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만금이란 명칭은 김제·만경(金堤·萬頃) 방조제를 더 크게,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에서 ‘금만’이라는 말을 ‘만금’으로 바꾸고, 새롭다는 뜻의 ‘새’를 덧붙인 것이다.
- 만경, 김제평야와 같은 옥토를 새로이 일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국토의 새로운 장을 열 새만금 일대로 떠나는 여행.
생명 키우는 모악산… 호남평야 목 축이는 진원지
모악산의 골짜기에는 물이 많다. 수생금(水生金)이다. 물은 금을 낳는다. 고로 생명을 키운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호남평야를 목 축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치다.
국보 제62호로 지정된 금산사의 불전인 미륵전은 겉에서 보면 팔작지붕의 3층 건물이지만 안에서 보면 통층이다. 각 층에는 미륵 세상을 뜻하는 각기 다른 명칭의 현판이 걸렸다. 1층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 미륵전(彌勒殿)이다. 미륵불은 높이가 무려 39척(11.82m)이나 된다.
모악산 마실길은 모악산 주위의 전북 전주시, 김제시, 완주군의 3개 시군을 아우르는 길이다. 총 거리는 56㎞로 각각 11㎞, 25㎞, 20㎞이다. 김제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동학, 원불교, 증산교 등이 어우러진 금산사 자락과 들판을 가로지른다. 완주 마실길은 모악산 뒷자락 숲길을, 전주 마실길은 마을 고샅길을 지난다.
약 5㎞에 달하는 미륵길은 김제 청도리에 위치한 사찰 귀신사(歸信寺)에서 시작한다. 믿음으로 돌아가는 절집이다.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귀신사는 화장 안 한 말간 절집이다. 대웅전의 단청이 ‘생얼’ 그대로다.
귀신사의 뒤에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탑전을 지킨다. 그 옆엔 석수상이 있고, 석수 등 위에는 남근석이 빳빳이 서 있다. 풍수적으로 이곳에 음기가 많아 세운 석물이다. 마침 귀신사도 비구니 사찰이다. 탑전 오르는 돌계단에 앉아 모악산을 바라보면 백운동 오르는 길이 여인의 가르마처럼 보인다. 돌계단 양 길섶엔 야생초가 성성하다.
모악산 위치 전북 완주군 구이면 구이로 1505 문의 모악산 도립공원관리사무소 063-290-2752 | 금산사 위치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문의 종무소 063-548-4441~2, 템플스테이 063-542-0048 | 심포항 위치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문의 김제시 문화홍보축제실 063-540-3374
서해안 바다·들판 따라가면 어느새 변산마실길 도착
변산마실길은 새만금전시관이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곳에서 물막이 댐을 따라 33.9km를 거슬러 올라가면, 끝 지점에 군산이 있다. 해안 백사장 길과 호젓한 숲길이 수시로 번갈아 나타난다. 모랫바닥은 말랑말랑하다. 나뭇잎 숲길은 푹신하다.
백사장이나 바닷가를 걷는 길이 25%가량이고 나머지는 젊은 군경이 오가던 해안초소 길이다. 초소 길은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을 따라 이어졌다. 경치가 빼어난 곳엔 어김없이 초소나 벙커가 나타난다. 변산해수욕장~고사포해수욕장 해안초소 숲길을 걷다보면 파도에 밀려온 포말이 발밑을 간질인다.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나면 해안사구가 나온다. 해안사구는 말 그대로 모래언덕.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그 밑엔 지하수를 담아둔다. 1개월에 한 번 그믐날엔 고사포해수욕장~하섬의 바닷길이 열린다.
적벽강 해안절벽은 수사자를 닮았다. 언뜻 보면 수사자가 엎드려 있는 것 같다. 붉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수사자다.
마실길은 적벽강의 아래 모래밭을 지나 격포까지 1.5km가 이어진다. 적벽강은 중국의 소동파(1036~1101)가 노닐던 적벽강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 그다음 닿는 곳이 1코스 끝 지점인 채석강(彩石江)이다. 채석강 역시 중국의 시선 이백(701~762)이 강물 속의 달을 따려다가 빠져 죽은 채석강과 닮은 곳이다.
