대의 불법대출 및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된 지 만 3년만이다. 정씨는 지난 2001년 8월 항소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고, 그 해 대법원의 원심 확정판결을 받아 현재 여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정씨는 “검찰은 국정원, 검찰, 금감원 내 일부 세력의 개인적 비리를 감추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면서 “법원에서 검찰과 진위를 따진 뒤 나에게 잘못이 있으면 다시 감옥에 들어와 살겠다. 이를 위해서는 ‘무기평등의 원칙’에 따라 불구속상태에서 관련 자료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장 전 국장과 관련해서는 “검찰은 내 사건을 동방직원이 장 전 국장에게 제보한 후 장 전 국장이 터트린 것이라고 했는데 그건 말도 안된다. 장 전 국장은 나에게 주식도 받았고, 그의 부탁으로 취직을 알선한 적이 있다”고 자신과 장 전 국장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사실 비상장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건 불법이다. 평창정보와 알타비스타의 합작이 추진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펀드에 들어왔는데, 장 전 국장은 그 과정에서 담보대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그런 부담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것 같다”고만 말했다. 생전에 장 전 국장과 알고 지낸 그에게도 장 전 국장의 자살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정현준 게이트’에 대한 정씨의 답변을 이끌어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정씨의 가족들은 청와대와 대검, 서울지검, 국회 정무위 이성헌 의원 등 일부 국회의원에게 탄원서를 제출하면서도 언론과의 접촉을 꺼렸다.

    탄원서와는 별개로 입수한 평창정보, KDL 등 두 업체의 내부자료를 근거로 정씨의 솔직한 입장을 듣고 싶다며 수 차례 가족들을 설득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족들은 행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정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정씨와 어떻게 질의응답을 주고 받느냐도 문제였다. 그러나 방법은 있었다. 질의응답이 이뤄진 과정에 대해서는 취재기법상 밝히지 않기로 한다. 다만 문답은 기자가 재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정씨는 평창정보를 놓고 공방을 벌였던 유준걸(柳俊杰)씨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으며, 검찰에서 유준걸 등 관련자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건강은 어떤가.

    “좋다. 속은 많이 타지만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탄원서를 검토해 봤다. 내용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억울할 것 같은데.

    “검찰의 수사가 잘못됐다. 법원의 양형(징역 9년)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검찰이 그렇게 기소한 이상 법원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원근 비서실장과 동방금고 직원 중 나에게 우호적인 직원들이 검찰에서 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들었다. 이원근씨의 경우 폭행 당한 사실을 법정에서 밝혔으나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국정원과 검찰, 금감원 내 일부 세력이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저지른 비리를 감추기 위해 나를 희생양 삼아 또 하나의 정권 비리로 만들어 낸 것이다. 언론도 이에 동조한 잘못이 있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가 있나.

    “경찰청 정보과에서 검찰에 제출한 관련 서류(내사기록서 및 의견서)를 본 적이 있다. 그 내사자료에는 이경자, 유준걸, 강모씨(사채업자·사망)만 조사하면 된다고 돼 있었다. 검찰 기록에만 있을 것이다. 재판부에는 제출하지 않았다. 또 이 세 사람에 대해서는 검찰이 계좌추적을 하지 않고 면죄부를 줬다. 유준걸은 아태재단 뿐 아니라 김홍업 사건, 이석희 사건, 심완구 사건 등에 다 연루됐지만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 평창정보 때문에 수천명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강씨도 마찬가지다. 강씨의 돈이 금감원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금감원 간부 모씨에게 건네진 수표가 모두 강씨의 수표다. 또 동방금고 대출관련 이사회의사록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관련 증거의 일부가 위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증거 제공자가 위조한 것이겠지만 검찰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씨와는 어떤 관계인가.

