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호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진현

“‘권력=돈’? 한국 기업인 중 진정한 시장주의자 드물다”

  •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hunghokim@hotmail.com

    입력2008-01-08 1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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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의 지지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초상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레이거노믹스’가 애덤 스미스의 생각에 기초할 것임을 예고하는 징표였다.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은 자유주의 시장경제 원리의 상징인 애덤 스미스 넥타이를 즐겨 맨다. 관치경제의 뿌리가 깊던 1980년대부터 민간기업주의를 소개하고 주창해온 그를 만났다.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진현

    金鎭炫<br>●1936년 경기 안성 출생<br>●서울대 사회학과 졸업<br>●동아일보 경제부장·편집국 부국장·논설주간<br>●과학기술처 장관, 서울시립대 총장, 문화일보 회장<br>●現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한국무역협회 수석객원연구원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만난 김진현(金鎭炫·72)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은 애덤 스미스 초상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자유주의 철학자 마이클 노박에게서 선물 받았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소개된 노박의 저서 대부분을 김 이사장이 번역했다.

    김 이사장을 한국 자유주의 정책의 주역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이념적 자유주의자가 드물던 시절 그는 김재익(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이한빈(전 부총리)과 더불어 자유주의자의 길로 들어섰다. 좌파세력이 집권한 지난 10여 년간은 우리의 성공한 역사가 폄훼되는 것에 분노하며 우파 시민단체들을 만들고 도왔다. 그러나 그는 우파에도 날이 선 비판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우파가 단순히 권력과 돈을 탐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지킬 가치가 자유주의임을 분명히 하고,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정호 김진현 이사장께선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마이클 노박, 조지프 슘페터 같은 자유주의 지식인의 저작물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등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을 해오셨습니다. 어떻게 자유주의자가 되신 겁니까.

    김진현 자유를 열망한 우리 세대는 자유주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총체적 반(反)자유 생활환경에서 자유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체험하며 자랐지요. 일제 때 이름과 말을 빼앗기고 아침마다 일본 천황에게 절을 해야 했고 어린이노동수용소와 다름없던 초등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북한이 6·25전쟁으로 남한을 점령했을 때에는 김일성 찬양과 공산당 선전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삶이 이런 것은 아닐 텐데…’ 싶었어요. 그렇게 쭉 이어진 집단적 억압을 체험했기 때문인지 자유에 대한 본능적 욕구가 매우 강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접한 서적이며 영화가 모두 서양의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품고 있는 내용이 온통 자유, 민주주의, 개방, 개성에 관한 것이었기에 제 맘속에 있던 자유주의 성향은 더 짙어졌지요.

    자유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세대



    김정호 마음속 깊이 자유에 대한 갈망을 품었더라도 이론적으로는 집단주의며 전체주의적 사고에 물들어 있던 세대 아닙니까. 일제 강점기의 상하이 임시정부만 해도 대체로 우파 인사들이 모였음에도 임시정부 강령은 주요 생산수단의 국유화, 토지의 국유화 같은 전체주의적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한 분이 미제스나 노박처럼 사유재산과 민간기업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김진현 제가 자유주의를 학문으로 연마한 것은 1972년 니만 펠로십(언론인 해외연수 프로그램)으로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면서부터입니다. 거셴크론(A. Gerschenkron), 파슨스(T. Parsons), 도이처(K. Deutcher), 쿠즈네츠(S. Kuznet), 퍼킨스(D. Perkins) 등과 접촉하면서 시민사회, 정치민주화, 시장과 근대 경제성장, 사회적 다원성을 관철하는 자유주의 이념과 체제를 정립했습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사고가 그렇게 자유주의적인 건 아니지만, 당시 한국의 지적 전통에서 자란 제가 자유주의에 눈을 뜨는 데는 충분한 계기가 됐지요. 그 후 한국경제연구원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자유주의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진현
    김정호 한국경제연구원 초대 CEO를 지내셨죠? 당시만 해도 관치경제 성격이 강해 기업조차 자유기업주의가 낯설 때라, 민간기업주의와 시장경제를 주창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김진현 한국경제연구원은 1981년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산하 연구소로 출발했습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정주영씨가 만든 셈이지요.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전경련 부회장 중 한 분이던 송인상씨가 맡았고, 저는 1982년부터 부원장이 됐습니다. 부원장이라고는 하지만 대표이사 부원장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운영책임이 제게 있었지요.

