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호

北 광산개발 나선 광진공

“경의선 화차, 흑연으로 채운다”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주간동아 차장 hoon@donga.com

    입력2003-10-28 1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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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7월17일 남북 광물회담에서 체결된 북한 정촌흑연광산 개발사업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한광업진흥공사가 내년부터 북한의 흑연광산 개발에 참여하기로 한 것.
    • 광진공은 전략 광물인 희토류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국가 기간산업의 원동력인 광물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박사’들의 이야기.
    北 광산개발 나선 광진공

    “광업은 살아 있다.” 지난 10월8일 광진공은 중국 서준희토실업유한공사와 희토류 공동개발에 합의했다. 합의서에 서명하는 광진공 박춘택 사장(앞줄 왼쪽).

    대북송금 특검이 있은 후 확실히 북한 관련 뉴스의 비중이 낮아졌다. 더구나 송두율 교수 파문 이후에는 북한의 ‘북’자만 들어도 거부감이 생긴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북한 사회의 절대 다수 구성원은 우리와 함께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할 동반자다. 따라서 우리의 안보를 해치지 않으면서 북한 주민에게 도움을 주는 남북 경제협력사업은 확대될수록 좋다.

    흔히 한국 경제는 하체는 빈약하나 머리는 매우 큰 불안정한 ‘가분수’ 모양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단적인 예로 한국은 IT 분야 등에서 최첨단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정작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식량의 70%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 육류를 비롯해 밀과 콩, 과일 등 여러 농산물 중에서 한국이 자급하는 것은 쌀과 약간의 채소뿐이다.

    ‘북한에는 지하자원이 많다’

    IT 분야의 최첨단 제품은 쇠나 구리 같은 광물자원으로 만든다. 따라서 다양한 광물자원의 확보가 중요한데, 한국은 현재 각종 광물자원의 87%를 수입하고 있다. 한국은 식량과 광물자원의 수입이 중단되면 굶어죽고 말라죽을 수도 있는 나라인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한국은 식량자원과 광물자원 확보를 위한 해외진출에 매진해야 하는 나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사회 시간에 ‘북한에는 지하자원이 많다’고 배웠다. 그러나 그 말은 교과서에나 있을 뿐 한국은 그간 북한의 지하자원과 무관하게 지냈다. 그러는 사이 외국 기업들은 북한의 지하자원을 캐가고 있다.



    중국 기업은 함경북도 무산과 양강도 양강에서 철과 아연을 채굴하고 있다. 미국 회사는 함북 단천에서 마그네사이트를, 프랑스 업체는 강원도 김화에서 중정석을, 영국 기업은 함남 허천에서 금과 구리를, 스웨덴 업체는 강원도 법동에서 텅스텐을, 그리고 일본 회사는 석재를 캐가고 있다. 이 회사들은 북한과 50년에서 100년에 이르는 장기계약을 맺어 북한 땅속에 묻혀 있는 광물자원을 가져간다.

    김대중 정부 때 요란하게 시작된 경의선 공사는 현재 ‘하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완공될 것이다. 경의선이 완공되면 남북한은 이 철도를 통해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가. 현대아산과 토지개발공사가 주도하는 개성공단이 활성화되고 통일교가 주도하는 평양관광사업이 본격화되더라도, 경의선이라는 ‘거대한 통로’는 다 채우기 어려울 것이다.

    남북 관계는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관계를 트는 것 못지않게 터놓은 길을 통해 주고받을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광물자원을 개발해 한국으로 가져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부피가 큰 광물자원을 수송하는 데는 철도가 제격이다. 한국 기업이 북한에서 광산을 개발해 캐낸 광물을 화차에 실어 한국으로 가져온다면, 적잖은 한국인은 경의선이 이어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광물 매개로 남북 대화

    대한광업진흥공사(이하 광진공, 사장 朴春澤)는 광산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공기업이다. 이 회사는 주로 해외에서 유망 프로젝트를 탐사하거나 개발한 후 국내 민간업체에 투자를 선도하거나 직접투자 또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투자하는 일을 한다. 또 자금 지원도 한다. 그래서 ‘진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북한에서 광산을 개발한다면 그것 역시 진흥을 전문으로 하는 광진공이 나서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1년 후인 2001년 6월13일 당시 광진공의 박문수(朴文洙) 사장은 북한의 정운업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강원도 평강군 압동에 있는 탄탈룸 광산을 개발하기로 합의했었다. 탄탈룸은 콘덴서와 초경합금 제조에 사용되는 금속으로 한국에서는 전혀 생산되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은 지난해 1억7196만달러를 지불하고 286t의 탄탈룸을 수입했다.

    광진공과 민경련 간의 합의는 북한에서 절전형 전구를 생산하고 있던 성남전자의 변동우 사장이 중재했다. 성남전자 측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북한이 현금 대신 압동의 탄탈룸 광산 채굴권을 제시했는데, 광업에 문외한인 변사장이 광진공측에 이 문제를 상의했던 것.

