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1월호

메주로 담북장 끓이고 무청으로 시래기 엮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입력2003-10-28 1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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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에 아랫목을 차지하는 게 메주만 있나. 담북장(청국장)도 있다. 이건 또 냄새가 얼마나 놀라운지. 콩과 볏짚이 뜨겁게 만나 이룬 맛이다. 미끈거리고 끈적거리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내 손맛이 있다.
    메주로 담북장 끓이고 무청으로 시래기 엮고

    이웃집 외 얽는 일을 도와주는 필자.

    끝이 살짝 치켜올라간 처마 밑에 메주를 매단다. 볏짚으로 솜씨 부려 매달고 나서 한 발 물러서서 본다. 가을 햇살에 금빛으로 빛나는 메주. 예술작품이 따로 없다. 처마 밑에 메주, 바로 거기에 있다. 메주는 우리의 일년 작품이다.

    봄에 콩을 심고, 새하고 싸우며 새싹을 지키고. 풀과 싸워 이기면 여름에 콩 꽃 구경할 수 있다. 가뭄에 목말라하지 않나, 태풍에 쓰러지지 않나, 벌레가 너무 많지 않나… 드디어 콩이 영근다. 콩잎이 떨어지면 거두어들인다. 낫으로 베어 말렸다가 도리깨로 턴다. 그러면 콩깍지 부스러기, 덜 여문 콩, 잘 익은 콩, 벌레 먹은 콩이 뒤섞이게 마련. 거기서 잘 여문 콩을 고른다. 된서리가 내리면 메주 쑬 때다. 메주를 매달아야 한해 농사를 마무리한 기분이다.

    처마 밑에 메주가 매달린다

    메주콩 삶은 냄새를 기억하는가? 메주를 빚는 곁에서 집어먹던 콩 맛을 아는가? 요즈음 도시 아파트 살림에서는 사라진 메주 쑤기. 나 역시 농사를 시작하고서야 메주를 쑤기 시작했다. 처음이니 혼자서는 자신이 없다. 남편과 함께 가마솥에 불을 때며 콩을 삶았다. 불 때느라, 그 다음에는 콩물이 끓어 넘치지 않게 하느라 바빴다.

    그러다 아궁이 불길이 잦아들고, 뜸이 푹 들 무렵. 얼마나 더 익혀야 하나? 둘 다 모른다. 다른 건 어찌 귀동냥을 했는데 이건 못 알아놨다. 앞집에도 가보고, 뒷집에도 가보았지만 아무도 계시지 않는다.



    이거 어떡하지? 그러는데 가마솥에서 나는 냄새가 달라졌다. 그래, 이게 메주 냄새야. 어릴 때 맡아보던 그 냄새. 둘이 눈을 마주보며, 머리로는 먼 시간여행을 했다. 어린 시절 맡아본 냄새를 따라 그때 기억 속으로.

    이제는 메주를 빚을 차례. 뜨거운 콩을 퍼내 큰 그릇에 담고 쿵쿵 찧는다. 아이 어른 힘을 모아서. 그리곤 메주를 빚는다. 틀에 넣고 밟아서 빚는데 아이들도 잘한다. 연신 콩을 집어먹으며. 온 식구 몸무게를 모아 단단하고 반듯한 메주를 빚는다. 그러고 나면 아침 먹고 시작한 일인데, 깜깜하다. 메주를 하룻 밤 식힌 뒤, 볏짚으로 솜씨를 부려 처마 밑에 매단다.

    처마 밑에서 아침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메주가 마르면 안방 아랫목에 메주를 모시고 띄우기 시작한다. 고롬고롬한 메주 뜨는 냄새.

    겨울에 아랫목을 차지하는 게 메주만 있나. 담북장, 보통 청국장이라 하는 장도 있다. 이건 또 냄새가 어찌나 놀라운지. 담북장을 띄우고 나면 며칠 동안 방안에서 냄새가 사라지질 않지만, 우리 집 식구들은 익숙하다. 한 방에서 냄새를 맡으며 먹고 자고. 담북장과 하나가 된다. 집에서 만든 담북장은 콩과 볏짚이 뜨겁게 만나 이룬 맛이다. 미끈거리고, 끈적거리며 냄새도 더 지독하고.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내 손맛이 있다.

