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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파고든 진짜 악동들

K-POP 빅뱅 일으킨 빅뱅 10년

  • 이문원 | 문화평론가

‘제3의 길’ 파고든 진짜 악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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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19일로 데뷔 10년을 맞은 빅뱅은 자타 공인 최고 아이돌이자 월드 스타다.
  • 빅뱅은 ‘아이돌’과 ‘아티스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 중간지대를 지향했다.
‘제3의 길’ 파고든 진짜 악동들
상복 많기로 유명한 남성 아이돌 그룹 빅뱅에게 왕관이 하나 더 늘었다. ‘동아일보’가 8월 초 일반인 2000명, 대중음악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지난 20년간 최고 남녀 아이돌 가수와 노래’ 조사에서 빅뱅은 일반인과 전문가 양쪽에서 모두 압도적인 표차로 남성 아이돌 1위를 차지했다. 남성 아이돌 노래 중 최고의 곡을 뽑는 조사에서도 일반인과 전문가 모두 빅뱅의 ‘거짓말’을 1위로 꼽았다.

지난해 ‘아시아투데이’가 영화, 방송, 가요 관계자 등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빅뱅은 압도적 표차로 ‘지난 10년간 최고의 남성그룹’으로 꼽혔다. 미국 ‘LA타임스’도 빅뱅을 “K-POP을 통틀어 가장 성공한 보이밴드”라고 소개했다. 빅뱅은 9월 8일 방영된 미국 CNN 토크쇼 ‘토크 아시아(Talk Asia)’에 출연하기도 했다.

2006년 8월 19일 결성한 빅뱅은 이제 막 데뷔 10년을 맞았다. 빅뱅은 어떻게 ‘최고 아이돌’로 등극한 걸까. 앞의 동아일보 조사를 다룬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빅뱅이 “대중성과 음악성, 솔로와 그룹 활동, 시각적 매력과 창작 능력을 두루 갖추고 10년 간 생명력을 지켰다”고 평가했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 분석은 빅뱅의 인기 동력을 정확히 꿰뚫은 말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별것 아닌 설명을 가능케 한 빅뱅의 방법론들이 선구적이고 혁신적이다. 아리송한가. 그 아리송한 부분들을 풀어 빅뱅의 성공 요인을 살펴보자.

아이돌? 아티스트?

먼저 ‘아이돌’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용어가 정착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국내 미디어에선 제2차 아이돌 붐이 일어난 2007년경부터 ‘아이돌’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애초 아이돌은 10~20대층에서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는 ‘젊은 세대 전용 연예인’들을 가리켰다. 1950년대에 인기를 끈 엘비스 프레슬리를 설명하며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비틀스나 롤링스톤스 같은 밴드에게도 아이돌 호칭이 붙었다.

한국에서는 일본 아이돌의 의미를 그대로 수입했다. 10대 무렵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각종 댄스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을 지칭했다. 댄스 음악 위주인 만큼 군무(群舞)를 통한 퍼포먼스가 포인트라 그룹 형태가 대부분이다. 결국 한국에선 과거에 ‘댄스그룹’ ‘10대 그룹’ 등으로 부르던 뮤지션 형태를 ‘아이돌 그룹’으로 부르게 됐다.

그런데 이런 뮤지션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이른바 ‘비전문 인력’이란 점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음악에 별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으며, 할 줄 아는 건 그저 춤이고 최대 자산은 외모이며 이걸로 인기를 누린다고 여긴다.

‘아티스트’는 이 같은 아이돌과 정반대 개념으로 인식된다. 이것도 일본에서 쓰는 표현이다. 일본에선 ‘실력파’라는 뜻이지만, 한국에선 그 의미가 더해졌다. 대개 자기 음악을 직접 작사·작곡하는, 고유의 음악 세계를 지닌 뮤지션을 가리킨다. 홍익대 주변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를 연상하면 된다. 그렇게 한국의 대중음악계 뮤지션은 아이돌과 아티스트, 양 갈래로 나뉜 상태다.

그런데 빅뱅은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어쩌다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애초에 중간지대를 지향했다. 처음엔 지독한 오디션 과정을 거쳐 멤버들을 선발한 점을 강조하며 ‘실력파 아이돌’을 자처했다. 그러다 자신들이 직접 프로듀싱에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자체 생산형 아이돌’이란 호칭을 내보냈다. 데뷔 1년을 넘어선 시점부턴 소속사가 아예 이렇게 주장하고 나섰다.

“빅뱅에게 아이돌 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빅뱅은 나이가 어리다는 것 말고는 기존 아이돌 그룹과 공통점이 별로 없다. 오히려 상당한 차이가 있다.”

서태지와아이들 ‘선택적 계승’

‘제3의 길’ 파고든 진짜 악동들

빅뱅은 서태지와아이들처럼 ‘아이돌과 아티스트 사이’ 노선을 따랐다.

하지만 빅뱅의 셀링 포인트는 아이돌의 그것과 동일하다. 멤버들은 본명 대신 귀에 쏙 들어오는 별칭으로 등장했다. 빅뱅 CD 소책자엔 “빅뱅 1~4집 싱글앨범 및 1집 정규앨범 안에 들어 있는 마운트(mount, 쿠폰의 일종)를 모두 모으시면 빅뱅 팬클럽 멤버의 자격이 부여되며, 콘서트 및 YG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특별한 혜택이 주어집니다”라고 쓰여 있다. 첫 단독 콘서트 실황 DVD에는 콘서트 실황 외에 메이킹 필름, 미공개 영상, 콘서트 스틸 컷 등을 골라 디자인한 포토북도 만들었다. 라디오와 TV에서 비트박스와 성대모사 등 개인기 배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빅뱅은 아이돌이되 아이돌이 아닌 그룹, 아티스트이되 또 아티스트라고 보기엔 애매모호한 그룹으로, 기존 아이돌과 아티스트 개념 사이의 어느 곳엔가 위치한 ‘제3의 길’을 표방했다. 이 대목에서 이와 유사한 왕년의 거물급 뮤지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92년 혜성처럼 등장해 우리 대중음악계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놓은 서태지와아이들. 당시 이들도 ‘아이돌과 아티스트 사이의 길’을 캐치프레이즈로 밀고 나갔다.

여기에서 빅뱅의 핵심적인 성공 요인을 짚을 수 있다. 서태지와아이들 이후 ‘아이돌과 아티스트 사이’ 노선을 그대로 모사한 경우는 많지 않다. 패닉 등이 비슷한 형태였으나 결국은 아티스트에 더 가까웠다. 서태지도 솔로로 돌아왔을 땐 아이돌의 향취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한 콘셉트를 확립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까닭에 후발주자가 등장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빅뱅은 이 같은 노선을 정교하게 따라 서태지와아이들의 진정한 후발주자이자 계승자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아닌 게 아니라, 빅뱅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는 서태지와아이들 멤버 양현석이 수장으로 있는 기획사다. 그러니 애초부터 ‘노리고’ 서태지와아이들의 계승을 꾀했다고 볼 수 있다. 서태지와아이들이 시대를 풍미하며 1990년대의 대표 뮤지션이 됐듯, 빅뱅도 201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했다. 성공사례의 성실한 답습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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