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르포

“지금도 어디선가 얻어맞고 있을 것”

‘을(乙) 중 을’ 대리기사 25시

  •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지금도 어디선가 얻어맞고 있을 것”

2/4
두들겨 패고, 차바퀴로 깔고…

5년 전 대리기사 생활을 접고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마흔 살 김준석 씨는 “술 마시면 개가 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리기사 초창기 시절, 항상 기사를 부르다 이젠 불리는 처지가 되고 보니 그때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대리기사 생활 동안 인터넷 블로그에 매일 일기를 올려 인기를 끈 그도 잊지 못할 수모를 겪은 기억이 있다.

“한번은 직장동료 3명이 차를 타고 시내 외곽의 한적한 지역으로 가달라면서 중간에 2명을 내려달라고 했다. 중간에 경유지가 있으면 시간이 더 걸리고 시내까지 나오는 교통비도 있어 평소 대리비에서 3000원 정도를 더 불렀다. 그러자 운전 중 ‘왜 대리비를 비싸게 부르냐? 차를 세우라’고 하더니 내 멱살을 잡고 끌어내렸다. 그중 한 명에게 심하게 폭행당했는데 내가 쓰러지자 도망갔다. 경찰에 신고해 나중에 가해자들이 다 잡혔는데 내가 합의를 안 해줬다. 나이 좀 든 이들 중엔 가끔 ‘야, 내가 누군지 알아?’ 하고 허세를 부리기도 했는데, 과거 사장 노릇을 했거나 고위공직자처럼 사회에서 한가락 하다 은퇴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나 행동은 그냥 흘려버려야지 일일이 대응하면 대리기사 생활 못한다.”

50대 중반의 대리기사 김모 씨와 이모 씨를 만난 건 대리기사에게 일주일 중 피크(peak)라는 ‘불금(불타는 금요일)’과 맞물린 토요일 새벽 12시 10분, 서울 강남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였다. 김씨는 “사실 대리기사 폭행은 비일비재하다. 왜 이번 사건만 가지고 시끄럽게 떠드는지 모르겠다. 4년 전 술 취한 손님이 시비 끝에 대리기사를 폭행하고 차에서 끌어내려 차바퀴로 밀어버린 사건마저 있다. 당시 경찰은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며 고의로 사망사고를 낸 가해자를 구속하지도 않았다. 그땐 지금처럼 언론이 떠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은 2010년 6월 26일 밤 9시 30분경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서울외곽순환도로 갓길에서 벌어졌다. 시비 끝에 술에 취한 차주 박모(당시 41세) 씨가 대리기사 이모(당시 52세) 씨를 폭행하고 차에서 끌어내린 뒤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해서 이씨를 넘어뜨렸고 차바퀴로 재차 깔고 지나가 사망케 한 사건이다. 불구속 수사를 받던 박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만에 이씨를 폭행하고 승용차로 치어 숨지게 한 혐의(특가법상 도주차량)로 구속됐다.



대리기사 스마트폰은 ‘동냥 통’

김씨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던 이씨는 “집이 충북 청주인데 서울까지 오는 ‘콜’을 잡아 한 시간 전 손님을 내려주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는 “대리기사 폭행사건을 보는 시각과 반응은 대리기사들 사이에서도 다르다. 비분강개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단순한 사건을 언론이 확대했다는 쪽도 있다. 대리기사 처지에선 폭행당하는 게 워낙 흔해 해당 사건이 평범하게 비치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손님한테 얻어맞는 대리기사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리기사 경력 4년차인 김씨는 “직장생활과 사업을 다 해봤지만 여의치 않아 대리기사 일을 시작했다. 대리를 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은 그나마 자신감이 있으니 나와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남의 차인 만큼 아무나 운전하겠다고 나설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인터뷰 중임에도 그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콜을 잡기 위해 초 단위로 여러 개 뜨는 ‘오더(일감)’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김씨의 스마트폰은 3대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대리운전 프로그램 3개의 오더를 한꺼번에 확인하려고 판 위에 스마트폰을 붙여놓은 건데, 직접 만들었다”며 웃었다. 그걸 보던 이씨가 김씨의 말에 씁쓸히 덧붙였다. “대리기사 스마트폰은 동냥 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동냥 통이 많을수록 돈도 많이 들어올 것 아닌가.”

두 사람을 만나기에 앞서 찾은 신논현역, 일명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는 대리기사 집결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매일 새벽 2~3시면 수백 명의 대리기사가 진을 치고 콜을 기다린다. 그들을 겨냥한 다양한 노점상도 사거리 코너마다 심야 난전을 펼친다. 특히 어묵 포장마차엔 1000~2500원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려는 대리기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묵에 이어 소시지를 먹던 50대 초반의 한 대리기사는 “돈 버는 사람은 여기(어묵 포장마차) 사장님밖에 없다. 돈벌이가 안되니 갑갑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포장마차 건너편 도로엔 ‘PDA 충전기’ ‘휴대폰 배터리’라는 문구가 쓰인 1t 트럭이 주차해 있고, 바로 옆 인도엔 휴대전화 충전기와 대리기사가 즐겨 사용하는 숄더백, 휴대전화 줄 등을 파는 잡화점이 막 노점을 펼치며 개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각이 자정을 넘어 새벽 1시를 향하자 10여 명에 불과했던 대리기사가 50~60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 중 손님의 콜을 받고 달려가는 기사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2/4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목록 닫기

“지금도 어디선가 얻어맞고 있을 것”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