    시골 살면 전염된다. 초겨울에 메주 쑤고, 한겨울에 담북장 냄새 풍기고 싶어한다. 주부들만 그런 게 아니다. 남정네들도 열심이다. 올 초 마을 회의를 하는데, 회의 끝내고, 메주 띄우는 이야기를 한참 했다. 남정네들이 더욱 열심이다. 시골집에서 이 일은 주부들만의 일이 아니다. 남편도 함께 불을 때고, 메주 빚고, 매달고…. 메주는 이렇게, 부부가 힘을 모아 일년 농사하여 마련한 작품이다.

    날이 차지면 누구나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따뜻하게 불 땐 집. 그 집으로. 우리 집은 몇 해 전 10월에 짓기 시작해 10월25일 상량, 11월10일 지붕을 얹었다. 지붕에 기와 얹는 날. 그날 일을 도와준 이웃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 넓지 않은 지붕 위에 사람이 빼곡이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한 장 찍어놓았더라면…. 그때를 떠올리며, 8월호에 이어, 집 짓는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집 짓던 때를 돌이켜볼 때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적이 있나 싶다. 우리 집에서 먹고 자는 목수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하고. 하루 세 때에 참 두 번. 모두 다섯 끼를 마련했다. 그 사이사이 가을걷이해야지, 아직 어린 아이 둘 돌봐야지. 이것저것 필요한 게 어찌나 많은지. 하루에도 장에 한두 번 나가야지. 그때는 늘 뛰어다녔다.

    그렇게 부지런히 일을 해도 힘든 줄 몰랐지. 태어나 처음으로 내 집을 짓는 재미. 그 재미와 희망이 있으니…. 아파트 평수 늘리는 재미와는 다르다. 우리 식구가 가진 모든 역량을 모은 종합예술이라 할까. 우리 형편에 맞춘 설계. 전체 틀거리에서 문고리 하나에 이르기까지. 머릿속에 그리던 하나하나가 순간순간 눈앞에 실현된다. 영화라면 그런 영화가 없다. 우리 식구를 한눈에 표현하는 작품. 이게 우리 집이다.

    자연에 들어가 살게 되면 누구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어한다. 잡지에 나오듯, 통나무집, 목조주택, 스틸 하우스, 흙집, 돌집이라고 못 지을 게 없다. 집을 짓고 나니, 사람들은 평당 얼마 들었어요? 하고 묻는다. 한데 귀농한 사람들은 실제 일머리 하나하나를 묻는다. ‘이 흙벽은 무얼 섞어서 발랐어요?’ 하고. 귀농한 이들은 되도록 집을 손수 짓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귀농하는 이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도 다르고, 귀농하고자 하는 속사정도 다르지만, 누구나 몸을 움직여 살아가고자 하는 자세가 있다.

    그러기에, 손수 하고파 한다. 실제, 전문 일꾼을 들이면 들일수록 집은 규격화되고, 집주인이 손수 하면 할수록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집이 지어진다. 또 현실에서는 인건비가 왔다갔다 한다.

    그렇기에, 소 축사에 벽만 막아 살 수도 있고. 컨테이너 박스 두 개 놓고 그 사이를 이어 지을 수도 있다. 수몰지구에서 한옥 뜯어다 짜맞춘 재활용 집. 몇 년에 걸쳐 시나브로 지은 집, 산에서 불 탄 나무를 가져다 지은 집에 이르기까지 집주인의 형편에 맞춰 나름대로 보금자리를 꾸민다.

    우리는 마을 빈집에 살던 경험을 살려, 나무로 기둥 하고 벽은 흙으로 지어보기로 했다. 우리 힘만큼 하되, 몇 개 공정은 전문 일꾼을 들이기로 했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라 자신이 없기도 하고, 하루빨리 짓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아는 분이 목수 일을 맡아주었다. 목수와 머리를 맞대고 설계를 정했다. 그 동안 머릿속에서 수없이 그리고 지워왔던 설계 가운데 하나를 정했다. 우리 집터와 우리 형편에 맞추어.

    집 지으며, 정 드는 집

    우리는 넓은 집을 바라지 않았다. 되도록 작게 지으려 했다. 그래도 기왕 지을 거면 좀더 크게 짓지 하는 분이 많았다. 그런 말에 내가 흔들리면, 남편은 이 다음에 집이 좁으면 아래채, 별채 자꾸 지으면 되지 했다.

