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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그레이드된 ‘신형 저격수’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

‘상식’과 ‘집요함’으로 권력 심장부 파헤치다

  • 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업그레이드된 ‘신형 저격수’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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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간 뒤 공부가 하기 싫어 한동안 힘들었다. 그때는 정말 공부를 안했다. 대학원에 입학하자 ‘권영세가 어떻게 들어왔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1970년대 말~80년 대 초 유시민, 심재철이 학생운동의 최전선에 있을 때 그는 그런 식으로 태업을 했다. 1989년 수원지검 검사, 1991년 강릉지청 검사, 1993년 독일 파견, 1994년 안기부 파견, 1998년 서울지검 부부장 검사로 이어지는 그의 법조인 이력은 매끈하다. 독일 법무부에 파견근무를 하게 된 것은 동기와 아래 기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독일어 시험에서 1등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검찰 내 엘리트 코스로 통하던 안기부 파견 검사도 그의 이력서에서 한 줄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검찰 이력에서 굴곡은 수원지검 공안검사 시절에 한 차례 있었다. 한 대기업 여성 노조위원장이 긴급체포됐다. 권 검사는 그 여성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 될 사람은 노동운동과 관련된 사람이 아니었다. 구속수사 방침이 떨어졌지만 그는 불구속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노조를 깨고 싶어 했던 대기업의 압력이 거셌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았다. 그 여성이 가정을 이루도록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자신의 소신을 관철했다. 이후 그는 원하던 지청으로 발령받지 못했다. 그 지청 관할에 해당 대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 검사가 오면 협조가 안 된다”는 이유를 들며 그 기업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권 의원의 인생을 바꾼 계기는 김대중 정부의 출범이었다. 그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했다. 공안검사는 과거 정권에서 잘나가던 보직이었지만 새 정부의 지향점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봤다. 더욱이 그의 장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낸 유도재씨였다. 그는 “삶을 한번 바꿔보자”는 호기를 부렸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로 유학을 다녀온 그는 2002년 8·8 재·보선에 나서 당선됐다.



권 의원은 2004년 8월 국회 정보위에 배정되면서 날개를 달았다. 그는 2005년 오일 게이트로 시작해 국정원 X파일로 이어지는 폭로 정국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권 의원에 따르면…’ ‘권 의원이 입수한…’ 등의 표현이 연일 신문, 방송에 오르내렸다. 그가 권력형 비리의혹에 대해 브리핑하는 장면이 하루 걸러 TV를 탔다. 오죽했으면 최근 손학규 경기지사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측 인사가 권 의원에게 아는 체를 하며 “대변인을 하셨지요?”라고 했을까.

‘스타일’이 다른 저격수

그는 명실상부 한나라당의 대표 저격수로 통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대한생명 매각(인수 기업이 자격 없다고 한 금감원 자료), 오일 게이트, 삼성 대선자금, 이동통신사의 로비 문건, 국정원 X파일(휴대전화 도청), 이해찬 총리 골프 파문, 서해유전 탐사 의혹, 국가정보원의 다단계업체 로비 의혹 보고서 등이 꼽힌다.

큰 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은 그의 방에 자주 전화를 건다. 낙종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의 방에선 사건을 진전시키는 ‘새로운 뉴스’가 계속 생산된다. 언론의 입맛에 딱 맞을 수밖에 없다.

그는 이전과는 다른 저격수였다. ‘딥스로트(deep throat·내부 고발자)’가 없다. 대신 ‘폭로 전문가’라는 수식어도 없다. 그의 문제 제기는 깔끔하고 지적인 방식이라는 평이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 그는 북핵이나 위폐 문제가 터졌을 땐 미국 정부 문서를 열심히 구해 탐독했다.

“정부-공기업 부문의 비리, 시스템의 비리를 감시하고 바로잡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다만 사실이 아닌 것을 터뜨리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그의 ‘저격 철학’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각광받은 것은 2005년 4월 오일 게이트 진상조사단장 때였다. 4·30 재·보선을 앞두고 달아오른 오일 게이트는 철도청이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거액을 날린 사건이다. 이 사건이 단순히 정부기관의 한심한 업무 실패가 아니라 ‘게이트’가 되려면 권력층의 개입 정황이 드러나야 했다. 한나라당은 그 고리로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의 개입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권 의원에게 떨어진 임무였다. 설(說)은 파다했지만 뒷받침해줄 어떤 근거도 없었다. 이광재 의원은 “증거를 대보라”고 했다.

권 의원은 철도청의 ‘신규사업 설명회 회의록’을 입수했다. 철도청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이 신광순 당시 철도청 차장 등 철도청 간부들을 상대로 러시아 유전 개발 참여를 설득하면서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의 사업참여 제의가 유전개발 사업의 참여 동기”라고 말했음을 의사록이 보여줬다.

그 자체로 ‘클린 히트’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어떤 증거도 한 사건의 전모를 완벽하게 증명해 내지는 못한다. 한두 가지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상대방은 그 점을 파고든다. 증거의 신뢰성을 실추시켜 방어하는 것이다.

의사록에서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라고 표기된 부분에 대해 이 의원이 당장 반박했다. “나는 산자위 소속”이라며 “황당한 폭로”라고 반격했다. 의사록 작성자가 실수로 잘못 적은 것인지에 대해 관계기관이 더는 확인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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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dhl34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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