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조제가 모래로 쌓은 것이라면 믿으시겠어요? 흙이 아니라 모래입니다. 강도 좋은 모래요. 마치 바다를 도화지 삼아 밑그림을 그린 후 준설토로 매립해 덧칠한 것이죠.”
그의 설명에 따르면 드넓은 바다를 육지로 만들 때 새만금 군산항에서 가져온 준설토나 내수면에서 확보한 준설토를 활용해 매립한다. 준설토(浚渫土)란 하천이나 해안 바닥에서 긁어낸 흙이나 암석 등을 말한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단군 이래 최대 역사’라는 세계 최장 둑을 모래로 만든 것이라고 하니 새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인간의 위대함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동북아 판도 바꿀 산업 클러스터
방조제를 따라 자동차로 전북 군산시 새만금북로 방향으로 곧장 달리면 새만금산업단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방조제가 우리나라 지도를 바꿔놓았다면, 새만금산업단지는 동북아시아 지형을 바꿔놓을 산업 클러스터다.8월 19일 새만금산업단지는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달리 서해 앞에 펼쳐진 드넓은 평원에 가까웠다. 동북아시아 거점 지역이라 하기엔 아직은 부족한 허허벌판이다.
산업단지 안으로 들어가니 기반시설을 갖추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산업단지 5공구 준설 현장에선 군산항에서 가져온 준설토로 바다를 메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덤프트럭이 준설 작업을 위해 새만금산업단지와 군산항을 계속 오갔고, 하부에서는 대형 굴착기와 포클레인이 끊임없이 모래를 퍼 올렸다.
이주헌 한국농어촌공사 차장은 “현재 새만금산업단지는 5공구처럼 기반시설을 갖추거나 매립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OCI, OCI SE, 도레이첨단소재 군산공장, 솔베이실리카, 군산도시가스, ECS사, 한국가스공사 총 7개 기업이 새만금산업단지에 입주한 것은 괄목할 점”이라고 말했다.
새만금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홍보관 3층 전망대에 올랐다. 마침 하늘이 맑아 산업단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김철중 한국농어촌공사 대리는 “새만금 방조제는 1989년 첫 삽을 뜬 지 20여 년 만에 완성됐다”며 “새만금은 개발 면적만 409㎢로, 서울 면적의 3분의 2에 달하는 땅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태풍 오기 전 방파제 축조해야
같은 날 오후, 군산시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1단계 축조 2공구 공사 현장으로 이동했다. 이동식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건설사무소 내부는 며칠 전부터 이어진 폭염으로 후텁지근했다. 얼굴에 피곤이 묻은 작업 인부 네 명이 강렬한 햇볕을 피해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에게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축조 공사를 하고 있는 소감을 묻자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면 작업하기 까다로운 공사라도 수십 번은 더 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여기 현장 근로자 대부분이 군산 지역 주민이에요. 신항만 방파제 축조 공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죠. 모두들 신항만 방파제 축조 공사가 새만금 개발사업의 핵심이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피로를 달래고 있습니다.”(이현승 포스코건설 토목사업본부 국내공사그룹 공무팀장)
2011년 첫 삽을 뜬 이곳 2공구에서는 매일 축조·구조물 작업에 6개 팀 100여 명이 매달리고 있다. 지난여름, 우기를 앞두고 길이 33.3m, 폭 18m, 높이 18m에 달하는 5000t급의 구조물 ‘케이슨’을 바다에 띄워 수심이 깊은 구간을 축조하는 등 쉴 새 없는 강행군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1단계 축조 구간 총 3.1㎞ 중 1.5㎞ 구간 축조 공사를 현대건설이 맡아 지난해 12월 끝냈다. 포스코건설은 나머지 1.6㎞ 구간 축조 공사를 맡아 올 10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현재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이 팀장은 “목표 시점에 맞춰 석재를 쌓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축조 공사는 발주할 당시 사용연한을 50년으로 책정했다. 하자보수 기간은 7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100년간 파랑(波浪)에도 끄떡없는 방파제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은다.
방파제 축조 작업은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 진행한다. 첫째는 경제성이다. 포스코건설이 맡은 2공구 방파제의 총 길이는 1.6㎞. 여기서 수심이 깊은 440m 구간을 케이슨을 이용해 축조하고, 수심이 얕은 1160m 구간은 석재를 쌓아 공사한다. 비용을 고려해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둘째 요소는 기상 상황이다. 특히 파도가 요주의 대상이다. 방파제의 목적은 둑을 쌓아 파도를 막는 것이다. 작업 과정은 단순하지만 파도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공사 현장이 엉망이 된다. 이미 2014~2015년 두 번에 걸쳐 태풍과 파도가 몰아쳐 공사 현장이 쑥대밭이 된 쓰라린 경험을 했다.
이 팀장은 “기상 상황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그동안의 수고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걸 경험하고 난 후 그저 무사하게 작업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올해는 대응전략을 세웠다. 일단 작업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태풍이 불기 전에 공사를 마칠 계획이다. 올여름엔 태풍이 오지 않았지만 9월 이후 불어닥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석 쌓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그래야만 예정대로 올 10월에 새만금 신항만 방파제 1단계 축조 2공구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파제는 새만금 선도공사
신항만은 개항한 지 오래된 군산항을 대체할 항구이기도 하다. 현재 군산항은 대형 선박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노후한 데다 접근성까지 떨어지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 팀장은 “새만금이 동북아시아 허브 역할을 하려면 신항만 방파제 축조 공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돼야 한다. 그런 만큼 현장 경험이 많은 인력을 대거 투입해 공사를 진척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현장을 보기 위해 군산 대야면 바닷가 마을로 향했다. 마을을 한 바퀴쯤 돌았을까. 갑자기 비포장 길이 나왔다. 20분가량 달리니 ‘관계자 이외에 출입금지’ 팻말이 붙은 통문(通門)이 차량을 가로막았다. 안내를 맡은 최은국 주무관이 익숙한 듯 수속을 마쳤다. 안으로 들어가니 길은 여전히 울퉁불퉁했다.