    “나와 1200억원대의 거래가 있었는데 아직까지 수백억원을 못 받은 상태다. 그런데도 검찰은 강씨를 조사하지 않았다. 그 돈을 국세청과 협의해서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나를 포함해 일반투자자 등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재심청구 접수한 법원은 묵묵부답

    여기에서 가족들이 작성한 탄원서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A4용지 500여장 분량에 달하는 탄원서에는 검찰이 기소한 정씨의 혐의내용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를 입증하는 관련 증거자료들 담겨있다.

    탄원서는 ▲동방금고 불법대출의 건 ▲KDL 당좌 및 어음에 관련된 사항 ▲정현준의 동방금고 불법대출 91억원에 대한 부분 ▲평창종합건설(평창종건) 회장 유준걸씨와의 관계 ▲디지털홀딩스 관련 공시사실의 오기 ▲평창정보 주식 공개매수의 건 ▲서울금고 120억원의 건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입장 ▲추징금과 관련된 부분 등 모두 9개 항목으로 나뉘어 정리돼 있다.

    동방금고 불법대출 건과 관련, 정씨측은 “이경자는 동방금고에 보관 중이던 정현준 소유의 KDL주식을 비록한 여러 주식을 절취하거나, 소유주인 정현준의 허락없이 담보로 제공한 후 차주를 내세워 차명대출을 받아 이를 다시 정현준에게 고율의 이자를 받고 사채를 주는 식의 교묘한 방법으로 정현준을 속였다”며 관련자들의 검찰진술서를 첨부했다.

    또 검찰의 공소사실에 포함된 액면금 766억여원의 KDL 어음 및 수표 92매 가운데 은행 확인결과 15매는 이미 폐기했거나 반납된 것으로 이번 사건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게 정씨측의 주장이다. 정씨측은 이와 함께 KDL의 부도와 관련된 1383억원의 당좌와 어음을 100% 회수했다며 해당기관으로부터 받은 ‘부도사유해소확인서’를 첨부해 선처를 구했다.

    옥중의 정현준, 최초로 입 열다

    2000년 11월6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는 정현준, 장성환 유일반도체 대표, 이경자 동방금고 부회장(왼쪽부터).

    정씨측은 검찰이 기소한 정씨의 동방금고 불법대출금 91억원 중에서도 30억원은 인정하지만 나머지 61억원은 위조된 서류로 억울하게 뒤집어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창종건 유준걸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평창정보를 함께 운영하던 유씨로부터 사기를 당했다는 게 정씨측 주장의 골자다. 480억원대의 펀드모집과 공개매수를 빙자한 사기혐의를 받고 있는 평창정보 주식 공개매수도 바로 유씨의 사기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탄원서 말미에 첨부된 입증자료는 정씨측의 이 같은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탄원서 내용을 검토한 변호사들도 대부분 “설득력이 있다. 정현준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탄원서를 접수한 기관들로부터 정씨측에게 돌아온 답변은 “선고가 완료된 사건이므로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재심을 통한 절차를 밟으라”는 것뿐이었다. 정씨측은 지난 2002년 11월22일 서울고법 형사2부에 정씨가 직접 제출한 재심청구에 대해서도 1년이 다 된 지금까지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한 상태다.

    유준걸, 코스닥 등록 전 주식 전혀 없어

    -유준걸씨와는 어떻게 알게 됐나.

    “이경자씨로부터 소개받았다.”

    -탄원서 내용을 보면 2000년 2월 유씨가 코스닥 등록을 위해 보호예수해야 할 주식을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아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평창정보 세무조정계산서를 보면 유씨는 당시 345만주를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 돼 있는데.

