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애플 카피캣? 중국판 ‘아마존+구글’!

‘대륙의 실수’ 샤오미는 누구?

  •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 estima7@gmail.com

    입력2015-11-19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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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꺾은 ‘6년차 신참’
    • 공기정화기에서 전동스쿠터까지, ‘IT 만물상’ 진화
    • ‘소프트웨어 DNA’에 철저한 고객 중심 마인드
    • ‘제2의 샤오미’들, 중국에서 무럭무럭 성장 중
    애플 카피캣? 중국판 ‘아마존+구글’!

    동아일보

    요즘 중국 기업 샤오미(小米)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도 뜨겁다. IT(정보통신기술) 기기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샤오미’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듯싶다.

    우선 1만 원 조금 넘는 가격에 디자인도 괜찮고 용량도 큰 스마트폰 보조배터리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핏빗(Fitbit)’ 같은 경쟁 제품에 비해 압도적으로 싼 운동량 측정 팔찌, ‘미밴드’가 인기를 끌었다. 핏빗 같은 제품이 10만 원이 넘는 데 반해 미밴드는 겨우 2만 원 정도면 구할 수 있고, 성능도 괜찮기 때문이다.

    이후 스마트 체중계, 블루투스 스피커, 이어폰 등이 한국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인기 상품으로 떠올랐다. 각종 행사에서 샤오미의 USB 선풍기나 간이 조명 등을 사은품으로 나눠주는 경우도 늘었다. 워낙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아서 그렇다고 한다.

    샤오미는 주력 상품인 스마트폰을 한국에 공식 판매하지 않는데도 한국에서 이렇게 조용히 팬들을 확보해왔다. ‘중국산’답지 않게 싼 가격에 고성능 제품을 내놓는다고 해서 ‘대륙의 실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제 언론매체는 샤오미를 삼성, LG를 위협하는 중국 기업의 대명사로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샤오미는 도대체 어떤 회사인가. 중국어로 ‘좁쌀’이란 이름을 가진 이 회사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일으킨 거대한 돌풍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2010년 4월 베이징에서 설립됐으니 이제 겨우 다섯 살밖에 안 된 샤오미는 지난해 2분기 중국 시장에서 1499만 대의 스마트폰을 팔아 삼성전자를 꺾고 중국 스마트폰 시장 1위에 올라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14%의 시장점유율로 삼성전자, 레노보, 애플 등을 꺾은 것이다.



    현대차 1.5배 기업가치

    2011년 처음 스마트폰을 만들기 시작한 샤오미가 겨우 3년 만에 판매 대수로 중국 시장 1위에 오른 것이다. 한국에서 어떤 스타트업이 창업 4년 만에 스마트폰 시장에서 1등 삼성전자를 꺾을 수 있을까 반문해보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일개 무명 스타트업이 이런 일을 해낸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 애플, 삼성전자, 그리고 중국의 대기업 화웨이, 레노보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샤오미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6100만 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해 한화로 약 13조5000억 원의 매출을 올림으로써 일약 세계 3위 스마트폰 업체로 부상했다. 샤오미의 기업가치는 지난해 말 기준 450억 달러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서 11억 달러를 유치했다. 450억 달러는 현재 환율로 약 52조 원이다. 한국에서 시가총액 36조 원으로 삼성전자에 이어 2위인 현대자동차의 1.5배에 해당하는 기업가치를 가진 셈이다. LG전자(시가총액 8조5000억 원)와 비교하면 6배가 넘는다. 도대체 투자자들은 샤오미의 무엇을 보고 이렇게나 높은 가치를 쳐줬을까.

    샤오미는 애플,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기존 전자 대기업과는 확연히 다른 회사다. 기존 강자들과 같은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확연히 다른 방법으로 전략을 짰고, 실천하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샤오미는 직접 생산공장을 갖지 않고 위탁 생산한다. 애플의 방식이다. 그리고 매년 MI1, MI2, MI3, MI4라는 식으로 1년에 한두 개의 대표 스마트폰 모델만 내놓는다. 애플 아이폰, 삼성 갤럭시 시리즈와 품질은 비슷하면서 가격은 거의 반값이다. 그리고 오프라인 판매가 거의 없고, 온라인 판매만 고수한다. 광고 등 마케팅 비용도 거의 쓰지 않으며, 충성고객과의 강력한 유대관계를 판매 채널로 활용한다. 샤오미의 CEO 레이 준은 애플이나 스티브 잡스와 비교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애플과 비슷하다기보다는 아마존에 더 가깝다. 아마존에 구글이 섞인 회사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충성스러운 ‘미팬’들