    탄탈룸이 중요한 광물이고 당시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었던 때라 박문수 사장은 지체하지 않고 북한의 민경련과 탄탈룸 광산 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교환했다. 그 직후(2001년 8월27일) 광진공 사장이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박춘택씨로 교체됐는데 박사장도 북한 진출에 관심이 많았다.

    박사장은 러시아의 한 연구소에게 이 광산의 경제성 여부를 검토하게 했다. 러시아 연구소는 지난 6월 조사를 완료하고 0.01%의 저품위 탄탈룸이 2000여t 매장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저품위라면 채굴한 탄탈룸 광석의 가격은 낮아질 수밖에 없지만 가채량이 많아 경제성은 있다고 판단해준 것이다.

    이념에는 남과 북이 있지만 광물에는 남북이 없다. 오직 가격만 있을 뿐인데, 가격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경제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광진공측은 이렇게 광물을 매개로 남북이 만나고 합리적으로 이해를 조성하면 마음이 열리고 서로의 이념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라 기대한다.

    광진공은 가격만 맞으면 압동의 탄탈룸 광산을 개발한다는 생각인데 올 연말쯤 민경련과 가격 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합의가 이뤄지면 한국의 성남전자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가 공동투자해 본격적인 채굴에 들어간다.

    이렇게 탄탈룸이라는 돌을 놓고 논의를 거듭하고 있을 때 북한의 민경련은 광진공측에게 황해남도 정촌에 있는 인상흑연광산을 공동개발해보자고 제의해 왔다. 인상흑연은 전극이나 내화재 등에 쓰이는 것으로, 국내 소요량의 99%(9696t, 428만달러어치)를 수입하고 있다. 정촌광산은 1995년 인상흑연 채굴에 들어가 매년 300여t을 생산했으나, 북한의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채굴이 중단됐다고 한다.

    정촌은 개성과 해주 중간쯤에 있어 경의선이 완공되면 채굴한 흑연을 바로 화차에 실을 수 있다. 때문에 박춘택 사장은 협의를 서둘러 지난 7월17일 금강산에서 북한 삼천리총회사의 최현구 총사장과 50대50의 비율로 투자한다는 서류에 서명하였다.

    광진공은 현물로 투자하고 현물로 이익을 가져가기로 했다. 즉 50%의 출자금에 해당하는 65억5400만원은 채굴장비로 투자한다. 그리하여 이 광산에서 채굴량이 늘어나면 15년 동안 매년 1830t의 흑연을 가져가는 것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기로 삼천리총회사측과 합의한 것. 장비와 광물을 맞바꾸는 교류가 시작된 것인데 광진공의 박춘택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금강산 부근에서는 한국의 TV 방송이 모두 잡힌다. 삼천리총회사와 우여곡절 끝에 합작계약서 체결에 성공했는데, 계약을 체결한 7월17일 저녁 TV로 한국 뉴스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휴전선에서 남북한 군이 총격전을 벌였다는 게 아닌가. 공군총장 출신인 나로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이 있다고 밝힌 후 남북 교류가 크게 위축되었는데 이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 국가 안보에 대한 생각 등등…. 한 쪽에서는 대결을 하더라도 다른 쪽에서는 교류를 확대해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 것 같다.”

    광진공은 늦어도 내년 초 정촌의 인상흑연광 채굴을 위한 착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그리고 함남 단천에 있는 마그네사이트 광산을 비롯한 여타 광산에 대한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광업은 사양 산업이 아니다”

    박춘택 사장은 “광업은 사양 산업이 아니라 주요전략산업”임을 강조했다. 전자산업 등 첨단소재산업의 원료뿐만 아니라 기계, 건설 등 굴뚝산업에도 필요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농업은 중요성을 인정해주는 국민이 있다. 하지만 광업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여주는 국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현대 산업사회가 무엇으로 이룩되었는가. 철로 대표되는 광물로 이뤄진 것 아닌가. 광물자원이 없다면 수많은 건물과 구조물이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철기시대라는 시대 구분도 나온 것이다. 광업은, 국가의 생존권이 걸린 산업이다.”

    자원 확보는 국가 생존권이 걸린 영역이다. 제2차 세계대전도 따지고 보면 자원 쟁탈 문제로 일어났다. 독일은 석유가 생산되는 흑해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유럽전쟁을 일으켰고, 일본은 자원의 보고인 인도네시아를 장악하기 위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독일과 일본의 이러한 진출에 대해 미국과 영국·소련·프랑스가 반대했기 때문에, 세계는 연합국과 주축국으로 갈려 거대한 전쟁에 돌입했던 것이다.