    “평창정보는 자본금 50억원에 총 1000만주의 주식을 발행했다. 유준걸과 그의 회사 평창종건, 평창토건 그리고 권모씨가 100% 보유했었다. 그런데 그걸 1999년 말까지 345만주만 남기고 모두 팔아버렸다. 장래찬 전 국장이나 심완구 울산시장, 아태재단 이수동씨, 검찰 고위관계자 S씨 등도 유씨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안다. 유씨는 주당 8000원 또는 2∼3만원씩 팔았다. 나도 2000년 1월에 주당 2만7000원에 11만주를 매입했다. 나머지 345만주는 1999년 말 현재 10개 금고에 모두 담보로 제공돼 있었다. 동방·대신금고에 약 200만주, 한솔금고에 30만주, 새누리금고에 50만주, 삼환금고에 10만주, 나머지는 여러 금고에 담보로 잡혀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2000∼3000억원대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유씨가 실제 보유하고 있었던 주식은 단 1주도 없었다.”

    기자가 입수한 평창정보의 내부자료는 ▲2000년 1월과 7월 정씨와 유씨간에 체결된 평창정보 ‘주식양도, 양수계약서’ ▲그 해 8월31일부터 9월27일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내용증명서 ▲유씨가 작성한 ‘평창정보와 알타비스타간의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협상과정 및 발생사건 요약’이라는 제목의 문건 등이다.

    이 자료를 보면 정현준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까지 평창정보와 알타비스타간의 합작을 문제를 놓고 정씨와 유씨간의 ‘피 튀기는 전쟁’이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를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정씨의 불법대출 및 횡령, 사기 등은 대부분 이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평창정보가 세계적인 인터넷 검색엔진업체 알타비스타와 합작할 경우 그 주식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 뻔하고, 따라서 이같은 내부 정보를 이용해 수백억원대의 평창펀드가 조성됐던 것이다. 그리고 그 펀드는 새로운 로비 방법으로 사용됐고,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펀드에 가입했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평창정보 주식양도·양수계약서에 따르면 정씨는 앞서 밝힌대로 2000년 1월31일 유씨 소유의 주식 11만주를 주당 2만7000원씩, 29억7000만원에 인수했다. 계약서에 명시된 특약사항을 보면 ‘본 양수도 계약에 의한 주주명의 변경은 코스닥등록 6개월 이후 대주주 보유주식 예탁분 법적처분 가능 시점으로 한다. 본 건에 관한 주식 실물은 정씨가 보관하되 코스닥 등록에 필요한 시점에 삼성증권 또는 증권예탁원에 유준걸 명의로 예탁하고, 명의개서 때까지 예탁증서를 보관한다’고 돼 있다.

    이어 7월11일자로 체결된 주식 양수도 계약은 유씨가 동방금고, 대신금고, 새누리금고, 한솔금고, 푸른금고, 영진금고, 삼삼금고 등 제2금융권 7개 기관과 KDL 등으로부터 300억원을 대출받고 담보로 제공한 평창정보 주식 287만주 가운데 250만주를 정씨가 300억원에 매입하는 것으로 돼 있다. 대신 정씨는 나머지 37만주를 유씨에게 돌려주는 조건이다.

    계약서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계약의 파기’ 조건. ‘알타비스타와 평창정보 간에 합작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경우 계약은 일방적으로 파기될 수 있고, 유씨는 이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그로부터 1개월이 지난 8월10일, 알타비스타로부터 “평창정보에 대한 지분투자 및 기술참여 등 합작을 위한 협의는 더 이상 없다”며 합작법인 설립협상 중단을 통보하는 소식이 평창정보에 날아들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정씨 입장에서는 당연히 주식 양수도 계약은 무효였다.

    정씨는 8월31일자로 유씨에게 알타비스타의 협상중단 선언사실과 함께 주식 양수도 계약의 파기를 통보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그러나 유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씨는 오히려 “정씨가 경영권을 넘길 것을 요구하면서 그 조건으로 합작법인 설립사업에 대한 책임 내지, 무산의 위험까지도 감수한다고 하지 않았냐”며 8월초 작성된 ‘경영권 이전에 관한 합의서’를 제시하면서 미납된 채무의 변제와 돌려 받기로 한 37만주의 반환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9월7일자로 보냈다.