    당시 금융조세 연구와 더불어 민간기업주의 전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민간기업주의, 즉 시장경제원리 전파 사업은 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교과서에 ‘기업은 국민에게 이윤을 환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씌어 있을 때니까요. 관치경제에 익숙하다 보니 기업인들도 정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올바른 사업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민간기업주의를 가장 앞서서 얘기한 사람이 미국 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마이클 노박이더군요. 가톨릭 신자이면서 종교철학자인데, 민간기업주의와 자유주의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얼굴 한번 안 본 사이인데도 한국에 초청하니 흔쾌히 응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민주자본주의와 한국의 발전’이라는 책이 나오게 됐죠. 마이클 노박에게 한국은 아시아 첫 방문국이었습니다.

    이승만 정권 재평가

    김정호 박정희식 관치경제 모델, 즉 기업 활동에 공무원들이 일일이 지시하고 간섭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에 정부가 기업 활동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던 데는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었겠죠?

    김진현 제가 민간기업주의와 자유주의를 소개한다고 하자 전경련에서는 반대했습니다. 제가 계획하고 있던 ‘민간기업주의 시리즈’에 대해서도 예산을 배정해주지 않았어요. 그런 사정을 당시 대통령비서실에 있던 김재익 수석에게 얘기했더니 한국은행을 통해 민간기업주의 시리즈를 낼 수 있게 도와줬어요. 김재익 수석은 부가가치세 도입을 주장할 정도로 경제개혁에 대한 신념이 강했어요. 시장의 힘을 믿는 진정한 시장주의자였습니다. 이념의 외연과 내연이 확실히 정리되고, 실천하는 자유주의자였죠. 시장과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에 있어 김재익 박사만한 신봉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제2차 오일쇼크까지 겹친 격동기에도 그는 양보 없이 재정 억제, 금리 인상, 환율 현실화를 실행하고자 한 시장주의자였습니다. 정치적 고려 없이 오직 시장의 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수입자유화, 해외여행 자유화는 전적으로 김재익이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김정호 김 이사장께서 체계적인 자유주의 철학을 정립한 지 30여 년이 되어갑니다. 그 세월 내내 자유주의 철학이 옳다고 생각하셨는지요. 한국의 발전이 자유주의 때문이라고 확신하십니까.

    김진현 미시적으로 보면 한국 경제는 잘되기도 하고 또 그렇지 못한 시절도 있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대단한 발전을 이룬 게 분명합니다. 1945년 이후 식민지시대를 벗어난 국가 중 유일하게 근대화 기준을 완벽하게 성취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대한민국 근대화혁명’을 완수한 셈이죠. 저는 이것이 1945년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한인(韓人)의 높은 적응력과 잠재력이 자유를 얻으면서 폭발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 겁니다.

    김정호 요즈음 민주화 이전 정권들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입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한국 경제발전에 끼친 긍정적 기여를 밝혀내는 여러 성과가 있었습니다. 반면 이승만 정권에 대한 관심은 덜한 것 같습니다. 무능한 독재정권이라는 평이 여전한 듯합니다. 김 이사장 말씀대로라면 이 땅에 자유가 자리 잡는 데 이승만 정권이 크게 기여한 것 같은데요.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진현

    언론, 대학, 정부를 두루 거친 김진현 이사장은 상식에 기반을 둔 ‘가치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김진현 독재의 성격이 있긴 했지만 저는 이승만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유교적 가치가 전부이던 사회에 기독교적 가치를 심기도 했고, 대학생의 징집을 면제해 대학교육을 보편화, 활성화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화학공업을 발전시키고 원자력 개발을 시작한 사람도 이승만 박사입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 혼란스러운 것은 지도자들이 자기 잘한 것만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그전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그 기관은 왜 존재하고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고, 설사 알고 있어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만으로 가득 차서 자기 자랑을 할 뿐입니다. 저는 우리의 성취에 대해 전반적으로 성찰하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룩한 많은 것은 이승만 정권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우파가 지키려는 가치

    김정호 이번 대선에서도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김 이사장께선 좌파를 비판해오셨지만, 우파 역시 떳떳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매달린 나머지 체제 유지에는 관심 없고, 저 잘난 맛에 사는 것 같아요.

    김진현 ‘통칭 우파’는 많습니다. 그러나 이념적 자유주의자로서의 우파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념과 행동이 일치하는 우파 혹은 보수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선진화·뉴라이트 진영, 그리고 과거의 김재익, 이한빈 정도가 순수한 자유주의자 아닐까요.