    사실, 낮이면 모두 나가 일하니 집이 넓으면 관리하기 힘들고, 겨울에 따스하게 불 때기 어렵다. 나무는 보통 12자로 사고 판다. 그래서 나무를 알뜰하게 쓰려고, 12자 세 칸 집으로 정했다. 지붕에 서까래도 12자 나무를 그대로 걸치도록 하여 집 폭은 15자.

    그러니까 평면도를 그리면, 12자에 15자짜리 네모 공간이 세 개인 집이다. 하나가 5평이니 모두 15평집. 서쪽은 안방. 가운데는 부엌 겸 거실. 동쪽은 아이들 방. 집 지붕은 사방에 처마가 있는 모임지붕이다.

    목수 일을 시작하며 지내는 모탕고사를 하고, 목수와 남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무를 깎고. 마름질을 하고. 우리 한옥을 짓는 하나하나는 참 좋은 볼거리요, 배움터였다. 한옥의 기초는 주추다. 집 기초 하면 땅을 파서 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땅 위에 돌과 흙을 얹어 돋운다. 나무로 집 틀을 짜는데, 못 하나 박지 않고 나무끼리 끼워 맞춘다. 나무를 써도 나무가 본디 자란 대로, 뿌리 쪽을 아래로 하고, 남쪽은 그대로 남쪽으로 한다.

    집 짓다가 밥 먹으며 쉬는 때는 목수에게 묻고, 답하고. 이론 공부를 했다. 이때 배운 덕에 남편은 혼자서 아래채를 지었고, 나 역시 집이 어떻게 짜여지는지 이치를 터득했다.

    집 짓는 현장은 난장이다. 이웃들, 손님들, 지나다 구경하는 분들까지. 우리 동네는 이웃이 집을 지으면 하루쯤 가서 일을 도와주는 인심이 있다. 이런 마을 분위기에 맞춰, 우리 집 목수는 이웃들이 일 거드는 걸 잘 받아주었다. 이웃이 오면 그 분에게 맞는 일거리를 내주고. 그래서 우리 집 짓는 현장에는 손님이 일꾼이 되기도 했다. 집짓기를 배우고픈 처녀도 있었고, 초등학생이던 우리 딸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여인의 손길이 많이 들어가 있다.

    메주로 담북장 끓이고 무청으로 시래기 엮고

    처마 밑에서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메주가 마르면 안방 아랫목으로 ‘모셔온다.’

    모탕고사에서 상량. 이때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집 틀 위에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식을 했다. 보통 상량식 하면 돼지머리 놓고 상을 차리고, 손님은 돼지 입에 돈을 끼워 넣고 절을 한다. 그 돈은 일꾼들 몫이고.

    우리는 새롭게 하고 싶었다. 우리 목수도, 이웃도 우리 뜻을 받아주었다. 돈 대신, 농사한 음식을 들고 와 상을 함께 차리기로. 떡을 해주고, 술을 담아주고, 땅콩, 배….

    동네 잔칫날처럼 정성을 모아준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이웃 한 분이 사회를 보고. 목수도 소개하고. 집주인도 인사하고. 이웃들이 덕담을 하고. 끝나고 술 한잔 하고.

    머리로 그리던 집이 목수 손을 거쳐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낼수록 이건 목수 작품이었다. 생각보다 웅장한 모습. 아름다운 자태. 지붕 마감을 놓고 목수와 승강이를 했다. 우리는 마을 집처럼 슬레이트를 얹자고 했고, 목수는 기와를 얹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처마 선이 곱게 나온다고.

    집 지으며 가장 어려웠던 것이 지붕 처리였다. 집은 나무와 흙으로 지으면 되는데 지붕은 마땅하지 않다. 초가? 돌기와? 오염물질인 슬레이트? 양철지붕? 결국 목수 말을 들어 시멘트 기와를 얹었다.

    우리 집은 손수 하지 못하고 목수에게 의지한 우리 모습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남들이 우리 집 아름답다고 덕담을 하면, 나는 오히려 부끄럽다.