    샤오미를 애플을 베끼는 소위 ‘카피캣’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필자는 지난해 8월 베이징에 갔을 때 우연히 샤오미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2시간 남짓한 짧은 방문이었지만, 이 회사의 부상(浮上)이 단지 싼 가격 때문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마침 방문한 시간은 직원들이 한창 출근하던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누군가가 달려와 이미 꽉 찬 엘리베이터에 가까스로 끼어들어왔다. 레이 준이었다. 회사 분위기가 무척 수평적이어서 직원 누구나 그에게 메일이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회사 로비에는 마스코트견이 사는 개집과 방갈로 모양의 회의실, 당구대 등이 있다. 구글 캠퍼스처럼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는 미끄럼틀도 있다.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분위기인데, 다만 ‘칼퇴근’ 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과는 달리 샤오미 직원들은 밤 10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샤오미의 회사 설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이들의 철저한 온라인 중심 전략과 고객 중심 철학이다. 일주일 내내 24시간 온라인을 통해 고객 대응을 하고, 전화 상담은 업무 시간 동안 주 7일 내내 이뤄진다. 전체 직원 7500명 중 고객상담(CS) 직원이 1700명인데, 아웃소싱이 아니고 모두 본사 소속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샤오미 직원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전체 직원이 1만200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고장 난 제품은 1시간 이내 수리가 원칙이고 안 되면 무조건 새것으로 교환해준다.

    오프라인 판매처가 없는 샤오미는 회사 홈페이지 MI.com을 통해 고객과 소통한다. 제품 소개 등 기본적인 정보 외에 고객을 위한 커뮤니티가 마련돼 있다. 충성스러운 샤오미 팬들, 즉 ‘미팬(MIFan)’들은 홈페이지에 중국 각지에서 열리는 샤오미 팬미팅과 동호회 사진을 거의 매일 올린다. 그래서 샤오미 홈페이지는 다음 팬카페와 블로그를 합쳐놓은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열성 팬들이 있기에, 온라인에 신제품이 공개되자마자 불티나게 판매될 수 있는 것이다.

    샤오미의 톱 경영진 9명은 모토롤라 출신 1명만 제외하고 모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소프트웨어 업계 출신이다. 창업자 레이 준은 사무용 오피스 프로그램과 안티바이러스백신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킹소프트의 사장으로 재직했고, 공동창업자 빈린 사장은 구글차이나 출신이다. 구글에서 안드로이드 담당 수석부사장을 맡았던 휴고 바라가 샤오미의 해외시장 담당 부사장으로 옮겨와 있다.

    뛰어난 소프트웨어 능력

    애플 카피캣? 중국판 ‘아마존+구글’!

    전동스쿠터 ‘나인봇 미니’를 소개하는 레이 준 샤오미 CEO.

    경영진의 면면에서 보듯 샤오미의 시작은 원래 소프트웨어다. 샤오미는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자체 모바일 운영체제 MIUI(미유아이)를 회사 설립 후 얼마 안 돼 내놓았다. 샤오미의 첫 스마트폰 MI1은 MIUI가 나온 지 1년 뒤인 2011년 8월에 나왔다.

    MIUI는 금요일마다 업데이트판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MIUI는 샤오미폰뿐만 아니라 다른 안드로이드폰에서도 쓸 수 있다. 샤오미는 전 세계에 5000만 명이 넘는 MIUI 사용자가 있으며, 지금까지 200번 가까이 업데이트됐다고 밝힌다. MIUI는 아이폰 운영체제인 iOS와 흡사한 사용 환경을 제공하는데, 기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보다 속도가 빠르고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샤오미 방문을 계기로 나는 이 회사가 단순히 ‘애플 짝퉁’을 만드는 곳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잠재력이 큰 기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샤오미는 삼성전자, LG전자가 갖지 못한 뛰어난 소프트웨어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조직 분위기에서 고객과 잘 소통하며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공동창업자 리완창 부사장이 쓴 ‘참여감’이라는 책에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만들게 됐는지 잘 나와 있다.

    온라인을 통한 전자상거래는 국경 없이 이뤄진다. 샤오미의 뛰어난 온라인 운영 노하우는 세계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다. 빈린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MI.com의 MI는 모바일 인터넷(Mobile Internet)을 뜻한다. 우리는 하드웨어 회사가 아니고 모바일 인터넷 회사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제품 기획사’

    올해 들어 샤오미는 전자제품에 관한 한 거의 ‘만물상’ 회사로 변신했다. 공기정화기, 정수기, 무선공유기, 감시카메라, 액션카메라, 멀티탭, 블루투스 스피커, TV…. 안 만드는 제품이 없다. 인터넷 연결 기능이 들어간 제품을 예외 없이 파격적으로 싸게 판매한다. 이렇게 샤오미가 다양한 제품을 싸게 내놓는 것을 두고 ‘샤오미제이션’(샤오미化)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심지어 샤오미는 지난 10월 중순 파격적인 가격의 TV와 전동스쿠터를 내놓아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LG전자 패널을 사용한 4K 해상도의 60인치 대형 스마트TV를 88만 원이라는 가격에 선보였고, 보통 100만 원이 넘는 전동스쿠터를 ‘나인봇 미니’라는 이름으로 단돈 35만 원에 내놓았다.

