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호

프리츠커 프로젝트

‘안’에서부터 ‘밖’을 완성한 ‘한내 지혜의 숲’

‘결과’ 못지않게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다

  • 입력2017-10-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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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서울 노원구 마들로 86  개관  2017년 3월 27일
    수상  2017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거리마당상(문체부장관상),
            올해의 건축 best 7
    설계  장윤규 신창훈  문의  02-979-7420

    솔직히 외관을 처음 봤을 때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먼저 떠올랐다. 서울 노원구 아파트단지 밀집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서였을까. 작은 박공지붕을 한 건물 여러 채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듯한 외형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철제강판에 표면을 알루미늄 느낌 나게 처리한 은회색 외장재로 인해 실용성을 중시한 컨테이너 박스 건물 같다는 선입견을 안겨줄 만했다.

    하지만 아파트단지를 마주한 도로변에서 살짝 감춰져 있는 입구를 통해 내부로 들어서자 예상과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따뜻한 목조 빛이 한껏 감도는 어린이 도서관이다. 전체 면적이 359.37㎡(약 109평)밖에 안 된다고 들었는데 실내 공간의 전체 이미지가 환하고 시원스럽다.



    우선 천장이 높다. 2층 건물 높이(최고 4m)지만 단층 구조로 지어진 데다 경사각이 크면서 높이가 조금씩 다르게 다섯 겹으로 설치된 박공지붕 구조 아래 천장과 벽면 곳곳에 대형 유리창을 설치했다. 당연히 자연채광 효과가 클 뿐 아니라 푸른 하늘과 주변 공원의 우거진 초록 숲이 건물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 효과를 발휘한다. 산의 형상을 띤 다섯 겹의 박공지붕 사이마다 넓은 유리창을 배치해 낮에는 환한 햇빛이 흘러 들어오고 저녁에는 따뜻한 불빛을 흘려 내보낸다.



    여기에 목조로 된 벽면의 서가와 일체형으로 지어진 책꽂이 형태로 된 천장 구조 중간 중간 환한 LED 독서등이 박혀 있어 어두운 사각지대를 찾기 어렵다. 큰 천장을 활용하기 위해 유리창으로 된 벽 아래 목조계단 형태의 열람 공간을 설치해 공간 활용도를 높인 점도 한몫을 했다.

    비밀은 하나 더 있다. 보통 도서관은 서가와 열람실이 여러 공간으로 세분돼 있다. 반면 ‘한내 지혜의 숲’은 일부 가벽이 설치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뚫린 공간이다. 도서관 외에 지역아동센터와 동네 사랑방 공간(카페 ‘지혜의 샘’)까지 함께 들어 있지만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 공간으로 지어졌다. 화장실과 사무실을 제외한 실내 공간은 별도의 문 없이 미로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천장이 트인 2개의 중정(中庭)을 통해 실외 공간까지 내부로 끌어들였다. 도서관 안에서도 생생하게 들리는 매미 소리는 그 일부다.



    설계를 맡은 건축사무소 운생동(韻生同)의 장윤규(53)·신창훈(47) 공동 대표는 한내 지혜의 숲이 다른 건축설계와 달리 먼저 ‘안’부터 짓고 그에 맞춰서 ‘밖’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국민대 교수인 장윤규 대표의 말이다. “보통 건축은 건물의 외부 형태를 정하고 그에 맞춰 내부 공간이 결정됩니다. 거기까지가 건축이고 내부 집기와 가구 세팅은 인테리어의 영역이라고 여겨지죠. 하지만 지혜의 숲은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인테리어 가구인 책꽂이(최다 1만5000권 소장 가능)의 디자인에서 시작해 이를 바닥과 천장으로 확장시키고 그에 맞춰 박공지붕 형태의 외관이 결정됐습니다.”

    안에서부터 지은 이유 중 하나는 이곳이 기본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북쪽 정문을 도로 맞은편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옆으로 틀어놓은 것도 그 대부분을 벽으로 차단한 것도 아이들을 보호하면서 차량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배려였다. 대신 공원을 마주 보는 서쪽 벽면을 대부분 유리로 채운 것은 실내에서도 자연 풍광을 만끽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자연광을 최대한 끌어들인 실내에서 책을 읽다가 좀이 쑤시면 바로 공원으로 달려 나가게 해준 것이다.

    유리창은 안전을 위해 삼중창으로 설계했고 보온을 위해 외장 단열을 택했다.

    여름엔 시원하라고 천장을 한껏 높였고 겨울엔 따뜻하라고 온돌을 깔았다. 문을 없앤 것도 신발을 벗고 들어오게 마룻바닥을 설치한 것도 아이들이 맘껏 돌아다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천장은 높지만 서가의 높이는 2m를 넘지 않게 설계한 것도 아이들이 아늑함을 느끼게 해주기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어린이 시설 하면 떠오르는 알록달록 총천연색 페인트 칠은 찾을 수 없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장윤규 대표는 “어린이 건물 하면 빨갛고 노래야 한다는 것도 고정관념”이라며 “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꿈을 키울 아이들 중에 건축가를 꿈꾸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 그 녀석들이 만나게 될, 어쩌면 첫 번째 건축으로서 부끄럼 없게 짓고 싶었습니다”고 말했다.

    사실 대형 건축을 숱하게 진행해온 운생동에 한내 지혜의 숲은 소품일 수도 있다. 100평 규모에 사업비도 14억9000만 원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이 건축은 올해 국내 주요 건축상을 휩쓴다 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왜 그럴까.

    서울시립대 겸임교수인 신창훈 대표의 설명이다. “한내 지혜의 숲이 세워진 곳은 버려진 땅이었어요. 한내근린공원 초입에 분수대가 있던 곳인데 그게 다 깨지고 망가져 을씨년스러운 공터로 방치돼 있었죠. 이 공간을 되살리기 위해 처음엔 어린이 도서관을 짓기로 했는데 주민들이 방과 후 어린이 활동 공간과 동네 사랑방 기능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추가해달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를 적극 반영했더니 지금은 운영도 구청이 아니라 주민 자치 조직에 의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는 어린이 도서관이란 본연의 목적에 가장 충실한 공공건축을 지어보자는 운생동과 노원구의 의기투합이 있어 가능했다. 한내 지혜의 숲은 운생동이 지난해 노원구와 특별 수의계약을 맺고 진행 중인 4개 프로젝트의 하나다. 2년 전 완공된 초한산 북카페, 연말 완공을 앞둔 월계동 노인정, 내년 완공 예정인 상계동 지역커뮤니티센터까지 모두 소규모 공공건축이다. 장윤규 대표는 “크고 멋진 건물을 통해 도시 구조를 바꾸는 일보다 일상의 작은 공간부터 바꿔나가는 것이 도시재생을 위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창훈 대표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가꿔나가도록 하는 것에 더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라고 밝혔다. 한내 지혜의 숲에는 그렇게 결과로서 건축 못지않게 과정으로서 건축의 중요성에 대한 지혜가 온축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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