    현재 국내 광업은 시멘트를 만드는 석회석 광산과 고령토 규석 납 등을 생산하는 광산을 제외하면 전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필요한 광물의 87%를 수입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인데, 한국으로서는 필요한 광물을 제때에 제공해줄 수 있는 공급처를 확보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물론 상당량의 광물은 돈을 주고 사와야겠지만, 가능하다면 직접 개발해 채굴권을 확보하는 게(해외개발) 훨씬 경제성이 높다. 해외개발은 광업권을 확보한 기간 동안은 한국 광산과 다를 바 없는지라 안정적인 수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성 있는 광물을 찾아내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혹시나’ 하고 팠다가 ‘역시나’로 끝나, 거액을 날리기 십상이다. 실제로 광진공은 18개 해외개발 사업에 도전했다가 ‘역시나’ 하며 물러나야 했다.

    현재 광진공은 19개 광산에서 ‘노다지’를 캐내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간 투자금은 13억3000만달러이다. 그리고 19개 광산에 4000만달러를 투자해 광맥을 찾고 있고, 37개 지역에서 6745만달러를 들여 가능성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것이 광진공의 ‘포트폴리오’다.

    노다지를 캐내는 광산에서 번 수익으로 새로 투자할 지역과 개발할 광산을 찾는 것인데, 노다지를 찾아내는 비율이 높으면 ‘잘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역시나’의 비율이 높아진다면 그때는 하루빨리 광진공의 문을 닫는 것이 국가 재정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길이 된다.

    광진공은 경제성 있는 광물을 찾는 ‘도박’에 매진하는 기업이다. 광진공의 ‘주인격’인 산자부는 광진공이 이뤄야 할 높은 목표치를 할당해주었다. 즉 산자부는 여러 광물 중에서 산업 발전에 필요한 유연탄과 구리·아연·철·우라늄·희토류(稀土類)를 6대 전략광물로 정하고, 광진공이 2010년까지 해외개발을 통해 확보할 6대 광물의 물량을 할당해준 것이다.

    2002년말 현재 가장 목표치에 접근해 있는 것은 아연이다. 아연은 호주 타운스빌 광산 등이 활기를 띠면서 목표치의 89%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라늄과 철·희토류는 전혀 실적이 없는 상태. 그런데 지난해 희토류 부문에서 목표치를 상회하고도 남을 양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희토류란 말 그대로 ‘희귀한 흙’인데, 구체적으로는 란타늄·류테튬·스칸듐·이트륨 등 17개의 원소를 가리킨다. 이러한 원소는 형광체나 자성체·연마제·촉매제 등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 희토류는 ‘하느님이 공정하지 않아서인지’ 중국에서 전세계 생산량의 88%가 생산되고 있다. 산자부는 2010년까지 희토류 350t을 해외에서 개발해 들여오라는 목표를 광진공에 할당했다.

    광진공은 희토류를 찾아 지난해 3월 중국에 조사요원을 파견했다. 결국 지난 10월8일, 중국의 ‘서준희토실업유한공사’라는 회사와 51(서준) 대 49(광진공)의 비율로 합작사업을 하는 데 합의했다. 이 합작 광산에서는 연간 1000t 내외의 희토가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광진공은 이중 49%(약 490t)를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광진공은 2010년까지 이뤄야 할 목표치를 조기에 달성하게 된다.

    광업, 땅에서 바다로

    희토류의 성공은 역시 ‘제로’에 머물고 있는 우라늄과 철광 개발팀에게 자극을 줄 가능성이 있다. ‘성공의 도미노’가 이어져 광진공이 벌이는 게임의 승률이 높아진다면 한국은 안정적으로 자원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승률을 높인다고 해서 꼭 땅만 보고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광업은 땅에서 이뤄지지만 미래의 광업은 바다에서 펼쳐질 수도 있다.

    태평양의 심해저에는 망간·구리·니켈·코발트 등이 널려 있는 곳이 있다. 따라서 이곳의 광업권을 확보해 건져낸다면 꽤 괜찮은 노다지 사업이 될 수가 있다. 한국은 하와이 동남방 200km쯤에 있는, 세계적으로는 ‘C-C해역’이라고 하는 심해 수역에 대한 탐사권을 획득했다. 이곳은 바다여서 해양연구원이 연구 조사를 하고 있는데, 조만간 광진공은 해양연구원과 공동으로 심해 광물 생산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국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한국이 독점적으로 해양 광물을 채굴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 EEZ에 대한 탐사는 한국지질자원연구소에서 하고 있는데, 광진공은 이 분야로의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몇 가지 장애물이 있다. 해양 탐사를 위해서는 시추선을 비롯한 대형 구조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투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

    광진공의 박춘택 사장은 “생산비가 올라가도 국내 농업을 지켜야 하듯이, 국내 부존자원이 적더라도 반드시 국내의 광업 기술을 유지해야 한다. 석유 메이저를 비롯한 미국의 광업회사들도 전부 해외에서 광물을 개발하고 있지 않은가. 미래를 생각하는 국민이라면 광업을 통한 남북교류를 진심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업은 결코 사양 산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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