    소위 우파는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총칼을 휘두르며 집권했습니다. 서양의 국가들이 이념 정립에 이르기까지 피땀을 흘린 데 비해 한국은 민주주의든 경제성장이든 외부 원조와 지도로 쉽게 이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성찰하고 철학을 세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우파와 보수도 자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김정호 사람들은 흔히 시장주의가 기업만 유리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기업들도 시장경제를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시장주의가 요구하는 자유경쟁보다 정부의 보호와 지원을 기대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기업들이 원하는 게 시장주의가 아닐 때가 많다는 거죠.

    김진현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씨 같은 타고난 시장주의자들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기업인 대다수는 신념을 가진 시장주의자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 기업인 중에도 ‘돈은 시장에서 버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서 나온다’고 확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권력이 곧 돈이라고 믿는 겁니다. 정부 특혜가 끊어지면 장사 못한다고 확신하는 기업인들이 IMF 금융위기 때까지 활보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좌파 시민단체에는 인심을 쓰면서도,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우파의 활동에 대해서는 인색한 겁니다. 권력을 가진 시민단체 인사들에게 잘 보여야 사업이 잘된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다행히 요즘 재벌 3세들 가운데는 외국에서 시장경제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선지 시장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꽤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업인 중에 진정한 자유주의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본의 미래가 밝지 않은 이유

    김정호 저는 일본인이 대단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성실하고 치밀하고 정직한 면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김 이사장께서 쓰신 글을 보면 일본의 미래가 밝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진현 일본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건 이제 소수의 생각이 아닙니다. 물론 일본의 경제, 산업, 기술은 이미 확고하게 성공을 거뒀고 앞으로도 계속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고인이 된 영국 런던대학 모리시마 미치오 교수의 지적대로 일본의 정치는 너무 무능합니다. 그의 말대로 일본 정치는 무신념·무정책·무책임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여전히 시대적인 큰 흐름을 따르기보다 일본 내부의 욕구를 충족하는 데 안주하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이 안으로는 평화롭지만, 이는 곧 변화가 늦고 시대착오적이면서 자기 안의 게임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본래 정치라는 것이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 사회를 혁신하는 것인데 일본의 경우는 정치마저 가업으로 계승되고 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호 일본을 신분사회로 보시는 겁니까.

    김진현 예, 맞습니다. 일본은 엄연히 계층과 지배계급이 존재하는 신분사회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돈 좀 벌었다고 해서 정치에 나설 수 없습니다. 집안에 정치의 뿌리가 있어야 정치에 나설 수 있습니다. 조상이 한 일을 그대로 답습하니 이것이 신분제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은 정말 역동적인 사회입니다.

    게다가 일본의 젊은이들은 자존심, 자부심,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다음 세대의 주역인 젊은이가 고귀한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입니다. 젊은이들이 추상적 가치, 고차원적 가치에 대한 외경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독립의지며 미래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일본에 비해 큰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이 일본보다 더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히말라야권’을 주목하라

    김정호 김 이사장께선 미래학회 회원인 것으로 압니다. 요즘 중국과 인도의 비상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중국 인구가 13억, 인도가 10억이니 둘을 합하면 전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달합니다. 두 나라는 연평균 8~11%의 고도성장을 상당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유류가격이나 와인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중국의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친디아(Chindia)의 성장으로 인해 한국 경제에 어떤 기회와 위기가 생길 것으로 전망하시는지요.

    김진현 중국은 1987년에 개방하고 2002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함으로써 근대화 체제에 편입됐습니다. 중국에서도 WTO 가입을 ‘입세(入世)’로 표현합니다. 인도도 서양의 근대화 방식을 실천하면서 근대화·세계화를 완성했죠. 저는 이런 상황을 설명할 때 ‘친디아(Chindia)’ 보다 ‘히말라야권(Himalaya zone)’이 더 적합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중심으로 북쪽의 중국과 남쪽의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미얀마, 스리랑카를 포함한 거대한 지정학적 세력이 탄생할 것이라고 보거든요. 이들은 현재도 빠른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지만, 교육과 인터넷 발달에 힘입어 곧 정보화로 무장한 우수한 인재들을 확보하게 될 겁니다.

    히말라야권이 세계질서를 평화롭게 유지하는 중심세력으로 발전하면 좋지만, 이들은 다양성과 민주정치라는 개념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엄청난 인구를 가진 히말라야권의 등장은 환경 문제와 에너지 부족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 인구의 40~50%에 달하는 히말라야권이 현재의 물과 에너지 공급 시스템으로 서양의 근대적 삶을 고집한다면, 전세계가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 13억 중국인이 서양식 화장실을 쓰면 현재 중국의 산업·농업용수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게 됩니다. 또 중국인이 우리 수준으로 석유를 사용하면, 전세계 석유를 독차지해야 합니다.

