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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로렐라이’ 백제 도미설화 재조명

“도미는 바닷가 어부 아닌 서울에 거주한 귀족”

  • 글: 도수희 충남대 명예교수·국어학 tohsh@chol.com

‘한강의 로렐라이’ 백제 도미설화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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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그 길로 도망쳐 남편이 버려진 강가에 이르러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때 홀연히 조각배 한 척이 떠내려왔다. 부인은 그 배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거기서 도미 부부는 풀뿌리로 연명하며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蒜山) 아래로 가니 고구려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옷과 먹을 것을 주어 구차스럽게 살면서 객지에서 일생을 마쳤다는 내용이다.

왕의 짓궂은 장난과 부부의 열정적 사랑이 잘 대비된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부부의 행동이 감흥을 부른다. 이야기의 결말도 극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삼국사기’ 원문을 중심으로 도미전을 조명하려 한다. 이 원문에서 파생한 전설, 전기, 구전설화는 마음대로 보태고 뺀 허구가 많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를 통해 “도미전의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언제인가, 전설화(전기화)한 시기는 언제인가, 도미 부부가 살던 곳은 어디인가, 도미는 과연 편호소민이었던가, 체형(體刑)을 당한 뒤에 버려진 강안(江岸)은 어디인가, 도미 부인의 배가 도착하여 남편과 해후한 천성도(泉城島)는 어디인가, 망명하여 여생을 마친 산산은 어디인가” 하는 7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 일곱 가지의 요소는 곧 도미전을 바로 알 수 있는 사안들이다.

도미전은 ‘삼국사기’에 최초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후 전국에 걸쳐 아류작들이 파생되어 전해져온다는 점이 특징이다. 도미전은 여러 고문헌에 기록되어 전해오기도 하고, 구전(口傳)으로 유포되어 있기도 하다. 구전되고 있는 도미전설로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蘇城里)의 전설, 경남 진해시 청안리(晴安里)의 전설,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창우리(倉隅里)의 전설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충남 보령시 도미기념물은 오류



보령시의 전설은 1990년 앞서 언급한 모 교수가 충남 보령시 오천면에 낚시하러 갔다가 소성리에서 수집하여 서울의 모 유력 일간지에 발표한 도미전설이다. 보령시에 ‘도미항(道美港)’이 있고, 도미 부인이 남편을 그리던 ‘상사봉(相思峰)’이 있으며 ‘미인도(美人島)’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보령 일대가 도미 부부가 실제로 살던 곳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지명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빚어진 오해로, 전공영역을 벗어난 위치에서 흔히 범할 수 있는 억측에 불과한 것이라 하겠다.

원본의 내용에 강진(江津)은 있어도 항구(港口)는 없다. 즉, 도미설화의 발생지는 바다를 낀 항구가 아니라 큰 강변이었다는 것이다. 천성도(泉城島)는 있어도 상사봉과 미인도는 없다. ‘도미항’ ‘상사봉’ ‘미인도’는 전국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이곳들을 모두 도미전설의 발생지로 보아야 하는 모순이 나온다.

도미 부부가 진해에 살았다는 진해시의 전설은 ‘삼국사기’의 도미전에 나오는 지명 천성도와 경남 진해 가덕도(加德島)의 마을 이름인 천성도(天城島)가 동일한 발음이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다. 더구나 진해 해안 청안리에 도미묘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도미전의 결말 대목은 “도미 부부가 고구려에 가서 살았다”로 되어 있다. 이 대목은 경남 진해에 도미묘가 들어섰다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당시 진해는 신라의 영토였다. 진해의 어부들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출항하기에 앞서 도미의 묘에 제를 올리는 의식을 전통적으로 행하여왔다. 민속신앙의 대상으로 모신 가묘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경기 광주군의 전설은 ‘도미진’(渡迷津 또는 斗迷津)이란 지명이 도미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발생한 듯하다. 두 눈동자를 잃은 도미가 버려진 강변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에 전설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곳은 도미전의 사건이 발생한 무대인 한홀(廣州)과 인접한 지역인 것은 사실이다.

도미전은 백제 민간에 암암리에 유통되어오다가 백제가 멸망한 이후 통일신라기 때 구전 또는 문헌으로 전승되던 것을 고려 시대에 수집·정리하여 ‘구 삼국사기’ 열전에 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을 다시 김부식이 ‘삼국사기’ 제 48권 열전 도미전으로 옮긴 것이다. 결론적으로 경기 광주군의 전설이 ‘삼국사기’의 도미전과 동일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는 도미를 백제 개루왕 때 사람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백제의 제4대 왕과 제21대 왕의 이름이 똑같은 데 있다. 제4대 개루왕은 서기 128년부터 165년까지 38년 동안 왕위에 있었고, 제21대 개루왕은 서기 455년부터 475년까지 21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무려 300년 이상의 시대 차이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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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도수희 충남대 명예교수·국어학 tohs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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