채석강의 절벽 아래 바윗돌은 칠흑처럼 검은색이다. 바닷물이 들락거리며 멸치젓갈의 잿빛으로 만들었다. 출렁이는 물결무늬도 뚜렷하다. 검은 돌은 흑진주처럼 반들반들하다.
변산은 바다를 안는다. 자꾸만 머리를 비비며 달려드는 바다를 쓰다듬는다. 들판의 곡식은 바닷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 흐느낌을 들으며 익는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채석강의 책 읽는 소리를 듣고 깨우친다. 적벽강 수사자의 기개를 배운다.
곰소만은 ‘만(灣)’이 아니라 ‘강(江)’ 같다. 강처럼 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언뜻 보면 영락없는 ‘벙벙한 강 하류’다. 마주 보는 저쪽은 선운사가 있는 고창이다. 이쪽은 모항, 곰소, 줄포가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곰소항은 곰처럼 생긴 두개의 섬과 그 섬 앞바다 깊은 ‘소(沼)’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다. 속 깊은 사람을 ‘곰소 둠벙 속같이 깊다’고 하는 이유다.
서해는 일몰이 장관이다. 적벽강, 채석강, 봉수대, 솔섬이 안성맞춤이다. 저물녘 채석강 방파제에서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서방정토를 바라본다. 구물구물 어리석은 중생들이 오종종 모여 해넘이에 넋이 빠진다. 저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댄다.
변산마실길 위치 전북 부안군 변산면 보안면, 상서면, 진서면, 하서면 문의 변산반도 국립공원사무소063-582-7808, 내소사분소 063-583-2443, 격포분소 063-583-2064 | 적벽강 위치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252-20 문의 변산반도 국립공원사무소 063-582-7808 | 채석강 위치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301-1 문의 부안군 문화관광과 063-580-4713
백제 승려가 지은 내소사, 나무 하나하나 깎고 짜 맞춰
꽃살 문짝은 정면 3칸에 모두 8개가 있다. 정면에서 볼 때 오른쪽에서 3번째에 새겨져 있다. 6번째 문짝엔 연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문짝 아래는 입을 다문 봉오리 모양이지만, 문짝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꽃이 벌어진다. 문짝 맨 위쪽 연꽃은 꽃잎이 활짝 피었다. 문짝 아래 주춧돌은 울퉁불퉁 자연석이다.
역시 내소사는 비구니 스님이 지은 절집답다. 633년 백제 무왕 때 이 절집을 지은 혜구두타 스님은 어떤 분일까. 현재의 대웅전은 1633년(인조 11년)에 다시 지은 것이지만, 혜구두타 스님의 안목은 그대로 배어 있다.
내소사 대웅전에서는 쇠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무를 하나하나 깎고 짜 맞췄다. 빛바랜 단청이 그윽하고 웅숭깊다.
내소사 뒤엔 관음봉(433m)이 솟아 있다. 그 관음봉을 그대로 본떠 지은 것이 설선당(說禪堂)이다. 설선당 앞마당에서 보면, 두 귀가 봉긋이 솟은 것이 영락없는 관음봉이다. 설선당과 관음봉이 그대로 겹쳐 보인다. 설선당의 편액 글씨도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쓴 것이다. 역시 관음봉처럼 날아갈 듯하다. 내소사 뒤 언덕배기엔 청련암이 있다. 인촌 김성수(1891~1955) 선생과 고하 송진우(1889~1945) 선생이 밤새워 나라를 걱정하던 곳이다.