    애플 카피캣? 중국판 ‘아마존+구글’!

    샤오미는 저렴하면서도 성능과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을 선보여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샤오미 스마트폰과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운동량 측정 팔찌 ‘미밴드’(위부터).

    혹자는 이러한 샤오미의 무차별 제품 공세를 가리켜 이 회사를 ‘인터넷 제품 기획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샤오미는 스마트폰을 제외하고는 이런 상품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수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제휴를 통해 제품을 공동 개발한 다음 샤오미 상표를 붙여서 시장에 선보인다는 것이다. ‘외부의 혁신’을 이용하는 덕분에 이토록 많은 상품을 빠르게 내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샤오미에 대한 비판론도 많다. 우선 애플 등을 벤치마킹한 샤오미가 특허에서 취약하기 때문에 해외시장, 특히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그 하나다. 중국 시장에서도 그동안은 온라인을 통해 제한된 물량을 푸는 일종의 ‘헝거 마케팅’으로 팬들의 관심을 모았지만, 이것이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말도 있다. 아래로는 메이주, 오포 같은 샤오미 못지않게 싼 가격과 높은 성능으로 추격하는 중국 스마트폰 회사들이 있으며, 위로는 중국의 통신장비 대기업인 화웨이가 최근 뛰어난 품질에 가격은 샤오미보다 약간 비싼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샤오미 고객을 빼앗기 시작했다.

    또한 샤오미 제품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뛰어나지만 결국 ‘싸구려’ 제품이라 완성도가 부족하고 금방 망가진다는 불평도 많다. 이런 이유로 요즘 중국에서는 샤오미에 대한 열광이 사라졌다는 얘기도 많이 들린다. 실제로 지난 3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가 화웨이에 중국 시장 1위를 넘겨줬다는 시장조사기관 카날리스의 발표가 최근에 나왔다. 게다가 샤오미의 3분기 판매량이 1년 전에 비해 처음으로 역성장했다고 한다.

    애플 카피캣? 중국판 ‘아마존+구글’!

    1 샤오미는 애플스토어와 유사한 ‘MI스토어’를 운영한다. MI스토어에서는 샤오미 제품을 경험해볼 수 있지만, 일부 액세서리 제품을 제외하고는 온라인에서 구매해야 한다. 2, 3 샤오미 본사에 마련된 당구대와 직원들의 업무 공간. 샤오미 직원은 현재 1만2000명가량이다. 사진제공·임정욱

    살아 숨 쉬는 中 기업 생태계

    최근에 만난 베이징 출신의 한 중국 투자자는 샤오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저렴한 가격에 끌려 샤오미폰을 사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낮은 품질에 실망해 반품했다. 돈을 조금만 더 주면 샤오미폰보다 훨씬 나은 품질의 화웨이폰을 살 수 있다. 샤오미보다 화웨이를 주목해야 한다.”

    샤오미 거품은 과연 꺼진 것일까. 예전에 반짝 인기를 얻었던 대만의 HTC처럼 샤오미도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일까.

    필자는 샤오미의 급성장이 주춤할 수는 있지만,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 입소문으로 고객과 호흡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터득한 데다 강력한 소프트웨어 DNA를 가진 이 회사가 쉽사리 주저앉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샤오미는 두터운 열혈 고객을 향해 빠르게 다양한 제품을 쏟아내면서 역량을 향상시켜나갈 것이다. 그리고 자금력을 바탕으로 특허를 구매해 지적재산권 문제를 해결한다면 장차 선진국 시장으로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샤오미가 앞으로 잘되든 말든, 어쨌든 이런 독특한 기업이 등장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의 기업 생태계가 부러울 뿐이다. 중국에서는 지금 메이주, 원플러스원 같은 ‘제2의 샤오미’가 계속 쏟아져 나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기업 생태계에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삼성전자와 LG전자 빼고는 변변한 글로벌 전자업체가 없고, 새로운 회사가 등장하지도 못하는 한국의 기업 생태계는 정말 문제이지 않은가. 이러다가는 우리 전자제품 시장도 샤오미가 다 잠식할지 모른다. 샤오미 보조배터리로 샤오미에 친근감을 갖게 된 한국인들이 샤오미 TV, 샤오미 냉장고, 샤오미 세탁기를 세트로 구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것이 비단 필자만의 상상일까.

    애플 카피캣? 중국판 ‘아마존+구글’!
    임정욱
    ● 1969년 서울 출생
    ● 미국 UC버클리대 경영학 석사
    ● 조선일보 기자, 다음커뮤니케이션 본부장, 미국 라이코스 CEO
    ● 現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 저서 : ‘아이패드 혁명’(공저), ‘인사이드 애플’(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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