동서도로 매일 20m씩 바다 위에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준설된 도로 양옆 바다에서 바람이 한 번씩 불어왔다. 그때마다 공사 현장에 사막 모래바람 못지않은 흙바람이 휘날렸다. 작열하는 태양과 시야를 가리는 모래, 뜨겁고 습한 바닷바람에 눈이 떠지질 않았다. 공사 현장 관계자가 위생마스크를 착용하라며 건넸지만, 바람에 그만 놓치고 말았다.
동서도로 2공구 개발 현장은 하루에도 수백 대의 굴착기와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간다. 바위덩어리를 쏟아내고, 수만 번에 걸쳐 진흙을 걸러낸 후 다지는 준설 작업을 하기 위해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날마다 도로 20m씩을 낼 수 있다. 지난 8월, 전체 공정의 27%에 달하는 총 길이 20.4㎞의 동서도로가 바다 위에 건설된 것이 그 결과물이다. 동서도로는 올 연말까지 공정률 30%에 이를 전망이다.
동서도로 2공구 개발을 감독하는 최찬수 현장 감리단장은 “격포~하서 간 도로 확장 공사장에서 산을 깎아 나오는 토석(土石)을 가져다 바다를 메우는 데 사용하는데, 모자란 흙은 만경강과 동진강의 모래를 퍼 올려 준설토로 사용한다”며 “동서도로는 새만금 공사 첫 삽을 뜬 지 25년 만에, 방조제 완공 이후 나타난 첫 성과물이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공사 속도 내자 주민 기대감
일례로 새만금산업단지에서 군산 시내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에 불과하다. 군산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인 이성당은 약 15분이면 도착한다. 군산 시내로 향하는 도로가 길게 뻗었기 때문에 가능한 건데, 산업도로라 신호에 거의 걸리지 않을 정도로 시원하게 달릴 수 있다.
최 사무관은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허허벌판처럼 보이지만 도로, 항만,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인 SOC가 형성되면 새만금의 가치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사가 다시 속도를 내자 지역 주민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할 때마다 실망을 거듭했던 이들도 이번엔 기대감을 비쳤다. 선유도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주민 박자은 씨는 “공사가 중단되거나 답보상태에 빠질 때마다 식당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며 “공정률이 올라가는 걸 보니 이번엔 기대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새만금산업단지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민 김상만 씨도 새만금 공사를 통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기를 희망했다.
“공사 초기엔 손님들 중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겠냐’라는 둥 부정적으로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차피 돌이킬 수 없으니 잘되도록 지켜보자’는 말을 더 많이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주변 상인들은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고, 새만금 개발로 많은 사람이 잘살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 이강성 새만금산업단지사업단 사무소장
▼ “기업 ‘입맛’ 맞는 땅 만드는 데 보람” ▼
“동북아 중심 산업도시의 첫 단추를 우리가 만들고 있다. 바다를 매립해 기업 ‘입맛’에 맞는 땅을 만들어 제공하는 데 보람을 느낀다.”
새만금경제자유구역의 개발 및 홍보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농어촌공사 소속 기관인 새만금산업단지사업단 이강성 사무소장(사진)의 말이다. 다음은 이 소장과의 일문일답.
▼ 현재 산업용지 조성 상황은?
“산업단지 1공구는 2012년 매립공사를 완료하고 지난 4월 기반시설을 갖췄다. 2공구는 2015년 4월 매립공사를 끝내고 2017년까지 기반시설을 완료할 예정이다. 5공구는 2014년 연말 매립에 착공했고, 3공구는 올 6월 가토제(준설토를 쌓기 위해 임시로 쌓는 둑) 공사를 시작했다. 준설토를 쌓고 바다를 매립하는 데 기본적으로 2년 소요되고,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데 2~3년 걸린다. 한 공구를 만드는 데만 4~5년이 걸린다고 보면 된다.”
▼ 7월 6일 도레이첨단소재가 군산공장 준공식을 했다. 국내외 기업의 반응은 어떤가.
“국내 기업은 땅이 없는 상태에서 분양받아 공사하는 걸 조심스러워한다. 반면 외국 기업의 반응은 전향적이다. 새만금산업단지가 ‘만들어가는 땅’이라 각종 민원과 분쟁이 적은 점, 기업이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면적을 분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좋게 생각한다. 특히 새만금산업단지 1~2공구에 입주하는 대중국 수출기업에는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기업인은 ‘사적 소유’라는 개념이 부족해서인지 자본을 투자하면 땅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더라(웃음).”
▼ 행정 지원이 다양한것 같다.
“일각에서는 ‘새만금에 가면 공무원이 기업을 좇아다닌다’고 하는데, 맞는 얘기다. 다만 동서도로, 남북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 도로가 없는 맹지(盲地)에 집을 지으려는 사람은 없지 않나. 우리도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땅을 만들겠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