    기둥 세우고. 지붕 얹고. 벽 쌓고. 문 달고. 그때그때 달라지는 집 모습. 그러면서 정드는 집. 처음 집을 지을 때는 상량을 하면 집이 거의 다 서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상량은 집짓기 시작이었다. 상량 뒤에, 지붕 얹고, 벽을 쌓고 나서, 집주인 할일이 켜켜로 있다.

    이때부터 시나브로 해야 하는 잔일이 많다. 벽은 흙벽돌로 쌓았으니, 흙벽돌 사이사이 메우기, 벽 바르기. 바닥에 흙 채워 넣고, 구들 놓고. 말리고, 도배, 장판, 등 달기까지…. 처음으로 도배도 해 보았지. 자려고 누우면 종이가 비뚤 빼뚤. 천장에는 종이가 찢어진 자리가 보인다.

    그러면 내 손길이 거기 있다. 도배를 도와준 친구와 나눈 이야기도 떠오른다. 끝도 없어 보이던 일을 얼추 하고 식구들이 건넌방에서 처음 자던 날. 그날의 기쁨. 아이들도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겨울 기운 일어서는 입동(立冬)

    산골의 겨울은 빠르다. 자고 나면 온 세상에 된서리 이어지고, 하루해가 짧아지니 저녁 해가 금방 지고 아침은 더디 온다. 아침저녁에는 문밖을 나서기 꺼릴 만큼 바람이 차다.

    무서리에 끄떡없이 푸르던 뽕잎도 모두 떨어지고, 가을꽃도 시들었다. 마른 덤불 사이로 새떼가 바삐 나는데, 빨간 찔레 열매, 망개(청미래) 열매가 꽃같이 반가운 철이다.

    가을걷이도 끝났고, 겨울 작물도 입동 전까지 심어야 한다. 이제부터 땅 얼기 전까지 가을걷이 뒷정리를 해야 한다. 그 가운데 논둑, 밭둑 터진 곳이 있으면 그걸 새로 쌓는 게 첫째다. 작년 ‘루사’ 때는 논둑이 터졌는데, 올 ‘매미’ 때는 밭둑이 터졌다. 그 일이 만만치 않다.

    늘 시작하려면 엄두가 나지 않지만 하다 보면 다 된다. 나무들도 돌보아야 한다. 거름도 듬뿍 얹어주고, 어린 나무는 볏짚으로 감싸 겨울옷을 입혀준다. 짐승 우리도 겨울 채비를 해줘야지. 바닥을 치워, 밭에 거름으로 내고. 왕겨를 새로 넣어준다. 내년 봄에 먹을 시금치, 월동초, 상추도 잊지 말고 가꾸어야지.

    농사지은 지 여섯 해. 올해 가을걷이는 썰렁했다. 해마다 두 가정 먹을 정도 나락이 나온 논에서 우리 식구 먹을거리 정도 나오고.

    고구마는 잎만 무성하지 제대로 달리지 않았다. 늦게 심은 팥은 제대로 뿌리도 내리지 못했고, 기장은 태풍 때 이삭 모가지가 부러져버렸다.

    만일 지독한 흉년이 들어 농촌에도 먹을 쌀이 귀하다면. 그렇다면 도시 사람이 힘들까, 농촌이 힘들까? 아마도 농촌이 더 힘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산에 밤도 감도 별로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이맘때면 먹을거리가 집안팎에 쌓이겠지. 처마 밑에는 옥수수, 시래기…. 마루에는 늙은 호박, 밤이야 도토리야, 마른 나물, 고구마. 쌀광에는 나락, 기장, 수수, 콩, 팥…….

    처음에는 농사가 어려운 줄 알았지, 그 뒤 갈무리가 더 어려운 줄 몰랐다. 서툰 솜씨로 애써 농사한 걸, 땅에 떨어진 콩알 하나라도 더 주워 담는 것까지는 그런 대로 했는데. 정작 갈무리 잘못해, 벌레가 먹어버리고. 쥐한테 바치고. 곰팡이 피고, 얼어서 못 쓰고.

    그렇게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하나하나 갈무리하는 법, 알뜰히 먹는 법을 배웠다. 농사는 남 하는 거 따라서 하면 웬만큼 되지만 갈무리는 그리 만만치 않더라. 모르면 배워야 하는데, 농사법은 책을 찾으면 나오기도 하지만, 갈무리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살림 책이나 요리책에도 나와 있지 않다. 도토리 묵 무치는 요리는 여러 가지 나와 있지만, 도토리로 묵을 끓이는 법이 나온 책은 드물지 않은가.