    김정호 달리 방법이 있습니까.

    김진현 앞으로 중국을 포함한 히말라야권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전체가 석유와 석탄, 물을 제대로 공급받으려면 과학기술을 통해 혁신적인 생산 및 보존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물론 사회 시스템에 대한 혁신도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상식과 도덕, 희생

    김정호 마지막으로 새 정부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요.

    김진현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제대로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영국처럼 젠틀맨십을 확립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투명하게 규정대로 처리하고, 제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끼리끼리 대충 평가하고 포퓰리즘으로 가득 찬 정책을 추진해선 절대 안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도자들이 도덕적인 리더십을 지녀야 합니다. 한국인은 근대화과정에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 영민한 사람들입니다. ‘상식과 도덕이 살아 있는 일처리만 통한다’ ‘높은 자리는 희생을 필요로 하는 자리다’ 하는 점을 딱 한 번만 증명해 보인다면 더 이상 손대지 않아도 그렇게 돌아갈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이것만큼은 정부에서 일한 경험에 비춰 제가 확신하는 바입니다. 어떤 사람이 원리원칙을 지킨다는 소문이 퍼지면 처음에는 협조를 안 할지 몰라도 결국은 따르게 돼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범을 보이고, 또 한번쯤은 희생도 감내할 각오가 돼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최고지도자들이 계속 부패로 감옥에 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래선 어린이 인성교육이 될 리 없고, 신뢰와 정직이라는 가치가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 정치인과 대통령이 국민의 도덕적인 롤모델(role model)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자기합리화와 변명 대신에 객관적인 자기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할 시점입니다.

    김정호 새 정부는 솔선수범함으로써 국민을 일깨우는 교육자라는 자각이 필요하겠습니다.

    김진현 그렇습니다. 그간의 가치관 혼란, 좌우 대립을 가치의 다양성으로 승화시켜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이 21세기에 한 번 더 폭발하는 2008년이 되면 좋겠습니다. 엄격히 말해 지금의 혼란은 이념이나, 좌우·보수 대립이 아닙니다.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이념을 위장한 인간파괴, 정의를 위장한 선동, 민족을 위장한 분열 등 공작세력과의 대립·대결입니다. 이 대립·대결은 우리와 저들이라는 피아(彼我) 간의 투쟁이 아니며 누가 더 진실하고 누가 더 진리, 보편에 가까우냐 하는 다툼입니다. 지난날의 정권교체 경험은 이른바 보수와 우파도 독선, 폭론, 오만, 부패가 활개를 치면 자멸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진보와 좌파 역시 독선, 폭론, 오만, 부패가 활개 치면 자멸하고 맙니다. 이제 정권 교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인간, 정의, 양심, 법과 원칙에 충실한 이념, 자유주의, 휴머니즘, 민주자본주의, 민간기업주의, 다원주의, 개방주의에 준하는 바른 사회, 선진화체제를 지켜야 합니다.

    김정호 대통령과 정치인뿐 아니라 국민 각자가 자기 성찰을 하고, 상식을 지켜야겠죠.

    그의 집무실은 책으로 가득했다. 벽면을 에워싼 책장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에도 책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 회고록에서부터 지구온난화에 관한 책에 이르기까지 주제도 다양했다.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진현
    김정호

    1956년 서울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환경대학원 수료

    미국 일리노이대 석·박사 (경제학), 숭실대 박사(법학)

    한국산업경제연구원, 한국지방 행정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근무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겸임교수

    現 자유기업원 원장

    저서 : ‘땅은 사유재산이다’ ‘7천만의 시장경제 이야기’(편역) ‘갈등하는 본능’ 등


    광범위한 독서편력

    이러한 독서편력만큼이나 그는 생각이 깊었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일어났던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20년 후에 일본은 어떻게 될 것이고, 또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있는 나라들의 발전이 세계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관해서까지 시공을 초월하는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단순히 알고 있는 수준을 넘어, 각각의 사안에 대해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분석력도 치밀하다. 두 시간에 걸친 대담 내내 말이 끊이지 않았다. 세상에 전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했다. 그가 활동 반경을 세계로 확대했더라면 앨빈 토플러나 피터 드러커 못지않은 석학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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