내소사 위치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 (진서면) 문의 종무소 063-583-7281, 템플스테이 063-583-3035
미선나무·꽝꽝나무·후박나무… 식물의 보물섬
변산 바람꽃은 ‘변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풀꽃이다. 땅에서 피어나는 하얀 배꽃 같다. 순박하고 정결하다. 변산은 식물의 보물섬이다. 호랑가시나무(천연기념물 제122호), 후박나무(천연기념물 123호), 꽝꽝나무(천연기념물 124호), 미선나무(천연기념물 370호) 군락지가 있다. 난대성 호랑가시나무, 후박나무, 꽝꽝나무는 변산이 북방한계선이고, 미선나무는 변산이 남방한계선이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자생하는 토종이다.호랑가시나무 군락지는 마실길 도중인 모항 뒷자락 갓길 옆에 있다. 후박나무는 적벽강 바닷가에 있다. 꽝꽝나무는 불 속에 넣으면 꽝꽝 소리 내며 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호랑가시나무와 사촌쯤 된다. 같은 감탕나뭇과인 것이다. 군락지가 미선나무와 같은 지역이다. 변산면 중계리에 200여 그루가 있다. 마실길 3구간에서 가깝다. ‘미선(尾扇)’은 열매가 둥근 부채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개나리처럼 이른 봄에 잎보다 흰 꽃이 먼저 핀다.
신선이 노니는 섬 선유도
선유도는 ‘신선이 노니는 섬’이다. 장자도, 무녀도와 다리로 이어져 이미 한 몸이 됐다. 5개의 산봉우리가 섬이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지그시 못을 박는다. 5개의 꼭짓점이 곧 선유·장자·무녀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선유도의 3개 봉우리인 망주봉(104.5m), 선유봉(111m), 남악산(155.6m)과 장자도의 대장봉(142.8m), 무녀도의 무녀봉(130.9m)이 그곳이다. 이 중에서도 망주봉이 으뜸이다.
선유도는 어디에서도 바다가 보이고, 섬이 보인다. 느릿느릿 걸어도 한나절이면 얼추 웬만한 곳은 갈 수 있다. 천천히 다녀도 3~4시간이면 선유도 구석구석까지 대강 볼 수 있다. 큰 섬은 일단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섬도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섬 속에 그만 내가 녹아 없어져버린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고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선유도는 군산에서 서남쪽으로 약 50km 떨어져 있다. 3개의 섬을 합치면 주민은 1100여 명에 달한다. 선착장에 배가 닿으면 골프장 전동카트가 줄을 서서 맞이한다. 섬에만 줄잡아 100여 대의 전동카트가 관광객들의 발 구실을 한다. 자전거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걸어서 한 바퀴 도는 게 좋다.
걷기 코스는 3개다. A코스는 선착장에서 출발해 선유도해수욕장을 지나 망주봉, 대봉전망대, 몽돌해수욕장, 선착장까지 총 길이 7.8㎞에 달한다. B코스도 선착장에서 시작하지만 선유봉으로 빠진다. 장자대교를 지나 장자도, 대장봉을 거쳐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온다. 길이는 7.6㎞. C코스는 선착장에서 선유대교를 건너 무녀봉을 찍고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코스의 총 거리는 5㎞에 이른다. 여기서 선유도해수욕장은 국토해양부가 서해 5대 해수욕장(선유도·백길·배낭기미·신도·모항)으로 뽑은 곳 중 하나다.
선유도의 원래 이름은 군산도다. 산들이 무리 지어 있는 섬이라는 의미다. 예부터 서해의 배꼽으로 군사 요충지였던 곳. 중국과 일본 무역선들이 들락거렸고, 당연히 수군진지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왜구가 이곳을 피해 돌아서 연안을 침입하자 수군진지를 지금의 군산(鎭浦·진포)으로 옮겨버렸다. 그리고 진포를 ‘군산진’이라 불렀다. 자연히 선유도 일대는 ‘옛 군산도(古群山島)’가 됐다.
2017년 말이면 고군산도는 사실상 육지가 된다. 새만금 둑과 연결된 신시도에서 다리가 이어진다. 4.4㎞에 이르는 신시도~무녀도 구간은 이미 개통됐다. 무녀도~선유도~장자도~대장도를 잇는 구간은 공사가 한창이다.
고군산군도 위치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1길 | 선유도 위치 전북 군산시 옥도면 선유남길 34-22 일대 문의 군산시 관광진흥과 063-454-3337