    갈무리 가운데 씨앗 갈무리는 더욱 정성이 필요하다. 제대로 갈무리 못하면 씨를 잃어버릴 수가 있다. 씨앗거리는 되도록 열매의 날이나 꽃의 날 거둔다. 그렇게 날을 잡아 거둔 뒤, 바람 좋은 그늘에 시나브로 말린다. 열매라면 소금물에 담가 가라앉는 것을 씨앗으로 한다. 감자나 고구마 같은 뿌리는 생김새를 잘 살펴보아 따로 모아, 자기한테 맞는 온도로 보관한다. 감자는 서늘하되 얼지 않게, 고구마는 따뜻하게….

    겨울이 빠르게 오건 늦게 오건 이맘때면 비가 눈이 되고, 겨울 기분이 든다. 지난달에 심은 밀, 보리 파란 싹이 추위에 움츠려 있고, 양지에 겨울나물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다. 나무마다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 채비하는 중에 으름 덩굴 파란 잎은 아직도 시들지 않았구나. 산짐승 먹이 찾아 밭으로 내려오기 시작하고 까치야 참새야 텃새들이 유난히도 설친다.

    하루 한 밭씩 돌아보며 뒷정리하고. 겨울 농사하는 밀, 보리, 마늘, 양파 밭에 두둑이 검불을 덮어 겨울을 이겨내게 도와준다. 땅 얼기 전에 땅 녹을 때 대비하여, 부추 밭에 재 얹어주고 쪽파 밭에 거름도 뿌려준다.

    논밭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집도 겨울채비를 해야 한다. 비포장인 길이 겨울을 날 수 있나, 겨우내 물이 얼거나 가물지 않을까 살펴본다. 우리 집 짓고 이듬해, 길은 얼고, 물은 끊기고, 가스 배달 차, 기름 배달 차는 못 들어온 해가 있었다.

    살얼음 잡히니 배추 뽑는 소설(小雪)

    무서리 서너 번에 된서리 오듯, 된서리 서너 번에 얼음이 언다. 영하 2~3℃로 내려가면, 무를 뽑아 무 김장 먼저 한다. 동그란 무는 동치미, 자잘한 무는 우선 먹을 신건지, 알타리무로는 총각김치 담근다.

    나머지 무는 내년 봄까지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저장한다. 땅에 움을 파서 그 속에 잘 묻어두는 거다. 무 밑동은 바싹 잘라 무청으로는 시래기 엮어 말려 겨우내 먹어야지.

    거기서 한 단계 기온이 더 떨어져 영하 4~5℃가 되면, 배추가 얼 수 있다. 그러니 배추 뽑아 김장 준비를 한다. 시골은 배추 뽑은 날이 김장하는 날이 되지.

    올해는 김장 배추도 고생이라 어느 집 밭에 가도 배추가 줄지어 자라지 못하고 듬성듬성 자란다. 아무리 배추가 물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올 여름비에는 살아가기 힘들었나 보다. 아무리 심고 또 심어도 안 되고. 결국 살아남은 무, 배추가 얼마 안 되었다. 그래서 뒤늦게 심을 수 있는 마지막 김장거리인 알타리무를 한 번 더 심었다. 배추김치가 모자라면 총각김치라도 넉넉히 해놔야 하지 않겠나.

    김장을 하려면 며칠 전부터 차근차근 해야 할 일이 많다. 가을 거둔 붉은 고추 깔끔하게 다듬어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고. 김장 항아리 물에 우려 다시 땅에 파묻어야 한다. 맑고 따신 날을 잡아 김장을 담근다. 김장이야 도시서도 해마다 했다. 하지만 몇 포기 생색으로 담갔다.

    시골은 김장을 많이 한다. 겨우내 먹어야지. 따로 깊게 묻어 늦봄까지 먹는다. 그러니 이맘때면 집집이 김장이 큰일이고, 김장하고 나면 이웃집과 나눠먹는다.

    한해 농사 지어 곳간에 알곡, 장독간에 김장김치, 처마 밑에 장작이 쌓여 있다면, 겨울이 온다고 걱정 없고 오붓하고 훈훈하겠지.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데 올해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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