    유씨는 이어 9월27일자 내용증명에서 알타비스타가 평창정보와의 합작협의를 중단한 것은 정씨가 평창정보가 아닌 제3의 회사를 내세워 알타비스타와 계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합작 결렬 책임을 오히려 정씨에게 전가했다.

    그런 와중에 동방금고 부회장 이경자씨는 정씨에게 대출해주고 받은 어음회수에 나서는 등 정씨의 자금을 압박했고, 동시에 금감원은 동방금고 불법대출에 대한 내사를 시작했다. 정씨는 결국 10월21일 신한은행과 주택은행에 만기가 돌아온 14억9000만원의 기업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냈고, 4일 후인 25일 금감원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에 전격 구속되기에 이른다.

    또 2000년 10월31일 유씨가 직접 작성한 ‘평창정보와 알타비스타 간의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협상과정 및 발생사건 요약’ 문건은 합작협상 중단의 모든 책임이 정씨에게 있다는 요지로, 검찰이 정씨의 혐의에 평창펀드 모집과 공개매수 빙자사기 혐의를 추가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건은 정씨에게 매우 불리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어진 정씨와의 질의응답이다.

    알타비스타 합작 무산 이유 세 가지

    -유씨가 작성한 문건을 보면 정현준씨가 7월5일 유씨 모르게 알타비스타와 투자합의를 했다는데 사실인가.

    “6월 말쯤 새누리금고에서 돌린 어음 5억원을 막지 못해 평창건설이 부도가 날 뻔했던 적이 있다. 평창건설이 무너지면 자칫 평창정보와 알타비스타 간에 진행되던 합작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다급한 상황에서 내가 막아줬다. 그 일이 있은 후 (함께 일을 추진하던)권씨와 김씨가 유준걸이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으니 대책을 논의하자면서 찾아온 적이 있다. 유씨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알타비스타와 투자합의를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양수도 계약 다음날인 7월12일 유씨를 배제한 채 알타비스타 본사 관계자와 만나서 합작 후 200억∼250억원의 CB(전환사채)발행을 합의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본적으로 사실이다. 알타비스타 관계자들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평창을 실사해서 별 이상이 없으면 합작을 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하지만 유씨 모르게 한 것이 아니라 알타비스타쪽에서 합작을 하면 돈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 따로 만나 상의한 것이다.”

    -7월11일 평창정보 250만주를 300억원에 양수도하는 계약을 체결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유씨가 나를 찾아와 리츠칼튼에서 만났는데 평창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제1금융권에 1200억원, 제2금융권에 300억원 등 약 1500억원 정도의 부채가 있는데, 제2금융권의 300억원이 문제가 있어서 부도날 위기라고 했다. 그래서 8월31일까지 알타비스타와 합작하는 것을 조건으로 평창정보 250만주를 담보로 한 300억원의 부채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아태재단 이수동씨 등도 같은 조건에서 계약했다가 나중에 돌려 받았다. 알타비스타와 합작하지 않으면 평창은 휴지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런 조건의 계약을 한 것이다.”

    -유씨는 정씨가 7월21일부터 8월1일 사이에 회사 임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설령 합작에 실패하더라도 경영을 책임지겠다’는 발언을 했고, 8월2일 이사회에서도 이사 전원이 재확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과 다르다. 알타비스타와 합작이 되면 그렇게 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알타비스타에서 8월10일 평창정보에 합작합의 중단을 통보하는 편지를 보냈다. 평창에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계약이 안됐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에 직접 가서 알타비스타측에 확인했는데 평창정보에 대한 실사 결과 문제가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모두 세 가지였다. (평창정보에서 그동안 알타비스타와 계약해 운영하던 인터넷 사이트 알타비스타코리아의) 1일 접속회수가 300만건이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30만건도 안됐고, 유씨가 기술자를 빼돌렸는가 하면, 담보로 제공할 주식이 전혀 없다는 사실 등이 확인됐다는 것이었다. 그 때서야 유씨에게 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로 알타비스타가 평창정보측에 보낸 문제의 편지에서 알타비스타측은 정씨의 주장처럼 3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더 이상 협상은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펀드명단에 대해선 여전히 함구

    -그런데 왜 평창정보 주식 공개매집에 나선 것인지 의문이다. 공개매집을 하면서 알타비스타와 합작에 성공한 것처럼 비쳐 주가상승을 유도했고, 결국 그래서 사기혐의가 추가되지 않았는가.

    “알타비스타측에 ‘당신들도 문제가 있다’고 항의했다. ‘코스닥 등록을 할 것처럼 우리 국민을 속였고, 평창과 계약을 추진하면서 대기업과 접촉하는 등 이중플레이를 하지 않았냐’고 따졌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고 항의했다. 그랬더니 알타비스타가 ‘주주들이 너무 많아 재협상을 하려면 줄이는 게 어떻겠냐’면서 나를 슬쩍 떠봤다. 평창과의 재협상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신설회사라도 만들어서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평창에는 이미 내 자본이 1000억원이 들어간 상태여서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그래서 알타비스타측에 ‘공개매수를 하면 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기대를 하고 공개매수를 시도해 주주를 줄여 알타비스타측과 재협상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씨의 이같은 주장에 대한 유씨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평창종건측에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사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이른바 ‘정현준 게이트’와 관련된 펀드 명단이다. 정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로 일관했다. 또 국정원과의 관계와 정현준 비자금의 정치권 총선자금 유입설 등에 대해서도 “언론에서 부풀려서 보도한 것”이라며 그동안 알려진 것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정씨는 한때 KDL 명예회장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처남 차창식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른다. 이해해달라”는 말로 대신했다.

    KDL과 닉스의 자금거래

    한편 기자가 별도 입수한 KDL 전환사채(CB) 명단에 따르면 14회에 걸쳐 모두 46명이 62억원어치의 CB를 매입했다. 이들 명단에는 최근 나라종금과 관련,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안희정(安熙正)씨에게 자금을 지원해 논란을 빚었던 전 닉스 사장 김효근(金孝根)씨가 포함돼 있다. 또 효근씨의 친형인 전 보성그룹 회장 호준(浩準)씨와 현 닉스 사장 호연(浩然)씨 두 사람은 부인 김모씨와 곽모씨 명의로 CB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닉스의 효근씨 3형제가 매입한 KDL CB액수는 모두 8억원으로 이를 통해 100억원대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금감원 공시자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정씨는 1999년 7월경 닉스에 180억원을 투자했고, 닉스에서는 정씨와 관련된 또 다른 벤처업체 H사에 올해 초 5억1000만원(17000주)을 투자하는 등 이들 간에 매우 긴밀한 자금거래 관계가 유지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나라종금 수사와 관련, 호준씨의 계좌추적 과정에서 정씨에게 자금이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해 그 경위와 로비의 연관성 등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인 바 있다.

    -KDL CB명단에 김효근씨와 그 형제들의 부인들 이름이 포함돼 있다. 효근씨와는 어떤 관계인가.

    “1999년 초에 김호준씨 소개로 알게됐다. 효근씨가 투자하고 싶다고 부탁해서 8억원어치 CB를 발행해 준 적이 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모았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

    -장수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나.

    “1999년 6월 말경에 효근씨로부터 인수제의를 받은 적은 있는데, ‘닉스에 투자한 것 때문에 인수를 유예하겠다’고 말한 이후 유야무야됐다. 그 외에 아무 관계가 없다.”

    선배에게 빌린 단돈 3000만원으로 시작해 3000억원대의 재산을 모으며 M&A의 귀재로 떠올랐던 정씨. 그는 아직도 많은 비밀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잘 나갈 때 너무 거만했던 것 같다”는 그의 소회 속에서 깊은 회한과 반성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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